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5 03:10:48

판빙빙 실종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3. 추이융위안과의 악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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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8년판빙빙탈세 스캔들에 휘말린 후 실종되었던 사건. 사실 실종이 아니라 소환조사를 위해 3달 가량 구속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0월 5일 BIFF에 참석하여 실종설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공백기에 대해 "마음을 가라앉힌 시간이었다"며 많은 영화를 보고 영화인들과 교류했고 영화 관련 수업도 들었다고 했다. #

2. 상세

판빙빙은 좋은 이미지를 가진 중화권 최고 스타였으나 2018년에 탈세 및 이어 벌어진 4개월 간의 행적 묘연으로 인해 전세계 언론에서 온갖 추측 보도가 뒤따랐다.

2018년 판빙빙이 제작에 관여하고 참여하면서 동시에 여주인공으로 나온 전국말기의 진왕 영정 때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파청전의 경우 남자 주인공 고운상이 호주에서 지인과 사건으로 인해 작품에 문제가 생겼고 이후 여름에 불거진 탈세 논란 때문에 연예계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발단은 2018년 5월 CCTV의 인기 연예 아나운서 추이융위안[1]이 자신의 웨이보에 "어떤 톱스타가 이중계약서로 탈세를 하는 것 같다"고 폭로했는데 그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 중국 네티즌들의 의문이 분분했고 결국 판빙빙이 지목되었다. 이와 함께 "연예인들이 지나치게 고소득을 올리면서도 세금은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자 중국 당국은 드라마에 출연료 제한 조치를 취해 한 배우가 한 편의 시즌 당 80억 원 이상의 출연료를 받아가는 것을 금지했고 대대적인 탈세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6월 이후 판빙빙은 실종되었다. 이에 관하여 일부 언론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망명설, 사망설, 구금설, 정치인 스캔들 연루설 등 온갖 괴담들이 돌아다녔다.

결국 107일 만인 9월 17일에 좀 신뢰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빈과일보 보도에 의하면 판빙빙은 탈세 문제로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해 자택에서 조용히 칩거 중이라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혐의가 유죄인지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어떤 공개적 행보나 입장 표명, 외부접촉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빈과일보는 중국사회과학원의 '중국 영화계 스타 사회책임 연구보고서'를 인용했는데, 이에 따르면 판빙빙은 이 보고서에서 사회책임 점수 0점을 받았다고 한다. 즉, 부유함에도 불구하고 사회공헌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정부기관에서 나왔다는 것. 또 판빙빙의 주거지에서 고급 차량 등이 모두 사라졌다는 보도도 나왔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KBS의 보도가 사실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판빙빙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심장병에 걸린 아이들의 수술 비용을 지원해 줬다는 것이다. 그것도 2015년 시점으로도 200여 건이나. 게다가 웨이보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도 티베트에 있는 어린이병원을 방문한다는 글이었고 마지막 행적도 상하이의 병원에서 열린 자선행사에 참가한 것이었다.

한편 판빙빙의 탈세 혐의를 폭로한 추이융위안은 판빙빙의 팬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10월 3일 중국당국은 "판빙빙에게 2억 4,800만 위안(약 403억 3,700만원)의 세금 탈세혐의를 적용해 8억 8,384만 6,000위안(약 1,438억원)의 벌금을 부과하지만, 기소는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판빙빙 본인은 이에 대한 사과문[2]을 냈다. 신화사(영문판)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한국 기사 판빙빙은 거액의 벌금을 내면 사법처리를 피할 수 있지만 판빙빙의 매니저(즉, 1인기획사 대표)는 구속되었고 재판에 넘겨진다고 전해졌다.

