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한 국가들과 실질적으로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한 외교공관이다.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홈페이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부산 사무처 홈페이지, 전 세계의 타이베이 대표부, 타이완관광청 홈페이지, 주 타이베이 한국 대표부 홈페이지
2. 상세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 중인 국가들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해서 중화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하거나 정식수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국가들과는 '민간 차원의 교류' 혹은 반관반민 형식의 교류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식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아닌 대표부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중화민국 정부에서는 대표부를 대표처(代表處), 사무처를 판사처(辦事處)라고 한다. 영어 명칭은 파견 국가에 따라 제각각으로, 주한국 타이페이 대표부[1]는 Taipei Mission in Korea라고 하지만, 일본에서 같은 기능을 하는 '타이베이 주일 경제문화대표처[2]'는 Taipei Economic and Cultural Representative Office in Japan이라고 한다.
'주 싱가포르 타이베이 대표부[3]', '주영국 타이베이 대표부[4]'는 각각 'Taipei Representative Office in Singapore', 'Taipei Representative Office in the U.K'라고 한다. 대부분의 대표부에서는 Taipei Economic and Cultural Office를 사용하며, 사무처에 대해서도 따로 표기 구분을 하지 않고 비슷하게 통용된다.
역사적으로 저 기관이 모두 타이베이 대표부라는 이름을 써왔던 것은 아니다. 가령 중화민국은 1950년에 영국과 국교를 단절한 후 1963년에 영국 측에 대표부를 개설하면서 Free Chinese Centre라는 이름을 썼고, 스페인 대표부에서는 Centro Sun Yat-sen(쑨원 센터), 서독 대표부에서는 Büro der Fernost-Informationen(극동 정보센터)라는 이름을 썼다.
1980년대 후반 들어 이러한 기관들의 명칭이 타이베이 대표부 등으로 통일되어 갔지만, 각국과의 관계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르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마찰 등으로 인해 중화민국이나 대만이라는 이름을 쓸 수는 없지만 자국을 대표할 수 있는 수도 타이베이의 이름을 차선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후반에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화민국에 대해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인정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표부의 장은 대표라는 이름을 쓴다. 그러나 2012년에 중화민국 입법원에서 대표라는 이름 대신 대사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외교공관 조직법을 개정해서 대내적으로는 대사라는 이름을 쓴다.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대표라고 한다.#
정식 외교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표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식 외교관으로 인정되지 않고 치외법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비공식 관계라 정식 외교관계에 유효한 빈 협약이 적용되지 않아서 그렇다. 미국의 경우 대표부로 파견된 외교관은 사직서를 제출해야한다.[5] 다만 중화민국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자의적으로 진입이나 공권력 행사를 자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미국이나 일본, 한국 등의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치외법권 등의 외교관 특권을 보장해준다.
일단 중화인민공화국은 대표부의 존재는 묵인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이들을 완전히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2020년 4월에 네덜란드가 자국의 타이베이 대표부 이름을 네덜란드 무역투자판사처[6]에서 주 타이베이 네덜란드 판사처[7]로 개정했을 때 중화인민공화국이 네덜란드에 해명을 요구한 바 있다.
2020년 7월 2일. 소말릴란드 하르게이사에 대표부를 설립하면서 소말릴란드와 준외교관계를 맺었다. 소말릴란드에 있는 대표부는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인데, 중화인민공화국은 소말릴란드와 수교는커녕, 대표부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베이 대표부가 있으면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2.1. 일본
대표부를 통한 비공식적 외교관계는 일본이 처음 시작했다.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1972년 전격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동시에 중화민국과의 국교단절을 단행했다. 하지만 양국 간의 여러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반관반민 성격의 교류협회[8], 대만 측에서 아동관계협회[9]를 설립하여 사실상의 외교관계를 지속하게 된다.교류협회는 일단 명목상으로는 민간기관으로 회장들은 일본 재계의 유력 인사들이 맡는다. 그러나 그 아래 이사장이나 임원급으로 내려가면 당연히 외교관들이 임명되어 사실상의 외교관계를 담당한다. 대만의 아동관계협회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명목상 민간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중화민국 외교부와 같은 건물을 쓰며, 민간 단체라면서 회장들은 대체로 대만의 정치인들이다.
