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05:27:57

육군사관학교/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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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군부독재의 잔재
2.1. 지나친 장성급 장교 진급 우대
3. 여성 생도 우대 문제4. 의무복무자 및 휘하 간부 착취5. 대입 채점 오류 사건6. 교내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7. 서울로부터의 이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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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출신 인물에 대힌 비판 및 논란을 다루는 문서.

2. 군부독재의 잔재

육사 2기 졸업생인 박정희5.16 군사정변을, 11기 졸업생인 전두환노태우12.12 군사반란을 벌였다. 이들은 군사정권을 수립해 독재와 폭정에 가까운 행각들을 벌였다.

군사정권의 우대로 인해 안정된 월급과 출세 가도가 보장됐다지만 아직도 유신시절 라인(김종필 등)들과 하나회 출신들, 전두환 정부 인사들이 깊게 말려들었을 정도로 정치성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일례로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인사들이 육사를 방문하여 거수경례를 받아 큰 비판을 받았다.

이로 인해 육군은 아직도 곳곳에 부조리한 잔재들이 남아있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출신 가르기와 정치질, 탁상행정, 사건 은폐 등. 그리고 이건 육사 뿐만 아니라 3사, 학군, 학사, 간부사관에 이르기까지 육군 장교 집단 전체에 산재해있는 문제이다. 광복 이후 현대사를 봐도 해군,공군 주도의 사조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유독 육군만 청죽회, 하나회, 알자회 등 불법 사조직 사건이 적발되었다.

재밌게도 독재 정권시절 푸대접 받았던 공군해군에선 지도부들부터 신임 초급 간부들까지 계급과 경력, 병과, 출신을 막론하고 아직도 육군 장교집단의 문화 곳곳에 잔재해있는 출신 가르기 및 정치질, 똥군기 등 군사독재 시절 군 병폐의 잔찌꺼기들을 증오한다.[1] 그만큼 이들 육군 장교들의 행태가 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장성출신 대통령이 문민시대에 되는 게 하늘에 별따기라고 마지막 상한선이 총리나 장관급이라 할 정도. 군인에 대한 거부감이 국민 정서에 뿌리깊게 심어진 상황이니, 온갖 차별까지 받다가 되려 함께 묶여서 뭇매를 맞는 해군과 공군이 이를 혐오하는 것은, 어찌보면 본능이며 당연한 현상이다.

2012년 6월 8일 전두환과 5공의 고관들이 육사 발전기금을 기부해 육사발전기금 2백억 달성행사에 초대받았고 사열을 받았다. 전두환은 육사교장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유일하게 의전용 탁자 등을 사용하고 건배를 제의하는 등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았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인터넷에서 하나회 출신들을 중용하더니 전두환 사열까지 연다며 비난받았고 민주당 등 야당 측도 김관진 국방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2006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2012년 초에도 왔었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했던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 당시 육사 출신 알자회 인원들이 주도해 3사관학교 출신이었던 이순진 합참의장을 배제한 후, 육사 출신의 육군참모총장 장준규를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기무사령관 조현천을 중심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탄핵 이후 해외로 도피했던 전 기무사령관인 조현천2023년 3월 29일, 5년 3개월만에 한국으로 복귀하며 문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기에는 무려 국정원장이 계엄사령관의 지휘를 받고, 국정원 2차장이 기무사령관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마치 12.12 군사반란을 보는듯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2.1. 지나친 장성급 장교 진급 우대

