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Hans Urs von Balthasar | |
출생 | 1905년 8월 12일 |
스위스 루체른 | |
사망 | 1988년 6월 26일 (향년 82세) |
스위스 바젤 | |
국적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취리히 대학교 |
종교 | 가톨릭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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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교회 사제이자 추기경이자 신학자.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1927년 독일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36년 예수회 사제로 서품되었다.[1] 1944년 신비가인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 함께 재속수도회인 성 요한 공동체를 창립하여 지도신부가 되고, 1947년 요한출판사를 설립했으며, 1950년에는 예수회를 퇴회하고, 1956년 스위스의 쿠어 교구에 입적했다. 1973년 국제 신학 월간지 '코무니오'(Communio)를 요제프 라칭거, 앙리 드 뤼박과 함께 공동 창간하고,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직에 서임되었으나, 수여식 사흘 전에 선종했다.평생 동안 119권의 단행본, 532편의 논문, 114편의 공동 집필서, 110권의 번역서를 남겼고, 말년에 집필한 주저 '신학적 미학'(Herrlichkeit) 3부작은 현대판 신학대전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발타사르의 신학은 매우 난해하지만, 독문학 박사 출신의 영향인지 매우 문학적이고 아름다운 감수성을 특징으로 한다. 발타사르는 이러한 접근법을 '신학적 미학'이라는 한 신학 체계로 개척했고, 가톨릭 신학계를 넘어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발타사르는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빛나는 가톨릭 신학자이다. 그를 특징짓는 주요 요소는 다음 두 가지로 집약된다. ① 계시에 대한 해석 원리로서 아름다움의 초월적 개념을 선택함: 이러한 선택으로부터 새로운 신학적인 체계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이 체계에 '신학적 미학'이라는 이름이 속하게 된다. ② 그는 인상 깊은 광범위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각각의 작품들을 풍요롭게 했다. 그의 스승 드 뤼박Henri de Lubac은 그를 일컬어 "우리 시대에 가장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 드 뤼박 ㅡ 발타사르는 그의 제자이며 그를 상당히 존경했다. ㅡ 과 마찬가지로, 발타사르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깊은 애착으로 과거의 유산에 연결할 줄 아는 특별한 감수성을 지녔다. 그는 드 뤼박과 프랑스 학파로부터 성경과 교부들을 향한 강력한 사랑을 끌어냈으며, 세상과 현대인을 향한 개방적 자세를 견지했다. 반면, 인종과 언어의 이유로 연결된 독일 학파로부터는 괄목할 만한 신비주의의 맥을 다시 취했다. 이로 인해 그는 우리에게 사색적이기보다는 관상적인 신학을 선사해주었다. 그는 추상적이고 냉철하며 기계적인 사색에 강한 반감을 느꼈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됟스이,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성 토마스와 그의 존재철학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바티스타 몬딘Battista Mondin, 『신학사』Storia della teologia (1996) 제4권, 이재룡 · 윤주현 · 안소근 번역, 가톨릭출판사, 2020, pp.900-901.
한국 가톨릭에서도 최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교의신학자로, 본래 그렇게 잘 알려진 학자는 아니었으나 2010년대부터 발타사르와 슈파이어의 저술을 폭발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카를 라너 정도만이 그 인기를 비길 수 있으며, 최근의 번역 페이스로는 라너보다 더 활발히 번역 중이다.[2]-바티스타 몬딘Battista Mondin, 『신학사』Storia della teologia (1996) 제4권, 이재룡 · 윤주현 · 안소근 번역, 가톨릭출판사, 2020, pp.900-901.
풍부한 학식 뿐만 아니라 풍부한 신심에서도 존경을 받는 학자로, 사후 '하느님의 종'Servus Dei' 칭호가 수여되어 현재 시복절차가 진행 중이다.
[1] 즉 발타사르의 학위는 의외로 신학박사가 아니라 문학박사다. 베네딕토 16세의 인터뷰에 의하면, 발타사르는 이 때문에 항상 자신은 신학자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고 하는데, 베네딕토16세는 발타사르를 무척 존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 만큼은 헛소리로 취급했고(...) 발타사르를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과 함께 가장 위대한 현대 신학자로 꼽았다.[2] 심지어 발타사르의 주일 강론집도 번역되었는데, 강론집이라는 특성상 매우 쉽고 사목적인 언어로 쓰여있으며, 그러면서도 발타사르 특유의 아름다운 감수성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만약 교의신학의 난해함이 걱정된다면 강론집부터 구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