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0:17:02

안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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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안창림
安昌林|Ahn Changrim
파일:유도 안창림_2020 도쿄 올림픽.jpg
출생 1994년 3월 2일 ([age(1994-03-02)]세)
일본 교토부 교토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1]
학력 교토 조선제1초급학교 (졸업)
쓰쿠바대학[2] (3학년 / 중퇴)
용인대학교[3] (학사)
종목 유도
체급 -73kg
소속 수원시청 (2016~2017)
남양주시청 (2017)
OK저축은행 (2018)
KH그룹 필룩스 유도단 (2020~2021)
신체 170cm, 73kg, O형
종교 개신교[4]
병역 예술체육요원
가족 부모님, 남동생[5]
배우자, 아들(2023년 8월생)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2014년2.2. 2015년2.3. 2016년2.4. 2017년2.5. 2018년
2.5.1. 그랜드슬램 및 그랑프리 대회2.5.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2.5.3. 2018 세계 선수권
2.6. 2021년2.7. 2022년
2.7.1. 크로스핏 전향
3. 수상 경력4. 대중 매체
4.1. 인터뷰/뉴스/다큐4.2. 영상4.3. 방송 출연
5. 논란 및 사건 사고6. 여담7. 역대 프로필 사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유도 선수.

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2014년

할아버지가 일본 교토에 정착했고 교토에서 자랐다.[6] 가라테 사범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라테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가라테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아버지가 너무 엄하게 가르친 탓에 유도로 종목을 바꾸었다.

이후 쓰쿠바대학에 합격하여 2013년에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단체전에서도 우승하여 2관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외국 국적이라는 점 때문에 경기 출전에 제한을 받게 되어, 정작 중요한 대회[7]는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8] 이후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2014년 2월 대한민국에 들어와 용인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 온 지 9달 만에 국가대표 1진에 선발된 후 줄곧 국가대표를 유지하고 있다.

2.2. 2015년

2015년 도쿄 그랜드슬램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3. 2016년

2016년 파리 그랜드슬램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우승하여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73kg 부문에서 일본의 오노 쇼헤이와 함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32강전 시리아의 모하메드 카셈에게 절반에 이은 한판승을 거두며 16강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16강전에서 세계랭킹 18위였던 벨기에의 디르크 판 티첼트에게 절반패를 당해 아쉽게 탈락했다. 경기 시작 47초 만에 먼저 지도를 따냈지만 경기 종료 2분 14초를 남기고 절반을 내주며 끝내 만회하지 못했다. 판 티첼트와의 역대 전적에서 2승을 거뒀지만 올림픽에서 패배했다.

2.4. 2017년

제 98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리기 직전 부상을 입어 대진표 명단에서 빠졌다. 방귀만이 빈 자리를 메웠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수술 후, 재활에 집중하였으며 수원시청 소속에서 남양주시청 소속으로 이적하였다.[9]

2.5. 2018년

2.5.1. 그랜드슬램 및 그랑프리 대회

2월 10일에서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그랜드슬램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으며, 동메달을 따낸 후 시상식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3달 후인 5월 26일에 출전했던 중국 후허하오터 그랑프리에서는 최고의 라이벌이자 동체급 최고 랭킹을 자랑하는 하시모토 소이치를 꺾고 우승을 하였다. 참고로 골든 스코어가 무려 4분 이상이나 흘러가던 결승전이었다.

2.5.2.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절반패를 당했는데, 이로써 오노 쇼헤이에게만 5전 5패를 기록했다.[10] 혼성 단체전에서는 8강에서 일본을 만나 에비누마 마사시를 한판승으로 꺾어버렸다. 에비누마는 -66kg 때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안바울에게 졌었는데 이번에는 안창림에게 졌다.[11] 하지만 석연치 않은 심판의 판정으로 경기에서 패하며 또 다시 눈물을 삼켜야 했다. 혼성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2.5.3. 2018 세계 선수권

2회전에서 절반으로 이긴 후, 3회전, 4회전, 8강, 4강까지 모두 한판으로 장식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보여줬다. 그리고 맞이한 결승, 작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일본의 하시모토 소이치를 만나서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었다. 지도 하나를 받는 등 불리하게 진행되며 이번에도 어렵나 했지만, 허벅다리 걸기-발뒤축 걸기 콤비네이션으로 하시모토를 한판으로 누르고 커리어 최초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이로써 2009년 왕기춘 이후 -73kg 체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일본 국적이 아닌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2.6. 2021년

2.6.1. 2020 도쿄 올림픽

-73kg에 출전하여, 첫 상대로 유럽의 강자인 파비오 바질레[12]와 대결하여 골든스코어에서 절반 승을 거두었다.

