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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91 농구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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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90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산업
MVP: 한기범
1990-91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정덕화
1991-92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허재
1. 개요2. 참가팀3. 운영방식4. 대회 결과
4.1. 1차 대회4.2. 2차 대회4.3. 3차 대회4.4. 3-4위전4.5. 챔피언결정전4.6. 대회 결산

1. 개요

1990년 12월 1일부터 1991년 3월 7일까지 펼쳐진 대한민국 농구대회 중 최 정상 레벨의 대회. 남자 18개팀, 여자 14개팀이 참가하였다. 이 문서에서는 남자부 대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차수 우승팀 준우승팀 MVP 신인상
1차대회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허재(기아) 문경은(연세대)
2차대회 현대전자 기아자동차 이원우(현대)
3차대회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허재(기아)
챔피언결정전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정덕화(기아)

2. 참가팀


대학농구연맹의 요구에 따라 대학팀 전체(12팀)가 참가하기로 하였으나, 성균관대학교만 자체 불참하였다.

3. 운영방식

  • 1차대회: 총 18개 팀을 4개 조로 나누어, 조별리그 후 상위 2개팀이 8강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 2차대회: 1차대회 각 조 3위팀까지 총 12개 팀이 진출, 6개팀씩 2개조로 조별리그 후, 각 조 상위 2개팀이 4강 풀리그를 거쳐 우승자를 가렸다.[8]
  • 3차대회: 1,2차 대회 성적을 점수화하여 상위 8개 팀이 진출, 4개팀씩 2개조로 조별리그 후 각 조 상위 2개팀이 4강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렸다.
  • 챔피언 결정전: 1,2,3차대회 성적을 토대로 최상위 2팀이 5전 3선승제로 최종 우승자를 가렸다.
무슨 대회가 토너먼트 했다, 풀리그 했다 이랬다 저랬다 한다.

4. 대회 결과

4.1. 1차 대회

1990년 12월 1일 개막하여 1991년 1월 2일까지 총 18팀 (실업 7팀, 대학 11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1) 조별 예선
순위 A조 B조 C조 D조 비고
1위 삼성전자 4 - 0 기업은행 4 - 0 상무 3 - 0 기아자동차 3 - 0 8강 진출
2위 한국은행 3 - 1 중앙대 3 - 1 현대전자 2 - 1 산업은행 2 - 1 8강 진출
3위 연세대 2 - 2 단국대 2 - 2 고려대 1 - 2 경희대 1 - 2 2차대회 진출
4위 건국대 1 - 3 한양대 1 - 3 명지대 0 - 3 동국대 0 - 3 탈락
5위 국민대 0 - 4 홍익대 0 - 4 탈락

2) 8강 토너먼트
8강전 4강전 결승전
삼성전자 (A조 1위): W
중앙대 (B조 2위): L
삼성전자: L
기아자동차: W
기아자동차: W
상무: L
기아자동차 (D조 1위): W
현대전자 (C조 2위): L
기업은행 (B조 1위): L
한국은행 (A조 2위): W
한국은행: L
상무: W
상무 (C조 1위): W
산업은행 (D조 2위): W
  • 1차대회 우승: 기아자동차 / 준우승: 상무 / 3위: 삼성전자 / 4위: 한국은행
  • 1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허재 (기아자동차)
    • 득점상: 김현준 (삼성전자)
    • 리바운드상: 김유택 (기아자동차)
    • 어시스트상: 강동희 (상무)
    • 수비상: 이민형 (기업은행)
  • 2차대회 진출팀: 각 조 3위까지 진출
    • 조 1위: 삼성전자, 기업은행, 상무, 기아자동차
    • 조 2위: 한국은행, 중앙대, 현대전자, 산업은행
    • 조 3위: 연세대, 단국대, 고려대, 경희대
  • 1차대회에 출전한 대학 11팀 중 실업팀을 꺾은 경기가 단 한 경기도 없었다. 그나마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가 실업팀들과 겨우 접전을 벌이다 패하였으며, 나머지 대학팀들은 실업 선배들과 현격한 기량차를 보이며 "농구대잔치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1991-92 농구대잔치부터는 대학팀의 출전이 상위 7팀으로 제한된다.
  • 86 서울 아시안게임 및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력 우수자"에 대한 병역특례(예술체육요원)가 적용되면서 허재를 비롯한 동시대의 국대급 선수들이 대부분 병역특례를 받았고[9], 이로 인해 전력약화를 우려한 상무는 88-89, 89-90 농구대잔치를 두 대회 연속 불참하였다. 강동희 때부터로, 중앙대 졸업직후 입대한 강동희는 농구대잔치에 2년만에 복귀한 상무를 1차대회 돌풍의 팀으로 이끌며 결승까지 진출시킨다. 그러나 1차대회 종료직후 강동희는 전역하여 곧바로 원소속팀인 기아자동차팀으로 복귀, 2차대회부터 출전하게 된다.[10] 이로인해 상무는 팀 전력의 50%를 잃었다.
  • 전 대회의 챔피언결정전 마지막경기에서 후반전에 막히면서 농구대잔치 통산 3999점에 그쳐 아홉수를 뚫지 못했던 이충희의 4000득점이 1차대회 첫 경기에서 이뤄졌다.

