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0:48:10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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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륜기(여백X).svg 역대 올림픽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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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축구 종목 제외)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1900
파리

(아마추어 클럽대항전)
1904
세인트루이스

(아마추어 클럽대항전)
1908
런던
1912
스톡홀름
<rowcolor=#202020,#DFDFDF> 6회 7회 8회 9회 10회
베를린
(제1차 세계 대전)
파일:벨기에 민간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로스앤젤레스
(축구 종목 제외)
1920
안트베르펜
1924
파리
1928
암스테르담
<rowcolor=#202020,#DFDFDF>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헬싱키
(제2차 세계 대전)
런던
(제2차 세계 대전)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핀란드 국기.svg
1936
베를린
1948
런던
1952
헬싱키
<rowcolor=#202020,#DFDFDF> 16회 17회 18회 19회 20회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1956
멜버른
1960
로마
1964
도쿄
1968
멕시코시티
1972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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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몬트리올
1980
모스크바
1984
로스앤젤레스
1988
서울
1992
바르셀로나
<rowcolor=#202020,#DFDFDF> 26회 27회 28회 29회 30회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그리스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rowcolor=#202020,#DFDFDF> 31회 32회 33회 34회 35회
파일:브라질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호주 국기.svg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

(연기)
2024
파리
2028
로스앤젤레스
2032
브리즈번
<rowcolor=#202020,#DFDFDF> 36회
파일:국기.svg
2036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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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36 베를린 올림픽 로고.svg
올림픽 축구
파일:1936 베를린 올림픽 축구 픽토그램.png
대회기간 1936년 8월 3일 ~ 8월 15일
진출국 16개국
우승
파일:트위터 금메달 이모지.svg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준우승
파일:트위터 은메달 이모지.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3위
파일:트위터 동메달 이모지.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득점왕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아니발레 프로시 | 7골
이전·이후 대회
1928년
암스테르담
1936년
베를린
1948년
런던

1. 개요2. 경기장3. 진출국4. 선수 명단5. 대회 진행
5.1. 토너먼트 대진표
6. 최종 순위7. 여담

[clearfix]

1. 개요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 종목에 대하여 서술하는 문서.

나치 독일 체제에서 굉장히 신경써서 준비한 대회였기 때문에 축구 종목에서도 아마추어 선수 뿐 아니라 각국에서 참가를 허용하기만 한다면 프로 선수도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문호를 개방한 대회이다.

2. 경기장

3. 진출국

대륙 국가 전 대회 성적 통산 진출 최근 진출 대회 최고 성적
개최국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독일 8강 3회 1928 8강[1912/1928]
유럽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3위 5회 1928 동메달[1928]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 3회 1920 8강[1920]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 5회 1924 동메달[1924]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1라운드 4회 1928 1라운드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 2회 1924 예선라운드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 3회 1924 8강[1912]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 2회 1912 8강[1912]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 2회 1912 4위[1912]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 4회 1920 금메달[1908/1912]
아시아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터키 1라운드 3회 1928 1라운드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 첫 진출 - -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 첫 진출 - -
아메리카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1라운드 3회 1928 1라운드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 첫 진출 - -
아프리카 파일:이집트 국기 (1922-1958).png 이집트 4위 4회 1928 4위[1928]
  • 당시 나치 독일과 뜻을 같이 하고 있던 추축국 일본이 사상 처음 올림픽 축구에 진출했다. 또한 핀란드가 독립국 지위를 얻고 다시 올림픽에 참여했으며 당시 중국 대륙을 장악한 중화민국, 아메리카의 페루가 처음 올림픽 축구에 진출했다.