16강 전에서 키크마틸로크 투라에프를 골든스코어(연장전) 혈투 끝에 누르고 8강에 진출하였으며, 8강전에서 토하르 부트불을 골든스코어(연장전) 승부 끝에 절반으로 꺾으며 준결승에도 진출하였다. 준결승에서는 라샤 샤브다투아슈빌리와 결승 진출을 다투었으나, 골든스코어(연장전)끝에 반칙패인 지도패로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13]

곧이어 열린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제르바이잔의 루스탐 오루조프를 만나 서로 지도 2개를 받았고, 이후 경기 종료 약 10초를 남겨두고 업어치기로 절반을 얻어내면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연이은 연장전으로 체력소모가 컸을 상태에서[14] 값진 메달을 따며 병역특례도 얻었다.

2.6.2. 은퇴

2021년 12월 6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15] 후배들을 위해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2.7. 2022년

2.7.1. 크로스핏 전향

2022년 2월경부터 크로스핏을 훈련하고있다. 원래 은퇴이후 트라이애슬론과 크로스핏을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혼자 할 수 있으며 MMA나 주짓수가 아닌, 유도 기술을 쓰지 않는 강도 높은 운동을 찾다보니 시작하게 되었다고.[16] 한국에서 가장 크로스핏을 잘하는 사람을 구글에 쳐봤더니 에렌선수가 나왔고, 그 이후 연락하여 같이 훈련하고있다고 밝혔다.
주 훈련 박스는 부천의 크로스핏 슈팅스타. 팟캐스트 인터뷰
본격적으로 크로스핏에 입문한지 1년만에 2023 노불 크로스핏 게임즈 오픈에서 전세계 2812위, 아시아 148위, 대한민국 49위로 아시아 지역예선인 쿼터파이널에 진출했다.[17]

2023 노불 크로스핏 게임즈 쿼터파이널을 35위로 마감하며, 세미파이널에 진출, 아시아 세미파이널인 2023 Far east Throwdown에서 2위까지 주어지는 크로스핏 게임즈 직행 티켓을 노렸다. 아쉽게도 16위로 대회를 마감하며 게임즈 참가는 무산되었지만, 오픈 당시 아시아 148위(한국49위)에서 세미파이널 16위(한국 5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크로스핏의 경우 역도체조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인데,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스내치(역도 인상)나 머슬업 등의 동작을 생소해했던 입문자가 단 1년 만에 세계대회 목전까지 간 것 자체를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엘리트 올림피안 출신임을 감안하더라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룬 셈.[18]

3. 수상 경력

올림픽
동메달 2020 도쿄 -73k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8 바쿠 -73kg
은메달 2015 아스타나 단체전
동메달 2015 아스타나 -73kg
동메달 2017 부다페스트 혼성 단체전
동메달 2017 부다페스트 -73kg
동메달 2018 바쿠 혼성 단체전[19]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73kg
동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혼성 단체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5 쿠웨이트 -73kg
금메달 2017 홍콩 -73kg
아시아-태평양선수권
은메달 2019 푸자이라 -73kg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15 광주 -73kg
은메달 2015 광주 단체전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4 포트로더데일 -73kg

4. 대중 매체

4.1. 인터뷰/뉴스/다큐

4.2. 영상

4.3. 방송 출연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조선학교 관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외조부가 조선대학교 초대 교장이었으며, 그런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자신 또한 조선학교 출신이라고 밝혀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되었다. 논란이 된 이윤 조선대학교가 재일교포 내 북한 세력인 조총련에서 만든 미인가 교육기관이고, 조총련계 학교답게 주체사상백두혈통을 교육하고 당연시하게 하기 때문.[25]

다만, 이는 일본의 재일교포들이 처한 현실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았던 50~60년대 당시, 대한민국은 한일 수교 협정서에 재일 한국인의 영주권을 인정하라는 조항을 넣는 등 일본의 일방적인 재일교포 추방을 거부하는 뜻을 내비쳤고, 그 외의 많은 이유들로 인해 한일협정은 1965년에서야 맺어지게 된다. 반면, 북한은 50년대 말 8월 종파사건으로 모든 실권을 휘어잡은 김일성이 대규모 인력이 필요했던 국가개발 사업의 진행과 남한은 못하지만 북한은 할 수 있다는 식의 선전활동, 일본이라는 메이저 국가와의 교류도 가능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겠다는 정치적 목적 등으로 조총련을 통해 재일교포 사회를 크게 지원했고, 재일교포 북송 사업까지 벌이며 다수의 재일교포들을 포섭했다.

