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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후궁견환전 등장인물 순원황후 오라나랍 유칙 | ||||
<견환전 서화열>의 순원황후[1] | ||||
이름 | 오라나랍 유칙[2] (烏拉那拉 柔则) | |||
민족 | 만주족 정황기 | |||
생몰년도 | 음력 1679년 5월 13일 ~ 1700년 8월 7일[3] | |||
가족관계 | 부친 : 내대신 비양고 모친 : 애신각라씨[4] 이복동생 : 오라나랍 의수 남편 : 옹정제 자녀 : 2황자 | |||
품계 | <rowcolor=#ffd700> 복진 | 추증 | 추증 | |
적복진 → | 순원황후 [5] → | 효경헌황후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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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미등장 인물[7].소설 《후궁견환전》의 주유칙과 실존 인물 효경헌황후 오랍나랍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2. 상세
태후의 조카이고 황후 의수의 이복 언니다. 무엇보다도 옹정제의 첫 번째 황후이자 옹정제의 첫사랑. 작품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사망한 인물이라 원작과 관련된 모든 미디어믹스 중 만화판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직접적으로 등장한 매체가 없지만, 사실상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중국 현지에선 순원황후를 '大Boss(최종 보스)'라고 부른다.본래 동생 의수가 먼저 옹정제와 혼인했지만, 임신한 동생을 돌보러 왕부에 갔다가 옹정제가 그에게 첫눈에 반하는 바람에 결국 적복진이 되었다. 원래 옹정제는 의수에게 '아들을 낳으면 적복진으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순원에게 반해 그녀를 적복진으로 삼으면서 이 약속은 깨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지 3년만에 2황자를 낳다가 난산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고, 옹정제는 즉위 후 그를 순원황후(純元皇后)로 추존했다. 원작에서는 곧바로 황후가 되었고 5년만에 죽었다.
애칭은 완완(宛宛). 현릉만 그를 그렇게 부르므로 아명이 아니라 애칭인 듯하다. 순원은 옹정을 '4랑'이라고 불렀고, 옹정은 순원을 '완완'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의 애칭은 옹정이 평생동안 '완' 자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본명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고 그냥 순원이라고 불리지만 원작에서 본명은 주유칙(朱柔则)이라고 나온다. 드라마에선 시대가 청나라이기에 만주족인 오라나랍씨로 나오지만, 원작 속 가상의 국가는 한족 국가임으로 주씨였다. 그리고 원작에선 태후가 아유(阿柔)라고 부른다.
외모는 견환, 옥요, 견환과 옥요의 어머니와 매우 비슷했다. 태후와 황제가 견환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랄 정도. 드라마에선 특히 눈매가 닮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작에선 눈매 얘기는 없고 견환은 3할의 외모와 5할의 성정, 옥요는 7할의 외모, 견씨 자매의 어머니 운신라는 거의 똑같은 걸로 묘사된다. 특히 운신라의 경우 그녀를 본 황제가 '순원이 살아서 나이가 들었다면 이랬겠구나' 생각할 정도로 흡사하다고 한다.
3. 지고의 여인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으로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가문도 좋고 미모도 출중하다. 게다가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경홍무는 그 중에서도 특기. 본래 당현종의 후궁 매비[8]가 발명한 춤이나 순원황후가 이를 조금 수정해서 추었는데, 아름답기로 온 궁중에서 유명했던 것은 물론 창시자인 매비보다도 더 나은 수준이었다고.
노래 실력도 발군이었다. 극중에서 굉장히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것으로 나오는 안릉용조차도 그의 노래에 비하면 6~7할 정도밖에 안 될 정도.
퉁소 연주에도 재능이 뛰어나서, 옹정의 말에 의하면 순원황후 사후에 그만큼 좋은 퉁소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선 나오지 않지만 심지어 바느질과 비파 연주도 잘했다. 황후도 '언니의 바느질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고 인정했고, 황제는 총애하는 견환과 바느질 솜씨 좋은 릉용의 침의를 다 제껴두고 그가 만들어준 침의만을 고집한다. 원작에서는 단비 제월빈이 순원황후에게 비파를 배웠으며, 이마저도 순원황후의 3~4할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화장 실력도 뛰어났다. 먼 산을 그리듯 눈썹을 그리는 화장법인 원산대(遠山黛)를 특히 잘 소화했고, 방약 상궁은 한때 그를 모셔서 그 방식으로 눈썹을 그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시를 읊는 것을 견환 못지 않게 좋아했고, 황제와 깊은 대화도 곧잘 나눴던 듯.
