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미상 (향년 불명)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345년에서 1359년 사이 ~ 1353년 에서 1361년 사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줄레슈티의 줄러? 어머니: 미상 | |
자녀 | 사스 | ||
가문 | 드라고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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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몰다비아 공국 초대 보이보드.2. 행적
드라고슈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헝가리 국왕 카로이 로베르트가 1336년에 발행한 왕실 헌장에 '왕의 봉신인 베두의 드라그와 드라고슈'에게 베두(현재 우크라이나의 베데블리야)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베두의 드라고슈가 몰다비아의 건국자 드라고슈와 동일인물이라고 추정한다. 또다른 학자들은 1349년 9월 15일에 반포된 카로이 로베르트의 왕실 헌장에서 줄레슈티의 영지를 부여받은 줄러가 그의 아버지라고 추정한다. 줄러는 다른 두 블라흐 군주인 쿠헤아의 보그단과 슈테판이 카로이 로베르트의 후계자인 러요시 1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러요시 1세를 꿋꿋이 따르다가 보그단과 슈테판에게 추방되었다. 러요시 1세는 반란을 진압한 뒤 줄러와 그의 가족이 영지로 복귀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기록상에 전해지는 줄러의 여섯 아들 중에는 '드라고슈'도 있지만, 이 사람이 몰다비아의 건국자와 동일인물인지는 불명확하다.15세기경에 집필된 몰다비아 연대기에 따르면, '천지창조 후 6867년', 드라고슈는 헝가리 왕국의 마라무레슈에서 오록스를 사냥하다가 몰다비아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군림했다고 한다. 이후에 집필된 몰다비아-폴란드 연대기에 따르면, 드라고슈가 헝가리의 마라무레슈에서 오록스를 추격하다가 몰도바 강에서 오록스를 죽였다. 이후 귀족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고, 그 나라가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 머물렀으며, 헝가리에서 블라흐족을 주민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16세기 초 익명의 저자가 집필한 몰다비아-루스 연대기에 따르면, 드라고슈는 본래 '헝가리의 블라디슬라프 왕'으로부터 타타르족을 물리치는 임무를 부여받아 잘 수행한 뒤 마라무레슈에 정착한 로마인이었다. 그는 오록스를 몰다바 강에서 사냥한 뒤 마라무레슈로 돌아와 그곳에 살던 블라흐족을 설득해 몰다비아로 이주하도록 했고, '헝가리 왕 블라디슬라프'로부터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뒤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은 뒤 드라고슈가 짐승을 죽인 바로 그 자리에서 정착했다고 한다. 이후 몰다비아의 문장엔 오록스의 머리가 새겨졌다.
20세기 루마니아의 종교 역사가이자 시카고 대학교 교수인 마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 ~ 1986)는 저서 <잘목시스에서 칭기즈칸까지(De Zalmoxis à Gengis-Khan)>에서 '드라고슈 보이보드와 의식적 사냥'이라는 파트에서 드라고슈가 오록스를 사냥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사냥과 오록스 희생은 몰다비아 원주민들의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추정하면서, 해당 지역 족장국의 건국이나 식민지화와 관련된 '영웅적 행위'를 전설로 승화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 전승은 헝가리 신화에서 쌍둥이 형제 후노르(Hunor)와 마고르(Magor)가 사슴을 쫓다가 헝가리에 정착한 이야기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몰다비아 연대기는 드라고슈가 1359년에 몰다비아에 도착했다고 기술했지만, 몰다비아-폴란드 연대기만은 1352년이라고 명시했다. 현대 학계에서는 몰다비아의 건국 연도에 대해 현재까지 합의를 내리지 못했다. 일부 학자들은 1345년 세케이 백작 라크피 언드라시(Lackfi András, 1310 ~ 1359)가 트란실바니아를 침공한 타타르족을 격파한 뒤, 헝가리 국왕 러요시 1세가 드라고슈를 마라무레슈에 정착하여 타타르족을 막게 했을 거라며, 드라고슈는 1345년에 나라를 세웠을 거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학자들은 1347년 3월 27일 교황 클레멘스 6세가 러요시 1세의 요청에 따라 쿠마니아 로마 가톨릭 교구를 설립한 것과 연관 지으면서, 드라고슈가 1347년에 나라를 세웠다고 추정하며, 루마니아 역사가 블라드 조르제스쿠(Vlad Georgescu, 1937 ~ 1988)는 1352년 러요시 1세가 타타르족을 징벌하기 위한 원정을 단행했을 때 드라고슈도 가담했으며, 나중에 국경 지대의 수비대장으로 선임되었을 거라고 추정했다. 다른 학자들은 대부분의 몰다비아 연대기가 제시한 1359년이 몰다비아 공국의 건국 연도라고 추정한다.
드라고슈가 중심지로 삼은 곳 역시 불확실하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드라고슈는 시레트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부코비나에서 드라고슈의 나라가 건국되었다고 추정한다. 17세기 몰다비아 연대기 작가 미론 코스틴(Miron Costin, 1633 ~ 1691)은 색슨 장인들이 드라고슈의 초대를 받고 몰다비아에 이주한 뒤 포도 재배를 도입했다고 기술했다.
이렇듯 거의 모든 몰다비아 연대기들은 드라고슈를 몰다비아의 건국자로 명시했지만, 이와 상반되는 기록들이 몇 개 있다. 러요시 1세는 1360년 3월 20일, 마라무레슈의 마라 강을 따라 세워진 6개 마을을 줄레슈티라는 인물에게 넘겼는데, 그 이유는 줄레슈티가 몰다비아의 많은 반항적인 블라흐인들을 순종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5세기 폴란드 연대기 작가 얀 드우고시(Jan Długosz, 1415 ~ 1480)와 필리포 부오나코르시(Filippo Buonaccorsi, 1437 ~ 1496)는 블라흐족 지도자 페트루가 1359년 쉬페니트(현재 우크라이나의 슈핀치)에서 폴란드군을 격파했다고 기술했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드라고슈는 몰다비아에 거주하는 수많은 블라흐족 집단 중에서 러요시 1세에게 충성한 부족장일 뿐이라고 본다.
익명의 몰다비아 연대기와 몰다비아-폴란드 연대기에 따르면, 드라고슈는 2년간 통치했다고 한다. 일부 역사가들은 드라고슈가 1353년에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드라고슈가 1357년 타타르족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대부분의 몰다비아 연대기의 서술을 받아들인 학자들은 1361년에 사망했다고 본다. 그의 유해는 볼로바츠의 한 교회에 안장했다고 한다. 익명의 몰다비아 연대기에 따르면, 드라고슈의 뒤를 이은 이는 아들 사스였지만, 사스 사후에 쿠헤아의 보그단이 몰다비아로 쳐들어와 사스의 아들 발치를 축출했다. 그 후 발치와 동생 드라고슈는 러요시 1세로부터 마라무레슈에 있는 쿠헤아의 보그단의 이전 영지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1407년 비스트리차 수도원에 기록된 보이보드 목록에는 드라고슈와 사스가 언급되지 않고 보그단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몰다비아 공국의 건국자는 헝가리 왕국을 추종한 드라고슈가 아니라 보그단이라고 인식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