이로 인해, 재일교포 사회에 북한 친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 기조가 대한민국과 북한의 격차가 완전히 벌어진 80~90년대를 넘어 2000년대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 내 민단계 한국학교는 국제학교까지 포함해 총 5개교에 불과하다.[26] 2018년 기사에 의하면, 학비도 비싼 편이라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교포들도 민족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을 일본내 60여개교가 있는 조선학교에 입학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27] 이러한 현실은 2014년에 개봉한 독립영화 60만번의 트라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래서 안창림을 조총련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안창림은 공식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계 교포이며, 재일본대한체육회의 지원 또한 받으며 선수 생활을 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무르고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한 에피소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가장 높은 곳에 올리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하고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선수로서 가장 뿌듯했다"는 발언을 하는 등 이전부터 자신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논란은 크게 번지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6. 여담

  • 순진해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의외로 입이 거친 편이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언어의 장벽이었는데, 그 한국어 중에서도 제일 처음 배운 게 무려 이었다고(...) 운동 중에 힘들 때마다 한국어 욕설을 내뱉었는데, 그걸 들은 코치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28][29]
  •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기혼자다. 이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열애 중이라는 걸 언급한 점, 결혼식 관련 사진작가를 팔로우 한 점, 무엇보다도 대놓고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 사진을 올린 점으로 봤을 때 결혼을 한 것이 확실하다. 다만, 연애상대가 누구였는지, 결혼상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것을 보면, 사생활을 상당히 꼼꼼히 감추는 듯. 최근에는 젖병 사진을 올리며 자녀가 태어났음을 조심히 공개했다.
  • 의외로 이상형 스타일이 매우 자주 바뀐다. 진짜사나이 방송을 보고 혜리의 애교에 빠져서 걸스데이 혜리의 팬이었지만, 박선영의 에이트에 출연해서 지금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철파엠에 출연해 외적으로는 한효주, 성격적으로는 자립심이 강한 여성이 이상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세리가 진행하는 세리자베스에 출연했을 때는 한효주도 딱히 이상형은 아니고 그냥 이상형 질문을 받았을 때 마침 떠오른 여자 연예인을 말했을 뿐이라고 했다.
  • 일본어 사용 시 1인칭은 오레를 쓴다. 노트에 적힌 글귀 중 "내가 지면 가족이 운다" 언급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오레는 남성들이 자주 쓰는 보쿠보다 더 강한 표현으로, 자존심이 강한 청소년기 남성이 쓴다. 승부욕이 강한 운동선수인데다가 남성이고 격식을 차릴 필요 없는 일기장이니 당연한 일.
  • 이전에는 깔끔하게 면도했지만 최근에는 수염을 기르고 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을 때 등을 보면, 덥수룩하진 않지만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굵고 빳빳한 수염을 볼 수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수염 기른 사진을 보면 도저히 20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역변 수준(...)
  • 재일교포 인식 제고에 관심이 많다.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관련된 내용을 자주 덧붙이며 해당 이슈를 환기하는 모습을 매번 보여준다.
  • 2015년 1월 16일 스포츠Q와 인터뷰를 했다.
  • 취미는 독서와 영화 감상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여러 인터뷰와 예능 프로에서 도서 추천 요청을 받고 대답을 했는데, 인터뷰마다 추천 도서가 다 다른 것을 보면, 상당히 다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중에서는 자신과 같은 교토 조선학교 출신 재일교포를 다룬 박치기!를 가장 인상깊게 봤다고 한다.
  •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 획득 직후 현장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정신적 기반은 재일교포 사회에서 나왔다고 전하며, "나를 보고 재일교포 운동 선수, 어린이들이 용기를 얻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 재일교포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드러냈다.
  • 2021년 7월 27일 동메달 수상을 축하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을 받았다.
  •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간장게장이었지만, 지금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오심으로 인해,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을 따서 울었다. 훗날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밝히기를 이때 울었던 이유는 '오노 쇼헤이를 한 번 넘겼을 때 심판이 점수를 주지 않았는데, 그때 심판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던 것이 본인의 자만심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짜증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따르면, 한국으로 오기 전 주변에서 다들 '일본보다 혹독한 한국 문화와 훈련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한국인이라고 놀림받는 등 인종차별을 더 자주 겪었다고 한다.
    박재홍: 그랬군요. 말씀하신 대로 문화 차이도 있을 테고, 한국에 와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안창림: 오히려 한국에 와서는 없는데, 일본에 있을 때는 저를 놀리는 애들이 많았어요. 친구들도 한국 사람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애들 신경 안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더 노력을 했어요.

