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6:13:47

완산구/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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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주 한옥마을 + 경기전3. 전동성당
3.1. 남부시장 + 청년몰
4. 전주 향교
4.1. 자만벽화마을
5. 전주 객사
5.1. 다가공원
6. 풍남문7. 전라감영8. 치명자산9. 국립전주박물관10. 한국전통문화전당 11. 전주영화종합촬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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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주 한옥마을 + 경기전

전주 한옥마을경기전 문서를 참조. 경기전은 한옥마을 바로 옆에 있고, 전동성당은 경기전 맞은 편에 있어 보통 한 번에 세 곳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관광지 전주' 하면 가장 유명한 곳.[1]

3. 전동성당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 바로 옆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천주교 미션스쿨인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한옥마을에 꼭 붙어있다. 자세한 것은 전동성당 항목 참조.

3.1. 남부시장 + 청년몰

파일:external/www.ttearth.com/nambu_market002.jpg
완산구 전동에 있으며 한옥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이다. 피순대국밥이 유명하다. 모범시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야시장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 시장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2층에 청년몰이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아래 재래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몰이 나타난다. 청년들이 창업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고 시장의 디자인 또한 멋지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공예품, 골동품, 문방구, 식당들이 모여 있는 훌륭한 청년시장. 공연도 자주 있으며 냥보도 있는 고양이들이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어 냥덕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다. 꼭 가보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몰과 연결된 하늘정원에는 탁자벤치가 있어 전주시내 재래시장들 중 유일하게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편히 앉아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남부시장은 우수 시장으로 선정되고 청년몰은 모범사례로 뽑혀 다른 시장에도 도입된다고 한다.

4. 전주 향교

파일:전주향교.jpg
사적 제 379호. 위치는 전주시 교동으로 한옥마을과 지근거리에 있다. YMCA 야구단,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영화나 드라마 일부 장면을 이곳에서 찍기도 하였다.특히 가을날 저녁에 가면 곳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빼곡하게 달린 노란 은행잎이 햇살에 비쳐 향교 전체가 노랗게 빛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4.1. 자만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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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마을 뒤쪽 도로로 나오면 산이 있는데, 그 산 오르막길에 마을이 하나 있다. 평범한 오르막길 주택가가 아니라 벽에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마을.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4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열차를 그려놓은 벽이 유명하다. 이곳 역시 게스트하우스나 멋진 공예품 가게가 아기자기 모인 곳으로 한옥마을과 함께 꼭 돌아봐야 할 코스.

본래 이곳은 자만동(滋滿洞)이라고 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부터 전주에 사는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주촌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간납대[2] 등등 선비들이 모여 살며 후학 앙성 및 학문을 닦던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던 곳으로, 자만동 금표(滋滿洞 禁標)라고 하여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국권피탈시기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조상들의 흔적과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잡인들이나 유래없이 떠돌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와 살지 못하게 옆의 이목대와 함께 비표를 세워 성역 비슷하게 취급되던 곳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역사가 서린 곳을 페인트 벽화만 그려 놓고, 벽화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유래나 역사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상업화가 진행되어 주택들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카페 및 유행가만 들려오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방문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완산팔경 중 2개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곳인데... 근처 마개조된 건물들과의 조화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간을 이렇게 페인트 벽화만 그릴게 아니라, 낙후된 주거지역은 적절한 보수 및 개선을 하고, 구한말 국권피탈시기의 역사적상징물로서 근처의 경기전과 오목대와 연계하여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이나 역사학습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구한말 고종황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와 나라 잃은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며 자만동 금표를 찾아보자. 더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전주 객사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582호 583호 584호
월인석보 목판 전주 풍패지관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Jeonju_Gaeksa.jpg
전주객사(全州客舍). 전주시내 번화가에 있는 문화재. 보물 제 583호.

조선 초기 전주부성이 지어질 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때 조정의 칙사나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여기 묵었다. 전주가 태조 이성계 가문의 고향이라 하여 '풍패지관'이라는 현판[3]이 붙어 있는데, 풍패는 중국 전한 고조의 고향. 곧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전주를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전주시내 중심에 가깝고 실제로 전주 시내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거리가 바로 이 쪽에 있어서 영화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객사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된다. 도심속에 나홀로 전통 건축물이 있는 모양새.

이름이 객사라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는다는 의미의 客死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쪽으로 난 길이름이 객사길이라 처음 본 이들은 식겁하기도.

