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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taiji and Boys I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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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A547B><colcolor=#ffffff> 아티스트 | 서태지와 아이들 |
유형 | 정규앨범 |
발매일 | 1994년 8월 10일 |
장르 | 팝, 랩 록, 얼터너티브 메탈, 얼터너티브 록 |
곡 수 | 9곡 |
러닝타임 | 35:52 |
스튜디오 |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 |
발매사 | 스포트라이트 |
기획사 | 반도음반 |
프로듀서 | 서태지 |
타이틀곡 | 발해를 꿈꾸며 |
[clearfix]
1. 개요
1994년 8월 10일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이다. 대표곡은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이다. 록 음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앨범으로 서태지 팬들 사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중 최고의 음악성으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1] 앨범 판매고가 크게 떨어졌다는 게 150만장이다. 1집이 170만장, 2집이 220만장이었으니 크게 떨어지긴 떨어졌지만 백만장을 우습게 돌파했던 무서운 성적.[2]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나 록 음악의 색깔이 강한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스래쉬 메탈을 주축으로 하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준다. 특히 이 앨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 전 세계 록의 흐름을 주도하던 얼터너티브 록이었다. 록 마니아들 사이에선 극과 극의 록 음악으로 불리는만큼 골수 정통록/헤비메탈 키드인 서태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3] 이 앨범에선 꽤 높은 수준의 흡수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발해를 꿈꾸며>의 전개부[4]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타일의 펑키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 후렴부[5]에는 U2의 디 에지를 연상시키는 쌩딜레이톤이 나타난다. 두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꽤 다르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기타 연주의 스타일들이 이 곡엔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2. 앨범 제작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제작시 녹음 자체는 1집부터 외국에서 후반 마스터링 작업을 하긴 했다. 서태지가 사비로 집에다가 꾸린 Techno Taiji Studio의 설비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션까지 전부 외국계로 갈아치운 것은 2집의 표절시비가 계기가 된 듯. 당시 이태섭이 테스타먼트의 기타 애드립을 도용해서 하여가에 붙여준 게 문제가 컸다.[6] 이후 3집에는 Tim Pierce[7], Kevin Scott 같은 미국/캐나다계 세션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다. 그래서 사운드 자체는 매우 괜찮은 편이다.특히 <교실 이데아>의 백미는 곡 전체에서 쏟아지는 DJ 스크래치의 향연인데, 당대의 신성 DJ이자 이후 본토에서도 최고의 DJ로 추앙받게 되는 DJ Q Bert의 솜씨이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댄서 였던 지누션의 션의 소개로 이 앨범에 참여했다고 하며, 직접 자신의 장비를 들고 한국에 와서 서태지의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녹음도 외국에서 해서 당시 대중들 사이에선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주로 컴퓨터로 찍어대던 1, 2집에 비해[8] 세션들을 대거 기용해서 제대로 된 음악을 한다라는 느낌이 든 앨범.
서태지는 <발해를 꿈꾸며>의 연주 버전을 8번 트랙에 집어넣었는데, '사운드 떡칠해놨으니 즐길 사람은 즐겨보라'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 앨범이 나온 직후 문화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인터뷰를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인데, 저자의 관심사가 사회적인 분야이므로 주로 3집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 따르면 3집은 이전 앨범과는 달리 가사와 주제를 먼저 잡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3. 문화 대통령이 되다
1, 2집이 기본적으로 사랑 타령에 댄스 음악인데 반해 3집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노래가 많았다. 또한 3집을 기점으로 사회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가 많아졌다.타이틀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발해를 꿈꾸며>였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이 곡을 듣고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요즘은 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9], 발해를 꿈꾸며가 처음 실렸을 때는 흔치 않은 일이라 기사화 되며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교실 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했다. 이전까지 서태지가 청소년, 청년층을 대변한 가치는 자유와 도전 같은 추상적 내용이었다면 교실 이데아에선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고 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 자체는 엄연히 불려지고 있었지만, 포크송 위주였기 때문에 이미 당대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당대의 인기 장르와 결합하는 식으로 불렀고, 서태지는 단순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매되었던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자면 사회가 문민화, 자유화되는 것과는 상관없이[10] 1986년부터 교복부활이 시작되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할 시점에는 교복 착용이 완전히 재정착되었고, 청소년 일탈을 막는다는 명목하에서 학생 두발단속도 염색이나 장발, 파마만 아니라면 어느정도 풀어주던 1980년대에 비해 크게 강화되어, 심하면 1970년대식으로 빡빡머리와 단발을 강제 하는 학교들도 종종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체벌남용과 촌지, 0교시, 야간자율학습은 여전히 횡행하는 등 당대의 청소년들은 사회전반의 자유화와 문민화의 흐름에서 한창 소외되었다.[11] 사실 입시위주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 혹사 문제는 이미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을 받아왔을 정도로 유서깊었기 때문에 교육문제 비판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12] 거기에 더해서 일선학교에서 대학을 보내야된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자유와 개성을 무조건 억압하는 세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는 위 두 곡이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소재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곡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다.[13] 아마 내 맘이야에 나오는 가사 내용을 실제로 써먹은 듯 하다.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링크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활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이 사진은 1995년 2월호 잡지에 실린 것으로, 오로지 잡지 인터뷰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때 서태지는 "교실이데아가 아니라 서당 이데아예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1995년, 3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 <발해를 꿈꾸며>를 부르며 입었던 의상이다.