무엇보다 그녀의 완벽함은 인품에서 절정을 달한다. 황제의 입에서 나온 여러 표현들을 종합해보면 '어질고 자애롭고 성정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그야말로 순수함과 선량함 그 자체였던 듯. 오죽하면 태후는 그녀를 평하길 '지나치게 순하다'고 했고, 단비 역시 그를 정말 어진 사람이었다며 그리워한다. 근석 역시 그녀의 은덕을 입었던 인물로, 어린 근석이 처음 입궁했을 때 빨래를 하다가 동상을 심하게 입었는데 마침 궁에 들렀던 순원황후가 그녀의 손을 보고 가엾게 여겨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 일로 얼마나 감명 받았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이 이후 그녀를 닮은 견환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여, 어의를 탓하지 말고 의수를 아껴줄 것을 당부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사산하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의수라는 사실을 임종 때에서야 눈치 챘지만 말하길 포기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아껴주고 절대 버리지 말라고 유언을 남긴 것. 이쯤 되면 보살이 따로 없다. 다만 순원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의수의 자리를 뺏는 꼴로 황후가 된 이전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의수에게 죽기 전 나름대로의 미안함이 남아있어서 의수를 무슨 일이 있어도 아끼고 버리지 말라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의수의 경우 언니 때문에 말 그대로 뭐든 뺏긴 상황인 데다가, 그가 가장 얻고자 했던 한 남자의 사랑을 언니 때문에 영원히 얻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의수의 아이가 죽었을 때 황제가 순원이 애 가졌다고 좋아하는 꼬라지를 눈치 없이 보여준 것도 있었고.[9]
자신에게 불경한 측복진들[10](원작의 현비와 덕비)을 벌 준 적이 있다. 화비가 임신한 견환에게 내렸던 벌은 사실 순원황후가 원조로, 화비는 반 시진이었지만 순원황후는 두 시진 동안 벌을 줬다. 말이 두 시진이지, 두 시진이면 장장 4시간을 땅바닥에 무릎 꿇려놓은 것. 다만 순원황후는 측복진이 임신한 상태였단 걸 몰랐다. 하지만 측복진이 유산하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황제가 사산의 주 원인이 이 일로 인한 순원황후의 자책과 속앓이라고 한동안 믿었던 것을 보면 아마 상상 이상으로 괴로워했던 모양. 번외편에서 의수는 순원에 대해 권모를 모르며 아둔하고 우둔하다 했다.
그의 완전무결과 팔방미인적인 재능 때문에, 직접 등장한 적이 없음에도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기에 망령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 작중 이미 고인이지만 지나친 완벽함 때문에 옹정제가 헤어나오지 못한 데서 온갖 폐단이 발생했다.
심지어 동생 의수를 밀어내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고, 그녀 사후 황제가 들인 후궁인 견환과 릉용 등의 수많은 후궁들을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닌 순원을 투영해서 사랑했기 때문에[11] 결국 본의 아니게 동생을 망가뜨리고 20년간 줄줄이 피해자들을 낳았다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고인인데도 불구하고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 윤례와 더불어 안티가 가장 많은 인물이다. 또한 너무 완벽해서 환상으로 느껴지기에,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원작 팬들이 윤례와 함께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이다.[12]
너무 완벽하고 부족한 점이 아예 전무하다 보니 공감할 수도 없고 그저 이질감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윤례 역시 마찬가지지만 윤례는 적어도 여러 모로 희생 보정도 있어서 순원황후보다는 덜 까인다. 순원황후의 경우는 무엇보다 황제가 민폐다 보니.
순원황후 본인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작중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라 더 이상 암투에 휘말릴 수 없기 때문에 황제의 기억에서 더욱 미화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게다가 후궁들이 황제의 사랑과 지위를 갈구하다 죽은 반면에 오히려 일찍 죽은 순원은 황제에게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여인으로 남았고, 황제 사후엔 황태후로 추존, 황제와 합장되면서 남편의 옆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순원황후는 생전에 손 한 번 더럽히지 않고도 등장인물들이 바라던 것을 최종적으로 모두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순원을 죽인 의수는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결국 악행이 밝혀져 사후에 따로 묻히고 역사서에까지 지워지는 인물이 된다.
