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1582년 9월 28일 (향년 미상) | ||
폴란드-리투아니아 르비우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579년 11월 21일 ~ 1582년 8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페트루 5세 라레슈 어머니: 위르겐 바이스 | |
형제 | 일리아슈 2세 라레슈, 슈테판 6세 라레슈, 콘스탄틴, 룩산드라, 아나, 마리아, 치아나 | ||
배우자 | 마리아 팔레올로기나 | ||
자녀 | 보그단, 크리스티나, 마리아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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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36대 보이보드. 사술(Sasul)은 색슨인을 의미한다.2. 생애
몰다비아 공국 제22대 보이보드 페트루 5세 라레슈와 트란실바니아에 거주하는 색슨인 정부인 위르겐 바이스의 사생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전해들은 뒤 장차 몰다비아 보이보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코스탄티니예로 이주했다. 그는 그곳에서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후손인 마리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했고, 몰다비아 제33대 보이보드 페트루 6세 슈체아풀의 입지가 불안정한 틈을 이용하고자 했다.그는 몰다비아의 가톨릭 개종을 추구한 알바니아 출신 모험가 바르톨로메오 브루티의 재정 지원을 토대로 오스만 제국 관원들을 매수했다. 여기에 그의 이복 여자형제이자 왈라키아 보이보드 미르체아 5세의 미망인이었던 치아나도 도와줬다. 그 결과 오스만 제국 궁정은 1579년 12월 2일에 페트루 6세를 끌어내리고 이오안 5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옹립했다.
그는 빚을 내가며 막대한 뇌물을 마련해 오스만 궁저에 퍼부은 끝에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오른 이상 한 몫 단단히 뽑아야겠다고 여기고, 여러 독창적인 세금을 부과하고 거기서 확보한 자금 대부분을 개인 자산에 충당했다. 특히 바카리트(văcărit) 세는 몰다비아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세금으로, 몰다비아에 거주하는 소 10마리 중 한 마리를 무조건 몰다비아 보이보드의 재산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선임되는 데 크게 기여했던 바르톨로메오 브루티는 몰다비아 재정을 담당하면서 여러 특권을 획득했다. 반면 또다른 공로자인 치아나는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자 불만을 품고, 이오안 5세에 불만을 품은 보야르들과 야합해 오스만 제국에 그를 페위시켜달라고 청원했다. 1582년 8월, 이오안 5세는 오스만 제국이 자기를 폐위시키고 페트루 6세 슈체아풀을 복위하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00대의 수레(그 중 40대는 통화로만 채워졌다.)가 동원될 만큼 큰 재산을 가지고 나라를 떠났다. 이후 트란실바니아에 새로 산 영지로 가려 했지만, 도중에 체포된 뒤 9월 28일에 르비우에서 처형되었다.
이오안 5세 사술은 마리아 팔레올로기나와의 사이에서 보그단, 크리스티나, 마리아를 낳았다. 이중 보그단의 행적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그리스계 귀족 안토니오스 카타칼로스의 부인, 마리아는 베네치아 귀족 조반니 자네의 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