현재 2024년 기준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타 출신 장교들에 비해 평균적인 인적풀의 수준도 가장 높을 뿐더러, 가장 길고 교육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장교 엘리트 교육과정을 밟는데다가 소위 임관 직후부터 자동 장기복무이기에 각종 보직관리에도 유리해 진급률 자체가 높은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영향과 예비역 군간부 우대 성향으로 일반대학 출신들이 많이 임관하던 1960년대와는 달리 2020년대에 들어 군 간부들의 특권인 스마트폰 사용이 병사들도 가능해지고 초급장교 월급을 병사 월급이 추월하기 시작하자 ROTC, 학사장교 등의 민간대학교 간부 지원율 자체가 곤두박질쳤고, 이로써 육사 출신의 비중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과거 1970년대까지는 6.25 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갑종장교 출신들과 11기 이전의 육사 출신 선배들이 요직을 많이 차지했었으나 전두환 정부 이래 전쟁 경험이 있는 갑종장교 출신들이 강제로 옷 벗고 전역하면서 육사 출신들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육사에서도 하나회, 알자회 등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진급이 가능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1993년 이전, 군대내에서는 소위, '3대 주요 사찰 경력'이란 우스개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특전사', '수방사', '보안사'로 일컫는 정치권과 늘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수도권 최인근 위치 & 군내 정보장악을 하는 위 3개 부대의 근무경력을 쌓아야만 장군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썰(?)이었다. 국민들이 많이 접해본 육사 출신들의 군 내 사조직인 일명, '하나회', '알자회' 등의 멤버들 군 경력을 살펴보면 대개가 이러한 부대에서 주요 지휘관 보직만 살짝살짝 거치면서 자력들을 쌓아 갔고, 특히나 하나회를 필두로 한 과거 군사정권정치군인들은 본인들의 진급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타 출신들과 요소를 끊임없이 견제했다.

대표적으로 당시 가장 승승장구하던 갑종장교[2]들의 6.25전쟁 참전경력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 전쟁 당시 파견 장교들을 기어코 실전경력 하나 전무한 신참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까지 긁어모아 파병시켰다.[3] 심지어 관례상 월남전 파병 당시 연대장급 이상의 장교들은 무공훈장을 수여했는데, 하나회는 전투수행능력 부족 + 무기 밀매 및 적성화기로 거짓보고, 능력 부족 등으로 지나치게 자격미달 수준이라 동료와 상관의 반대가 극심한 이들에게도 훈장을 수여하였다. 이 때의 대표적인 수혜자가 바로 전두환이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 엘리트였던 갑종장교 및 11기 이전의 육사 출신 죽이기와 전두환 정부의 3사관학교 생도과정 폐지[4], 반 하나회육사 장교 소외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타 출신의 진급과 임관을 제한하며 군을 완전히 장악했다.

훗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를 비롯한 군 내 사조직을 완전히 타파하고 군사정권의 잔재를 치워버렸지만, 최근인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육사 출신들이 결성한 사조직 '알자회'의 존재가 알려지며 그 병폐는 뿌리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독사파[5], 나눔회, 만나회는 물론이오 심지어는 하나회의 잔당마저 여전히 존재했으며 군 내 사조직 결성과 진급비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현실을 비추었으나, 그토록 지역주의, 학벌주의 등과 같은 출신주의 타파를 옹호하던 정치권은 물론이오 민간에서도 되려 군의 이러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

보통 육군에서 별을 다는 인물들은 대부분이 육사 출신으로, 육사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장군 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육사 출신은 5년차 전역을 택하는 인원을 제외한 상태에서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거의 모두 소령으로 진급하기 때문에 타 출신은 상당히 힘들다. 2010년을 기준하여 육군의 출신에 따른 장성 진출률은 육사 77.8%, 3사 14.7%, 학군 5.9%였다. 아시아경제 기사 또한 2011년 들어서는 육군의 장군 319명 중 육사 출신이 250명(78.4%)으로 늘어났다.

