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0:22:14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1. 개요2. 상세
2.1. 성능2.2. 개발 비화
3. 한국에서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4. 기타5. 함께보기


Hercules Graphic Card

1. 개요

1982년부터 IBM PC 호환기종에 사용했던 MDA 호환 컴퓨터 그래픽 카드. 단색조 그래픽 카드로 흑백 화면만을 출력할 수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높은 해상도의 미려한 그래픽을 출력할 수 있고 가격까지 저렴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다. Hercules Graphic Card의 머릿글자를 따 보통 HGC라 줄여 부른다.

MDA, CGAIBM Model 5150과 함께 나온 1년 후인 1982년에 개발되어 IBM PC 호환 기종에 장착되어 널리 쓰였다. 정품 IBM PC는 CGA나 MDA를 달고 나왔기 때문에 IBM PC 호환 기종을 중심으로 장착되었다. 서드 파티 제품으로 IBM PC의 표준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표준에 가까울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다.

2. 상세

MDA의 설계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문자 모드는 MDA와 호환되었고 그래픽 모드의 특성 역시 MDA에 가깝게 설계되었으며 모니터도 MDA용 모니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화면 주사율도 MDA와 동일한 수평 주사율 18.4kHz, 수직 주사율 50Hz였으며 연결 단자도 같이 RGBI를 사용했다. 높은 해상도 덕에 주로 다양한 업무용 프로그램들이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를 지원했으며, 특히 한국과 대만, 홍콩 등의 2바이트 문자권(DBCS, Double Byte code Set)에서는 한글이나 한자 등을 표시하기에 유리해서 컬러 그래픽 카드였던 CGA를 누르고 많이 팔렸다. 고해상도로 문자 표현 수준에서 CGA보다 훨씬 유리했기 때문에 문서 작업이 많은 사무실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는 북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는 주로 개인보다는 사무실 환경에서 선호했다. 물론 북미에서는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이상의 해상도에 컬러까지 사용 가능한 VGA와 VGA를 잘 활용할 수 있는 GUI 환경인 Microsoft Windows가 보급되고 나서는 사무실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2.1. 성능

단색조 그래픽 카드였으며 다음의 화면 모드를 지원했다.
  • 문자 모드: 80자×25행 / 4단계 색조, 9×14 픽셀 글꼴 사용(실효 해상도 720×350)
  • 그래픽 모드: 720×348(픽셀 가로세로비 1:1.55) / 4단계 색조
    • 640×400(픽셀 가로세로비 1:1.2) / 4단계 색조[1]
  • 주사율: 수평(18.4kHz), 수직(50Hz)

문자 모드는 MDA와 100% 호환됐기 때문에 문자 모드에서 밑줄, 깜빡임, 강조, 반전 등 특수 효과를 지원했고, 4단계 색조를 지원했다. 픽셀 글꼴도 MDA의 사양인 9×14였으므로 CGA의 못생긴 글꼴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그래픽 모드는 720×348이라는 특이한 해상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MDA의 문자 모드를 기반으로 그래픽 모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로 해상도가 350에서 348로 2픽셀 줄어든 이유는 가로/세로 해상도를 4의 배수로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 해상도는 CGA는 물론이고 EGA보다도 높은 해상도인데, 그것을 위해서 비디오 메모리를 64KB나 탑재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8비트 PC인 애플 II코모도어 64메인 메모리가 64KB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CGA의 비디오 메모리는 고작 16KB에 불과했고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보다 2년 후에 나온 EGA가 64KB였다. 다만 허큘리스 카드는 64KB 전체를 프레임 버퍼로 이용한 것은 아니고 화면에 직접 표시되는 상위 32KB 영역과 표시되지 않는 하위 32KB 영역으로 나눠서 사용했는데 SIMCGA와 같은 CGA 에뮬레이터는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만들 수 있었다.

