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S.J. 장 다니엘루 Jean Daniélo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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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게놀레-마리 다니엘루 (Jean-Guenolé-Marie Daniélou) |
출생 | 1905년 5월 14일 |
프랑스 제3공화국 뇌이쉬르센 | |
사망 | 1974년 5월 20일 (향년 69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버지 샤를 레옹 클로드 다니엘루 어머니 마들렌 다니엘루 |
학력 | 소르본 대학교 |
종교 | 가톨릭 |
직업 | 추기경, 사제, 신학자 |
소속 | 예수회 |
사제 수품 | 1938년 8월 19일 |
문장 | Fluvium aquae vita (생명수의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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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가톨릭 사제이자 추기경, 신학자, 역사학자.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자문위원이었고,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었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교부학자이다.
2. 생애
1905년 5월 14일 프랑스 노이이쉬르센에서 저명한 정치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기 가톨릭 신학과 교부학 연구의 선구자로 성장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이자 교회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아버지 샤를 다니엘루는 프랑스의 유명한 반교권주의 정치인이었고, 어머니 마들렌 클라모르종은 가톨릭 교육자로서 '생 말로의 여성 교육 기관'을 설립한 인물이었는데, 이러한 가정 환경은 장 다니엘루에게 지적 호기심과 함께 사회적 책임감을 심어주는 토대가 되었다.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소르본 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다니엘루는 1929년, 24세의 나이에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시작하였고, 예수회의 철학 과정과 신학 과정을 거쳐 1938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그는 파리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부학을 전공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는데, 그의 학위논문 『니싸의 성 그레고리오스의 영적 교리(La doctrine spirituelle de saint Grégoire de Nysse)』는 교부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그는 교부학 연구,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에 관한 연구에 평생을 헌신하게 되었다.
1942년부터 다니엘루는 파리의 가톨릭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시작하였고, 1944년에는 앙리 드 뤼박과 함께 '소스 크레티엔(Sources Chrétiennes)' 시리즈를 창간하여 고대 그리스도교 문헌의 원전과 번역을 출판하는 중요한 학술 사업을 주도하였는데,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도 계속되며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의 핵심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1945년에는 앙리 드 뤼박, 이브 콩가르 등과 함께 '누벨 테올로지(Nouvelle Théologie)' 운동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에 기초한 신학의 쇄신을 추구하며 당시 지배적이었던 신스콜라주의적 접근방식에 대안을 제시하였다.
다니엘루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경에 나타난 천사들의 신학(La théologie des anges dans la Bible)』(1953), 『유대교 내의 로고스 교리(Philon d'Alexandrie)』(1958), 『초기 그리스도교의 상징(Les symboles chrétiens primitifs)』(1961), 『신앙의 시련(L'épreuve de la foi)』(1970) 등이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교 기원의 역사(Histoire des doctrines chrétiennes avant Nicée)』시리즈는 초기 그리스도교 교리 발전에 관한 그의 방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단순히 고대 문헌의 분석에 그치지 않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풍부한 상징세계와 영성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를 통해 현대 가톨릭 신학의 성서적, 교부적 토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진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니엘루는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의회 문서의 작성에 깊이 관여하였고, 특히 교회와 현대 세계의 관계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과 비그리스도교와의 관계에 관한 선언문 「우리 시대(Nostra Aetate)」의 신학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으며,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도 선출되어 그의 학문적 업적이 교회 밖에서도 널리 인정받았음을 입증했다.
장 다니엘루는 1974년 5월 20일, 파리에서 69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선종하였는데, 그의 사망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교부학 연구와 신학적 쇄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며, 그의 학문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교부학과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의 기준이 되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풍부한 신학적, 영적 전통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발견하도록 이끈 그의 작업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특히 그가 주도한 '소스 크레티엔' 시리즈는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의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또한 그의 종교 간 대화에 관한 선구적 연구는 가톨릭 교회가 다른 종교 전통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방적 정신의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