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1:29:10

즐거운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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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은 19세기 미국가곡이다. 작곡자는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 작곡가 헨리 비숍 경(Sir Henry Bishop)이며, 작사자는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이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즐거운 나의 집>이 가장 많이 쓰이며, 일본에서는 <흙담의 집(埴生の宿)>, 중국에서는 <달콤한 집(甜蜜的家)>으로 번역되었다. 대중적으로 이 노래가 워낙 유명하여 영미권에서는 '스위트 홈' 이라는 문구 자체가 '아늑한 가정, 또는 고향집'을 가리키는 관용구처럼 쓰이게 되었으며, 거꾸로 블랙 유머에서는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 또는 '전혀 편안하지 않은 장소'를 반어법으로 나타낼 때 즐겨 사용한다.

제목과 가사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현관 초인종이나 인터폰 벨, 휴대폰 컬러링, 오르골, 몇몇 기계들의 작동음[1]으로 채택되고 있고 심지어 자장가 등으로 편곡되기도 하는 만큼 유명한 곡이다. 오늘날에는 초등학교 음악 시간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곳이 많다.

2. 가사

Bishop: Home Sweet Home - Greta Bradman · Adelaide Symphony Orchestra

Home! Sweet Home!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
환락과 궁전 가운데 거닐더라도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소박한 내 집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네
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
천상의 매력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듯해도
Which seek thro' the world, is ne'er met elsewhere
세상 어디를 찾아도 만날 수 없네

Home, home, sweet, sweet home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나의 집 같은 곳 어디에도 없네

An exile from home splendor dazzles in vain
집에서 쫓겨나 헛되이 유혹에 빠졌으니
Oh give me my lowly thatched cottage again
아, 내게 초라한 초가집을 다시 돌려주오
The birds singing gaily that came at my call
부름에 맞춰 정답게 지저귀는 새들
And gave me the peace of mind dearer than all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의 안식을 다시 돌려주오

Home, home, sweet, sweet home
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나의 집 같은 곳 어디에도 없네

2.1. 한국어 가사

해바라기가 부른 버전.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 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

한국어 가사는 김재인이 번역했으며,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이름도 그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가곡 특유의 예스러운 문체와 수사들을 모두 포크송처럼 평이하게 번역한 것이 특징이다.

3. 역사

본래 이 곡은 영국의 초기 낭만주의(Early Romantic Era) 작곡가인 헨리 비숍 경(1786~1855, Sir Henry R. Bishop)이 작곡한 곡조로 그의 곡을 사용하고자 했던 미국극작가이자 연극배우 존 하워드 페인(1791~1852, John H. Payne)이 1823년에 자신이 대본을 쓴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or the Maid of Milan)》에 삽입하였다. 이후 오페라 자체는 잊혀졌지만 이 곡은 사람들 사이에게서 널리 불려 독자적으로 출판되며 히트송이 되었다.

곡이 쓰여진 지 40년이나 지나 남북 전쟁이 터졌을 때 북군이고 남군이고 가릴것 없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전쟁이 끝나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반영했다고 한다. 링컨 미국 대통령도 이 노래를 좋아해 늘 즐겨 불렀고 백악관에 초청된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으며, 심지어는 백악관에 한동안 Home Sweet Home을 자수를 놓아서 장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작사자인 하워드 페인 본인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정을 가지지 못한 채 평생을 방랑하며 살았다. 그는 이 곡으로부터 수익을 거의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51년 3월 3일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는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하겠지..." 라는 글이 비통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조국 미국을 떠나 유럽과 아프리카를 골고루 방황하며 살았고 이 곡을 작사할 때는 프랑스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후 1842년에 튀니지 영사로 부임했고 10년간 튀니지 영사로 활동하다가 1852년 튀니지 튀니스 시에서 만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튀니지 영사로 임명된 후부터는 쪼들리며 살지는 않았던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 이상하게 그가 튀니지 길거리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2020년대에 들어와서도 이 잘못된 이야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초에 나온 이외수가 쓴 책자에서 페인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 것을 보면 이 이야기의 출처가 꽤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을 당시, 그는 후손이 없었지만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 돌아갈 가정은 없지만 고향 공동묘지에라도 묻어주시오."

31년이 지난 1883년 조국인 미국 워싱턴 세인트 조지 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됨으로써 그제서야 편히 쉴 곳을 얻게 되었다. 그래도 이때 페인의 탄생 92주년에 맞춰 페인의 안장식을 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체스터 A. 아서까지 참석해 그를 추모했다고 한다.

