최근 수정 시각 : 2026-01-15 01:57:59

키스 자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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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키스 자렛[1]
Keith Jarrett
파일:keithimg2.jpg
출생 1945년 5월 8일 ([age(1945-05-08)]세)
펜실베이니아 주 앨런타운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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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피아니스트, 작곡가
장르 재즈, 클래식
학력 버클리 음악대학
활동 1966년 ~ 2018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음악 경력
2.1. 유년기2.2. 사이드맨 시절 (1964~1970년대 초반)
2.2.1. 아트 블래키 (1964)2.2.2. 찰스 로이드 (1966~1969)2.2.3. 마일스 데이비스 (1970~1971)
2.3. 리더로서 (1967~1970년대 후반)
2.3.1. 첫 번째 트리오 (1967~1971)2.3.2. 아메리칸 쿼텟 (1970년대)2.3.3. 유러피안 쿼텟 (1970년대)
2.4. 솔로로서 (1971~2018)2.5. 스탠더드 트리오 (1983~2014)2.6. 클래식 음악 활동 (1970년대~2010년대)2.7. 기타
3. 여담

1. 개요

미국재즈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초기에 아트 블래키의 재즈 메신저스에서 피아니스트로 경력을 시작하였으며 찰스 로이드, 마일스 데이비스를 거쳐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리더, 솔로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클래식을 비롯해 가스펠, 블루스, 민속 음악 등에서 영향을 받은 피아노 솔로 즉흥연주 앨범인 The Köln Concert는 약 400만 장이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솔로 피아노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피아노 독주 형식 즉흥연주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평가받는다.

1980년대에 이르러선 빌 에반스 트리오 이후 재즈사에서 가장 큰 자취를 남기고 있는 키스 자렛, 게리 피콕, 잭 디조넷의 '스탠더드 트리오'가 결성되었고, 30년 이상 레코딩 및 투어를 지속해왔다.

2018년 2월과 5월, 두 차례의 뇌졸중을 겪은 이후 왼손이 편하지 않아 사실상의 은퇴 상태에 들어갔다. 2025년말 기준, 2016년 7월 유럽 투어의 실황 녹음들(<Munich 2016>, <Budapest Concert> 등)이 음반화된 그의 마지막 레코딩이다.

2. 음악 경력

2.1. 유년기

1945년 5월 8일 펜실베이니아 앨런타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독일계와 슬로베니아계 이민자 출신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보여주었는데, 3살 전 피아노 레슨을 시작했으며 7살엔 그의 첫 번째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생상스 등을 연주했다.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걷던 키스 자렛은 펜실베이니아의 엠마우스 고등학교에서 재즈를 배운 후 현대 재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나디아 불랑제에게서 파리에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결정적으로 뉴 호프에서 데이브 브루벡의 연주에 매료되어 그 제안을 거절하고 클래식에서 재즈 쪽으로 진로를 수정하게 된다.

1963년 엠마우스 고등학교 졸업 후 보스턴으로 이주해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했으며, 그 지역의 칵테일 바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연주를 시작했다.

2.2. 사이드맨 시절 (1964~1970년대 초반)

2.2.1. 아트 블래키 (1964)

1964년 뉴욕으로 이사하여 빌리지 뱅가드 클럽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아트 블래키가 자신의 그룹인 재즈 메신저스의 피아니스트로 그를 고용하게 되었다.[2] 하지만 아트 블래키와 마찰을 빚은 끝에 4개월간의 투어 뒤 재즈 메신저스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 활동 중에 잭 디조넷[3]의 눈에 띄어 그의 추천으로 찰스 로이드 쿼텟에 합류하게 된다. 둘의 길고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2.2.2. 찰스 로이드 (1966~1969)

피아노, 소프라노 색소폰, 퍼커션 키스 자렛
창의성, 모험심, 락과 히피 문화에 대한 개방성으로 당시의 재즈 뮤지션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1960년대 후반의 찰스 로이드 쿼텟은 키스 자렛의 입지를 다지는 초석이 된다. 그들은 락의 열기가 절정에 다다르던 당시 지미 헨드릭스, 크림 등과 한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라이브 앨범 <Forest Flower>는 재즈 음반으로는 최초로 100만장 이상이 판매되고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다. 심지어 서구 문화에 매우 배타적이던 소련에까지 가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술적 견해 차이와 금전적 갈등으로 말미암아 1969년 앨범 <Soundtrack>을 끝으로 해체되고 만다.