비록 동생에 의해 죽었으나 자신이 손 쓰지 않아도 그에 관한 일이 자연히 해결되고 제자리로 돌아간 점에서 그간 후궁들의 암투 위에 있던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 비록 살아서 행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후궁은 가문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데다 최종 승자인 견환조차 행복은 얻을 수는 없었으니, 너무 선해서 궁에 살아가기 적합하지 못했던 순원에게는 좋은 결말인 듯하다. 사실 요절한 것조차도 그녀에게 있어선 행운이었는데, 황제는 순원이 늙어도 황후보단 예쁠 거라고 했지만 정작 작가는 순원도 늙었으면 황제에게 이전처럼 좋은 취급은 못 받았을 거란 식으로 답한 바 있다(...) 즉 늙거든 높은 확률로 이 여자도 지고의 여인이니 뭐니 하는 세월은 다 가고 뒷방행 거반 확정.
워낙 황제의 마음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이러한 점을 아는 후궁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종종 고인이 된 순원황후를 이용해먹는다. 조귀인과 화비는 순원황후의 특기인 경홍무로 견환을 위기에 빠뜨리려 하였고,[13] 황후는 견환이 순원황후의 옷을 입도록 유도하여 황제가 분노하도록 만든다. 견환은 출궁 전에 자신의 딸에게 순원황후의 애명인 완완과 발음이 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출궁한 뒤에도 순원황후의 것과 닮은 장신구를 딸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며, 궁에 돌아온 후 소배성과 최근석의 스캔들이 터지자 황후마마는 순원황후의 동생이시니 순원황후처럼 자비로우실 거라고 은근 멕이는 발언을 한다. 친자확인 때에는 물에 백반을 탄 사실이 드러나자 언니라면 자신을 믿어줬을 거라며 황후가 은근슬쩍 순원 카드를 꺼내지만 황제는 오히려 순원에게 자네 같은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받아친다.
3.1. 순원황후는 정말로 완벽한 인물인가?
이렇듯 지나치게 이상적이라서 실제로 그런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에 '순원황후는 정말 완벽하게 선량한가?'라는 의문도 자주 제기된다.우선 황제와의 첫 만남 때 회임한 동생을 돌봐주러 왔음에도 한껏 꽃단장을 하고 온 의도는 순원황후의 어머니가 황후 자리를 욕심 내서 시킨 일이라고 외전에서 언급되는데, 이는 의수의 추측일 뿐이며 순원의 본심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확실한 문제는 옷이다. 당시 순원황후는 궁주의 예복으로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입궁하여 그 결과 제부 될 사람과 결혼했는데, 근석이 이 옷이 눈에 익다고 했으니 그가 살아생전에 자주 입었던 옷일 수도 있다. 즉, 황후의 격식에 맞을 정도의 옷이다. 다만 황후의 격식에도 맞다는 부분은 원작 한정이며 드라마에서는 옹정제가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므로 황후로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도 비 책봉식 예복으로 손색이 없다는 대목에서 최소한 고위 후궁의 격식에 맞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청나라는 의복이 신분마다 명확하고 엄격히 나눠져 있는데, 미혼녀가 비의 길복으로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옷을 입는다는 건 아무리 명문가 여식이라도 주제 넘는 짓이다. 우리 식으로 치면 미혼의 양반가 규수가 활옷을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것에 비할 만하다. 그리고 순원황후는 당시에 처녀라 길복을 입을 수 없었다. 길복으로 청색 이외의 다른 색을 입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후비들뿐이다. 원작에서도 신분마다 장신구나 의복의 구분이 명확하다. 예를 들어 호온용이 창비 책봉식에서 봉황을 썼니, 신조 발명을 썼니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당시의 순원황후는 분에 넘치는 호사스런 옷을 입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제와 혼인한 뒤에도 장남이자 자신의 조카인 의수의 아들이 아파서 죽어갈 때에도 남편인 황제를 동생에게 보내지 않은 데다 하필이면 조카가 죽은 직후에 회임 소식을 알렸다. 그 때문에 의수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마자 언니의 회임 소식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 직후에 남편인 황제에게 "당신의 아이가 죽은 대신 당신의 언니가 아이를 가졌으니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일 것이다."란 말을 듣게 되었다. 황제의 그 말은 지금까지 언니와 대부인이 끼친 민폐를 참아왔던 의수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후궁에게 2시진이나 무릎 꿇는 벌을 줘서 유산 시킨 점 등을 이유로 독자들이 순원황후에 대한 의혹을 제시하는데, 극단적인 해석으로는 초특급 하라구로나 권세지향적인 인물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한 독자가 작가에게 이에 대해서 물어봤지만 작가는 대답해주지 않았다.정확히는 순원황후가 선량한 인물인지, 그리고 자기를 죽인 게 누구인지 알았는가에 대한 질문 중 후자에 대해서만 답해주었다. 덕분에 중국 현지에선 이 논란이 만년 떡밥이다.