전주에서 시내라면 대개 객사 부근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세이브존(舊 코아백화점)에서 경기전 부근까지를 시내로 치지만 '시내에서 만나자'라면 열에 아홉은 객사길을 말한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상징적 문화재이나 전주시 시내버스에 '객사'라 써놓은 버스는 별로 없다. 객사라는 이름을 가진 정류장은 풍패지관 바로 앞 충경로상에 위치한 '충경로.객사' 뿐이며, 팔달로상에 위치한 정류장들은 외환은행, 국민은행, 전북은행경원지점, CTS기독교TV전북방송, 흥국화재 등으로 제각각이다.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거나 신도심 쪽에서 객사 부근으로 가려면 중앙시장/동부시장과 전동(한옥마을)이 행선지인 버스를 타면 된다. 정 모르겠다면 기사에게 물어보자.

전북대학교 대학로와 함께 전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 객사 주변은 전주에서 가장 땅값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타지인들의 관점에서는 전북대 근처나 서부신도심 등에 비해 상당히 낙후되어 보이는 편이다. 특히 동문예술거리, 영화거리 쪽은 완전히 침체되어 있으므로 막상 가면 실망할 확률이 높으니 전주시를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객사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며 여름철이면 전주 시민들이 객사 건물 안에 앉거나 누워서 햇빛을 피하고는 한다. 최근 전주의 여름은 대단히 무더워 한낮이면 학생이고 어른이고 다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간간히 그 앞마당에서 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전주 객사길 문서를 참조.

객사 인근 충경로사거리에는 수제초코파이로 유명한 PNB풍년제과 본점이 있다.

5.1. 다가공원

전주신흥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공원. 예로부터 유서깊은 활터가 있어 사람들이 훈련 장소로 많이 사용했다. 숙종 28년에 전주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정자를 세우고 천양정이라 이름붙였으나 9년 뒤 대홍수로 떠내려가버린 뒤 근처에 정자를 다시 세우고 이번에는 이름을 다가정이라 붙였다. 정조 2년에는 정원을 만들고 활터를 넓히는 등 정비가 이뤄졌고, 순조 30년에 다가정 구내에 일사정을 세우고 남쪽에 과녁판을 설치한 뒤 이름을 다시 천양정으로 바꿨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세워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신사가 있었다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천양정에서는 1995년부터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무과 급제 재현이 이뤄지고 있으며, 공원 정상에는 이병기 시인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6. 풍남문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307호 308호 309호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전주 풍남문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파일:external/www.japong.com/03_pungnammun.jpg
전주 풍남문 (全州 豐南門)[4]

전동에 있는 전주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으로 전주성의 남문이다. 보물 308호. 정유재란 당시 훼손된 것을 영조 때 복원했다가 한번 불탄 적이 있고, 영조 때 다시 복구하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5] 일제강점기 당시 크게 훼손된 것을 1978년부터 3년간 보수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풍남문은 전주 남부시장쪽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라 과거엔 전주에 처음 놀러온 사람이라면 경기전전동성당만 보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풍남문을 둘러싼 길가에는 전부 상점들이 들어차있어 일반적인 문화재를 생각하고 찾는다면 구경하기도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최근들어 주변 건물을 전주시가 매입해 허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경기전 방향인 로터리 동북쪽에 전주신협 광장이 조성되면서 시인성이 아주 좋아졌다. 실제로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까지 한 곳에 모여있고 경기전에서 남부시장 가려면 풍남문을 거치는 것이 정석이라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된 지 오래. 경기전이나 전동성당에서 사거리로 나오면 바로 풍남문이 보인다. 풍남문 일대가 전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각종 행사나 집회도 많이 열리고 있으며, 지역 연고구단인 전북 현대가 우승을 하면 이곳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한다.

문루 옆에는 종루가 있다. 원래 전주성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성곽 사대문에 종을 걸어 놓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 때 여지없이 종이 공출 되었다 한다. 현재 걸려 있는 종의 이름 전주의 옛 명칭인 '완산'을 따서 '완산종'으로 불리고 있으며 1977년부터 진행된 전주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풍남문 옆 종루에 종이 걸린 것은 1980년으로 전국체육대회의 전주 개최를 기념해 타종한 이후 현재까지 전주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타종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12월 31일 밤 제야의 종 전북 타종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여담이지만, 경기전 뒷담길 가까운 곳에 '동문사거리'가 있다. 여기는 말그대로 전주성 동문이 있던 자리인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허물어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舊 한일서점, 現 세븐일레븐 한옥마을점 자리 바로 앞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쯤 방문해 봐서 예전 전주부성 사대문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풍남문 동편에 풍남문광장이 있다.