4.2. 2차 대회

1991년 1월 5일부터 1991년 2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1) 조별 리그
순위 A조 B조 비고
1위 삼성전자 4-1 기아자동차 5-0 4강 진출
2위 연세대 4-1 현대전자 4-1 4강 진출
3위 상무※ 4-1 기업은행 3-2
4위 고려대※ 1-4 한국은행 2-3
5위 산업은행※ 1-4 중앙대 1-4
6위 경희대※ 1-4 단국대 0-5
※ 승패가 동률일 경우 골득실로 순위를 결정했다.

2) 결승리그
순위 4강리그 비고
1위 현대전자 2-1 골득실로 순위 결정
2위 기아자동차 2-1
3위 연세대 2-1
4위 삼성전자 0-3
  • 2차대회 우승: 현대전자 / 준우승: 기아자동차 / 3위: 연세대 / 4위: 삼성전자
  • 2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이원우 (현대전자)
    • 득점상: 김현준 (삼성전자)
    • 리바운드상: 이창수 (경희대)
    • 어시스트상: 강동희 (기아자동차)
    • 수비상: 강동희 (기아자동차)
  • 3차대회 진출팀: 1, 2차대회 성적을 점수화하여 총 8개팀 진출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삼성전자, 상무, 연세대, 한국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
    ※ 산업은행과 중앙대가 점수가 동률(공동 8위)이어서 별도의 단판 승부를 가지려 했으나, 중앙대 측에서 3차대회 진출 기회를 포기했다.
  • 포인트 가드 오성식의 부상 결장으로 1차대회 내내 고전을 면치못했던 연세대는 홍대부고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팀에 합류한 청소년대표 출신 가드 이상민의 가세 이후 180도 다른 팀으로 변모, 2차대회 내내 돌풍의 팀이 된다. 이 때 연세대의 라인업은 이상민 - 이상범 - 문경은 - 정재근 - 김재훈으로, 우승을 차지한 1993-94 농구대잔치 때의 라인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조별리그 첫게임에서 삼성전자를 격파하는 등 막강해진 전력으로 4강 결승리그에 진출하였고, 결승리그 첫게임에서도 1차대회 포함 무패가도를 달리던 최강 기아자동차를 76-71 5점차로 꺾는 파란을 일으킨다. 두번째 게임에서 삼성전자까지 이기면서 연세대 최초로 농구대잔치 차수별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가 싶었으나, 마지막 현대전자와의 게임에서 이충희의 33득점 활약속에 대패(91-72)하면서 최종 성적 2승 1패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차로 3위에 머물고 만다.
  • 반면 또다른 대학돌풍의 주역이 될것으로 예상되었던 장신군단 중앙대는 팀의 자랑인 장신 더블포스트 표필상(200cm)-정경호(202cm)가 실업팀들의 노련미에 맥을 못추면서 연전연패, 같은 대학팀인 단국대에게만 겨우 1승을 거두었다. 2차대회 중반 주전이자 졸업반 듀오인 김상준과 김영래가 입단 예정인 한국은행의 행원 연수를 가면서 생긴 전력의 누수가 예상외로 컸고, 심지어 조별리그 현대전자 전에서 정봉섭 감독이 무리한 항의로 경기 몰수패와 함께 감독 자격 1년간 정지의 중징계를 받는등, 기대했던 바와 달리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만다.

4.3. 3차 대회

1991년 2월8일부터 1991년 2월 24일까지 진행되었다.