본성이 정말로 착하든 나쁘든간에 자신이 동생의 자리를 빼앗았으면서 그 동생에게 자신의 음식 관리를 맡기고, 이를 통한 동생의 계략으로 인해 몸이 나빠졌는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다가 아이를 사산하고 죽기 직전에야 진상을 깨달은 걸 보면 동생인 의수의 말처럼 '맹하고 지략이 딸린다'는 것은 사실인 듯. 그러나 순원왕후에 대해 하라구로라는 추측도 있는 걸로 봐선 황후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지위에 오른 후 방심 속성이 추가돼서 의수에게 당한 것일 수도 있다.[14]
심지어 황후가 되기 전 약혼자가 있었다는데, 이건 결혼 당시나 그 후로도 두고두고 사회적 파장을 크게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순원에게 약혼자가 있었고 파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언플에 매우 능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복동생 의수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 자신에게 모든 걸 빼앗긴 동생에 대해 죽기 직전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의수가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죽게 만들었다고 폭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황제에게 의수를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긴 걸 보면 뒤늦게서야 잘못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가문을 생각해서 그런 거라는 추측도 있다. 황후와 후궁을 동시에 내놓은 가문에서 그 황후와 후궁이 된 자매간에 암투가 일어나 둘 중 하나가 죽게 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유칙(순원왕후)과 의수(황후)의 가문도 평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15] 하지만 죽을 때 마지막으로 의수에게 남긴 유언이 "미안하다."였으니 가문보다 동생을 염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성 논란과는 별개로 정치력은 부족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완벽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극 중 후궁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독한 마음씨와 계략은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분야에서까지 적당한 조언을 하며 내조를 하는 견환에는 더더욱 못 미친다. 결국 순원황후의 완벽함의 실상은 황제를 즐겁게 하는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다.
4. 원작에서
- 모친은 대부인 도씨이다. 도씨는 의수의 모친을 견제하다가[16]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그냥 내버려뒀다고 한다.[17] 하지만 의수가 태후의 방문 이후 어느 정도 대우를 받게 된 뒤부터는 다시 견제하기 시작했는데, 유칙은 그런 어머니와 달리 동생을 아껴 어린 시절부터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 번외편에서 동생인 의수가 말하길, 언니는 가는 곳마다 주목을 끌고 찬양을 받았다고 한다. 근석은 유칙의 모습이 수선화[18] 내지는 순결한 백합 같다고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천선(天仙) 같은 용모, 절세미인이라고 말한다. 황후가 되기 전에도 재녀로 유명했다. 현청과 함께 속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든가 신선 같다든가 하는 묘사가 주야장천 나온다.
- 외모 말고 다른 의미로도 신선 같다. 의수의 독백에 의하면 내무부의 장부를 정확히 계산할 줄도, 비빈들간의 다툼을 조절할 줄도 몰랐다고 한다. 이로 인해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는 신선과도 같은 여자였다고. 각종 장부를 관리하고 첩들간의 다툼을 조절하는 건 황후를 포함한 유교 사회의 모든 본처들의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걸 못한다는 걸로 봐서 미모와 성품은 다 제쳐두고 황후 자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19] 내명부의 중요한 일은 죄다 동생 의수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황제와 한가롭게 사랑놀음만 나눈 듯하다.
