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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의 관광 |
도피안사 ‧ 백마고지역 ‧ 월정리역 ‧ 철원 노동당사 ‧ 철원역 ‧ 한탄강 |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유산 제22호 | |
철원 노동당사 鐵原 勞動黨舍 Korean Workers’ Party Headquarters, Cheorwon | |
<nopad> 철원 노동당사 전경[1] | |
<colbgcolor=#315288><colcolor=#f5eed3>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준공 | 1946년 |
소유 | 국가유산청 |
관리 | 철원군청 |
위치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관전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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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철원 노동당사 전경 |
1946년, 북한의 조선로동당이 세운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소재 조선로동당 철원군당(郡黨) 건물. 국가유산청 소유로 철원군수가 관리한다. 국가유산청 공인지정 등록문화유산 제22호.
2. 건설
1946년 철원군 전역이 소련군정 치하에 들어갔을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2]였던 철원의 읍내인 관전리에 세워진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이다. 건물 자체는 철근 없이, 벽돌과 콘크리트로만 건축하였다.건축양식은 옛 소련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 근대 건축풍이며 철원군 및 인근 지역인 김화군, 평강군, 포천군을 관할하는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물 일부가 소실, 파괴되었다.[3]
전쟁 이후 철원군 일부 지역(철원읍, 갈말읍 등)이 수복되면서, 본 건물 뒤편의 방공호를 조사한 결과 조선로동당 당국에게 고문사를 당했던 사람들의 유골과 두골(頭骨), 고문 도구와 시설 등이 대한민국 육군 병력에 의해 발견되었다. 인근에 있는 철원 수도국터 급수탑지 설명에 따르면, 본 노동당사와 내무서(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반공인사들 약 300여명을 데려와 총살하거나 함께 설치되어 있는 저수고에 생매장했다고 한다.[4]
전쟁 당시 교전이 심했던 지역이자 북한군이 사수를 목적으로 항전을 하면서 국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5]이라, 건물 곳곳마다 전쟁 당시 생겼던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있다. 앞의 계단에는 전차(戰車) 궤도자국까지 있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만들어졌는데, 3층은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2층은 고문실이나 조사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사진 하나 남아있는 게 없으며, 그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서 알 수 없다. 전성기에는 김일성 초상화와 이오시프 스탈린 초상화도 내걸렸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공기와 조선로동당기(旗)가 게양되었던 깃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다. 각 층 내벽은 상부는 흰색, 하부는 붉은색으로 도색되어 있다. 건물 뒤에는 방공호가 있다.
철원 노동당사 뒷편 |
지은 지 오래되고 교전으로 내구성이 떨어져 부식이 심하며 건물 뒷편에는 무너진 곳이 너무 많아 위 사진처럼 보강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붕괴 위험이 높아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외관을 통한 관람만 허용하고 있다. 2층은 바닥이 내려앉아서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3층 역시 옥상 부분과 바닥이 일부 소실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외관 형태는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어서 옛 소련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2002년에는 문화재청 공인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지정 전 민통선 내부에 위치했을 때(1984년 기준)는 건물 정면 상부에 팻말을 걸어놓고 "북괴노동당 철원군당이 국민을 수탈하던 건물"이라는 내용을 적어놓고 민통선 출입자들에게 '경고'하던 광고판 역할도 하였다. 문화재 지정 전에는 출입이 널널했던 편이라 건물 내벽은 한국어, 한문, 영어[6] 등 온갖 낙서로 뒤덮여 있다. 미 육군은 철원 수복 당시 이 건물 내부에 통나무 의자를 임시로 여럿 설치해서 교회당처럼 사용하기도 했다.당시 사진[7]
6.25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인근에는 얼음창고[8], 농산물검사소[9], 구 철원 제일교회[10] 등의 시설도 남아있는데, 이 건물들은 노동당사와는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하던 건물이다. 철원경찰서 구 본관도 여기에 있었고 전쟁 이후에도 폐허로나마 남아 있었으나 자연 붕괴되어 사라졌다. 이곳이 원래 철원의 읍내였기 때문에 많은 시설들이 모여있었는데,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후 시설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철원 노동당사 보수공사 |
2022년 5월 24일에는 야간 조명공사가 완료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수 차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하였을 뿐 근본적인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붕괴 위험이 제기되었고, 결국 2023년 3월에 전면 보수공사를 시작하였다.# 보수공사는 2024년 11월까지 이뤄졌다.
노동당사 바로 옆에는 노인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11] 여기에는 노동당사가 준공된 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를 알려준다. 2024년 현재 거의 700,000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
3. 찾아가는 법
- 차량
- 대중교통
- 민통선 경계부에 있는 만큼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꽤나 불편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3001-1 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서울경부-동송을 타고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내린 뒤 철원 버스 13을 타고 노동당사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대부분의 구간을 국도로 운행하는 만큼 시외버스 요금도 비싼데다, 시외버스 및 농어촌버스 모두 운행 횟수가 매우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간격이 좁은 것 역시 아니라서 버스 대기 및 환승에 잡아 먹는 시간이 적지 않다.
4. 대중 매체에서
- 영화 강철비에서 남한 측 안보실장과 북한 측 대표가 만나는 장소로 나온다.
5. 기타
- 구 철원 지역의 도로원표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며, 도로표지판에서 철원 xxkm의 기준이 되는 곳이 이곳이다.
- 서울권에서 접근하기 나쁘지 않은지라 국도를 쭉 타고 올라오는 자전거 라이더나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종종 있다.
- 위치가 옛 삭녕군이던 지역이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삭녕군을 둘로 쪼개 동쪽을 강원도 철원군에, 서쪽을 경기도 연천군에 각각 붙였기 때문에 현재 위치는 강원도 철원군이다.
[1] 출처: 국가유산청[2] 소련군정 시기 북한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는 원래 철원이었다. 그러다가 1946년 12월 함경남도 원산 일대를 강원도로 편입하면서 도청 소재지를 원산으로 옮겼다. 원산은 지금도 북한에선 강원도 소속이다. 참고로 강원도(江原道)의 '원'은 원산(元山)이 아닌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따 온 것이다.[3] 1951년 6월 신문 보도에서부터 철원군 내의 '벽만 남은 고층건물'에 대한 신문 기사가 언급되는데, 이미 그때부터 이처럼 파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 실제로 저수고의 경우 펜스로 막혀있긴 하지만 안의 공간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벌건 대낮에 봐도 굉장히 스산하다.[5] 1951년 일시적으로 수복되었을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방공호에 숨어서 끈질기게 버텼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북한의 점령 하에 있던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집집마다 방공호가 다수 설치되어 있었다.[6] 수복 당시 미군이 남기고 간 Chicago, Alabama 등의 낙서도 있다.[7] 미 육군 제45보병사단 소속 참전용사 Glenn Edward White가 찍은 사진이다. 해당 부대는 미 육군 제8군 1군단 예하부대로 참전해 영천-철원 지역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8] 건물 외벽에 북한 측이 적어둔 "우리 인민들의 자유스럽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요구..."라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다.[9] 이 건물은 비교적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북한 치하에서는 잠시 관공서로 사용되었다.[10] 예배당이었으나 북한군에 의해 징발되어 막사로 쓰였기 때문에 공습으로 파괴되어 일부 벽만 남아 있다.[11] 바로 위의 '철원 노동당사 보수공사' 사진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