키스 자렛이 참여한 찰스 로이드 쿼텟의 음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Dream Weaver, 1966
- In Europe, 1966
- The Flowering, 1966
- Forest Flower, 1967 (1966년 몬터레이 페스티벌 공연)
- Love-In, 1967
- Journey Within, 1968
- Soundtrack, 1969
- In the Soviet Union, 1970 (1967년 소련 공연)
그밖에 다양한 편집 앨범이 존재한다.

2.2.3. 마일스 데이비스 (1970~1971)

Miles Davis - The Isle Of Wight Festival
찰스 로이드와 결별한 키스 자렛은 이미 절친이 된 잭 디조넷과 함께 한창 재즈 락 퓨전 실험을 벌이고 있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 합류하게 되는데, 주로 칙 코리아와 번갈아가며 일렉트릭 오르간이나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했으나 이미 퓨전 재즈와 전자 악기에 대한 강한 염증을 느끼는 도중이었다.[4] 그럼에도 마일스 데이비스를 향한 존경심 및 디조넷과 함께 연주하고 싶은 마음에 활동을 지속했지만 1971년 잭 디조넷이 밴드를 나가게 되자 같은 해 12월 뒤를 따르게 된다.

키스 자렛이 참여한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Miles Davis at Fillmore, 1970
- Live-Evil, 1971
- Get Up With It, 1974 (1970~1974년 녹음)
- The Cellar Door Sessions 1970, 2005
그밖에 다수의 라이브 앨범과 편집 앨범이 존재한다.

2.3. 리더로서 (1967~1970년대 후반)

2.3.1. 첫 번째 트리오 (1967~1971)

찰스 로이드 쿼텟에 몸 담고 있던 1967년 키스 자렛은 찰리 헤이든, 폴 모션과 트리오를 결성하고 리더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오넷 콜먼빌 에반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5] 리더 데뷔작은 <Life Between the Exit Signs>(1967)이었으며, 같은 멤버로 <Somewhere Before>(1969)와 <The Mourning of a Star>(1971)가 뒤이어 출반되었다.

한편 1968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메인으로 내건 두 번째 음반 <Restoration Ruin>이 나왔는데, 그 길고 긴 키스 자렛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최고의 괴작으로 꼽히곤 한다. 원맨밴드로 혼자 모든 곡을 쓰고 연주하고 심지어 노래도 불렀다(...) 밥 딜런을 어설프게 따라한 듯하다는 등 평가는 과히 좋지 못하다.

2.3.2. 아메리칸 쿼텟 (1970년대)

'키스 자렛 아메리칸 쿼텟'은 위의 트리오에 색소폰의 듀이 레드먼이 합류한 쿼텟을 일컫는 호칭으로 <Birth>(1971)와 <El Juicio>(1971 녹음, 1975 발매)에서부터 시작해 1970년대 내내 12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한다. 때로는 기타리스트나 퍼커션 주자가 추가되기도 했지만 기본 틀은 어디까지나 위의 4인조였으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기본 악기 외에도 수많은 보조 악기를 함께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음악적으로는 정통 포스트밥, 가스펠, 월드 뮤직(주로 중동 음악), 프리 재즈가 혼합된 자유분방하고 복잡한 사운드를 주로 선보였다. 이들의 대표작으로는 압도적으로 <The Survivor's Suite>(1977)가 꼽힌다. 단 한 곡이 LP의 앞뒷면에 2부작으로 나뉘어 담긴 대작으로, 키스 자렛의 커리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반이다. 그밖에도 <Backhand>(1974), <Treasure Island>(1974), <Death and the Flower>(1975), <Eyes of the Heart>(1979)[6] 등이 있다.