- 태후가 적녀인 유칙이 아니라 서녀인 의수를 황후감으로 선택한 이유는 황제 현릉이 너무 순하고 예쁜 유칙에게 반해버려서, 선황제가 그의 후궁 서귀비에게 빠져서 스스로를 망친 과거를 되풀이할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태후는 혼담을 나누기 이전에 친척 지간이기도 한 유칙과 현릉을 아예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애초에 유칙은 일찌감치 무원장군의 아들과 약혼해서 항상 집안에 있었기 때문에 현릉과는 일체 만남을 가지지도 못했다. 이후 의수가 회임하자 유칙의 생모인 대부인 도씨가 일부러 유칙이 황제의 눈길을 끌도록 유칙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단장시켜 궁으로 보냈다. 대부인의 이 계획은 훌륭하게 성공해서 태액지에서 우연히 만난 현릉은 유칙에게 첫 눈에 반했고, 결국 태후와 현릉이 무원장군의 아들과의 약혼을 무효로 만들어서 유칙은 황후가 될 수 있었다.
- 현릉의 후궁 감씨와 묘씨는 순원황후를 불손하게 대하고 도발했으며, 순원황후는 순한 성격 때문에 그들에게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했다. 일개 후궁에 불과한 감씨와 묘씨가 이렇게 행동한 배경에는 의수가 두 후궁을 부추긴 것도 있었다. 감씨와 묘씨가 의수에겐 별 말 없었던 걸 보면 유칙을 만만하게 본 듯하다. 그러다가 참다 못해 두 후궁에게 두 시진 동안 무릎을 꿇리는 벌을 줬는데 그 중 한 명이 이 일로 유산했다. 이에 굉장히 충격을 받고 한동안 자책감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한다. 황제가 순원황후의 사산 원인이 이 일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믿을 정도였다.
- 의수는 자신의 아들이 죽은 후 순원황후가 좋아하는 행인차를 올렸는데, 그 안에 복숭아씨를 섞었고 이걸 마신 순원황후는 점점 쇠약해진다. 이윽고 의수는 마지막에 복숭아씨와 파초를 이용해 순원황후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 모두를 죽인다.
- 죽기 직전에 동생 의수에게 "미안하다(对不起)"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对不起'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때 진중하게 사과하는 말이다.[20] 의수는 언니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현릉 앞에 나타나 그의 황후 자리와 총애까지 빼앗은 걸로도 모자라, 언니가 회임을 해서 자신의 아이의 죽음이 묻힌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언니가 자신의 원망을 알고 있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21]
- 견환의 어머니 운신라도 순원황후를 닮아 황제가 운신라를 보고 유칙이 늙었으면 저렇게 되었을 거라는 감상에 잠기기도 했다.[22] 견환이 마격 칸의 왕비로 보내졌다가 견환의 여동생 옥요가 대신 왕비가 되어 견환이 다시 돌아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황제는 청하왕이 견환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것을 추궁하여 연금했지만, 운신라와 옥요가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황제는 순원황후와 닮은 여자들이 이러자 마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후 현릉은 운신라를 보고 유칙을 떠올리며 슬퍼하다가 이내 견환을 껴안고, 견환이 자신을 위해 현청과 군사를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 수정판에선 롱월제희가 추가된다.
- 태후는 제희(공주)로 태어났다면 더 나았을 인생이라고 평했다. 황녀는 아무리 예쁘고 재주가 뛰어나도 시기를 받아 암투에 휘말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5. 기타
오른쪽은 옹정제 역의 진건빈, 왼쪽은 진건빈의 실제 아내 장근근 |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죄다 최고급품들이었다고 한다. 이는 황제가 인정한 사실로, 황후가 언니가 물려준 옥으로 홍염과 영서를 위해 옥패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순원의 물건들은 다 최고급이니까 아쉽지 않겠소?"이라고 말했다. 왕부에 처음 입고 왔던 예복만 하더라도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약간 낡아서 그렇지 예쁘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이를 보면 그다지 검소한 성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원작에서 황제인 현릉은 순원황후를 천성이 검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취향으로 옥을 특별히 좋아했다. 장신구들 중에서도 옹정제가 선물한 양지옥으로 만든 정교한 부용 목걸이[24]와 원앙 옥패[25]를 가장 아꼈다고. 동생 의수에게도 최고급 양지옥을 물려주었고 이는 나중에 홍염과 영서의 옥패를 만드는 데 쓰인다.