앞서 언급한 금관조복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호 특집화보에 실렸던 사진.
4. 안티의 등장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크게 음악적 안티와 사회/문화적 안티로 나눌 수 있다.음악적 안티는 이 앨범이 락으로 회귀하면서 발생했다.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확산기[14]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사회/문화적 안티는 3집의 사회비판 메시지에 반발한 기성세대에서 등장했다. 1집, 2집에서도 대중문화의 주축이 10대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은 있었다지만 음악 산업 분야에 한정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서태지가 3집에서 보여준 내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세대간 담론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언론을 중심으로 '서태지 죽이기'로 통칭되는 공격이 있었다. 여기에 교실이데아 루머 문단에서 소개할 '피가 모자라' 사건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도 안티가 발생했고 기존 팬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당대 교육계 입장에서는 교복부활이 막 완료되었고, 청소년 탈선방지를 명목으로 두발단속도 강화해놓은지 몇년이 채 안되던 시기였는데 톱스타가 이러한 흐름을 뒤엎으려고 하니까 당황해했고, 당대의 40대 이상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트로트가 한물간 음악 취급받기 시작하고, 힙합과 랩이 주류가 되는 등 음악시장의 유행이 자기네들 취향과 맞지 않게 흘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놓고 민중가요적인 가사를 넣은 노래까지 내놓자 여기에 발작한면이 있었다.
5. 성적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4d3a93><width=80>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1998년 26위 ||
1998년 26위 ||
멜론 선정 명반 서태지와 아이들 3집 |
<keepall> 100BEAT 선정 90년대 베스트 앨범 100 75위 |
6. 수록곡
<rowcolor=#fff> 트랙 | 곡명 | 작사 | 작곡 | 편곡 | 재생 시간 |
<colbgcolor=#7A547B><colcolor=#fff> 01 | Yo! Taiji | 서태지 | 0:39 | ||
02 | 발해를 꿈꾸며 | 4:41 | |||
03 | 아이들의 눈으로 | 5:04 | |||
04 | 교실 이데아 | 4:19 | |||
05 | 내 맘이야 | 3:01 | |||
06 | 제킬박사와 하이드 | 5:11 | |||
07 | 영원(永遠) | 3:54 | |||
08 | 발해를 꿈꾸며 (Inst.) | - | 서태지 | 4:36 | |
09 | 널 지우려 해 | 양현석 | 4:36 |
6.1. Yo! Taiji
- 3집의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예고하는 듯한 스래시 매탈 트랙이다.
- 시즌1 1박 2일 19,20회의 오프닝 곡으로 사용되었다.
6.2. 발해를 꿈꾸며
발해를 꿈꾸며 |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
6.3. 아이들의 눈으로
- <아이들의 눈으로>는 90년대 스타일의 팝 발라드 곡으로, 서태지의 커리어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곡 초반부는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가 아닌 어린이 보컬의 솔로로 시작하며, 최후반부는 아이들의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방송무대에선 모두 AR로 대체했다. 콘서트 '94 새로운 도전 무대에서는 동화 속 집 같은 무대세트와 함께 실제 아이들을 무대에 등장시켰으며,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와 그 이후에는 팬들의 제창으로 이 부분을 "완벽히" 대체했다. 라이브를 자주 하지는 않아서, 3집 투어인[15]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6집 투어 태지의 화 / 9집 투어 QUIET NIGHT 세 번의 공연에서만 라이브해주었다.