이는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에 장군 299명 중 육사 출신이 226명(75.6%)이었던 것보다 24명 증가한 것. 뉴시스 기사 2012년은 육군 전체 장군 318명 중 육사 출신이 253명(79.6%)으로 전년보다 3명이 더 증가하였다. 중앙뉴스 기사 애초에 200여 명이 임관하는 육사, 400여 명이 임관하는 3사, 4,000여 명이 임관하는 학군단, 800여 명이 임관하는 학사의 최초 임관자 수를 생각해본다면 지나친 독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들 대다수가 단기자원이며, 특히 극극소수만이 장기복무를 지망하는 학사장교들의 경우에는 인원 대비 비율이 도리어 높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육사 출신의 진급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타 출신의 진급률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 게 전반적으로 장군 TO를 점점 줄여나가는 추세인지라 자리가 줄어드는 거지 무슨 3사나 ROTC, 학사를 편애하는 게 아니다. 2018년 이후에는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해서 지상작전사령부로 창설함과 동시에 야전군사령관 보직이 3개에서 2개로 감소했고 이에 따라 대장 1개, 중장 3개 등 장교 보직 개수가 차례대로 줄어들었으며 특히 2020년대 이후로는 저출산으로 인한 군단/사단 해체가 잇달으면서 장군 진급은 출신을 막론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지게 될 전망이다. 다만, 비사관학교 출신 자원들의 지원자 수가 감소하면서 육사와 3사의 장군 진급 비중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서는 장교들의 전문성 향상을 기대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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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희수 의원실)

1970년대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하는 장군 진출 비율은 갑종장교와 11기 이전의 출신이 11기 이후의 육사 출신에 비해서 월등히 높았으나, 전두환 정부 이후 이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하지만 이는 3사나 ROTC 출신이 육사보다 진급률이 높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당시의 육사는 갑종장교와 1기 이전의 육사 출신에게 밀렸기 때문일 뿐이며 현재 갑종장교는 마지막 기수까지 모든 인원이 다 전역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ROTC 1기가 1963년에 소위로 임관했고 3사 1기는 이보다 더 늦다. 1970년대라면 ROTC 1기와 3사 1기는 잘해야 소령 내지는 중령인 셈이다. 다만 김영삼 정부에서 하나회 척결 등으로 90년대 초반 육사 출신 장군의 진급이 60%대까지 떨어졌지만, 20여 년이 지난 2010년대 현재는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다시 육사 출신 장군 비율이 80% 수준까지 올라왔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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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10·2011·2012년 하반기 출신별 장군 진급 결과 분석) 이러한 편중 현상은 굳이 장관급 장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관급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2020년대 이후의 현재는 처음부터 장기복무를 목적으로 월등한 성적으로 입교하고, 일반적으로 그에 비례하는 진급역량심사에 반영되는 수준 및 실력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이 있으나 가난해서 대학에 다닐 여력이 없었던 갑종장교 출신들이 장군 등의 고위 장교를 현대의 지원자보다 비교적 더 많이 역임했던 것이고 지금은 과거보다 3사나 학사장교 등 출신 장기자원의 진급률이 떨어진 것이라고 충분히 감안할 수 있다.

2012년도 영관 장교 진급심사 결과를 보면, 중령 진급도 육사는 77.1%가 진급한데 반해 학군은 13.3%, 3사는 10.6%, 학사는 11.4%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실력대로 하면 더욱 육사편중이 될 가능성이 높으나 출신별 고려를 통해 더 이상 육사출신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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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642594)

참모총장도 1969년 9월 1일 취임한 19대 참모총장(서종철, 육사1기) 이후로 非육사 출신은 단 한명도 없었다. 非육사 출신도 학군단3사 출신이 대장 진급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육사 출신에 비하면 인원도 적은데다 거의 후방을 담당하는 2작전사령관으로 가고 1야전군이나 3야전군사령관은 거의 모두 육사 출신으로 보임되어왔다. 非육사 출신 1야전군은 정호근 대장(갑종5기,1987년~1989년), 정수성 대장(갑종202기,2003년~2005년), 박성규 대장(3사10기, 2011년~2013년)이 있으며, 합동참모의장은 오자복 대장(갑종3기, 86년~87년), 정호근 대장(갑종5기, 89년~91년), 김진호 대장(학군2기, 98년~99년), 조영길 대장(갑종172기, 99년~01년), 이순진 대장(3사14기, 15년~17년)이 있다.