사실 중국이 급격히 자본주의화되면서도 세제가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연예인은 소득의 6%의 세금밖에 내지 않았으나 이를 기회로 42%로 일괄 상향되었고 중국의 고소득 연예인들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의 사법행정은 서방국가와는 달라서 인권 보호 개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체포영장은 사실 무의미하며 경찰당국,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는 중국공산당 고관이 마음만 먹으면 구속이나 체포가 가능하다. 이렇게 사법기관의 자의적인 구속이나 체포가 많다는 점에서 판빙빙처럼 상당 기간 동안 사법기관이 조사 중인 피의자의 종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중국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사실 비슷한 경우에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판빙빙뿐만 아니며 기본적으로 중국에서는 언론통제가 확실하기 때문에 일단 경찰기관이나 사법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다고 해도 당국이 특별히 공포하지 않는 피의자들은 보도가 안 되는 게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소수민족 독립운동가들은 판빙빙처럼 한동안 행방불명이었다가 경찰기관에서 이 사람을 법원에 기소하면 그제야 그 사람이 기관에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기에 국제인권단체에서는 크게 문제삼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런 정치범뿐만 아니라 상당수 피의자가 임의동행 형식으로 체포되어 조사과정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검찰이 조사과정에서 피의자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를 확보한 가운데 재판에 올라와서야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기소되면 조사기간 중에 수집된 정보로 유죄를 받을 확률이 높다. 판빙빙도 마찬가지였다. 범죄자가 어떤 재판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공개되는 대한민국과는 정반대인 셈.

그런 맥락에서 언론의 호들갑이나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은 다소 도를 넘은 감이 있다. 가령 '중국에서 탈세하면 사형이다' 따위의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들이 기사에 버젓이 올라오기도 했고[3] 망명설, 성상납 거부설, 서로 상충되는 내용의 억측들이 그것들의 자체모순 때문에 논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짬뽕되어서 새로운 소문이 되는 등 찌라시나 괴담에 가깝게 변질되는 양상을 띄었다.[4][5] 게다가 네티즌들은 이렇게 자극적인 소식들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 드립을 치면서 거의 기정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지만 이후의 사과문 등에 대하여는 어떻게든 까다롭게 굴면서 의심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괴담의 시작은 망명을 주장한 대만발 뉴스였고 이를 시점으로 판빙빙의 실종이 조명되었는데 이후 다른 설들이 나오면서 망명설 자체는 사그러들었지만 망명설의 전제가 되는 '성상납 강요설'과 '죄명 조작설'만큼은 오히려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다른 괴담으로 발전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모습을 보여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뉴스에도 3류 야설 같은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댓글들이나 달아 댔으니 답이 없다. 한마디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팩트가 어떻게 나와도 괴담 쪽으로 끼워맞추려 했다는 것.

홍콩 언론들은 이에 대해 시진핑의 장쩌민계 대숙청의 일환이라고 보았다. 판빙빙은 장쩌민 계열 꽌시들을 이용해 떴는데[6] 시진핑의 ‘장쩌민 지우기’가 본격화되며 판빙빙 또한 대가를 치루게 된 것이며 이는 연예계•문화계에 자리잡은 장쩌민계 전체에 보내는 경고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 설은 판빙빙의 모교가 장쩌민의 정치적 기반인 상하이에 있는 상하이사범대학이라는 점, 판빙빙 기획사가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시진핑의 부패단속에 걸린 인사들이 대체로 장쩌민의 상하이방이라는 점만 빼면 근거가 희박하다. 판빙빙은 2000년 중국 3대 기획사[7]인 화이브라더스에 합류하고 나서부터이며 화이브라더스가 매니지먼트뿐만 아니라 직접 드라마, 영화를 제작하면서 자사 연예인들을 흥행작[8]에 꽂아줬기 때문에 탑스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후 2007년에 계약이 끝나서 판빙빙은 1인 기획사를 세우며 독립했지만 당시 화이브라더스 소속인 연예인들[9]은 대부분 성공했다. 안젤라베이비조려영도 화이브라더스와의 계약 후 탑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설에서 판빙빙의 후견인으로 지목된 장쩌민의 심복 쩡칭훙(曾慶紅)은 2008년에 이미 주석 후진타오와의 권력다툼으로 부주석에서 밀려났으며, 후임자가 바로 시진핑이었다. 판빙빙이 1인 기획사를 차려 떼돈을 벌기 시작한 때가 2000년대 후반부터인데 이미 쩡칭훙은 실각된 상태였다. 2013년에 시진핑이 정권을 잡자마자 상하이방을 때려잡기 시작했는데 그때 판빙빙은 위축되기는커녕 떼돈을 벌고 있었다. 중국의 연예계에 뜨려면 권력의 후광을 입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미 숙청 대상이 된 죽은 권력과 밀착해서 뜨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이 주장의 신빙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하이방에 대한 보복설은 설득력을 잃었고 대만의 자유시보는 판빙빙과 집권자인 시진핑의 최측근인 왕치산 연루설[10]을 내세웠다. 하지만 권력 핵심부에 건재한 왕치산에게 성상납을 했는데도 판빙빙이 이렇게 갑작스레 거액의 벌금을 무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더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자유시보가 그 동영상을 보았다고 주장한 궈원구이는 미국에 망명한 중국인 망명객 재벌인데 이에 대해서 뉴욕타임즈에서는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는 투의 기사를 작성하였다.