아이들의 눈으로 |
나에겐 꿈이 있어요 |
6.4. 교실 이데아
교실 이데아 |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
6.5. 내 맘이야
- 앞서 언급한 이동연 교수의 저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교실 이데아와 마찬가지로 구속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곡이라고 한다.
- <내 맘이야>는 전형적인 펑크록 공식에 충실한 곡이다.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가사와 재미있는 펑크락 사운드가 즐거운 곡이다. 물론 이 곡도 만만치 않게 교실 이데아만큼이나 하이브리드 성이 은근히 들어가 있다. 전주 중간중간 들어가는 스크래치 연주와 힙합 비트의 샘플링과 후렴의 CRASH 안흥찬의 코러스 등 단순한 사운드가 아니다. 앨범에 수록된 락/메탈 곡들중에 유일하게 리얼 드럼이 아닌 미디 프로그래밍 된 드럼이 사용되었다. 마니아들 중에선 타이틀곡인 <발해를 꿈꾸며>보다도 <교실 이데아>와 <널 지우려 해>와 함께 이 곡을 더 높게 쳐주는 팬들도 많다. 참고로 곡이 끝나면 서태지의 육성으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온다.
-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후 라이브하지 않다가, 솔로 활동으로 넘어가 Atomos Part Secret이 릴리즈되던 2009년 초의 웜홀 콘서트에서 5개 앨범 만에, 14년 만에 앵콜곡으로 라이브하였다. 이후 8집투어 뫼비우스, 9집투어 QUIET NIGHT까지 매 투어마다 셋리스트에 들어간다.
내 맘이야 |
그런데 지금 나는 TV를 껐어 |
6.6. 제킬박사와 하이드
- <제킬박사와 하이드>는 서태지가 유명한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만든 곡. 사악하게 변해가는 지킬박사의 심경변화를 곡을 들으며 느낄 수 있다. 중반부 지킬박사가 범행을 저지르는 중반부의 '내리쳤어'는 폭력성을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 역시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후 라이브하지 않다가, 14년만에 8집 투어 Mobius에서 뮤지컬 액션 버전으로 부활, 9집 투어 QUIET NIGHT까지 셋리스트에 들어가고 있다.
제킬박사와 하이드 |
내 마음을 철저하게 속이고 살아온 내 인생에 |
6.7. 영원(永遠)
- <영원(永遠)>은 서태지의 미성을 느낄 수 있는 순수한 느낌의 발라드로 서태지의 소녀 팬들을 위한 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별을 다룬 곡으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단순 스트링이 아닌 웅장한 클래식 사운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운드 때문에 김동률이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디즈니풍이다.링크 서태지가 디즈니 작품이나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그렇다. 2008년 서태지 심포니에서 제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서 엄청난 퀄리티로 라이브앨범에 수록되었다.
- 국내 최초의 팬송으로 유명한 2집의 <우리들만의 추억>과 <마지막 축제>, 4집의 <굿바이> 사이의 팬송이기도 하다. 원래 서태지는 3집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은퇴 후의 팬의 시점에서 태지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사별한 연인에 비유하여 만든 게 바로 이 노래.
- 이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공동 편곡을 했다. 공동 편곡자는 한국 최초의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인 이성환이다.링크 출처 여담으로 서태지의 셋째 할아버지가 대한민국 오케스트라 초창기에 활동했던 연세대 음대학장 정희석인데, 이분의 아들 소개로 만난 편곡자라고 한다.
영원(永遠) |
내가 멀리 있다 느껴져도 |
6.8. 발해를 꿈꾸며 (Inst.)
- 타이틀 곡 발해를 꿈꾸며의 인스트루먼트 버전(MR)로, 보컬 음압이 들어가지 않은 완전한 연주를 느낄 수 있다. 다만 후렴구 가사 일부는 제거되지 않았고, "저 하늘로 자유롭게 저 새들과 함께 날고싶어"에서 하이햇으로 박자를 쳐 주는 소리가 추가되어 들어가 있다.
