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1612년 11월 8일 | ||
몰다비아 공국 실리슈테니 | |||
사망 | 1693년 3월 13일 (향년 80세) | ||
몰다비아 공국 이아시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685년 6월 25일 ~ 1693년 3월 13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테오도르 칸테미르 어머니: 미상 | |
배우자 | 아나스타시아 기카, 마리아, 아나 빈타슈 | ||
자녀 | 디미트리에 칸테미르, 안티오 칸테미르, 룩산드라 | ||
가문 | 칸테미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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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65대 보이보드.2. 생애
1612년 11월 8일 몰다비아 공국 실리슈테니에서 출생했다. 아들 디미트리에 칸테미르가 자신의 족보를 설명한 바에 따르면, 칸테미레슈티 가문은 크람에 거주한 옛 종족 칸테미레슈티 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19세기 루마니아 역사가 알렉산드루 디미트리에 제노폴(Alexandru Dimitrie Xenopol, 1847 ~ 1920)은 '칸'과 '테미르'는 타타르어로 각각 '피'와 '철'을 의미하며, 칸테미레슈티 가문은 이로 볼때 타타르족 출신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그는 콘스탄틴 칸테미르의 아버지 테오도르는 슈테판 3세 치세 때 몰다비아에서 근무하고 영지를 수여받은 타타르족의 후손이라고 봤다.반면, 루마니아 중세학자 니콜라에 스토이체스쿠(Nicolae Stoicescu, 1924 ~ 1999)는 칸테미레슈티 가문이 타타르족에서 기원한다는 주장은 공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며, 콘스탄틴의 아버지 테오도르는 1627년 타타르족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주장했다. 루마니아 역사가이자 부쿠레슈티 대학교 교수였던 콘스탄틴 C. 주레스쿠(Constantin C. Giurescu, 1901 ~ 1977)는 팔치우 카운티의 실리슈테니 마을 출신의 보야르라고 봤다. 슈테판 S. 고로베이(Ștefan S. Gorovei, 1948 ~ )는 슈테판 3세 시대에 로어 컨트리에 거주했던 보야르 파트루 실리스테아누의 후손이라고 추정했다.
콘스탄틴은 일찍이 부모를 잃고 영지는 타타르족의 습격으로 황폐화되어서 먹고 살 길이 없게 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에 용병으로 입대했다. 이후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 얀 2세 카지미에시 바사를 모시며, 폴란드군에서 17년간 근무했고, 나중엔 기병대장에 발탁되었다. 특히 스웨덴군과의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렇듯 폴란드군에서 활동하면서 명성을 쌓은 그는 조국으로 돌아온 뒤 1664 ~ 1668년에 바라드의 보이니크(vornic, 내정 담당관)를 역임했고, 1668년부터 1672년까지 아르마스(armaş, 무기 생산자)를 역임했으며, 1672년부터 1681년까지 세르다르(serdar, 사령관), 1681년부터 1684년까지 클루체르(clucer, 궁정에 식량과 기타 필수품을 공급하는 관리)를 역임했다. 1672년부터 1685년 보이보드에 오를 때까지 팔키우 지역의 9개 마을을 보야르들로부터 구입했고, 죽기 직전에 팔키우의 11개 마을의 주인이 되었다.
1685년 6월 25일, 그는 73세에 몰다비앙의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보야르들은 그가 늙었고, 학식도 떨어지는 데다, 재산은 형편없고, 친척들의 지원도 없으니, 자기들 입맛에 부려먹을 수 있다고 여겼다. 몰다비아 연대기 작가 이온 네쿨리스(Ion Neculce, 1672 ~ 1745)는 보야르들이 그를 보이보드로 삼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그들은 모두 콘스탄틴 칸테미르가 늙은이이자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는 책을 읽을 줄 몰랐고, 늙었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이었다. 더 명예롭고 학식이 높은 다른 이들은 보이보드가 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몰다비아의 보이보드로 집권하고 오스만 제국의 신임을 얻은 그는 세금 징수원들의 수탈로부터 백성들을 도와주면서 착하고 성실한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 참전했다. 몰다비아는 그의 치세에 두 차례 침공받았다. 한 번은 타타르족이 침략해 약탈을 자행했고, 또 한 번은 폴란드-리투아니아군의 침략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폴란드와 오스트리아에 오스만 제국의 계획을 종종 알렸으며, 그의 아들 안티오와 디미트리에는 몰다비아가 러시아와 연게해 오스만 제국과 대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온 네쿨리스에 따르면, 콘스탄틴은 서명만 쓸 수 있을 정도로 문맹이었지만, 자식들이 좋은 교육을 받도록 했으며, 몰다비아에서 활동하는 학자들과 두루 교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1691년 루마니아의 저명한 학자 미론 코스틴과 형제 벨리치코 코스틴을 반역 혐의로 처형했다. 디미트리에 칸테미르는 저서 <콘스탄틴 칸테미르의 생애>에서 미론 코스틴이 정말로 반역을 꾸몄기 때문에 처형되었다며 아버지를 옹호했다. 하지만 미론 코스틴이 정말로 반역을 꾀했는지는 불분명하다.
1693년 3월 13일, 콘스탄틴은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차남 디미트리에 칸테미르가 몰다비아의 새 보이보드로 등극했다.
3. 가족
- 아나스타샤 칸테미르(1605 ~ 1645): 그리스계 오스만 제국 궁정인 그리고리에 기카의 딸.
- 마리아
- 룩산드라
- 아나 빈타슈(? ~ 1677): 게오르게 두카의 아내 아나스타샤 다비자의 외손녀.
- 안티오 칸테미르(1671 ~ 1726): 몰다비아 공국 보이보드.
- 디미트리에 칸테미르(1673 ~ 1723): 몰다비아 공국 보이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