중국의 팬들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레베카》로도 각색된 바 있다.)에 등장하는 레베카가 모티브라고 추측한다. 레베카는 주인공 남편의 전처로 이미 죽어 등장은 없으면서 극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다. 또 실제 역사 상의 비슷한 인물로 동악비(순치제의 후궁)나 효현순황후(건륭제의 첫 황후), 민혜공화원비(숭덕제의 후궁), 남당의 황제 이욱의 첫 황후인 주아황이 언급되기도 한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질문자가 "순원황후는 못하는 게 없는데 역사상 그런 여자가 있었나요?"라고 질문하자 작가는 "없다."고 대답했고, 뒤이어 "그래서 그녀를 이상화시킨 것인지?"라는 질문에는 "그렇기에 그녀를 죽은 채로 배치했다."고 답했다. 순원 사후에 황제가 더욱 순원을 맘속으로 이상화시킨 것과 이 발언이 묘하게 겹쳐서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순원황후의 성이 오라나랍씨이고 왕부 시절 적복진이었다는 정보를 보자면 실제 역사의 옹정제 왕부 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가 황제가 되면서 황후가 되었고 1731년에 붕어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孝敬憲皇后 烏喇那拉氏)씨를 모티브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황후였고 옹정제보다 일찍 죽었다는(1731년) 점에서 말이다. 옹정제는 1735년에 천거하였다. 차이라면 효경헌황후는 옹정제 즉위 시 황후로 오래 살았고 4년 일찍 죽었지만, 순원황후는 황후에도 오르지 못하고 죽었으며 이미 작중 고인이다. 받은 봉호도 사후 추존된 것이다. 옹정황제의 여인만의 역사왜곡 중 하나인데, 옹정제의 생모인 인수황태후(효공인황후)는 이미 옹정 1년에 서거하여 강희제와 합장이 되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다. 즉 순원황후도 역사대로라면 살아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어떻게 보면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에 대한 사실 중 옹정제의 왕부 시절 적복진이자 옹정제보다 먼저 죽었다는 점과 기록에 남은 황후라는 점은 순원황후에게 계승되었고, 옹정제의 생전 곁에 있었던 오라나랍씨 황후라는 점은 동생인 오라나랍 의수가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말 및 상상으로는 오라나랍 유칙과 오라나랍 의수가 하나가 되어서 효경헌황후 오라나랍씨로 다시 만들어졌고, 의수의 공도 순원황후에게 빼앗기면서 아예 역사의 찌꺼기처럼 된 형식이라고 언급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실제 효경헌황후는 옹정제보다 4년 먼저 죽었는데 드라마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는 옹정제가 죽기 4년 전이다. 마지막화에서 견환과 소윤자가 "오라나랍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4년 전입니다."라고 대화를 하고, 그 직후에 경인궁에서 최후의 대면을 했다가 다음 날 의수는 자살했다. (적어도 드라마 세계관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의수가 유폐된 시기가 순원이 죽은 시점으로 기록되었다는 설정일 듯하다.
옹정황제의 여인과 《보보경심》을 둘 다 본 시청자들은 그에게 마이태 약희를 대입해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순원이 극중 단 한 번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았다 보니, 그를 약희였다고 생각하고 보면 옹정황제의 여인의 옹정제가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 더 쉽게 납득이 되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은근히 공통점도 많다. 둘 다 옹정제가 애틋하게 사랑한 여인이었으나 아이를 잃었고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 학식이 높고 옹정제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인이었다는 점, 아름다운 춤으로 옹정제의 기억 속에 남았다는 점, 옹정제로부터 양지옥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는 점, 홍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 등.