그가 고국인 미국을 떠나 유럽을 떠돌며 이렇게 살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페인은 당시 백인으로 무척 드물게 미국 원주민 체로키인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운동을 벌인 극소수 백인 중 한명이었다. 당시 미국은 원주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차별과 탄압을 벌여 수만명을 비참하게 죽게 만들었는데 여기에 분노한 페인은 원주민 탄압을 주도하던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대해 미국 의회에 로비하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을 무시한 독재자라고 탄핵까지 주장했으나 받아들이지지 않았다.

결국 페인은 조국에 대한 실망을 느끼고 미국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 곡이 유명해지면서 튀니지 영사가 될 수 있었으나 결국 죽을 때까지 조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미국의 체로키인들은 이런 인연으로 그를 존경하여, 작은 추모비를 손수 세워주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한편 작곡자인 헨리 비숍은 조국 영국에서 기사 작위도 받고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부와 영예를 누리고 평온하게 살아갔다.

4. 사용례

  • 과거 보일러 연료 부족, 저수위, 과열, 동파 위험 등의 이상이 있을 때 경보음으로 울렸다.
  • 1996년~1997년 사이에 LG전자에서 생산한 크린캡[3] 에어컨(스텐드형) 모델 한정으로 캡이 열릴 때와 캡이 닫힐 때 이 멜로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다.
  • 롯데리아 등지의 각종 음식점에선 주문음으로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쓰기도 한다.
  •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교재로 쓰이는 피아노 소곡집의 첫 곡으로 알게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 2004년 8월 26일,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146회 도전곡으로 등장했다. 도전자는 주현, 수애, 유진, 오주은. 여기서는 1,2절을 부른 후, 후렴을 부르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 KBS 주말드라마 내 딸 서영이의 39화 엔딩과 49화(최종화) 엔딩에서는 기존 엔딩곡이 아닌 이 노래의 독일어 버전이 사용되었다.
  • 2001년에 제작된 스타리온의 기업PR 광고에서는 어린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등장한다.
  • 원주혁신도시 인근에 있는 영광병원의 환자 배선카 후진음으로 이 멜로디가 쓰인다[5]
  • 보급형 와플 기계의 종료알림음이기도 하다.
  • 인천공항 내에 있는 순환식 전동카트(...)의 주행 경고음으로 쓰인다.[6]
  • 한국주택금융공사의 광고음악으로 쓰였다. 영상. 노래는 배우 박은빈이 불렀다.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부분은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 뿐이리'로 바뀌었고 '오 사랑 나의 집' 부분은 삭제되었다. 30초 안에 부르기 위해 이렇게 한 듯하다. 어차피 음은 같다.
  • 일부 삼성 이지온 구형 로비폰, CvNet 신형 비디오폰 계열의 초인종 소리로 쓰이고 있다
  • 덤프트럭 자동덮게 스위치 작동음이기도 하다.

* SSG 랜더스의 내야수 정준재의 응원가이다.

5. 이름이 쓰인 작품

5.1. MBC의 수목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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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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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머틀리 크루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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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다음 만화속세상의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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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네이버의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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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넷플릭스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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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의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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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애니메이션 꽃이 피는 첫걸음의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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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극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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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마키하라 노리유키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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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Neko Hacker의 곡




[1] 특히 알림음을 쓰는 기계가 있는 공장에서 어디든 이 음악이 나온다.[2] 즐거운 나의 집 외에도 엘리제를 위하여가 쓰이기도 한다. 대우버스는 1998년 4월 로얄시티가 나오자 마자 기존의 삐~ 소리로 바뀌었고 기아자동차 버스는 1999년 AM937 단종 이후 코스모스에서 2002년 단종 직전까지 쓰였다. 또한 몇몇 시내버스 업체는 대차 후 릴레이 부저가 고장 날 때 예비 부품으로 즐거운 나의 집 릴레이 부저를 두었다가 로얄시티에 교환해서 쓰기도 했었다.[3] 1994년에 삼성전자에서 생산한 Auto Shutter 스텐드 에어컨 모델과 비슷했다. 가동할 때는 셔터가 내려가고 가동을 멈출 때는 셔터가 올라갔던 모델.[4] 마지막에는 공익광고협의회 구 징글을 합성하며 마무리되는데, 해당 편을 마지막으로 구 징글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5] 환자 배식을 위해 이동 시 주행 방향이 후진이기 때문(배선카 조종자가 뒤에서 위치해 모터로 후진으로 밀면서 이동하는 방향이 후진)[6] 단음도 있고 화음도 있으며, 사용자 조절식이라서 멜로디가 어떤 드라이버냐에 따라 빨라진다(...) 대열운행하거나 탑승해서 들어보면 불협화음덕분에 헛웃음이 절로나온다.[7] 센리추오역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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