당장 학교장 계급을 살펴봐도 3사 교장이나 학군 교장은 소장 계급인데 반해 육사교장은 중장 계급이다.

국방경비대 이등병 출신으로 육군 소장까지 진급한 최갑석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1955년 자신이 소령 계급으로 포병대대장을 할 때 소위로 임관한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이 1973년에는 자신을 앞질러 준장으로 진급했다고 한다. 국방일보 기사 6.25 전쟁 당시 현지 임관하여 미국에서 포병교육을 받는 등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조차 포병대대장에 7년간이나 머무른 사례를 통해 非육사 출신 간부들의 승진이 육사 출신에 비해 느렸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육군본부 인사담당부서 차원에서 육사 선배 기수들의 입김이 작용하여 후배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이들이 앞에서 표가 나게 당겨주는 폐해를 과거부터 거듭해왔기에 비육사 출신임에도 야전 경험과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장교들이 대부분 중령이나 대령에서 장군 진급을 못하고 전역하는 현상은 아직까지도 진행형인 것으로 많은 비육사 예비역들이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여러 통계 수치자료를 통해서도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동안 사실상 육사출신만 할 수 있는 직위가 7개 있었는데, 육군참모총장 (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대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 특수전사령관 (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중장), 1군단장(중장), 5군단장(중장)이 그것이다. 특수전사령관은 남영신이 취임하며 깨졌고, 육사 교장은 육사 출신들의 카르텔이니 뭐니 해도 명색이 육군사관학교이기에 절대로 비육사 출신이 들어올 수 없다.(사실 카르텔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전역을 앞둔 중장들이 가는 한직이기 때문)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둘뿐인데, 그래서 비육사 출신이 총장이 되느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것이다.

결국 육참총장 역시 남영신이 취임하게 되며 육사 출신들로만 이어져내려 온 기록을 깼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여전히 육사 출신들이 맡게 되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다만 연합사 부사령관은 대장 보직 중에서는 제2작전사령관과 함께 상대적으로 위상이 낮은 보직이다.) 참모 최고요직인 합참 작전본부장, 군단장 최고 요직인 1군단장, 5군단장은 계속해서 육사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사실 여론의 주목을 받는 육군참모총장은 참신한 인사정책, 기득권 타파 등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정권에서 가끔씩 비육사 출신을 임명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여론의 주목을 덜 받는 중장 최고요직은 계속해서 육사의 전유물인 점이 육사의 카르텔을 실질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출신 장교들이 야전에서 보여준 우수한 역량을 생각하면 학연에만 의존한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 역시 있다. 상술된 바와 같이 현재는 대다수의 비육사 인재들이 대거 이탈하거나 차라리 여건이 더 나은 해군과 공군으로 가는만큼, 육군에서는 육사 출신이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장교를 찾으면 대체로 육사 출신이었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또한 3사를 비롯한 비육사 출신 장교들 역시 밀고 끌어주는 부적절한 인사평가로 인해 논란이 된 적도 많다[7]. 고로 이는 육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육군 장교 집단 전체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위 군사정부 관련 문단에서도 서술되어있듯이, 실제 해군과 공군이 혐오감을 가지는 육군 장교집단만의 여러 병폐 중 하나가, 바로 하나회로부터 창출된 이 지나친 출신 가르기와 출신별 카르텔로 인한 단합력 저해 및 정치질인데, 이건 육사 뿐만 아니라 육군 장교들이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그러한 경우가 많다.[8]

결과적으로 현재로선 육사 출신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는 학군, 학사에서는 육사에 비해 군사학을 연마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며 전쟁사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유격 훈련도 이수하지 않고 임관하기 때문이다. 3사관학교도 같은 맥락에서 학군이나 학사보다 유리하다는 이점이 있다. 심지어 과거부터 공공연하게 행해져오던 차별과 군 장교로서의 메리트가 바닥을 치다보니 비사관학교 출신 우수인재들이 대거 군을 이탈하고 지원율이 하락하며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이게 현재 극심한 인력난에 빠진 현 시국에서의 사실상의 주 원인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술했듯, 이러한 사전지식 습득의 차별성이 매우 희미해지는 장기복무 이상의 장교들부터도, 이런 능력의 정도가 아닌 순수히 출신과 인맥만으로 진급이 이루어지는 행태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군이 개선해나가야 하는 문제이다.