옹정황제의 여인 원작 만화 견환전 서화열에선 옹정제(현릉)의 시점으로만 그려저서 그런지 매우 순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여자로만 그려지고 독자들이 추측하는 '정말 착한 사람인가? / 완벽한 여자인가? / 언플 같은 것에도 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26] 그러나 황제 기준에서 본 순원황후를 빼다박은 순하고 가녀린 외모는 잘 살린 편. 하지만 생각보다 안 예뻐서 실망했다거나 의수가 더 예뻐보인다는 말이 많다. 덤으로 서화열에서 순원황후의 상징 꽃은 수선화. 수선화의 한자명은 '물가에 피는 신선'이라는 뜻. 또한 수선화의 꽃말이 신비, 자기애, 어리석음이다.
작품 내적으로는 성품이 바르고 선하다며 칭송 받지만 작품 밖의 시청자와 독자들은 정말 착한 사람인지 의아해 한다는 점, 우유부단한 성격인 왕의 직책인 메인 남자 주인공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자 작중 비견될 자가 없을 정도로 극찬 받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왕비라는 것에 더해서 그 순애 때문에 무려 한 나라 단위의 무수히 많은 피해자가 생겨나게 한 경국지색이자 팜 파탈이라는 점 등에서 프린세스의 비앙카스타 로디트와의 유사성도 있다.
[1] 병풍에 상징화인 수선화가 그려져 있다. 사실 다른 비빈들과 함께 나오는 꽃들은 모두 진짜 생화이지만, 순원황후만은 수선화가 그림으로 나올 뿐이다. 이는 그녀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2] 원작에선 주유칙으로 나온다.[3] 실제 역사 속 효경헌황후의 출생일자며, 2황자를 낳다가 사산하고 요절했단 걸 보아 실제 2황자 홍윤의 출생년도에 사망한 걸로 보인다. 양력으로 변환하면 1679년 6월 20일 ~ 1700년 9월 19일.[4] 이혁고산패자 목이호의 4녀로, 목이호의 장녀의 딸이 순치제의 황후 효헌단경황후 동악씨이므로 애신각라씨는 선대 황후의 이모가 된다. 부친인 목이호는 태조 누르하치의 증손 겸 누르하치의 첫 정실인 원비 대복진 동가씨 소생 장남인 화석광략패륵 저영의 손자이자 저영의 적장남인 안평패륵 두도의 적2남이다. 목이호의 모친은 적복진 오라나랍씨며, 그 부친은 포점태패륵에 봉해졌다. 애신각라씨의 생모는 목이호의 계복진 박이제길특씨인데 몽군기 찰노특부 태길 고록의 딸이다. 이쯤 되면 왜 순원황후의 아버지가 의수의 생모를 버리고 순원황후의 생모를 정실로 택했는지 알 만하다. 다만 원작에서 정실인 도부인은 그저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여인으로 나온다. 평범한 엄마한테서 절세미인이 나왔다는 점에 의수도 놀랄 정도.[5] 추증.[6] 옹정제 사후.[7] 꾸준히 언급은 되는데 등장은 과거회상 포함해서 일절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8] 그 유명한 양귀비의 라이벌 포지션이었다. 양귀비 등판 이후 현종의 총애 측면에선 좀 밀렸지만 그래도 현종이 양귀비를 끼고도 그녀를 잊지 않고 찾는 수준이었기에 양귀비의 질투를 사기도 했다고.[9] 그리고 황제가 의수를 적복진(황후)급 대우를 해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순원은 태후의 말처럼 집안 관리를 할 능력이 없었기에 실무에 능한 의수에게 집안일을 다 떠넘기고 황제는 순원이랑 같이 사랑놀음이나 하려고 그랬던 것이다.[10] 원작에선 이후 이들을 순장했다고 나오나 드라마에선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았다.[11] 원작 소설의 외전에서 의수가 한 말에 의하면 황제가 총애한 모든 후궁들 중 순원황후를 닮은 점이 전혀 없는 후궁은 화비 하나밖에 없었다고 한다.[12] 다만 이는 작가의 말일 뿐 실제 중국 현지에서 원작의 안티 수는 견환>현릉>순원황후>=현청>완벽>안릉용>그 외 순이다.[13] 제대로 못 추면 당연히 문제지만, 잘 춰도 감히 순원황후를 흉내내었다고 트집잡으려던 참이었다.[14] 그러나 극 중에서 의수는 위선의 달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극 중에서 옹정제는 형제들과 9대1의 경쟁을 벌여서 올라왔고 형제들조차도 믿지 못할 정도로 의심 많은 인물인데, 그런 황제조차도 의수가 유칙에게 나쁜 마음을 품었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유칙의 몸조리를 맡겼으며, 유칙 사후에도 의수를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다.