4. 선수 명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참가팀 정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대회 진행

5.1. 토너먼트 대진표

경기 순번 대진표 대진표 경기 순번
<colbgcolor=#ffffff> 1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vs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VS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vs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colbgcolor=#ffffff> 2
3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vs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터키 VS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독일 vs 파일:룩셈부르크 국기.svg 룩셈부르크 4
5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vs 파일:이집트 국기 (1922-1958).png 이집트 VS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vs 파일:핀란드 국기.svg 핀란드 6
7 파일:폴란드 국기.svg 폴란드 vs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헝가리 VS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vs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8

5.1.1. 1라운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토너먼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이탈리아 1-0 미국
노르웨이 4-0 터키
일본 3-2 스웨덴
독일 9-0 룩셈부르크
폴란드 3-0 헝가리
오스트리아 3-1 이집트
페루 7-3 핀란드
영국 2-0 중국

5.1.2. 8강 이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1936 베를린 올림픽/축구/토너먼트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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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이탈리아 8-0 일본[10]
독일 0-2 노르웨이
폴란드 5-4 영국[11]
페루 4-2 오스트리아[12]

4강
이탈리아 2-1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3-1 폴란드

3위 결정전
노르웨이 3-2 폴란드

결승
이탈리아 2-1 오스트리아

6. 최종 순위

1936 베를린 올림픽 남자축구 우승국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첫번째 우승

7. 여담

  • 월드컵과 올림픽 축구를 통틀어 아시아 팀이 메이저 대회 최초로 본선 1승을 따낸 대회가 바로 이 대회다.[13][14] 일본이 1라운드 16강전에서 스웨덴에게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2라운드 8강 준준결승전에 진출과 최종 8위를 기록하면서 당시 세계 메이저 대회 8위(8강)기록을 세웠다. 당시 일본 대표팀에는 식민지 치하에 있던 조선의 보성전문학교 소속 김용식, 숭실전문학교 소속 김영근(金永根) 등 두 선수가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주전으로 뛰었고, 김용식과 김영근 두 사람은 올림픽 축구에 출전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 우승은 이탈리아가 차지했다. 2년 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우승하고 2년만에 다시 세계대회를 제패하며 우루과이에 이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팀으로 공인받게 된다. 이후 2년 뒤 프랑스에서 열린 월드컵까지 제패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세계 축구 헤게모니를 종주국이자 프로축구의 고장 영국과 함께 이탈리아가 꽉 잡게 된다.


[1912/1928] [1928] [1920] [1924] [1912] [1912] [1912] [1908/1912] [1928] [10] 프로시는 이 경기에서만 3골, 비아기는 4골을 넣으며 후드려팼다.[11] 매우 치열했던 경기.[12] 오스트리아의 페루 관중 난입에 대한 보상으로 재대결 요구가 받아들여짐. 8월 11일 예정이었으나, 이에 대한 항의로 페루 대표팀 전부 철수. 오스트리아가 2-0 몰수승으로 준결승 진출.[13] 지금이야 올림픽 축구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올림픽은 1930년에 첫 시작한 월드컵과 A매치 세계 메이저 대회였다. 게다가 1930년대의 월드컵은 당시 열악했던 여객선 교통 환경과 비용 등으로 너무 멀리서 열린다는 이유로 출전을 거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및 경제 위기로 1930 월드컵에 불참했듯, 1930년대에는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월드컵과 올림픽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올림픽과 월드컵이 정기적으로 재개한 이후 월드컵이 올림픽 축구를 역전하고 그 격차가 벌어지면서 올림픽 축구는 위상이 낮아진다.[14]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후 첫 A매치 세계 메이저 대회인 1948 런던 올림픽 18개국 대회에 대한민국이 진출하여 대한민국의 A매치 메이저대회 첫 승리(16강 멕시코전 5:3 승)와 첫 2라운드 진출 기록하였으며(8강 8위) 이 역시도 일본의 ‘베를린의 기적’(1936)과 마찬가지로 한국 축구 초창기에 이룩한 쾌거이다. 이 시절까지는 올림픽 출전 세계 선수들은 준프로로 대우받던 선수들이었으며,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적인 선수로 금메달팀 스웨덴의 군나르 노르달이 있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뤄졌던 1950년 월드컵이 재개하고 월드컵과 올림픽의 격차가 커지면서 유럽과 남미에서는 올림픽 축구는 메이저 대회로 평가 받지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