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서구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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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c707><colcolor=#fff> 제21·22대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서중현 徐重鉉 | Seo Joong-hyeon | |||
출생 | 1951년 9월 14일[1] ([age(1951-09-14)]세) | ||
경상북도 대구시 서부출장소 원대동 1220번지[2] (現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3가) | |||
거주지 |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 ||
본관 | 달성 서씨[3] | ||
재임기간 | 제21-22대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 ||
2008년 6월 5일 ~ 2011년 9월 14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ac707><colcolor=#fff> 가족 | 부인 김혜영, 슬하 1남 2녀 |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학력 | 대구달성초등학교 (졸업 / 44회)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졸업)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 21회)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 /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철학[4] / 석사[5]) 경북대학교 대학원 (철학[6] / 박사과정 수료) | ||
병역 | 육군 상병 만기전역 (1972년 4월 26일 ~ 1975년 3월 13일)[7] | ||
약력 | 신명여자고등학교 교사 협성고등학교 교사 경북대학교 철학과 강사 삼신산업 대표 민주교사협의회 회장 대구광역시 경제살리기 운동본부장 대구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바른미래당 대구서구 공동지역위원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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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출신 정치인이다.2. 생애
1951년 9월 14일,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원대동) 1220번지에서 태어났다. 대구달성초등학교(44회),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21회)를 졸업한 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 1972년 4월 26일 육군에 입대하여 1975년 3월 13일 상병으로 만기전역하였다.경북대학교 졸업 후 1978년부터 1988년까지 신명여자고등학교(현.신명고등학교), 청구중학교, 협성중학교, 협성고등학교, 경상여자중학교 등지에서 윤리교사 및 일반사회교사로 재직하며 국민윤리,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의 교과를 담당했다. 한편, 1982년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철학 전공으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정치철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서 강사로도 재직했다.
2.1. 정치 활동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면서 첫 선거에 나섰으나, 당세가 약해서 저조한 득표율로 민주정의당 최운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지역 구도의 벽을 뚫지 못하고 민주자유당 강재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등록 무효 처리되면서 출마하지 못 했다. 다음 해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전보다 높아진 득표율로 약 3% 차이로 신한국당 강재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잠깐 국민신당에 속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국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소폭 낮아진 득표수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윤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꽤 높은 득표율로 한나라당 윤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의회 서구 제2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구청장 출마를 위해 1년만에 사퇴했다. 그렇게 2008년 재보궐선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8]
2011년 9월 14일 서구청장직을 사퇴하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상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류한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김상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국민의당에 입당하였고, 바른미래당 대구광역시 서구 지역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다시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 대구광역시 서구청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3위로 낙선하였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에 입당하였으나 컷오프 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과는 역시 낙선. 이후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 지난 총선이 마지막 선거라던 본인의 말을 뒤집고 무소속으로 서구청장에 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출마를 선언했다. 무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개혁신당에 입당 해 공천 신청을 했다가, 공천이 불발되자 다시 탈당해 무소속으로 후보등록을 마쳤다. 이번이 18번째 출마로, 최다출마 기록을 계속 경신해가는 중이다. 현역 김상훈 의원과는 2012년 이래 4연속 리턴매치로 더불어민주당에서 무공천을 결정하여 양자대결이 성사 되었다. # 결과는 낙선.
특기할 점은 처음 출마한 1988년과 양당화가 극심하였던 2020년 두 번을 빼놓고 어느 선거에서도 선거비 전액 보존 마지노선인 15%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매번 선거에 나선 만큼 동네에 오래 산 주민들에게 인지도 + 동정심도 있다. 다만 노인층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기반은 있지만 무소속이나 제3지대 소속으로 활동하는 바람에 정당표를 받지 못해 그것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못한다는 것.
3. 기타
- 37년간 워낙 많은 출마를 하다 보니 선거 관련 가십을 다루는 가벼운 기사에 매번 등장하는 단골이 되었다. 서구 지역은 대구 내에서도 강한 보수세를 가져 당선자가 거의 정해져 있기에 지역 언론말고는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지만 서중현만큼은 매번 출마할 때마다 최다 출마기록을 가진 후보로 지역지를 넘어 뉴스1, 한겨레 인터넷판에도 간간이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기록이 경신된다.