다만 판빙빙 사태 이후 중국 관영 및 반관영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연예계의 비리를[11] 보도하며 연예계의 부패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국 여론도 연예계에 불리하게 돌아간 것으로 봐서는 시진핑 정부가 판빙빙을 본보기로 삼아 연예계에 대한 대대적인 손보기를 하려 했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는 듯 하다. 즉, 일반 인민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고소득을 올리면서 위화감을 조장하는 연예계를 손봐서 미국-중국 무역전쟁에서 밀리는 모양새로 스타일을 구긴 시진핑의 이미지를 만회하고 탈세가 만연한 연예계를 정화하면서 문화계에 대한 고삐도 다시 죄는[12] 일석이조로 본 모양. 중국인들도 대충 이쪽으로 각을 잡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중국 연예계에 눈먼 돈이 몰리면서 이면계약이나 탈세는 일반적이고 해외합작을 명목으로 거액의 외화가 송금되어 대부분 엉뚱한 곳으로 나가면서 정작 중국 배우는 카메오 수준으로 나오는 졸작이 많았는데 아마도 이런 일들도 중국 정부가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이미 판빙빙이 제작하고 멜 깁슨이 미술 감독, 판빙빙 및 브루스 윌리스에이드리언 브로디, 송승헌이 나오는 대폭격[13]도 이런 외화 도피 혐의를 받아서 8월 개봉이 10월로 연기되었으며 판빙빙은 포스터에서 삭제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결국 개봉은 취소된 듯하며 상당 기간 동안 개봉을 못하거나 혹은 아예 베이퍼웨어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판빙빙이 탈세 및 이면계약으로 공개된 소득(2017년 2억 4천만 위안, 약 400억원)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린 것은 사실로 보이며 벌금 및 추징세를 내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수십채의 가옥을 매물로 내놓았다고 한다.

한편 판빙빙은 10월 7일 실종 사태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하튼 이 사태로 판빙빙은 거액의 추징금을 납부한 외에도 800억을 투자해 제작 중이던 드라마 파청전이 중도하차당하는 등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벌금 및 추징액 1,400억을 자기 소유 건물 41채를 처분해서 이틀 만에 납부했다고 할 정도로 그동안 돈을 많이 벌어서 당장 거지가 된 것은 아니지만[14] 앞으로는 제작[15]이든 본인의 직접 출연이든 당분간 이전처럼 돈을 벌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문제. 여기에 본인 이미지도 타격을 입으면서 그를 CF 모델로 기용했던 여러 명품 업체들이 모두 기용을 취소할 것을 고민한다고 전해졌다.

2018년 11월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양안 대립 논란이 빚어진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하나의 중국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이후 2019년에 다시 복귀했다.

이 일로 2018년 11월 24일에 KBS joy '차트를 달리는 남자'의 소름끼치는 연예계 미스터리편에서 랭킹 3위에 이름을 올렸다.

