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4:43:37

주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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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rvan, Zrlw'n
1. 개요2. 신화3. 특징

1. 개요

주르반은 고대에 조로아스터교의 일부 신도가 숭배했던 신이다. 주르반이라는 이름은 아베스타어(Avestan Language)로 '일정한 시기 혹은 시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아카라나(무한한), 다러요-흐바다타(오랫동안 자신에 의해서만 지배된) 등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두 "쌍둥이 신격"인 선신 오르마즈드(아후라 마즈다)와 아흐리만(앙그라 마이뉴)를 낳은 최초의 신격이자 창조자로 여겨지는데 이것은 오르마즈드를 주신으로 숭배하는 마즈다 신앙의 관점과는 다를 수 있어서 논란이 있다.

2. 신화

주르반의 창세 신화는 다음과 같다. 주르반은 양성(兩性)을 가진 신으로, 세계 만물을 창조할 자식을 낳고자 천 년간 번제를 올렸으나 천 년간 올린 번제에도 자식이 생길 기미가 없자 의심한 순간 오르마즈드와 아흐리만이 동시에 잉태됐다. 번제에서 오르마즈드가, 의심에서 아흐리만이 잉태됐다. 임신한 사실을 깨달은 주르반은 먼저 태어나는 자식에게 세계의 주인이 될 권리를 주기로 했다. 순리대로라면 오르마즈드가 먼저 태어나야 했지만, 이것을 간파한 아흐리만은 주르반의 자궁을 찢고 안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대부분 사료에서 같고 그 후 오르마즈드와 아흐리만이 어떻게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했는지는 사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상으로는 정통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에 따라 결국 선신 오르마즈드가 세계 만물의 정당한 지배자가 된다.

3. 특징

조로아스터교의 기본 경전인 아베스타에서는 주르반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소개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특히 서기 9세기에서 10세기 이후 조로아스터교 관련 문헌에서는 주르반 자체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주르반을 다룬 언급은 대부분 사산 왕조 시대, 그것도 이란 본토의 기록보다는 시리아, 아르메니아, 그리스의 기독교도 기록자들이나 이슬람 초기 아랍 기록자들의 기록에서 나타난다. 이런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서기 6세기 다마스키오스가 자신의 저작에서 기원전 5세기 로도스의 에우데모스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에우데모스가 살던 당시 일부 페르시아인은 "시간/공간"을 빛의 오르마즈드와 어둠의 아리만을 동시에 낳은 태초의 신격으로 보았다. 그 신의 이름까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 기록을 주르반을 다룬 설명으로 가정하면 주르반 신앙의 태동은 최소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기타 기록이 대부분 사산 왕조 시대의 것이므로 학자 대부분은 주르반 신앙이 본격으로 나타난 것은 사산 왕조 시대라는 점에 동의한다.