720×348이라는 해상도는 화면비율이 무려 60:29(!)로 2:1을 넘어간다. 요즘 사용자들에게는 꽤 의아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모니터 픽셀이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인 경우가 꽤 많았다. 60:29 해상도라고 해서 화면 비율이 60:29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4:3이고, 여기에 60:29의 비율로 픽셀을 구겨넣기 때문에 개개의 픽셀이 세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를 띄게 된다. 참고로 현대 디스플레이의 픽셀이 정사각형으로 고정된 이유는 픽셀의 크기가 일정한 LCD 모니터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다. 그 이전에 주류로 사용되던 CRT 모니터에서는 물리적 화면 비율은 4:3이고 스캔라인 조절을 통해 여러 종류의 가로세로비 해상도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픽셀의 가로세로비가 기기마다 다양했다. 정사각형 픽셀은 IBM PC에서는 1987년의 VGA 고해상도 모드(640×480)에 가서야 나왔고 와이드 모니터라는 개념은 1990년도 중반에나 나왔다.

원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표준 해상도는 720×348이나 한국에서는 640×400(8:5)의 변형 해상도를 많이 사용했다. 원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사양에는 없는 해상도인데, 모니터 가로세로비가 딱 떨어지는 4:3은 아니라도 4:3에 가까워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로 이미지를 인쇄하면 디스플레이와 인쇄물이 비슷하게 나오는 장점이 있었다. 거기에 16×16 크기를 가지는 2바이트 한글 글꼴을 당시의 표준이었던 40자×25행[2]으로 출력이 가능한 해상도라는 점도 이 해상도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많이 사용하게 된 원인일 것이다. 여담으로 일본의 국민 PC인 PC-9801의 해상도가 640×400이다. 이쪽이 이 해상도를 채용한 이유 역시 다분히 16×16 픽셀 글꼴의 문자를 40자×25행으로 쓰기 위해서인 목적이 큰데, 허큘리스 변형 해상도는 이쪽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워낙 한국에서는 널리 쓰인 해상도라 나중에 한글 MS-DOS의 MSHBIOS에서도 이 640×400 모드를 채용했는데 MSHBIOS가 로딩 되면 화면의 글꼴이 확 바뀌고 텍스트 출력 속도가 느려졌다. 문자 모드가 아닌 그래픽 모드를 이용해 소프트웨어로 문자 출력을 흉내내는 것이다보니 아무래도 문자 모드보다는 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파일:external/www.mobygames.com/181545-king-s-quest-dos-screenshot-title-screen-hercules-graphics.png
(그래픽 화면과 텍스트의 해상도 차이에 주목)

파일:attachment/uploadfile/hwp151_hercules.png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에서 아래아 한글 1.51 버전이 돌아가는 모습. DOSBox에 실행해서 찍은 스크린샷이다. 내용은 아래아 한글 1.51에 기본으로 탑재한 샘플 한글 파일인 백기완 작가의 소설 '장산곶 매 이야기'. 640×400 모드를 4:3 모니터로 보면 대충 이렇게 보인다. 8:5의 해상도를 4:3 모니터에 맞추다 보니 세로로 약간 길어졌지만 별로 길어졌다는 느낌은 아니다.[3]