3. 추이융위안과의 악연설

사건의 발단이 CCTV의 연예앵커인 추이융위안의 폭로인데 중앙일보 보도 #에 의하면 중국의 유명감독 펑 샤오강(冯小刚)[16]감독에 대한 추이융위안의 원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펑 샤오강 감독은 화이브라더스가 제작한 <휴대폰(手机)> 이라는 영화를 연출하며 대히트를 쳤고[17] 여기 출연한 판빙빙도 대스타로 발돋움했다. 이 영화는 견실한 이미지와는 달리 임신한 아내를 두고 미녀(판빙빙)와 바람을 피우다 이혼당하는 유명 앵커[18]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이 배역은 추이융위안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중국인들도 영화의 바람둥이 아나운서가 추이융위안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추이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 추이융위안이 이 영화 감독인 펑 샤오강 및 배우인 판빙빙에게 이를 갈다가 속편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자 결국 판빙빙의 탈세 및 이면계약 건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추이융위안은 판빙빙 건을 터뜨린 후 관계당국에 의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는데 판빙빙 기획사의 관할 세무서인 상하이 세무총국이 판빙빙을 비호하고 있어서 자신이 보복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영화 휴대폰의 스탭들, 즉 감독 펑 샤오강(馮小剛), 작가 류전윈(劉震云)[19], 제작자 왕중쥔(王中軍), 왕중레이(王中磊)[20]를 디스하면서 아직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쨌든 사건의 발단은 추이융위안의 개인적 원한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본인까지도 인정했다. 근데 추이융위안이 정작 바람둥이 앵커를 리얼하게 연기하여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든 거유는 디스하지 않고 가만히 놔 뒀는데 추이유위안 본인의 말에 의하면 워낙 둘의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거유도 해당 영화의 출연 사실을 자랑거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비교되게 판빙빙은 제2부를 제작할 때 자랑스럽게 웨이보에 올렸는데 이게 자신을 향한 시위(퍼포먼스 내지는 도발)로 보였다고. 그리고 과거 논란 당시 당사자들이 했던 발언을 보면 거유가 비교적 진정성 있고 적극적으로 해명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의례적이고 형식적으로만 해명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는 평가가 있다.

추이융위안은 웨이보질로 이전에도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많았지만 본인은 딱히 큰 물의를 빚지 않아서 그래도 연예계에서 매장되지는 않았다.