2.3.3. 유러피안 쿼텟 (1970년대)

1971년 음반사를 ECM으로 옮긴 후 대표인 만프레드 아이허의 권유로 노르웨이의 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 등과의 협업이 시작되게 된다. 베이스에 팔레 다니엘손(스웨덴), 드럼에 욘 크리스텐센(노르웨이)이 가세하여 구성된 진용을 아메리칸 쿼텟에 빗대어 '유러피안 쿼텟'이라고 부른다. 아메리칸 쿼텟에 비해 실험성은 줄이고 서정성은 늘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이 낸 음반은 모두 5장인데, 스튜디오 앨범으로는 <Belonging>(1974)과 <My Song>(1978), 라이브 앨범으로는 <Nude Ants>(1979, 미국 뉴욕 라이브), <Personal Mountains>(1979년 일본 도쿄 라이브, 1989 발매), <Sleeper: Tokyo, April 16th, 1979>(라이브, 2012 발매)가 있다. 특히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은 아래의 솔로 대표작들 다음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2.4. 솔로로서 (1971~2018)

키스 자렛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는 피아노 솔로 작업은 1971년 ECM에서의 데뷔작 <Facing You>에서부터 시작된다. "재즈의 흐름을 바꾼 획기적인 녹음", "아트 테이텀 이후 최고의 솔로 피아노 녹음"이라는 격찬이 쏟아졌으며, 이후 솔로 작업은 최만년까지 이어지며 그의 음악세계의 주축을 이루게 된다. 특히 라이브를 통해 선보이는 100% 즉흥연주는 오랜 시간 화제와 찬사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다음에 무엇을 연주할지 아주 조금만 알고 있을 때 최고의 연주가 나왔다고.

대표작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피아노 솔로 음반이라는 <The Köln Concert>(1975)를 비롯 <Solo Concerts: Bremen and Lausanne>(1973), <Sun Bear Concerts>(1976, 10LP/6CD), <Paris Concert>(1990), <Vienna Concert>(1991), <Radiance>(2005), <The Carnegie Hall Concert>(2006), <Rio>(2011) 등이 있으며 최만년인 2016년 유럽 투어 녹음들도 하나씩 음반화되고 있다. 거론된 음반은 <Facing You>를 제외하면 모두 라이브 녹음이며, 키스 자렛의 음반 제목이 '~ 콘서트'로 되어있으면 으레 솔로 즉흥연주라고 보면 된다.

2.5. 스탠더드 트리오 (1983~2014)

즉흥 솔로와 아메리칸/유러피안 쿼텟으로 뜨겁고 분주한 1970년대를 보낸 키스 자렛은 1980년대 들어서부터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해 즉흥으로 갈 데까지 가봤으니 이젠 그 정반대인 스탠더드 재즈의 길을 걸어보겠다는 것. 한편으로는 1980년대 들어 재즈계에서 퓨전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메인스트림 부흥 바람이 분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베이스의 게리 피콕, 드럼의 잭 디조넷과 함께 '스탠더드 트리오'가 결성된다.[7]

1983년의 <Standards, Vol. 1>과 <~ Vol. 2>로부터 시작된 여정은 2014년 11월 30일 미국 뉴저지 공연예술센터에서의 마지막 공연에 이르기까지 30년이 넘게 이어지며 숱한 음반과 공연 활동을 양산하게 된다.[8] 이들은 빌 에반스 트리오 이래 최강의 피아노 트리오,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앙상블이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메인스트림 재즈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1992년에는 일시적으로 예전 동료였던 폴 모션이 드럼을 맡기도 했는데 이때의 라이브가 <At the Deer Head Inn>(1992)과 <The Old Country - More from the Deer Head Inn>(2024 발매)로 남아있다.

레파토리는 그 이름처럼 대다수가 재즈 스탠더드였지만 중간중간 자작곡을 끼워넣기도 했고 개중에는 100% 자작곡 혹은 즉흥연주로만 된 음반도 있었다. <Changes>(1984), <Changeless>(1989), <Inside Out>(2001), <Always Let Me Go: Live in Tokyo>(2002) 등이 후자의 경우로, 스탠더드들 못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스탠더드 레파토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음반으로는 안타깝게도 6CD 세트인 <At the Blue Note: The Complete Recordings>(1995)가 꼽힌다.

2.6. 클래식 음악 활동 (1970년대~2010년대)

재즈 뮤지션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키스 자렛은 클래식 음악 활동도 꾸준히 병행해왔다.[9] 그것도 연주자로서만이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비록 '본업' 쪽의 인기나 평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할지언정 그 꾸준함만큼은 인정할 만한 것이었으며 뒤로 갈수록 평가도 점차 좋아졌다. 그 시작은 1973년작 <In the Light>였으며 이후 커리어 내내 클래식 성향의 자작곡과 함께 바흐, 헨델 등의 고전부터 아르보 패르트와 같은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래식 녹음을 선보여왔다. 심지어 어떤 음반에선 피아노 연주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작곡가로만 참여하기도 했으며 피아노 외에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등의 고악기도 소화했다.

