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09:05:11

앤 네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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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0DEA1><colcolor=#000000> 잉글랜드 왕국 리처드 3세의 왕비
앤 네빌
Anne Neville
파일:앤 네빌.jpg
19세기 상상화
이름 앤 네빌
(Anne Neville)
출생 1456년 6월 11일
잉글랜드 왕국 워릭셔 워릭 성
사망 1485년 3월 16일 (향년 28세)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장례식 1485년 3월 25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배우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1470년 결혼 / 1471년 사망)
리처드 3세 (1472년 결혼)
자녀 에드워드
아버지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
어머니 제16대 워릭 여백작 앤 보챔프
형제 이사벨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자녀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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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워드 4세를 왕위에 올린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의 딸이자 리처드 3세의 왕비.

리처드 3세와 결혼하기 전에는 웨일스 공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의 아내였다.

2. 생애

1456년에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중 하나인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앤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아버지의 영지에 있는 미들햄 성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앤은 에드워드 4세가 속한 가문인 요크 왕조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다. 아버지 리처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의 사촌이였고 앤의 고모할머니는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어머니인 요크 공작부인 세실리 네빌이였다. 이러한 인척 관계 덕분에 네빌 가문은 요크 왕조를 지지하는 주요 가문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을 시작으로 리처드 네빌은 국왕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당시 리처드 네빌은 킹메이커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으며 에드워드 4세를 프랑스 공주와 결혼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워드 4세는 귀족들에게 말도 없이 평민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려버렸다.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의 친정인 우드빌 가문의 사람들의 신분을 올려주면서 리처드 네빌에 대항할 자신만의 친위 세력을 키워갔다. 국왕과의 마찰이 계속되면서 세력을 잃어가던 리처드 네빌은 요크 왕조의 라이벌인 랭커스터 왕조로 눈을 돌렸다. 리처드 네빌은 딸 앤을 헨리 6세앙주의 마르그리트의 외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결혼시켜 랭커스터 가문과 동맹을 맺고 반란을 도모했다. 이윽고 리처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를 몰아붙인 다음 헨리 6세를 성공적으로 복위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재정비를 마친 에드워드 4세에게 반격을 당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 리처드 네빌은 바넷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가던 중 사망했다. 앤의 남편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또한 투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렇게 앤은 결혼한 지 1년만에 아버지에 이어 남편까지 잃은 과부가 되었고 포로의 신분으로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 거기서 앤은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훗날 리처드 3세가 되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청혼을 받았다. 비록 앤의 집안은 몰락했으나 앤은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녀였다. 이에 앤의 언니 이사벨의 남편이자 리처드의 형인 클라렌스 공작 조지가 둘의 결혼을 막으려고 애썼다. 앤이 결혼하지 않으면 앤의 언니인 이사벨이 리처드 네빌의 전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앤은 형부의 구속을 피해 도망가다가 리처드에 의해 성소인 성 마틴 수도원에 몸을 숨겼다. 1472년에 앤은 공식적으로 리처드와 결혼해 글로스터 공작부인이 되었다. 당시 앤의 나이는 16살이었다.
파일:RichardIIIandAnneNeville.jpg
리처드 3세와 앤 네빌

결혼 후 앤은 1473년 혹은 1476년 경에 미들햄 성에서 아들 미들햄의 에드워드를 낳았다. 앤이 낳은 아이 중 유아기를 넘긴 아이는 에드워드가 유일했다. 1483년에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리처드는 섭정이 되었다. 그리고 섭정이 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리처드는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손에 넣었다. 부부는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함께 대관식을 치렀고, 앤은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해인 1484년에 미들햄의 에드워드가 요절하고 말았다. 유일한 적장자의 죽음은 부부에게 큰 슬픔이자 리처드 3세에게 정치적 위기였다. 아들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진 앤 또한 몇 달 뒤 중병에 걸렸다.

1485년 3월 16일, 앤은 28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앤이 죽은 날에 일식이 관측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앤의 남편인 리처드 3세가 몰락할 징조라고 말했다.

미들햄의 에드워드가 죽은 후 세간에는 리처드 3세가 아내가 죽고 재혼하기를 희망하며,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재혼하려는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앤이 죽은 후 몇몇 사람들은 리처드 3세가 앤을 독살한 것이라고 떠들었다. 이에 리처드 3세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은 진심으로 왕비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연설을 했다.

3. 가족관계

3.1.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리처드 3세
(Richard III)
1남 웨일스 공 미들햄의 에드워드
(Wedward of Middleham, Prince of Wales)
1473년 또는 1476년 12월 1484년 4월 9일

4. 대중매체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연극)에 등장한다. 이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 리처드 3세(영화)에서는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연기했다.

2013년 BBC 드라마 《The White Queen》에서는 가혹한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남으며 점점 성장하는 인물로 나온다. 배우는 페이 마세이.

영국 BBC에서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원작으로 방영하는 연작 시대극 《The Hollow Crown》에서 피비 폭스가 연기했다.

리처드 3세(연극)을 모티브로 한 일본 만화 장미왕의 장례 행렬에 등장한다. 역사와 원본의 행적을 따라가지만 해당 작품에서의 리처드는 양성 구유라, 전남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리처드의 아들로 키우게 되었다는 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