3. 여성 생도 우대 문제

사실 여생도 우대 문제는 육사만이 아닌 해사, 공사, 경찰대학, 학군사관후보생 교육에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문제이다. 남생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체력 기준이 낮고 훈련 과정에서의 여생도 우대가 문제가 된다. 체력기준 자체는 군 내부에서 모든 여군에 적용하는 기준이긴 사관학교 여생도들의 기준으로는 많이 낮은 편이라 같은 등급을 여생도가 남생도보다 더 달성하기 쉽다. 또 공식적으로야 여생도들 우대하지는 않지만 군사훈련이나 체육학 등에서 특혜를 받는 듯한 상황이 간혹 나타난다. 또, 비위행위로 징계나 퇴교 등의 처분을 받을 때에도 여생도는 남생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례가 무수히 많다. 이를테면 육군사관학교는 삼금 제도가 남아 있어 생도들의 음주가 금지되던 시절 여생도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는 사진을 공공연하게 SNS에 게시하여도 제대로 된 징계를 주지 않은 적이 있고, 이후에도 흡연 적발, 여생도가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 등에서 유사한 사건임에도 남생도보다 미온한 처벌을 내렸다.

이러한 문제와, 기존의 여군 혐오가 섞여 2017년 국방TV에서 '화랑 전투기술 경연대회[9]'를 다룬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었다. 문제가 된 장면은 대회 시작 전 군장 검사를 마치고 팀장 생도의 주도 하에 여생도의 군장 품목을 다른 생도에게 나눠주는 장면이다. 이때 팀장 생도는 "여생도 군장을 남생도들과 분배해서 오늘 훈련에 있어서 체력분배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인터뷰를 했고 주변의 남자 생도들이 해당 여자 생도의 군장 속 물건을 대신 서로 나눠 메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래 놓고 육사 1, 2, 3등 다 여자라고 여풍이랜다.", "군인에게는 성별이 없다.[특히], "전쟁 나면 총알이 여자라고 피해가냐?", "여생도가 훈련 중 립스틱이나 바른 이유가 궁금하다", "앞으로 병사를 지휘할 장교가 될 사람이 저런 상태로 훈련에 임하냐?" 는 등 이야기를 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특히 2017년 12월 20일 국방부에서 국방개혁 2.0 일환으로 앞으로 여군 비중을 더욱 확대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라 반응이 더욱 격했다. 국방TV는 논란이 일자 제대로 된 해명 없이 해당 영상을 황급히 삭제해 버렸다.

실제로는 해당 장면은 훈련이 아닌 경연대회였기 때문에 논란이 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해당 대회는 학교 부지[11]를 돌아다니며 여러 과제를 수행하고, 각 과제 간 이동 시간을 평가 요소 중 하나로 활용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팀이 체력이 약한 저학년 생도의 짐을 덜어 체력이 좋은 생도들이 나눠 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야 특정 인원 때문에 팀 전체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에 나온 팀이 아닌 다른 15개 팀도 군장 물품을 분배했고, 그 대상은 여생도가 아니라도 체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생도면 누구나 그렇게 했다. 영상에 잡힌 사람이 여생도였을 뿐.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영상에서 팀장 생도가 '훈련'을 언급한 점만 부각되어 세간에는 훈련 중 여생도의 짐을 덜어준 것처럼 알려져 과도한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방TV에서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영상을 삭제하여 논란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4. 의무복무자 및 휘하 간부 착취

