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1429년 | ||
사망 | 1455년 5월 25일 (향년 26세) | ||
몰다비아 공국 체타테아 알바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차: 1449년 2월 ~ 1449년 10월 12일 | |||
2차: 1452년 2월 24일 ~ 1454년 8월 22일 | |||
3차: 1455년 2월 ~ 1455년 3월 25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일리아슈 어머니: 마리아 홀샨스카 | |
형제 | 로만 2세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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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몰다비아 공국 제16대 보이보드.2. 행적
1429년경 몰다비아 공국 제11대 보이보드 일리아슈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귀족 언드라시 홀샨스키의 딸이자 조피아 홀샨스카 [1]의 자매인 마리아 홀샨스카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로만 2세가 있었다. 로만 2세는 1447년 7월 아버지를 살해한 슈테판 2세를 처단하고 보이보드에 올랐지만 1448년 2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피해 크라쿠프로 망명한 뒤 그곳에서 곧 사망했다. 이후 트란실바니아 궁정백 후녀디 야노시의 지원을 받은 페트루 3세가 보이보드에 선임되었으나 1448년 10월에 알 수 없는 사유로 사망했고, 후녀디가 파견한 헝가리 장군 치우바르 보다가 군림했다.1449년 2월, 알렉산드루 2세는 몰다비아 보야르들의 추대로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그는 브라쇼브와 샤라 바르세에 거주하는 색슨 상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했으며, 네암츠, 몰도비타, 비스트리타 수도원에 영지를 헌납했다. 또한 타타르족과 전쟁을 치르는 폴란드 왕국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1449년 10월 12일, 일리아슈의 형제인 보그단 2세가 후녀디 야노시의 지원을 받아 반기를 들어 시레트 강 인근의 타마세니 전투에서 알렉산드루 2세를 격파하고 보이보드에 군림했다. 알렉산드루 2세는 폴란드의 삼보르 시로 도주했다.
1450년 초 폴란드군의 지원을 토대로 몰다비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을 단행했지만 실패했다. 그해 2월 11일, 보그단 2세는 후녀디 야노시와 동맹을 맺고, 그를 몰다비아의 보호자로 지명했다. 이에 폴란드 당국은 이러다가 몰다비아가 헝가리 왕국에 완전히 귀속될 것을 우려해, 알렉산드루 2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앉히기 위한 원정을 재차 나서기로 했다. 그해 6월 24일, 르비우의 스타로스타 게네랄니인 피오트르 오드로바츠, 산도미에시 스타로스타 피오트르 코니에츠폴스키가 지휘하는 폴란드군과 디드리히 부자키가 지휘하는 리투아니아군이 르비우에서 집결했고, 알렉산드루 2세의 소규모 군대가 합류했다.
이후 폴란드군이 알렉산드루 2세를 앞세워 공세를 개시해 베사라비아 북부로 진군했다. 보그단 2세는 이에 대응해 청야 전술을 시행해 적의 보급난을 가중시키고, 적군을 몰다비아 내부로 깊숙히 유인한 뒤 부트나리우 강과 바라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폴란드군과 평화 협상을 한 끝에 9월 5일 평화 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르면, 보그단 2세는 1453년까지 통치를 보장받되, 그 기간 동안 매년 50,000 플로린을 알렉산드루 2세에게 지불하기로 했고, 폴란드에게 연간 7,000 굴덴의 공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게 합의를 맺은 폴란드군이 후퇴를 개시했지만, 그는 곧바로 합의를 깨고 크라스나 강과 바라트 강이 합류하는 크라스나 평원에서 적군을 기습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오직 알렉산드루 2세가 이끄는 몰다비아군과 소규모 폴란드인만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1451년 10월 15일, 보그단 2세가 페트루 4세 아론에게 피살되었다. 이후 페트루 4세에게 반감을 품은 몰다비아 보야르들이 알렉산드루 2세를 추대했다. 페트루 4세는 몰다비아를 분할하게 해줄 테니 협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페트루 4세 아론은 1452년 2월 24일에 축출되었고, 알렉산드루 2세가 집권했다. 1452년 2월 17일, 알렉산드루 2세는 후녀디 야노시에게 후녀디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을 벌일 때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폴란드 국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1454년 8월 22일, 부정부패를 일삼는 그에게 반감을 품은 보야르들이 페트루 4세 아론을 옹립하고 그를 축출했다. 이후 알렉산드루 2세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1455년 2월 페트루 4세 아론을 일시적으로 몰아내고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반격에 나선 페트루 4세가 3월 25일 모길라 전투에서 알렉산드루 2세를 격파하고 보이보드를 탈환했다. 알렉산드루 2세는 체타테아 알바(Cetatea Alba, 흰색 성채)로 피신했으며, 3개월 후인 5월 25일에 독살의 징후를 보이며 사망했다.
[1]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