1) 조별 리그
순위 A조 B조 비고
1위 상무 2-1 삼성전자 2-1※ 4강 진출
2위 기아자동차 2-1 현대전자 2-1※ 4강 진출
3위 연세대※ 1-2 한국은행 2-1※
4위 산업은행※ 1-2 기업은행 0-3
※ 골득실차로 조별 순위 확정

2) 4강 토너먼트
4강전 결승전
상무: 패
현대전자: 승
현대전자: 패
삼성전자: 패
기아자동차: 승
  • 3차대회 우승팀: 기아자동차 / 준우승: 현대전자 / 3위: 삼성전자 / 4위: 상무
  • 3차대회 개인부분 시상
    • MVP: 허재 (기아자동차)
    • 득점상: 허재 (기아자동차)
    • 리바운드상: 김유택 (기아자동차)
    • 어시스트상: 강동희 (기아자동차)
  • 챔피언 결정전 진출팀 (1, 2, 3차대회 총 점수 상위 2팀 진출): 기아자동차, 현대전자
  • 최강팀 기아자동차는 A조 예선 1차전에서 연세대를 대파하며 2차대회 결선리그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나, 이어진 2차전에서 상무에 또다시 패하고 만다. 이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1차대회 우승, 2차대회 준우승으로 이미 챔피언 결정전 진출점수를 확보한 기아자동차가 너무 느슨하게 경기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할 정도. 이바람에 상무는 1차전에서 산업은행에 패하고도 기아차, 연세대를 연파하며 A조 1위로 4강에 진출하지만...
  • 기아자동차의 조 2위가 확정되자 난리가 난쪽은 B조였다. B조 1차전에서 한국은행이 삼성전자를 잡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2차전까지 마친 상태에서 현대전자 2승, 삼성전자 1승 1패, 한국은행 1승 1패, 기업은행 2패로 현대의 조 1위가 유력했다. 그러나 조 1위로 나가면 최강 기아자동차를 4강에서 만나는 독박을 쓰는 관계로, 3차전에서 전력이 다소 우세한 현대가 라이벌 삼성에 패하면서 삼성이 조 1위, 현대가 2위로 4강에 진출한다. 그 결과, 4강전에서 조 1위팀들(상무, 삼성)이 모두 탈락하는 이변아닌 이변이 벌어진다.

4.4. 3-4위전

삼성전자 89:60 상무

4.5. 챔피언결정전

1차전 (1991.03.01) 기아자동차 70:63 현대전자
2차전 (1991.03.03) 기아자동차 101:90 현대전자
3차전 (1991.03.07) 기아자동차 76:69 현대전자
  • 챔프전 2차전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1만 3천여명의 대관중 앞에서 열렸다. 90-91 농구대잔치 들어 기아에만 무려 4연패를 당하고 있던 현대는 독기 넘치는 수비를 펼치다 결국 그 유명한 허재 vs 임달식&김성욱의 난투극 사건을 일으킨다. 관련 동영상
    동영상을 보면 난투극이라 하긴 뭐한게, 허재는 소리는 고래고래 지르지만 실제론 맞기만 했다. 임달식한테 한번, 김성욱한테 풀파워 스트레이트 한번..
  • 2차전의 폭력사태 이후, 맨처음 주먹을 날린 임달식은 1년 출장정지, 허재와 김성욱은 각각 6개월 출장정지를 받는다. (허재는 안때렸는데??) 임달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선수에서 은퇴하였고, 허재의 징계는 이후 1991년 고베 아시아선수권 대표팀 선발을 위해 3개월로 경감되어 적용된다.

4.6. 대회 결산


[1] 서울 삼성 썬더스의 가드 이동엽의 아버지이자 前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감독.[2] 1차대회 도중 입은 부상으로 의병전역.[3] 최부영 前 경희대 감독의 동생으로 180의 단신 득점기계였다.[4] 고교 졸업예정자 조기등록 규정에 따라 2차대회부터 출전.[5] 고교 졸업예정자 조기등록 규정에 따라 2차대회부터 출전.[6] 오성식은 대회기간 대부분 부상이었다.[7]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수석코치[8] 단 결승 풀리그시 조별리그에서 붙은 팀의 전적은 조별리그 전적을 그대로 안고 갔다. 따라서 4강 풀리그에서는 팀당 2경기씩만 했다.[9] 그러나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금메달 이후 남자 농구의 우승은 20년 뒤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당시는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세계청소년대회, 유니버시아드까지 병역특례가 적용되었으나 이후 범위가 점점 축소되어 현행 규정(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고정되었다.[10] 강동희는 보충역 판정을 받아 6개월만 복무했다. 이 당시 상무는 보충역 자원도 입대가 가능했으나 방위병이 폐지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되면서 상무는 현역 자원만 받게 되었고 이후에는 신장과 체중 때문에 보충역 판정을 받은 선수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11] 88-89 시즌 이후 3회 연속 우승이다. 참고로 허재가 88년도에 기아에 입단했다;;;[12] 원래는 허재가 MVP를 받는 것으로 확실시 되었으나 챔프전에서 폭행을 당한 일로 억울하게 징계를 받게 되어 제외되었다.[13] 허재는 챔프전에서 폭행을 당한 일로 억울하게 징계를 받게 되어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