- 사실 2008년 재보궐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서구청장에 당선되면서 차츰 정치 인생이 펼 기미도 보였는데, 재선 후 불과 1년 남짓 지난 2011년 9월에 2012년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면서 이후 행보가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9] 차라리 서구청장 재선 임기를 마친 뒤 2016년 총선에 출마하거나 혹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구청장 3선까지 한 뒤 2020년 총선을 노렸더라면 모를까, 서구청장을 고작 3년밖에 안 하고 또 사퇴해버리니[10] 주민들에게 영 좋지 않은 인상이 되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줄기차게 무소속 혹은 민주당계 정당으로 출마해놓고는 2010년에 한나라당 입당을 하려다가 불발되는가 하면 2015년 말 기어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가 나중에 또 탈당하는 등 결국엔 철새 행보를 보인 것도 이미지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 그냥 무소속 행보를 보이면서 서구청장 경력을 쌓았더라면 국회의원 당선까지도 넘볼 수 있는 7전 8기 정신을 지닌 풀뿌리 정치인의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 전북을 기반으로 하는 임정엽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다만 서중현과 달리 꾸준히 출마하고 낙선을 반복해서 당선을 한 건 아니고, 임정엽은 첫 선거였던 1991년 지방선거, 그 이후인 2006, 2010년 지방선거에서 완주군수에 내리 당선되었지만, 물론 당선될 수 있었던거는 민주당 텃밭이고, 민주당계 정당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이 수월했지만, 2014년 지방선거 이후로 부터는 서중현과 비슷하게 제3지대 정당 및 무소속 타이틀로 국회의원(재보궐 포함), 전주시장, 전라북도지사 선거 등 꾸준히 출마해서, 30-40% 사이때로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했지만, 제3지대 정당, 무소속 타이틀이 한계가 있어, 그 벽을 못 넘고, 재기에 아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비슷하다. 물론 서중현처럼 정당 입당 및 탈당을 반복한 것도 공통점이다.[11]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한겨레민주당|]] | 1988 - 1990 | 정계 입문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90 - 1991 | 해산 |
| 1991 - 1995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95 - 2000 | 탈당 |
[[민주국민당(2000년)|]] | 2000 - 2002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2 - 2003 | 탈당 |
[[열린우리당|]] | 2003 - 2006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6 - 2016 | 탈당 |
[[새누리당|]] | 2016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6 | 탈당[12] |
[[국민의당(2016년)|]] | 2016 - 2018 | 입당 |
[[바른미래당|]] | 2018 - 2019 | 합당[13]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9 - 2020 | 탈당 |
[[미래통합당|]] | 2020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2024 | 탈당[14] |
| 2024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4 - 현재 | 탈당[15] |
정치 경력이 36년이나, 그에 비해 당적을 두었던 기간은 길지 않다. 무소속으로 17년을 지냈으며, 정당에 속해 있던 시간은 15년 정도로 비슷하다. 무소속이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민주당계, 보수정당, 제3지대를 넘나드는 소속 변경, 또 대부분 입당 -> 경선 탈락 -> 탈당 -> 타 정당 입당 or 무소속 출마 -> 낙선 -> 탈당의 패턴을 반복한 모습을 보면, 공천을 노린 당적 변경이 심한 편에 속한다.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을 | [[한겨레민주당|]] | 2,333 (2.64%) | 낙선 (5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 13,394 (16.93%) | 낙선 (3위) | ||
1995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등록무효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042 (29.60%) | 낙선 (3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민주국민당(2000년)|]] | 17,256 (16.26%) | 낙선 (2위) |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2,042 (38.64%)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열린우리당|]] | 31,363 (28.20%) |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9,212 (43.07%) | ||
2007 | 상반기 재보궐선거 (광역의회의원) | 대구 서 2 | 19,218 (69.37%) | 당선 (1위) | 초선 | |
2008 | 상반기 재보궐선거 (기초자치단체장) | 대구 서구청장 | 19,997 (43.58%)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51,328 (62.30%) | 재선[16]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18,821 (20.85%) | 낙선 (2위) |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20,213 (22.57%) | 낙선 (3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26,692 (31.47%) | 낙선 (2위) | ||
2018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바른미래당|]] | 18,988 (21.65%) | 낙선 (3위) |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9,417 (9.53%) | ||
2022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구 서구청장 | 20,720 (32.13%) | 낙선 (2위) | ||
2024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 대구 서 | 24,929 (27.97%)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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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성서씨세보 권12 876쪽에는 1953년 1월 28일생으로 오기되어 있다.[2]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물[3] 학유공파(學諭公派) 24세 식(植) 항렬. 족보명은 서판식(徐判植).#[4] 서양철학 전공[5] 석사 학위 논문 : Plaron의 國家篇(국가편)에 나타난 哲人統治論(철인통치론)(1982)[6] 정치철학 전공[7] 병무청공고제2008-16호(병역사항 공개대상자 병역사항 공개)[8] 특이점이라면, 2008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아예 후보조차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친박연대 소속 지역구 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다시 합류하는 문제를 두고 당이 시끄러웠는데, 본래 당협위원장과 친박연대에서 당선된 홍사덕 의원이 복당하면서 공천 관련하여 일이 꼬인 측면도 없진 않았다.[9] 서중현 본인은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갈등이 사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0] 사실 서중현 본인의 입장에서는 시의원 - 구청장 - 국회의원 순으로 도전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07년 4월에 시의원에 당선되었지만, 1년만에 구청장 나간다고 사임한 전력이 이미 있었다. 그나마 시의원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옅으니 얼추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구청장은 이야기가 달랐다는 점이다. 결국 자신의 몸 값을 높여보겠다고 2번이나 사퇴한 구청장을 구민들은 용인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11] 다만 임정엽은 보수정당에 입당한 적은 없다.[12] 총선 경선 도중 사퇴 후 탈당.[13] 바른정당과 신설 합당.[14] 총선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15] 총선 공천 불복으로 인한 탈당.[16] 2011.9.14: 사퇴(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