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08:45:38

성상

1. 聖像(icon)2. 군주를 부르는 경칭3. 性狀4.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

1. 聖像(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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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주를 부르는 경칭

聖上

'성상(聖上)'이라는 표현은 왕조 시대에 집권 중인 군주를 높여 부르는 경칭으로 본래 황제의 지칭이다.
예의상정소가 조정 안에서 오가는 표장과 서간에 사용하는 칭호의 개정을 건의하다
예종(睿宗) 9년(1114) 6월 예의상정소(禮儀詳定所)가 아뢰기를,
"근래에 조정(朝廷)의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표장(表狀)과 서간(書簡)에 칭호가 올바르지 않으니 명분을 바르게 하는 뜻이 아닙니다. 신 등이 바라건대, 무릇 표문(表文)을 올리는 경우 성상 폐하(聖上陛下)를 칭하게 하고 전문(箋文)을 올리는 경우에는 태자 전하(太子殿下)를 칭하도록 할 것이며, 제왕(諸王)은 영공(令公)이라 할 것이며, 중서령(中書令)과 상서령(尙書令)은 태사령공(太師令公)이라 할 것이며, 양부(兩府)의 집정관(執政官)은 태위(太尉)라고 할 것이며, 평장(平章)·사공(司空)·참정(參政)·밀직(樞密)·복야(僕射)는 각각 그때의 직책에 따라 칭할 것이며, 3품 이하의 관원들은 모두 상공의 칭호를 얻을 수 없으므로 마땅히 직접 관명(官名)을 부르도록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고려사 세가 예종 9년(1114년) 6월
한국의 경우 고구려안악 3호분에 왕을 뜻하는 '성상번(聖上幡)'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으며, 고려시대에서 원나라 간섭기 이전까지 '성상 폐하'라는 호칭이 임금에 대한 정식 호칭이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태조 대부터 고려의 임금은 '성상' 또는 '주상'으로 불렸고, 원 간섭기에는 '성상'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지 않다가 공민왕 대부터 다시 사용되었다.[1] 송사"고려로의 동전 수출을 금지하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에선 '臣民들은 〈임금을〉 성상(聖上)이라 부르고 사사로이는 엄공(嚴公)이라고 불렀으며, 후비(后妃)를 궁주(宮主)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송나라 사서의 기록을 통해 당시 고려 백성들에게 있어 국왕에 대한 보편적인 호칭이 성상이었음을 교차검증할 수 있다. 다만 고대~중세 한반도에서 이러한 호칭들이 천자국으로서의 목적 의식을 지녔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형식상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조선에서 원칙적으로는 해당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조선 전기에도 임금을 가리켜 이렇게 부른 경우가 있었으며, 숙종 대 이후 조선 후기에 와서 많이 사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주상 전하'가 아닌 '성상 전하'로 불렸다.[2] 2차 갑오개혁 이후의 조선/대한제국의 임금은 원 간섭기 이전의 고려의 군주처럼 '성상 폐하'로 불리기도 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에서 덴노를 지칭할 때 이 표현을 쓰기도 했다.

3. 性狀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 형태

4.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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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원 간섭기 이전에 분명히 '성상 폐하'로 불린 임금은 문종, 예종, 인종, 의종, 명종, 그리고 고종이다. '성상 폐하'라는 호칭은 위에 나오듯이 고려사의 예종 9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고, 김부식진삼국사기표이규보동국이상국집 전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2] 실제로 '성상 전하'라는 표현이 조선왕조실록에 1건, 승정원일기에 7건이 나온다. 다만 일반적으로 전하 앞에 붙여 쓰는 용어는 성상이 아닌 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