육사 출신 장교들은 애초에 군복무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며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와 마찬가지로 졸업하고 소위임관 시점부터 군복무를 평생 직장으로 인식한다. 문제는 이걸 오직 본인의 입장으로만 기준을 정한다는 점이며, 그 과정에서 오로지 진급만을 위해 휘하 병력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한다는 점이다. 특히 같은 사관학교 출신인 3사관학교 인원들의 경우 장기복무와 진급을 위해 더더욱 이런 행태가 잦은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병은 100%이며 부사관 역시 50% 이상에 육사와 출신만 다른 타 출신 장교들의 절대다수인 병역 의무 이행자와 일부 육사 출신 장교들이 늘 마찰을 일으켜 왔다. 그리고 그 마찰은 현재진행형이며 윤의철(43기)이 이 마찰에 대해 독보적으로 유명할 뿐이다.

군 신분 중 직업군인이 100%인 신분은 준사관밖에 없다. 그리고 나머지 과정은 직업군인의 비율이 30% 이하이다. 임관자 기준 직업군인 비율이 높은 부사관이 25~30% 정도에 불과하며 장교는 5~10% 언저리[12], 병은 직업군인이 아예 없다. 특히 비육사 장교의 장기복무 선발이라는 건 중소위 기준 연간 대대별로 1명만 선발하기 때문에 연간 16명당 1명만 장기복무 선발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대대의 중소위급 장교 중에서 장기복무자는 육사 1명(육사 출신이 있을 경우), 비육사 1명 / 육사 0명(육사 출신이 없을 경우), 비육사 1명이 된다.

아무리 군대가 강력한 위계서열을 바탕으로 한, 지휘관의 절대적인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병역은 징병제이기 때문에 이걸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못하든 그 여부따위 일절 상관없이 군복무를 이행해야만 하는 나라이다. 모병제였으면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원을 선발과정에서 탈락시키면 그만이지만 징병제에서는 탈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이 대체복무의 문이 지나치게 좁은 나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입대연령을 놓쳐서 늦은 나이에 장교로 입대하는 인원들[13]이 장교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일부 육사출신 지휘관들은 이런 장교로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자들에게조차, 본인들이 병 이외에는 전부 직업군인이니 모두 날 위해, 니들의 진급을 위해 빡세게 굴러라는 썩어빠진 마인드를 가지고서, 자신들이 생도시절에 겪은 악랄한 훈련과 똥군기를 고집하고, 그 와중에 업무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아웃풋을 요구한다. 물론 같은 육사 출신 후배를 제외하면 보상은 일절 없으며, 군 체계와 전투력 신장은 뒷전이고 오직 본인의 보신만을 중요시하는 게 관례이다. 이런 틀에 박힌 다수의 육사 출신 장교들이 본인들의 진급을 위해 군인정신을 들먹이며 병력들을 비교적 빡세게 굴리게 된다. 그들은 고작 생도시절 4년 동안 빡세게 구르며 똥군기를 주입받은 게 군대의 전부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선배들의 정치 군인식 행보를 보며 휘하 부하들을 착취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군대는 이들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게 굴러간다. 아무리 대한민국 군대가 썩었어도 제대로 된 군대의 엘리트를 꿈꾸며 임관한 각 출신 장교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러한 이들을 제하고 봐도, 정치든 참군인의 길이든 그냥 아무 관심도 없이 시간만 떼우며 복무하는 의무복무자들이나 월급루팡러가 절대다수이다. 당장 임관 과정만 보더라도 학군사관은 아예 후보생(생도)시절부터 출퇴근을 하는 이들이며 학사장교단기간부사관은 압축훈련의 특성상 육사만큼 불필요한 기타 군기부여나 지옥훈련을 받지 않는다. 그나마 육사와 비교 할 수 있는 건 육사 교육과정을 단기로 압축하는 바람에 이수난이도나 똥군기가 더 악랄한 3사정도이며, 이들 역시 휘하 인원 착취로 유명한 이들이다. 이런 면모가 정말 심한 윤의철의 경우 철저한 정치군인이다. 단순히 체력적인 문제로 병사들을 갈군걸 떠나서, 의무복무자를 포함한 휘하 장교들에게 업무를 과중시키고 책임은 다 넘기는 와중에 성과는 그대로 유지하길 바랬는데, 보상은 일절 없이 본인만 그 공을 다 가로채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조건 육사식 커리큘럼이 몸에 밴 본인들의 기준에 병력들과 부하 참모들을 맞추면 안되며 그들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후 그에 맞게 지휘해야 한다. 또한 육사 내부의 여러 부조리나 병폐를 가지고와서 그게 무슨 자랑스럽고 옳은 군인정신인 것마냥 선민의식을 가진 채로 강요해선 안 된다. 그건 그냥 무식한 똥고집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육사를 제외한 모든 병/부사관/장교들은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다 온 이들이기에 그런 똥군기를 들먹여도 씨알마저 먹히지 않으며, '이게 엘리트 장교의 길이다'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게 아니라 본인의 상식이 잘못되지 않은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는 자세를 미리 가져야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본인들이 진급하여 장군이 되기위함이 아니라 진정한 위국헌신의 군인이 되기위한 목적으로 입대하여 장교가 되었음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을 현재 육사 생도들이나 육사 출신 장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