    박재홍: 오히려 일본에서 차별을 느끼셨군요. 어떤 차별이 있었습니까?

    안창림: 한국 사람이라고 놀리는 애들이 가끔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끝나고 했던 인터뷰에서는 한국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낮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여 일본에서 당했던 차별을 좀 더 상세하게 언급했는데, '조센징'이라는 멸칭을 일상적으로 들은 적도 있고, 동생이 조선학교에 다니던 때는 학교 앞에서 극우단체가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고 나서는 일본 사람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씁쓸했다는 심경을 밝혔다.
  • 아버지가 가라테 선수 출신이라 승부욕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안창림이 중학교 때 출전한 대회에서 원래는 늘 이기던 상대에게 방심했다가 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너는 이런 좋은 도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라고 하면서 도복을 찢어버렸다고 한다.[30]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혀 칭찬해 주지 않았다가, 3일이 지나서야 '수고했다'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머니가 시켜서 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승부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매우 엄격했고, 어릴 때부터 새벽마다 집 근처 공원에서 타이어를 끌거나 승용차를 미는 등의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가라테를 배우던 시절에는 대회에 출전하면 심판 중에 아버지가 꼭 있었는데, 상대에게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아들은 아무리 잘해도 점수를 안 주는 역 편파판정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검은띠 승급 시험 때는 10명과 자유 대련을 하는데 맨 마지막에 아버지가 나와서 인정사정 없이 얼굴을 발로 찼다고 한다. 하지만 엄격한 건 장남인 안창림 한정이었고, 차남인 동생에게는 매우 자상하고 유했다. 오죽하면,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아버지와의 이런 에피소드를 풀자, 유세윤이 "아버지와 좋았던 추억 하나만..."라고 말했다. 그리고 좋았던 추억은 꼴랑 유도복 찢은 후에 다음 날 새로 사줬다가 끝이다
  • 상술된 내용과는 별개로, 아버지와 외모가 매우 닮았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고 과거 사진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두고 "창림이가 창림이를 낳았다."라는 반응이 많다.
  • 올림픽 기간 중 부모님이 부도칸 경기장 근처에 숙소를 잡아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 공수해 송대남 코치에게 전달했다. 기사에 의하면, 아버지가 송대남 코치에게 매일 빠짐없이 음식을 전달해주면서 몸상태를 물어봐 코치는 부정에 감동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아버지 안태범 씨는 이후 NHK와 인터뷰를 했다.
  • 추성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유도를 계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귀화를 선택한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원래 어느 나라든 스포츠 선수의 귀화 자체가 자주 있는 일이고, 추성훈이 유도를 하던 시절에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를 극복하고 훈련하는 게 지금보다도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추성훈과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31]
  • 중학교 3학년 때 재일교포 유도 선수로서의 각오를 적은 노트가 화제가 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중2병 시기에 썼던 것이라 창피하다고 한다. 부모님이 노트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바람에 후원회 포스터에도 문구가 실렸고, 재일교포들이 도쿄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놓아서 정말 창피했다고 한다.
  • 김연경이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선수는?"라는 질문에 안창림을 언급했었다. 선수촌에서 배구와 유도가 연습 시간이 겹치는 종목이라 안창림이 훈련하는 것을 종종 봤다고 한다. 올림픽 이후 박선영의 에이트, 유퀴즈 온 더 블럭, 라디오스타 등의 예능 및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마다 안창림도 "김연경 선수는 정말 멋있다. 존경하고 있고 팬이다."고 말하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 원래는 남성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특히 게이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많았다. 아디다스 코리아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를 의식한 듯한 "남성 팬들이 더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는데, "나를 응원해주는 분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 도쿄 올림픽 이후에는 준수한 외모와 재일교포 출신으로서의 인생사 등이 화제가 되어 남녀불문 인기가 많은 선수가 되었다.
  • 이상윤, 윤정수와 닮았다는 시선도 일부 있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언니가 쏜다에 조구함과 함께 출연했을 때 '이상윤을 닮았다'는 말에 "이상윤씨를 닮았다는 말도 있고 살찌면 윤정수씨 닮았다고도 하더라."고 반응했다.[32]
  • 2021년 10월 13일 백종원의 골목식당/철원 신철원 골목 첫 번째 주 방영분(190회)에 출연했다. 전골 칼국수집 아들이 유도를 했는데, 첫째 아들이 용인대학교 유도학과 동문이라 함께 식사를 하러 왔던 날이 촬영일이었던 것이다.