도쿄에 있는 타이베이 주일 경제문화대표처는 아동관계협회의 산하기관으로 설치되어 있어 주일본 대만 대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고, 주대만 일본 대사관 역할은 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가 담당한다. 타이베이 주일대표부나 교류협회 타이베이 사무소의 대표가 각각 주일본 대만 대사, 주대만 일본 대사의 역할을 한다.
2017년 1월 1일부로 교류협회는 일본대만교류협회로 명칭을 개정했고, 아동관계협회도 5월 17일부로 대만일본관계협회로 명칭을 개정했다.# #
2.2. 미국
미국의 대만 대표부 설치는 타이완 관계법을 근거로 하며 미국 재대만협회가 이에 따라 설립된 단체이다. 본부는 워싱턴 D.C.에 있다. 이 기관 산하에 타이베이 사무소가 설치되어 주 대만 미국 대사관의 역할을 하며 이 사무소의 대표가 주 대만 미국 대사의 역할을 한다.일본의 일본대만교류협회와는 달리 미국재대협회의 회장은 대체로 외교관이 맡는다.
대만 측에서는 미국과의 교류를 위한 민간 단체로 대만미국사무위원회(臺灣美國事務委員會)[10]라는 민간단체를 설립했다. 물론 말만 민간단체이고 실상은 저 위의 대만일본관계협회처럼 대만 외교부의 지도를 받으며 주임(위원장)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 협조위원회 산하에 주 미국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부(駐美國臺北經濟文化代表處)를 두었다. 여기의 대표가 주미국 대만 대사의 역할을 한다.
2.3. 대한민국
한국도 주 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11]를 두고 있다. 한국의 대표부는 명목상으로나마 민간단체라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아예 대놓고 그냥 외교부 직할로 두어 사실상의 대사관으로써 기능하게 하였다.[12]심지어 활동하는 인물 전원이 외교관 여권을 발급 받아 파견되는데다가, 한술 더 떠서 홈페이지에는 아예 대놓고 대사, 외교공관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쯤되면 중국이 가만히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것의 영향인지 중화민국 또한 한국에 두고 있는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도 다른 나라에 설치된 대표부와 달리 중화민국 외교부 직할 기관으로 설치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49 광화문빌딩 6층에 위치. 국내에서 활동할 때는 대만 대표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잦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떠나 이 대표부는 사실상 '대만 대사관'으로 취급되고 또 그렇게 호칭되고 있다. 애초에 한국 정부도 아닌 일반 한국인들이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지방이다'라는 중국 정부의 일방적 주장을 더군다나 반중 감정이 최대치인 지금 시대에 굳이 인식하면서 살 만한 이유도 없거니와, '대표부'라는 개념 자체가 흔치 않아서 여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중화민국 측이 설치한 주한 대표부는 부산에 사무처를 두고 있다. 사무처 주소는 부산 중구 중앙대로 70이다. 관할 구역은 경북, 경남, 부산, 대구, 울산, 제주, 전북, 전남, 광주 등 남부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주 타이베이(대만) 대한민국 대표부와 대만의 주 대한민국 타이베이(대만) 대표부는 모두 1992년 12월 한중수교로 인해 한국과 중화민국(대만) 간의 외교관계가 단절되어 주한 중화민국 대사관과 주 중화민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모두 철수한 후, 1993년에 따로 협정을 맺어 설립된 것이다. 한국의 타이베이 대표부는 1993년 11월에, 중화민국(대만)의 주 한국 타이페이 대표부는 1994년 11월에 설립되었다. 부산 사무처는 2005년에 설치되었다.
한국에는 중화민국 문화부 산하 대만관광청도 설립되어 있다. 사실상 사무처나 이익대표국급의 기능을 한다.
2.4. 중국 본토
대만과 중국은 서로 상대측 영토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온전한 외교 관계를 위한 대표부는 아니고, 중화민국은 해협양안관광여유협회(台灣海峽兩岸觀光旅遊協會)라는 이름의 기관을 베이징, 상하이에 설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해협양안여유교류협회(海峡两岸旅游交流协会)라는 기관을 타이베이에 설치했다.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대표부는 상대 국가에 대한 관광 진흥을 위해 존재하며 각 기관은 모두 각 국가의 관광부처 소속이다. 따라서 아직 본격적 외교 관계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주 대만 중국 대표부 홈페이지 주 중국 대만 대표부 홈페이지. 이 두 기관은 공식적으로는 관광 목적이나, 2015년 마잉주 - 시진핑 정상회담 이후로는 제한적으로 무역, 정치 대표부로써의 역할도 하는 등 관광 대표부에서 일반 대표부로 지위가 승격된 상태이다. 이름은 그대로지만.