발해를 꿈꾸며 (Inst.) |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
6.9. 널 지우려 해
- <널 지우려 해>는 1집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에 이어 양현석이 작사를 했다. 발라드로 시작했다가 강렬한 메탈 사운드로 연인에 대한 이별을 외치는 강렬한 곡으로 서태지 콘서트에 단골로 올라오는 곡이다. 서태지도, 양현석도 애착이 있는지 이후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YG 소속 후배 가수들이 커버링하기도 했다. 3집 활동 종료 후 4집 컴백 스페셜에서 공연되었고, 서태지 솔로 활동에서는 2002 ETP에서 넬의 무대에 서태지가 난입하여 김종완과 함께 부른 것이 첫 라이브다. 아예 Nell(2003~05 서태지컴퍼니 소속) 스타일로 새로 부른 버전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편곡이 다르다. 이후 2004 제로 투어, 2008 뫼비우스 투어에서 원곡을 편곡한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 참고로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는 기존의 이주노 파트가 끝이 난 뒤 바로 서태지 파트로 이어지지 않고 이 콘서트에서만 나온 양현석의 오리지널 파트가 있다. 그리고 후반부의 양현석 파트(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는 생략되었다.언젠가 한 번 쯤은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숨 죽이며 눈물 흘리고 있네 이러는 내가 너무 싫었어...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당시 양현석 오리지널 파트 가사
- 앨범 버전에서는 곡이 끝나면 서태지의 육성으로 "훗, 안뇽"이라는 말이 나지막이 나온다. 서태지가 당시 이 말에 꽂혀 있었는지 3집 컴백콘서트 당시에도 콘서트 클로징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무대를 마무리했다.
널 지우려 해 |
우연히 길을 걷다 |
7. 트랙 리스트
<rowcolor=#fff> 트랙 | 제목 |
1 | Yo! Taiji |
2 | 발해를 꿈꾸며 |
3 | 아이들의 눈으로 |
4 | 교실 이데아 |
5 | 내 맘이야 |
6 | 제킬박사와 하이드 |
7 | 영원(永遠) |
8 | 발해를 꿈꾸며 (Inst.) |
9 | 널 지우려 해 |
재발매판 추가곡 | |
10 | Opening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1 | 널 지우려 해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2 | 너에게 (이제는 너에게)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3 | Farewell To Love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16] |
14 | 태지 Solo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
15 | 교실 이데아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17] |
16 | 07' 교실 이데아 (Remix) |
8. 제작진
기획: 최진열프로듀서: 서태지
마스터링 엔지니어: 빌 마체티(Bill Mazzetti)
마스터링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Five Feel Mastering Studio)
레코딩 스튜디오: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Conway Recording Studio)
드럼 테크니션: MR. DRUM DOCTORS T.M.[18]
기타 테크니션: 케빈 스콧(Kevin Scott)
베이스 기타 테크니션: 데이비드 프리드먼 (David Freedman)
기타 : 서태지, 케빈 스콧, 팀 피어스(Tim Pierce), 존 피어스(John Pierce)[19]
베이스 : 서태지, 존 피어스
드럼 : 조시 프리즈(Josh Freese), 데니 폰게이저(Denny Fongheiser)
드럼 프로그래밍 : 서태지
키보드 : 서태지, 최태완(어쿠스틱 피아노)
첼로 : 권선미
스트링 : 제팬 킹 오케스트라(The Japan King Orchestra)
디제잉 : DJ Q-Bert
컴퓨터 프로그래밍 : 서태지
디자이너: 권혁방, 임성구 (Ivy Production)
컴퓨터 그래픽스: 이욱재 (Shins Graphics)
사진: 임두현
카피라이터: 채송아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김국현
9. Special Thanks To Our Fan
깊은 것은 언제나 믿음이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들 -
믿음으로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이제, 세 번째의 앨범을 여러분께 바치며
새롭게 시작되는 날엔
함께 하고 싶습니다.
기다림의 시간들 -
믿음으로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이제, 세 번째의 앨범을 여러분께 바치며
새롭게 시작되는 날엔
함께 하고 싶습니다.
10. 여담
- 양현석, 이주노가 약간 쩌리였던 시절. 아닌 게 아니라 저럴 거면 밴드로 나오지 여전히 <서태지와 아이들>이어서 위화감이 들긴 했다.[20]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마지막 앨범으로 생각하고 냈던 앨범이라 서태지가 이것저것 다 해본 거라고 한다. 이후 활동을 1번 더 연장하기로 하면서, 4집 앨범은 양현석이 마지막이니까 힙합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졸랐고, 그렇게 만들어진 Come Back Home이 대박을 쳤다.