7. 역대 프로필 사진

국가대표
파일:유도 안창림_2020 도쿄 올림픽.jpg
2020 도쿄 올림픽


[1] 재일교포 3세로 한국과 일본 모두 혈통주의 국적법을 채택해 태어날 때부터 단독 한국 국적이었다. 후술하듯 청소년 시기에 국적 문제로 일본 국내대회에 출전하지 못하자 주변인으로부터 일본 국적을 따는 것을 권유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대한민국으로 국적을 정했다.[2] 일본의 경우에는 입학 기준이 "4월 ~ 이듬해 3월"이기에 한국식으로 따지면 빠른 94년생이다.[3] 前 유도 국가대표이며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인 1984년생 안정환이 연결고리가 되어 편입했다. 참고로, 안정환의 삼촌은 안병근이다.[4] 2021년 7월 21일 국가대표 선수 출정 예배를 드렸으며 이는 기사로도 올라왔다.[5] 가족들은 모두 일본 교토에 거주 중이다.[6] 태어난 곳은 도쿄다. 그래서 한 인터뷰에서 2020 도쿄 올림픽이 자신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7] 대표적으로 전일본선수권(全日本柔道選手権大会)와 전일본선발유도체중별선수권대회(全日本選抜柔道体重別選手権大会)가 있다.[8] 이 모습을 본 그의 아버지가 귀화하는 게 어떠냐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안창림은 귀화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한국인으로 남기로 마음을 더 굳혔다.[9] 이후 인터뷰에서 왼쪽 발목이 좋지 않아 발목 테이핑을 중요시한다고 밝혔다.[10] 심판 판정에 의하면 '넘어질 때 어깨가 땅에 닿았으며, 넘어지는 과정에서 팔꿈치가 몸 안쪽으로 들어갔다.' 는 이유였는데, 당시 영상을 보면 안창림은 어깨가 닿지 않도록 일부러 몸을 반쯤 더 뒤집어 손부터 넘어졌고, 실제로 어깨가 닿지 않았다. 또한 팔꿈치 역시 안창림 선수가 넘어질 때 일부러 팔 전체를 몸 바깥쪽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넘어진 순간까지도 팔꿈치는 몸 밖에 있었다. 오노 쇼헤이와 일본 쪽 코치조차도 해당 판정에 의문을 품고 이해가 안 간다는 제스처를 취했으며, 영상 판정 이전까지만 해도 주심조차 안창림의 점수를 인정한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오심을 넘어 비리 의혹까지 의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금메달을 목에 건 오노 쇼헤이는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해 놓고도 심판진의 불편한 오심에 의해 떳떳하지 못하게 굳은 표정으로 금메달을 받게 되었고, 안창림 역시 은메달을 받아야 하는 승자없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오노 쇼헤이는 후에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판이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진솔한 마음을 밝혔다.[11] 에비누마는 한창 신혼일 때 80kg 이상 찐 몸을 빼서 출전한 것인데 본래 체급인 -66kg에서 한 체급이 올라갔다.[12]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66kg급 결승전에서 안바울에게 한판패를 안긴 선수며, 이번 대회에서는 체급을 올려서 출전했다.[13] 32강, 16강, 8강에서 계속된 연장승부를 벌여왔기 때문에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였기에 적극적인 플레이가 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도 경기 시간이 4분인데, 안창림은 무려 32분 가량의 경기를 펼치고 온 셈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김재범과 비슷한 경우다.[14] 16강전에서는 경기 도중 코피가 났고, 8강전에서는 매트에서 일어나다가 비틀거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박선영의 에이트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16강전에서 코피가 난 이유는 상대방이 일부러 얼굴을 공격했기 때문이며, 어지간해서는 아프다고 안 하는 성격인데, 그때는 정말 아팠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한국 유도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 비해 체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고 오히려 연장전을 노렸는데, 준결승전에서는 상대방의 전술과 기술이 뛰어났던 것이라고 담담히 소감을 언급했다. 