주르반 신앙이 사산 왕조 시대 제국의 정통 교리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이 있었는지에서는 아직 제대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상술한 대로 아베스타에서는 주르반을 중요히 다루지 않는데 현전하는 아베스타가 최종으로 정리되어 공인된 것은 사산 왕조 중기 이후라서 주르반 신앙이 확고한 전통이 있는 정통 교리였다면 당연히 아베스타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은 주르반 신앙이 조로아스터교 내에서 상당히 모호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사산 왕조 당대의 기록에도 주르반을 다룬 언급은 오르마즈드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사산 왕조 당대의 기록 자체가 매우 드물고 그중에서도 종교상 교리에 관한 내용은 더욱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당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재구성하기가 지난한데 주르반 신앙이 특별히 탄압받았다거나 마즈다 신앙과 갈등을 빚었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황실에서 주르반을 숭배하는 듯한 모양새이다. 예컨대 샤푸르 2세의 딸 중에는 주르반도흐트, 즉 '주르반의 딸'이라는 이름이 있다. 마즈다 신앙과 주르반 신앙의 관점이 서로 완전히 배척되는 것도 아니다. '창조주이자 주신'인 오르마즈드를 주르반이 낳았다고 해도, 주르반이 오르마즈드와 아흐리만을 낳은 후 오르마즈드가 모든 선한 것의 주인이자 창조주가 되었다는 식으로 주르반과 마즈다 신앙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산 왕조 초기 조로아스터교에 크게 영향받아 정립된 종교인 마니교에서도 주르반을 위대한 아버지 신으로 명기했다. 마니교를 창시한 마니는 생전 샤푸르 1세의 강력히 지지받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마니교의 주르반 숭배가 사산 왕조 초기 주르반의 위상을 보여 준다는 추정도 무리는 아니듯이 마즈다 신앙과 모호히 관계하던 주르반 신앙은 사산 왕조 멸망 후 급속히 사멸했다. 그 확실한 과정을 알 수 없기에 등장한 여러 가설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A. Christensen과 R. C. Zaehner는 마즈다 신앙과 충돌하지 않는 주르반 신앙이 사산 왕조 시대의 정통 교리였으나 이슬람 세력이 이란을 정복한 후 조로아스터교도가 이슬람교의 다신교 무시와 박해에 대항하고자 오르마즈드 숭배의 성격을 일신교다운 성격으로 강화하게 했으리라 추정했다. M. Boyce는 마즈다 신앙은 이란 동북부 지역, 주르반 신앙은 서남부 지역에서 주류였으리라고 추정했다. 사산 왕조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가 있는 서남부 지역이 제국의 중심지였기에 주르반 신앙이 번성했지만,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된 후에는 아랍 정부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지 못한 동북부 지역의 마즈다 신앙이 주류가 되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주르반 신앙의 그리스 신화나 헬레니즘 철학과의 유사성에 주목하는 때도 있다. 시간의 신이자 주신보다 오래된 창조신이라는 점은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를 연상하게 하거나 주신과 그 위의 존재라는 개념은 일부 영지주의 분파에서 주장하는 아이온데미우르고스 관념에 영향을 끼치거나 영향받았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하나 이 유사성이 곧 외래 종교의 조로아스터교를 대상으로 한 영향이라고는 간주하기 어렵다. 언급이 부실하지만 아베스타 시대부터 시간에 관련된 신으로 등장했고 시공 개념은 창세 문제에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그 뒤 조로아스터교 교리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쌍둥이 신'이 세계 만물을 창조하고 선악의 대립을 구축하기 이전, 그 '세계'와 '쌍둥이 신'은 어디서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의문을 해소하고자 주르반의 역할이 새롭게 제시됐으리라고 추측된다.

정리하면 신격으로서의 주르반은 선신인 오르마즈드와 악신인 아흐리만을 동시에 낳은 태초의 신이다. 주르반을 다룬 언급과 숭배는 사산 왕조 시대에 주로 나타났으나 그 후 사라졌는데 이것이 오르마즈드를 유일한 창조주이자 주신으로 숭배하는 그 후의 조로아스터교 교리와 어떤 관계했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인도 신화의 바람의 신 바유, 공간의 신 트바쉬타르, 불의 신 아타르와 연관성이 있고 아후라 마즈다앙그라 마이뉴 이 양자를 초월하는 근본원리에 해당되고 이원론적인 조로아스터교를 수정하려는 개념으로 제시된 하나의 원형적 원리이자 영원의 시간이고 곧 만물의 근원격에 해당되고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지만 운명, 공간, 성장, 성숙, 쇠퇴라는 개념도 관장하고 초월적이면서도 중립적인 선과 악의 구분이 없는 신으로 여겼고 우주의 중심축으로 알려진 액시스 문디(Axis Mundi)와 연관이 있는 신이었다고 한다.

이것 말고도 '끝이 없는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는 무한의 실체이고 자의식이나 완벽한 도독성을 갖춘 실체라기보다는 정신의 형이상학적 추상에 더 가까운 그리스 로마 신화카오스와 개념과 유사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