[15] 자매 사이를 떠나 의수는 후궁이고 순원은 황후다. 후궁이 황후를 시해하는 것을 역모죄로, 주씨 가문에 해가 갈 수밖에 없다. 태후와 황후가 같은 집안이니 멸문까지 당하진 않겠지만 가세가 약해질 것이다.[16] 의수의 모친은 원래 순원+의수 자매의 아버지와 약혼할 예정이었는데, 두 자매의 아버지가 상경한 후 그녀를 잊고 도씨(순원의 모친)와 결혼했다가 나중에서야 의수의 모친을 동정심 삼아 첩으로 삼아준 것이기 때문.[17] 하지만 의수가 친모와 함께 늘상 무시 당하기 일쑤였단 말을 보면 상당히 괴롭혔던 듯하다. 실제로 대부인 도씨는 늘상 의수 모녀를 구박했고, 의수가 황실로 시집을 가자 서출이라고 앞담화를 까기까지 한다. 급기야 의수가 될 예정이었던 황후 자리에 자신의 딸 순원을 앉히기 위해 작정하고 순원을 아름답게 단장시켜 황제와 만나게 하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결국 이러한 대부인의 욕심으로 인해 모든 걸 빼앗긴 의수는 제대로 흑화하고, 그런 의수의 계략으로 인해 순원은 아이를 사산하고 요절하기까지 했으니 자업자득이다.[18] 수선화의 수선(水仙)은 물의 신선이란 뜻이다.[19] 차라리 첩을 들일 일이 없는 적당한 신분의 남자를 잡아 함께 살거나, 다른 여자와 남편 가지고 다툴 일 없이 독신인 채로 사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20] 중국어에서 가볍게 유감을 표현하는 말은 '不好意思' 정도가 있다. '对不起'는 비슷한 표현인 '抱歉'만큼 정중한 표현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가 상대에게 뭔가 잘못을 했다는 걸 전제로 하여 쓰는 표현이다.[21] 원작을 만화화한 견환전 서화열에선 의수가 언니 유칙이 늘 이복동생에 서녀인 자신을 친동생처럼 잘 대해주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자신을 죽인 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과 더불어 예전에도 친동생처럼 이복동생(의수)을 잘 대해주었다는 걸 보면, 유칙 본인이 의수에게 민폐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녀 나름대로 동생을 아꼈던 듯. 다만 어머니가 자신을 황후로 만들려는 계략에 순순히 따르고 기어코 현릉의 황후가 되어 동생의 처지를 비참하게 만든 걸 보면, 의수에게 언니로서 잘해준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는 의수에게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걸지도 모른다.[22] 설정상 순원황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견환의 어머니 운신라다. 운신라가 순원황후를 닮았기 때문에 딸들인 견환과 옥요도 순원황후를 닮은 것.[23] 이미 다른 여러 가지를 잘 하거니와 예쁨 받는 적장녀라는 입장이 합쳐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수는 애초에 아버지에게서도 소외 당하던 아이였고.[24] 이 목걸이는 롱월공주가 아버지인 황제에게 귀여움을 받게 해주려는 견환의 계략에 의해 롱월공주 돌잔치 때 롱월공주의 소유가 된다.[25] 이 옥패는 황제가 늘 지니고 다니다 옥요에게 줬지만 결국 차이며 돌려받았다. 하지만 옥요와 윤희와의 관계를 허락한 김에 다시 옥요에게 선물이라고 줘버린다.[26] 이는 서화열의 순원황후가 황제 콩깍지를 낀 상태에서 묘사되는 원작 + 드라마의 '그냥 착하고 예쁘고 지고지순한 현모양처' 이미지만을 정확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즉 원작 고증. 독자들의 의견이 들어가서 이런 면모가 애매하게 묘사되면 원작자 외 다른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 원작 왜곡의 여지가 될 가능성도 있기에 뺀 건지, 아님 그저 서화열 작가가 원작 순원 쪽을 살리기로 한 게 좋아서 그런 건지는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