- '발해를 꿈꾸며'의 기타 애드립 부분은 후일 1박 2일의 백두산 특집 티저 영상에서 다시 한 번 사용했다. 당시 1박 2일의 vice PD와 작가진들[21]은 서태지 팬으로 여러 번 인증되기도 했는데, 예고 영상을 보면 간주부분부터 2절 후렴부까지 거의 1분 30초간 무편집으로 집어넣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3회차간 백두산 특집 본방송 오프닝 음악으로 활용되었다.#
- 이 애드립 속주부분은 1995년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세션을 맡았던 국내 연주자는 원곡과 약간 다르게 편곡, 속주와 테크니션을 중시하는 피어스의 원곡보다 좀 더 유연해졌다.
-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5위에 랭크되었다.
- 1995년에 일본의 헤비메틀 잡지 <Burrn!>에 소개된 적이 있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82점이었다. 이 링크에 들어가 보면 당시 잡지 화면이 작게 캡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피가 모자라 사건, 방송 금지 처분 등이 있다.[2] 많은 1위를 차지했던 1, 2집과 달리 3집에서는 <발해를 꿈꾸며>가 가요톱텐에서 3위까지 든 게 최고 성적이다. 참고로 활동 당시 MBC는 순위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기였고 SBS는 방송출연 금지를 당했던 시기였다.[3] 다만 서태지의 신대철과의 음악적 불화 및 오렌지에서의 가사를 보면 음악 장르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어터너티브 록이던 헤비메탈이던 랩을 하고 댄스음악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꼰대들에게 있어 이미 서태지는 천덕꾸러기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현재에도 뉴메탈이나 이모코어 같은 음악을 했던 서태지의 커리어에 고전 클래식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선 서태지를 록 뮤지션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4]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5]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6] 몇 년 후, 원곡의 기타솔로가 외국 민요라는 정보를 일본의 메탈 전문 잡지 <Burn!>을 통해 접했다 해명하긴 했지만, 그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서태지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된다.[7] 브루스 스프링스틴, 본 조비, 조 카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셀린 디옹, 엘튼 존, 에릭 클랩튼, 오지 오스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과 작업했다.[8] 서태지는 사운드덕후 기질이 강해서 혼자 지지고 볶고 찌고 해야 속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이 기질은 갈수록 노하우와 짬이 붙으면서 더 강해졌다. 후에 낸 5집과 6집은 아이들 신경 쓸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데다가 서태지의 연주력과 사운드덕후 기질이 합쳐져 미친 듯한 퀄리티의 작품이 나왔다.[9] 이마저도 교과서 개정 등으로 인해 상당히 오래된 대중가요가 실리는 경우가 많다.[10] 물론 1989년 중순부터 1992년까지는 전교조를 불법화, 학생운동가 고문 및 탄압 , KBS 사태, 즐거운 사라 출판금지 사건에서 볼수있듯이 자유화가 후퇴하는 흐름이 있었다.[11] 물론 당시에도 체벌남용이나 두발자유화, 교복의 불편함 같은 문제점은 진지하게 다루어졌던 문제점이기는 했지만, 당대 교육계의 관성과 행정편의주의로 인해서 교육현장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12] 2020년대 이후로 대학정원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진것도 이런 교육열을 대학진학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봤기 때문이었다.[13] 처음에 이주노도 이 선택을 두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14] 당시 인터넷은 한통과 데이콤이 상업서비스를 실시했지만, 부유층과 소수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고, PC통신과 인터넷을 같이하는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당대 PC통신 요금이 비싼데다가 컴퓨터 가격도 웬만한 직장인 몇달치 급여에 해당되는 제법 값나가는 가전제품이라서 당대의 PC통신 이용자들도 제법 사는 계층이기는 했다.[15]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 부산에서만 공연했으므로 투어라고 하기 애매하다. 애초에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1집 시절 외에는 전국투어라고 불릴 만한 공연을 한 적 없이 서울 외에는 부산 정도에서만 공연했다.[16] 원곡은 시나위 4집 수록곡이고 김종서와의 협연한 공연음반 트랙이다. 이 곡을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모두가 세션이 되었다. 이주노는 원래 기타를 잘 쳤기에 베이스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양현석은 드럼을 새로 배워야 했다고. 춤 실력으로 갈고 닦은 박자감을 토대로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17] 크래쉬가 편곡하고 직접 연주까지 했다.[18] 본명 로스 가필드(Ross Garfield). #[19] 팀 피어스의 동생.[20] 당시 이주노는 '태지야, 이건 아니잖아.'라고 했다고 후술.[21] 현재는 이명한, 나영석 이우정 등 모두 tvN으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