파일:attachment/hwp151_720x348_herc.png
720×348 모드를 4:3 모니터로 보면 대충 이렇게 보인다. 세로로 엄청 길어졌다. 원래 아래아 한글도 그렇고 한국에서 제작된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지원 응용 프로그램들은 640×400 모드를 전제로 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720×348에서 보면 저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2.2. 개발 비화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원형은 놀랍게도 DIY 그래픽 카드였다. 당시 UC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과정 학생이었던 재미 태국인 반 수완누쿨(Van Suwannukul)이 IBM PC로 논문을 쓸 목적으로 직접 만든 그래픽 카드가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원형이다. 당시에는 웬만해서는 타자기로 논문 작성하고 그래프를 손으로 그리던 시기였지만 수완누쿨은 논문을 PC로 작성하며 모국어인 태국어를 써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태국 문자 처럼 복잡한 자형을 지닌 문자를 '그려서' 사용하기 위해 직접 그래픽 카드를 만들었다. 당시 시장에 나와있던 IBM의 MDA는 알파벳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CGA는 그래픽 기능이 있어서 알파벳 이외의 문자를 그려서 표현할 수 있지만 해상도가 낮아서 고해상도 그래픽과 미려한 문자 출력이 모두 필요했던 수완누쿨은 직접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MDA에 고해상도 그래픽 기능을 추가해 설계한 이유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후 그는 자신이 설계한 새로운 그래픽 카드를 판매하기 위해 허큘리스 컴퓨터 테크놀로지(Hercules Computer Technology, Inc.)를 설립했다. '허큘리스'라는 이름은 수완누쿨이 살던 도시였던 캘리포니아주 허큘리스시의 이름에서 땄다. 허큘리스는 헤라클레스처럼 강대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 아니라 '전주회관'이나 '임실 치즈 피자'(...) 처럼 지명으로 상호명을 만든 것이다.

허큘리스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성공 이후에 HGC+(1986)[4], 허큘리스 인컬러(1987)[5] 등의 확장판 허큘리스 카드를 만들었지만 별 재미를 못보아 결국 자체 그래픽 카드 개발은 접고 타사의 칩셋을 사용해서 그래픽 카드를 제조하는 벤더사로 변신했다. Tseng Labs, S3 Graphics, 3dfx 등을 거쳐 NVIDIAATI의 칩셋을 사용한 그래픽 카드를 내놓았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여 1998년, 독일의 그래픽 카드 제조사였던 ELSA[6]에 인수합병되었다. 2000년 프랑스계 기업인 기예모 코퍼레이션(Guillemot Corporation)[7]이 허큘리스를 인수하여 자사의 브랜드로 사용했으나 결국 2004년에 그래픽 카드 사업을 접어 허큘리스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그래픽 카드 제조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브랜드 자체는 존속하고 있으며 현재는 DJ 콘솔을 중심 사업으로 하고 있지만 네트워크 카드나 스피커 같은 PC 주변기기도 종종 내놓고 있다.

3. 한국에서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1980년대에 나온 한국산 IBM PC 호환 기종이라면 열에 아홉은 이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 카드(클론)를 달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제품들만이 CGA를 개조해서 단색조에서 640×400 해상도를 제공하도록 만든[8] CGA 호환 카드를 달았다. 이런 제품은 SIMCGA 없이도 시중에 나와있는 대다수의 CGA 지원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세운상가산이거나 중소기업 제품이라면 100%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 카드고 대기업 제품도 대다수는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 카드이었다. 다만 한국에서는 정품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세운상가산이 대부분이었는데 정품에 비해 기판 크기가 매우 작았다. 여기에 도깨비 같은 한글 글꼴 롬을 얹은 개조 형태로도 많이 팔렸다. 이점이 PC-9801 같은 독자 규격 컴퓨터를 만든 일본과 한국이 다른 길을 걸은 점이다.

한국에서는 허큘리스라는 말의 원래 의미를 살려서 '천하장사 그래픽 카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조어는 당시 PC통신에서 유행하던 전산용어 순화 운동의 영향 아래 있는 조어인데[9] 통신 프로그램 '이야기'를 만든 경북대학교 하늘소 및 이후 졸업생들이 설립한 큰사람 컴퓨터에서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허큘리스가 원래는 그 허큘리스가 아니라 지명에서 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살짝 빗나간 조어였다. 여담으로 CGA, EGA, VGA는 약어 표기를 그대로 읽어서 '시가', '에가', '브가'라고도 했는데 이 중 브가라는 표현은 아직도 알음알음 쓰이는 편이다.