2020년 8월에 추이융위안이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한다.연합뉴스 기사


[1] 崔永元(최영원). 바이두 백과에는 한족이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조선족이라는 소문도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최씨 인구는 300만 이상인데 조선족의 전체 인구가 200만 미만이며 한국의 최씨 인구 비중으로 얼추 유추하면 중국의 최씨는 한족이 상대적 다수다. 거기에다 추이융위안의 출신지는 톈진으로 조선족이 많은 지역도 아니며 인구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60년대 초에 태어났다. 어쨌든 중국 연예계에서 대단한 위상을 가진 아나운서다. 중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연예전문 MC보다도 그쪽으로 더 유명하다.[2]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된 상태[3] 실제로는 최고형을 때려도 7년이 고작이다.[4]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심지어 보시라이의 전 애인인 장웨이제가 실종되어 "인체의 신비전의 표본이 되었다는" 괴담까지 인용해서 판빙빙 박제설(...)까지 나돌았다. 장웨이제가 의문의 실종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체의 신비전 표본설은 어떤 해외의 반중 언론이 "그 표본이 장웨이제를 닮았다 카더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혀 신빙성이 없으며(해당 표본 사진은 쉽게 검색할 수 있는데 박피표본이라서 용모를 당연히 알아볼 수 없으며 따라서 닮았다는 주장 또한 굉장히 주관적인 것이다.), 거기 한 걸음 더 나아가 판빙빙 박제설은 편견과 오역(박피가 박제로 잘못 번역된 사례가 상당했다. 박피표본은 피부를 벗긴 것이라 용모를 구분할 수 없지만 박제는 생전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피표본이 비슷하다는 것과 박제표본이 비슷하다는 건 신뢰성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으로 상상력을 더한 것.[5] 이외에도 정치인의 성상납 요구를 거절했다가 망명을 요청해서 탄압당한 것이라는 설도 돌았다. 그 정도로 파문을 일으켜 톱스타를 탄압할 수 있는 정치인은 결국 시진핑 정도인데 아무리 시진핑이 1인체제를 수립했다고 해도 트럼프의 대중공세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인민들과 당 내부에 남아 있던 정적들의 비판이 높아졌으며 중국 내에서는 어떻게든 권위를 세우려고 애쓰던 와중에 성추문처럼 뻔히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짓을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정말 그러려고 했다면 탈세 같은 혐의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한한령처럼 공식적인 명령 없이 모든 방송국에서 판빙빙의 출연을 막아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 설에 의하면 성룡이 주선하여 판빙빙의 미국 망명을 도왔다고 하는데 성룡은 친공산당 - 친정부적인 연예인으로 유명하며 정권에 찍힌 사람을 돕다가 본인마저 활동을 금지당할 수 있는 일을 벌일 리 만무하다.[6] 판빙빙이 뜬 시기는 2004년 쯔음이고 장쩌민은 그 전에 퇴임했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장쩌민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둘렀다. 후진타오 항목 참조.[7] 나머지 2개는 위에화엔터테인먼트, 화처미디어.[8] 판빙빙의 첫 영화인 휴대폰(2003)은 판빙빙이 스타덤으로 오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9] 대표적으로 펑샤오펑[10] 성관계 동영상 촬영설.[11] 탈세뿐만 아니라 사치 행각, 재산 해외 도피, 지저분한 사생활 등등 여러가지다.[12] 2018년 기준으로 엄격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중국 영화들의 현실비판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2018년 여름에 개봉한 <我不是药神>(나는 약신이 아니다)이라는 영화는 중국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해서 엄청난 반향이 일자 리커창 총리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관련 담화를 낼 정도.[13] 중일전쟁충칭 대공습을 둘러싸고 미 공군과 중국 공군의 활약을 다루는 영화다.[14] 중화권 보도에 의하면 실제 판빙빙의 개인 재산은 최소한 3-4천억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빌딩 투자를 많이 하는 40대 모 연예인의 재산이 700-800억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9배인 것을 감안하면 판빙빙의 재산이 수천 억이라는 것은 충분한 가능한 일이다.[15] 사실 판빙빙은 본인 몸값도 높긴 하지만 제작 및 투자(부동산 및 주식)로 더 돈을 벌었다.[16]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며 작가주의와 흥행 둘 다 잡는 중국의 명감독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영화로는 집결호가 있다. 가장 최근작은 방화.[17] 제작은 2002년에 했는데 실제 개봉은 2005년에 했다. 2005년 중국 흥행 1위작이다. 외국인이 보기에는 좀 밋밋한 영화라서 수입되지는 않았다.[18] 갈우라는 명배우가 맡았다. (패왕별희에서 동성애자 갑부 경극 후원자이며 주인공 장국영을 좋아하는 역인 원 대인을 맡은 배우. 1994년 칸 영화제에서 장예모 감독의 인생을 통해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영화의 등장인물 옌서우이가 아나운서로서의 여러 행적 부분에서 추이융위안과 유사성을 보여서 추이융위안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를 저격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싱크로가 맞았다. 심지어 작중인물 옌서우이가 진행하는 토크쇼는 추이융위안이 실제로 맡고 있는 토크쇼인 실화실설 (实话实说)과 거의 똑같은 세팅으로 진행되었다. 주연인 거유는 논란이 불거지자 '저는 추이융위안을 연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펑 샤오강 감독도 "특정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며 그런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다 허구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항상 나오는 클리셰라서....[19] 휴대폰의 각본을 썼는데 중국에서 대단한 위상을 가진 작가다. 그리고 중국의 국회라고 할 수 있는 정치협상회의의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20] 왕중쥔, 왕중레이는 형제로서 화이브라더스의 설립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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