7. 전라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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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완산경찰서 앞 옛 전라북도청 부지에 옛 전라감영을 복원하였다.

8. 치명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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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교동에 있는 해발 306m 높이의 산으로 가톨릭치명자산 성지로 꾸며진 곳이다. 원래 이름은 우리말로는 중바우이고, 한자(이자 공식 명칭)으로는 승암산이라고 불리운다. '치명자'란 천주교 전래 초기 순교자를 가리키던 옛 말이다. 쉽게 말해 '천주교 순교자가 묻혀 있는 산'이라는 뜻.

이곳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동정부부[6]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를 포함해 유중철의 아버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이 있다.[7]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 아래에는 성당이 있으며, 치명자산 입구에는 주차장 및 기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산에 올라가는 길목에 십자가를 세워 만든 십자가의 길이 있어서 매년 사순 시기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많이 온다. 산의 중턱에는 사목 활동을 하다 사망한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님들을 모신 '사제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후삼국 시대 견훤의 거점이었던 옛 전주성의 흔적인 동고산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9. 국립전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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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삼천동에 있으며, 전주 역사박물관이 같이 있다. 김제 금구로 가는 방향에 있다. 자세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 문서 참조.

10. 한국전통문화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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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청 인근 경원동에 있는 건물로 국비와 시비를 들여 건립하고 2015년 4월에 개관한 문화전당이다. 전통문화산업의 발전과 거점 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주문화관과 한지나 국악 등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는데 상당히 잘 되어 있다. 또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으며 최근 전주에 새로 생긴 새로운 문화 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한지산업지원센터 등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 건물 터에는 전북대학교병원이 있었으나 1987년 병원이 금암동 현 위치로 옮겨졌다. 옛 병원 건물은 철거됐고 남쪽의 치과대학 건물은 평생교육원으로 쓰이고 있다.

11.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전주시 상림동에 있으며 기생충, 나랏말싸미, 사도, 남산의 부장들 등 많은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내부에서 영화와 관련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세트장도 있으나 찍은 후 촬영 바로 철거하여 안타깝게도 이 영화들의 세트는 볼 수 없다. 단, 영화 기생충 세트의 경우 복원한다고 한다.#

[1] 실제로 방문해보면 '남부시장-풍남문 로터리-전동성당/경기전-한옥마을-전주향교'로 이어지는 코스로 전주향교 인근에 한옥 숙소가 다수 포진해있기 때문에 관광하기 아주 좋은 지역이다.[2]천주교 전주교구청 자리. 舊 전주공전 및 전주영생고등학교, 舊 영생여상(현 전주대사대부고) 자리다. 한산 이씨 이기발, 이흥발, 이생발 3형제가 살았다고 한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 삼은 중 하나였던 목은 이색의 집안으로, 이기발이 사간원 헌납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 하여 사간(司諫)의 간(諫) 자와 헌납(獻納)의 납(納) 자를 따서 (諫納臺)라 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자형식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는 오래전에 소실되고 없다.[3] 현판에 글씨를 쓴 사람은 1606년에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절단의 정사인 주지번인데, 이 사람이 1593년 조선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명에 간 표옹 송영구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다. 정사로 파견된 후 전주(현 익산 왕궁면)에 기거하던 스승의 행방을 찾으러 내려오면서 객사에서 하룻밤을 잔 김에 써 준 것. 당시 주지번은 명나라 3대 문장가로 손꼽혔다고 한다.[4] 사진 속 왼편에 볼록 튀어나온 둥근 고딕양식의 돔형 지붕이 전동성당의 가운데 종탑이다.[5] 객사의 현판이 풍패지관이 된 것과 같이, 여기도 풍패에서 앞의 풍 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지금의 서문교회 부근에 있던 서문도 이때 패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에 의헤 철거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6] 말 그대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로가 동정을 유지했다는 뜻.[7]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호남지역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를 비롯해 그의 아들들인 유중철 요한-유문석 요한 형제, 유중철의 아내 이순이 루갈다, 유항검의 조카인 유중성 마태오 등이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일제히 복자로 시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