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1:26:37

박재현(1970)

박재현의 수상 및 영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1998 1999

}}} ||
대한민국의 농구인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3~2004 올스타전을 관전한 박재현.jpg|width=100%]]
<colbgcolor=#eeeeee,#191919> 박재현
朴在賢
출생 1970년 10월 14일
사망 2004년 11월 8일 (향년 34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9cm
포지션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은퇴)
학력 대구동천초등학교 (졸업)
계성중학교 (졸업)
계성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졸업)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상무 농구단)
실업 입단 1992년 현대전자 입단
소속 현대전자/대전 현대 다이냇 (1992~1999)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1999~2000)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2000~2001)
가족관계 아내 박수완, 딸 박현민, 아들 박현준

1. 개요2. 아마추어 및 프로 시절3. 사망4. 사망 이후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그러나 30대 초반 쯤 투병 생활을 한 끝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 아마추어 및 프로 시절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1년 후배 봉하민과 함께 1991년에 개최된 대학선발팀에 뽑혀 이상백배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현대전자 입단 시까지는 거의 무명이었고, 불과 1년만에 조용히 상무에 입대를 결정한다. 1993-94 농구대잔치 준우승의 주역들인 정재근, 김상식, 이창수, 표필상, 남경원이 대거 제대하면서 전력이 약해져 버렸지만 다음해인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에이스 가드 오성식을 중심으로 무명선수들(박재현 본인을 포함해 이상범, 김현주, 김현국, 이병률)이 똘똘 뭉쳐 정규리그 6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이때 박재현은 189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서 4번으로 뛰면서 센터 이병률과 함께 상무의 포스트를 지켰고, 공격시엔 정확한 3점을 연이어 꽂으며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파일:박재현 대전현대 시절.jpg
파일:부산 기아 시절의 박재현.jpg

1997년 KBL 출범으로 인해 팀명이 대전 현대로 바뀐 이후에도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의 키 식스맨이자 에이스 스토퍼로 뛰면서 1998년과 1999년에 2년 연속으로 우승에 기여했고, 이후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Goldbank clickers)(1999-2000 시즌)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enterprise)(2000-2001 시즌)에서 각각 1년간 뛰고 은퇴했다. 그러나 ....

3. 사망

파일:서장훈과 악수를 한 박재현.jpg
2004년 2월에 개최된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게스트로 초청된 박재현이 서장훈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깨알같은 강동희김영기 총재.

2003년부터 다시 지도자의 꿈을 얻기 위해 수원여자고등학교에서 코치로 재직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5월,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병세 악화로 의식을 잃어가면서 같은 해 11월 8일, 34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많은 농구인들과 팬들은 고인에 대한 애도와 조의를 표했다.[1]

4. 사망 이후

박재현이 사망한 이후, 스포츠토토는 성금 1600만원을 적립하여 수익금 일부를 그의 유가족들에게 전달했으나 안타깝게도 가족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용직으로 일했던 아내 박수완씨의 말에 따르면 박재현이 선수 생활을 접은 직후에 투자했던 스포츠토토 예상지 발행 사업이 엄청난 손해를 본데다 빚더미에 올라 앉았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마련한 상계동의 한 아파트를 처분해 빚을 갚고 나니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했다는 게 힘들었다는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이보다 앞서서 같은 해 5월 24일에는 마찬가지로 농구계의 전설 중의 하나인 이원우도 장기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로써 2004년에만 한국 농구계의 큰 별 2명이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