5. 대입 채점 오류 사건

43명 인생 바꾼 육·공사 대입 채점 오류···軍은 1년간 몰랐다

6. 교내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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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홍범도 장군 묘역과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항일단체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비판 및 항의 플랜카드들을 걸고 규탄 집회를 했다. 이종찬 회장의 아들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가 "부당한 사상 검열"이라면서 "홍범도 장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1 #2 #3 #4

이 후에도 10월에 들어선 홍범도,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딴 교내의 독립전쟁 영웅실마저 없애기로 하면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7. 서울로부터의 이전 논란

굳이 왜 육군사관학교가 서울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

육사가 현재 서울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전신인 조선경비대로 올라가야 하는데 당시 경비사관 육성 및 근대화 되고 훈련장이 정비된 곳이 서울 밖에 없었고 태릉에서 시작하여서 현재 태릉 즉, 공릉동 지역에 아예 눌러앉게 된다. 육사 이전에 따른 지방 발전과 더불어서 정치적 문제로 엮이면서 대선 공약이 되기까지 할 정도이다. ##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등 다른 사관학교들은 이미 각 지방에 있고, 마찬가지로 육군 장교 양성 기관인 육군학생군사학교 역시 지방에 위치해 있다. 육사의 상급 부대인 대한민국 육군본부 역시 후방인 계룡대에 위치해 있다. 그밖에도 여러 교육 부대들은 대체적으로 후방에 위치하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굳이 육사만 서울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14]

만약에 이전이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육사 입장에서는 위상과 입결이 떨어지는 등 좋지 않으므로 육사 총동회 등 육사 출신들은 전체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여론은 대체로 이전 찬성을 보이고 있다. ## 국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군 부대 취지를 생각해서라도 안 옮길 이유가 없기 때문.[15]