2.7. 기타

1960년대의 여러 사이드맨 활동이 성격에 맞지 않았던지 1970년대부터는 리더 또는 솔로 활동에 주력해왔지만 다른 음악인들과의 협업 또한 드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Gary Burton, Gary Burton & Keith Jarrett, 1971 :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과의 협업.
- Freddie Hubbard, Sky Dive, 1972 : 트럼펫 연주자 프레디 허바드의 앨범에 참여. 조지 벤슨, 론 카터, 빌리 코브햄 등 참여진이 쟁쟁하다. 마일스 데이비스 시절의 영향으로 그 싫어한다는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한다.
- Kenny Wheeler, Gnu High, 1975 : 케니 휠러의 플루겔혼 음반. 베이스의 데이브 홀랜드, 드럼의 잭 디조넷과 함께 했다.
- Gary Peacock, Tales of Another, 1977 : 스탠더드 트리오의 계기가 된 음반.
- Keith Jarrett & Charlie Haden, Jasmine, 2010 & Last Dance, 2014 : 오랜 동료인 찰리 헤이든과의 듀엣 작업. 둘 다 2007년 녹음되었으며, 두 번째 음반의 발매 약 한 달 후 찰리 헤이든은 세상을 떠난다.

3. 여담

연주 중의 '허밍'으로 악명 높다. 때로는 가성으로 자신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제창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간중간 '아~, 아~'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매우 꺼리기도 한다. '키스 재릿이 노래 많이 하는 음반과 덜 하는 음반'을 구분해 구매 여부를 결정할 정도. 특이한 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는 전혀 이러지 않는다는 것. 연주중 감정의 북받침을 참지 못해 허밍을 하기로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또한 악명이 높으며, 재즈 쪽에도 델로니어스 몽크 등 여러 사례가 있다.

반면 공연중 관객들의 기침 소리 등 소음에는 극도로 민감하다(...) 때로는 연주를 중단하고 '다같이 기침하는 시간'을 갖기도 할 정도. 공연중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해서 일부러 조명을 끄고 공연한 적도 있다. 또한 공연장의 음향 조건에 대해서 역시 극히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자악기/장비(일렉트릭 포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대놓고 표명한다. 자기 자신도 마일스 데이비스 밑에서 활동할 때는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했지만 그건 마일스에 대한 존경심때문에 꾹 참고 했던 거라고. 70년대 초반 이후로는 자신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음악인들에게도 언제나 어쿠스틱 악기만을 요구한다. 이런 탓에 같은 ECM의 간판인 팻 메시니와의 협연은 재즈 팬들 사이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으로 일컬어져왔다.

총 세 차례 내한공연을 가졌다. 2010년 10월 6일에는 스탠더드 트리오로, 2011년 6월 2일엔 솔로로, 2013년 5월 19일엔 다시 스탠더드 트리오로(30주년 기념) 한국 팬들과 만난 바 있다. 세 번 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되었다.


[1] 원어 발음은 자렛보다 재럿에 훨씬 가깝다.[2] 1966년 4월에 발매된 재즈 메신저스의 라이브 앨범 <Buttercorn Lady>가 자렛의 첫 정식 발매 음반이다.[3] 20세기 후반기 재즈 드러머 중 최상급의 기교와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 나이는 키스 자렛보다 세 살 많으며, 당시는 갓 결성된 찰스 로이드 쿼텟의 드러머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4] 키스 자렛의 클래식적인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 뿐만 아니라 허비 행콕이 전자 악기를 사용하며 펑크, 퓨전 등의 음악으로 전향한 것에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5] 본인이 두 사람을 존경하기도 했거니와 찰리 헤이든은 오넷 콜먼과, 폴 모션은 빌 에반스와 활동했던 인물들이다.[6] 1975년 오스트리아에서의 라이브 녹음으로, 아메리칸 쿼텟의 마지막 발매작이다.[7] 잭 디조넷과는 찰스 로이드 쿼텟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게리 피콕과는 피콕이 리드를 맡았던 1977년작 <Tales of Another>가 처음이었다. 이 음반의 드러머 또한 잭 디조넷이었으니 스탠더드 트리오의 기원이라 할 만하다.[8] 게리 피콕은 2020년, 잭 디조넷은 2025년 세상을 떴다.[9] 그가 고등학교 때에서야 클래식에서 재즈로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