1989년 교육용 PC 사업으로 IBM PC 호환 기종을 채택하면서 사실상 표준이었다. 그러나 1993~1994년 무렵부터 세진컴퓨터랜드의 돌풍으로 인한 컴퓨터 보급 시작[10]과 컴퓨터 시장에 불기 시작한 멀티미디어 바람으로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들어간 컴퓨터들은 VGA나 SVGA가 들어간 컴퓨터를 장만하거나 교체되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이런 허큘리스-VGA 교체기에 PC통신에서 허큘리스의 슬픔이라는 유머글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옛날 컴덕들은 저랬었군 당시 PC통신 상의 실제 이용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4. 기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KL_Hercules_HGC.jpg
원래 정품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는 이 정도로 컸다. 한국에서 많이 사용된 허큘리스 호환 그래픽 카드들은 저보다는 크기가 작은 것이 대부분.

단색조이기는 하지만 SIMCGA.COM 등 에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CGA 용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돌릴 수도 있었다.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서드 파티 제품이다보니 바이오스 인터럽트 호출 지원이 안 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 덕에 프로그래밍 하기가 까다로워 게임에서는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 대신 CGA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11]. 그래서 게이머들에게는 SIMCGA가 필수품이었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CGA의 동작을 흉내만 내는 것이라 단색조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돌아가는 게 어딘가.

한편으로는 CGA, EGA 등의 IBM 표준 그래픽 카드들과 사용하는 메모리 영역이 달라서 CGA, EGA 등과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를 조합하여 듀얼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방법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컬러 그래픽 카드도 고해상도를 지원할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허큘리스 측에서도 단색조의 한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87년 '허큘리스 인컬러'(Hercules InColor)라는 컬러 그래픽 카드를 냈다. 성능은 대략 EGA 정도이고 EGA 모니터와 호환성도 있었지만 소프트웨어는 EGA와 호환성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제품이 시장에서 경쟁해야 했던 것은 EGA가 아닌 VGA였으니....결국 전작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성공은 재현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와 달리 자료 찾기도 무지 어려운 편.

5. 함께보기



[1] 원래는 오리지널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에는 없는 모드이다.[2] MDA가 80자×25행을 사용한 이유는 천공카드의 영향이다. 이와 관련이 있는지 서구권에서는 80×24~25 정도의 텍스트 디스플레이를 표준으로 하는 전통이 있다. 한글, 한자와 같이 자형이 복잡한 2바이트 문자는 아스키 문자에 비해 가로로 2배 키워 40자×25행이 된다. 전각과 반각 문서도 함께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3] 8:5 비율의 모니터의 경우에도 4:3 비율의 게임이 불편할 정도로 늘어나진 않는다.[4]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문자 모드에서 글꼴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5] 허큘리스의 720×348 해상도에서 16색/64 팔레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컬러는 EGA와 동급이고 가로 해상도가 조금 높은 정도의 동급 성능이라고 보면 된다.[6] 현재는 일본 회사.[7] 기예모 코퍼레이션은 다양한 컴퓨터 주변 기기를 만드는 프랑스 회사이며 그 회사의 사장, 클로드 기예모는 유비소프트 사장 이브 기예모의 친형이기도 하다.[8] 원본 CGA는 단색조에서 640×200까지밖에 표시하지 못한다.[9] 예를 들면 컴퓨터는 '셈틀', 마우스를 '다람쥐', 소프트웨어를 '무른모'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요즘에도 많이 사용되는 '누리꾼'이라는 단어도 조어 시기는 조금 벗어나있지만 이 시절의 영향이 다분히 있다.[10]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1995년에 발간한 정보산업연감에 따르면 1994년부터 컴퓨터가 가정으로 침투하기 시작, 홈 PC를 여는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질적으로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이 무렵부터이며 가구당 컴퓨터 보급율이 12%이던 시기였다. 참고로 가정에 컴퓨터 보급율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12년으로 82.3%였다.[11] 허큘리스를 네이티브로 지원하는 게임은 상당히 적었다. 유명한 게임 중에서는 원숭이 섬의 비밀 정도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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