[1] 이건 국직부대에서 근무하는 해공군 장교/부사관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런 반작용과 더불어 비사관학교 출신인 OCS들의 우수한 인력풀과 장교 인력난으로 인해 해군과 공군에는, 최소한 2020년대 현재는 출신 차별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임관부터 장기인 사관학교 출신들이 승선/비행 시간이나 이력을 쌓기에 좀 더 유리한 정도. 심지어 비사 출신 우수인재들의 이탈을 막기위해 2010년대 말부터는 아예 별도의 진급 티오까지 대거 마련한 상황이며, 해/공군 조종장교들의 경우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항공 시장이 어려움에 빠지자 사관, 비사관 출신 막론하고 군대에 남아버리는 바람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었다.[2] 1940년대 후반 11기 이전의 육군사관학교는 부사관 및 장교 전역자를 대상으로 단기간 재교육시키는 기관이었고 1949년부터 2년제였다. 6.25 전쟁 참전용사라는 구국영웅의 타이틀까지 있던 갑종장교와 11기 이전의 육사 출신들의 힘이 강력했다. 하나회의 가장 우선시되었던 목표가 바로 갑종장교와 11기 이전의 육사 출신들을 군 내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자신들이 장악하는 것이었다.[3] 신임 장교들의 실전경험 배양을 위해 파병시키는 것 자체는 당연 매우 좋은 상황이다. 허나, 필요 이상으로 특정 출신의 신임 장교들에게 티오를 할당해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4] 이 때 3사관학교 견제로 인해 생겨난 무더기의 초급 장교 공백을 매꾸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학사장교이다. 3사관학교의 생도과정은 1996년 33기 모집을 기점으로 하여 다시 복구된 상태이다. 그 유명한 암호명 흑금성, 박채서 또한 갓 임관한 당시에는 야전부대를 지휘하는 장성급 장교가 꿈이었으나, 비육사 출신의 한계를 체감하고 아예 커리어 자체를 특수 계통으로 돌린 사례이다.[5] 독사파의 경우에 비리형 사조직이라고 보기엔 별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으며, 소속 인원들의 실력도 독사파라는 것을 제하고 봐도 충분히 진급할만한 기량을 가진 인물들이라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6] 참여정부 시절에도 육사 출신은 장군 진급이 잘만 되었다.[7] 특히 이용환 장군의 경우 본인과 출신이 같은 3사 출신만 편애하여 육사, 학군, 학사 출신으로부터 불만을 많이 샀다.[8] 해군과 공군은 고질적인 인력난과 더불어 통합된 임관과정, 사관학교와 비슷하거나 되려 그 이상으로 우수한 비사관학교 출신들의 인적풀로 인해 이런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군, 공군 학사장교들은 대부분 출신대학이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명문대 출신이나, 못해도 인서울 하위/지거국 이상의 공부 좀 했던 학생들이 많다. 딱히 있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장기인 사관학교 출신들이 승선/비행시간을 더 채울 여력이 있다는 것 정도. 사실 이건 차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9] 현 명칭은 '화랑 커맨디프 경연대회'이며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Sandhurst Competition을 본떠 만든 장교후보생 대상 전투기술 경연대회이다. 처음에는 육사 내 중대별 팀만 참여했으나 이후 학군단, 군사학과, 3사까지 참여하는 대회로 규모가 커졌다.[특히] 병으로는 여성이 한 명도 없으니 이 말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간부로 갔으면 더욱 당연한 이야기다.[11] 육사 부지는 생도 생활 건물 외에도 기간장병 시설, 교육시설, 수 개의 연병장, 훈련장을 포함하여 서울대학교 캠퍼스에 버금갈 정도로 넓다.[12] 의무복무군인이 자주 물갈이되기 때문에 한 해 임관자 기준으로 잡으면 진짜 이 정도 비율이 나온다. 특히 학군장교는 머릿수도 제일 많은데 복무기간도 제일 짧아서 물갈이 정도가 엄청나게 심하다.[13] 학사장교의 절대다수가 이런 인원들이다. 해군 학사장교의 경우 35세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다. 물론 공군과 해군의 경우 사관학교 외 절대다수가 학사장교이다.[14] 특히 해외 사관학교들도 수도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도 있지만 한국 육사처럼 수도내에 남아있는 케이스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15] 애초에 사립대는 국가가 지방으로 가라고 강요할 수 없다. 국립대의 경우 서울에 몇군데 있긴 하지만, 명분 이전의 용이성 등을 고려하면 이전 1순위는 솔직히 육사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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