2.5. 홍콩, 마카오
홍콩과 마카오 두 특별행정구는 각각 대표사무소의 기능을 하는 홍콩경제무역문화판사처(香港經濟貿易文化辦事處), 마카오경제문화판사처(澳門經濟文化辦事處)를 타이베이에 두고 있다.대만 역시 대표사무소인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臺北經濟文化辦事處)[13]를 홍콩과 마카오에 두고 있다.[14] 이 기관들은 저 위의 양안 간 대표부보다는 좀 더 외교기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공식적인 외교기관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만이 홍콩과 마카오에 두는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는 행정원 대륙위원회(한국의 통일부 비슷한 직무를 담당)에서 관할하며, 홍콩의 홍콩경제문화판사처는 홍콩 정부에서 중국 본토와의 관계를 다루는 부처인 정제 및 내지사무국(政制及內地事務局)에서 관할하고, 마카오의 마카오경제문화판사처는 행정장관 직할 기구이다.
홍콩의 경우 중화민국 정부가 아직 대륙에 있을때 외교부 산하 특파원공서(特派員公署)를 홍콩에 설치해 홍콩 관련 사무를 맡았는데 영국이 1950년에 중화민국 승인을 취소하면서 퇴거당하였다. 이후 1966년에 중화여행사(中華旅行社)라는 이름[15]으로 대표부가 설치되었으며 양안관계가 개선되면서 2011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마카오의 경우도 1950년대에 마찬가지로 마카오에 외교부 산하 특파원공서(特派員公署)를 설치했지만 1967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을 받아 포르투갈 본국의 방침도 무시하고[16] 이 기관을 퇴출했고, 1989년에 타이베이 경제문화센터(臺北經濟文化中心)를 설립한 것이 2011년에 홍콩과 함께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편 홍콩과 마카오 두 특별행정구가 설치한 각자의 대표부는 2011년에 각자의 타이베이 대표부의 명의 변경과 함께 설치되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과 2020년의 홍콩 보안법 제정 이후 서로의 대표부는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다. 우선 홍콩 정부와 마카오 정부는 각각 타이베이 주재 대표부의 기능을 정지했고, 이후 현지의 타이베이 대표부에는 주재원에게 하나의 중국을 받아들이라고 통보함에 따라 중화민국 측에서 모든 주재원을 철수시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홍콩과 마카오에서 대만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기 위해 최소한의 현지인 인력만을 두고 있다.
3. 같이 보기
[1] 駐韓國臺北代表部[2] 臺北駐日本經濟文化代表處[3] 駐新加坡臺北代表處[4] 駐英國臺北代表處[5] 이후 대표부에서 자국으로 귀국하면 복직시켜준다.[6] 荷蘭貿易暨投資辦事處, Nederlands handelskantoor in Taipei[7] 荷蘭在台辦事處, Netherlands Office Taipei[8] 交流協会[9] 亞東關係協會[10] 구 명칭은 북미사무협조위원회(北美事務協調委員會)[11] 2017년까지는 '타이뻬이'를 썼다. 씨케이시스템과 같으며, 실제 표준중국어 발음에 더 가까운 표기이다.[12] 대표부 홈페이지 디자인마저 다른나라 대사관과 완전히 똑같으며 심지어 초창기에는 아예 대놓고 청천백일만지홍기까지 당당히 걸려있었다.(...) 다만 역시나 중국의 압박 때문인지 지금은 내려갔다.[13] 홍콩/마카오에서 쓰는 이름이며 본국에서는 행정원 대륙위원회 홍콩사무국(行政院大陸委員會香港事務局), 행정원 대륙위원회 마카오사무처(行政院大陸委員會澳門事務處)라는 이름을 쓴다.[14] 홍콩의 경우 MTR 애드미럴티역에 위치해 있으며 우연인지 대표부를 바로 앞에 둔 건물은 중국은행이다.[15] 정확하게 말하면 중화여행유한공사였다.(...) 나라의 대표부가 여행업 회사 이름을 써야 했던 것이다.[16] 당시 포르투갈은 강경 반공 독재정권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을 무시하고 중화민국과 수교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