이후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반칙으로 코피를 나게 했던 우즈벡 선수가 정작 경기가 끝난 후에는 태도가 돌변하여 먼저 반갑게 포옹을 하고, 계속 칭찬을 해주면서 대기실에 가서도 귀찮게 굴었다는 비화를 밝혔다.[15]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한국에 오자마자 운동을 재개했다거나, 동메달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를 위해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16] 유도를 해왔던 가닥때문에 MMA나 주짓수는 욕심이 너무 많이 날것 같았으며, 유도의 연장선이 아닌 완전 새로운것을 도전하고 싶었다고 한다.[17] 크로스핏 세계대회인 크로스핏 게임즈는 오픈-쿼터파이널-세미파이널 순으로 예선을 치루며 참가자를 거른다. 크로스핏 오픈 참가자는 전세계 29,4980명이었으며(2022년 기준) 이중 각 국가별 성적 상위 10%만 쿼터파이널에 진출 할 수 있다. 이후 그 10%중 각 대륙별 상위 30-60명만이 세미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그야말로 보석 중의 보석을 가리는 자리[18] 대다수의 선수들은 늦어도 20대 초중반, 빠르면 10대 초반에 크로스핏에 입문해 수년 동안 역도 기술을 익힌다. 일례로 현 최강자인 저스틴 메데이로스는 만 12세에(!) 입문한 경우이며, 입문이 다소 늦은 맷 프레이저는 역도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소방관 출신으로 입문하자마자 순식간에 재능을 만개한 리치 프로닝 주니어가 다소 특별한 경우.[19]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해 남한 선수 9명과 북한 선수 9명이 공동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20] 유도를 전공하는 삼둥이 형제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게스트로 출연하였다.[21] 조구함과 함께 출연했다.[22] 조구함과 함께 출연했다.[23] 송대남 코치와 함께 출연했다.[24] 강원도 철원 편에서 전골칼국수집 손님으로 출연했다. 친구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라 자주 방문하는 듯 보인다.[25] 실제로 대한민국 국적자는 통일부의 허가 없이 조선대학교에 입학하면,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26] 도쿄 한국학교, 교토 국제학교, 오사카 금강학교, 건국 한국학교, 나고야 한국학교.[27] 물론 일본에 동화된 경우는 평범한 공립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28] 당연히 방송 중이니 구체적인 욕설은 나오지 않았다. 입모양부터 목소리까지 전부 비둘기 모자이크로 음소거 처리되었다.[29] 조선학교에 다녔고, 민족의식을 중요시하는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걸 보면, 한국어 자체는 어린시절부터 접하고 배웠을 것이다. 다만, 태어나고 자란 생활환경이 일본이니, 일본어가 더 익숙한 것이 당연하다.[30] 정작 다음날 바로 새 도복을 사주셨다고 한다. 찢어진 도복은 걸어놓고 '이걸 보면서 훈련해라'고 했다고 한다.[31] 사실 재일교포 출신 운동선수 중 이 둘이 국내에서 압도적으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데다가 종목도 같은 유도라서 비교하는 여론이 많은 것일 뿐, 유도에서 활약한 재일교포 출신 국가대표 선수들은 꽤 있다. 1964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김의태와 1972 뮌헨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오승립도 재일교포 출신이다.[32] 여담으로 이상윤도 2021년 9월 컬투쇼에 출연하여 청취자로부터 안창림과 닮은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안창림의 경기가 있던 날 이기우에게서 닮았다는 문자를 받고 찾아봤더니, 정말로 본인의 모습이 보여서 '내 숨겨진 동생이야'라고 농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