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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벨기에의 교통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19세기부터 지속된 인구 분산 정책과 스프롤의 영향으로 벨기에는 도시국가와 작은 섬나라들을 제외하면(기준 면적 1000 km² 이상)[1] 세계에서 가장 도로 밀도가 높은 국가이다. 특이하게도 이는 자동차가 아닌 과거 국가 주도로 건설한 철도망과 인터어반에 의해 형성된 스프롤에 기반한다. 철도 교통에서도 벨기에는 유럽에서 스위스와 체코 다음으로 높은 철도 밀도를 가지고 있으며, 전철화율도 스위스와 룩셈부르크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2. 들어가며
벨기에의 교통망을 논하기 위해서는 벨기에의 독특한 도시화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본래 플란데런 지역은 중세부터 역사적으로 북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에서 손꼽히는 인구 밀집 지역이었고, 이에 따라 산업 혁명과 교통수단의 발달이 시작되기 전부터 플란데런 전역에 작은 마을들이 고루 발달해 있었다.한편 19세기 산업 혁명이 시작되고, 동시기 미국과 우크라이나산 저렴한 밀이 수입되며 촉발된 농업 위기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단기 농업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대 벨기에의 정치권에서는 먼저 산업 혁명이 진행된 런던과 베를린 등 인접국 대도시들의 환경을 보고 곧 주요 도시들이 위생과 인구 과밀 문제, 그리고 빈민 폭동에 시달릴 것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말엽부터 벨기에는 의도적인 시골로의 인구 분산 정책을 펼쳐 저렴한 철도 정기권을 보급하고, 고밀도의 철도와 인터어반 네트워크를 국가 주도로 건설했으며, 저렴하고 표준화된 주택 형태를 전 국토에 보급했다.[2]
이는 한편으로는 농촌 지역에서 영향력이 공고하던 가톨릭 교회가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따라서 도시 집중 억제 정책은 이들이 주도했다. 동시에 도시에 거주하는 자본가 및 부르주아 계층(자유주의 세력)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전국에 흩뿌려 노동계급의 조직력을 약화하고, 경기가 좋을 때는 철도를 통해 도시에 노동력을 공급하다 불경기에는 이들이 자급자족하는 농촌적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노동 유연성을 확보해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결정적으로 과밀화된 도시에서 노동 계급이 사회주의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고자 이를 지지했고, 사회주의자들 역시 노동 계급에게 인간적인 주거 환경을 보장하고자 이를 지지했다.[3] 네덜란드 지배 하에서 빌럼 1세가 합병된 벨기에 지역의 중공업화를 도모하고자 설립한 투자은행 Société Générale des Pays-Bas[4]은 이에 필요한 철도 국유화 자금과 인터어반 건설 자금, 그리고 각종 운하 건설 자금을 지원했다.
3. 도로 교통
앞서 언급했듯 세계에서 실질적인 도로 밀도가 가장 높은 국가이다. 다만 이는 질과는 별개라서, 각종 지표에서 인접국 네덜란드와 독일에 비해 도로 품질이 낮다고 평가되며,[5] 이에 따라 인프라 유지보수에 필요한 부담도 상당한 편이다.한편 높은 인구밀도로 고속도로망 자체 밀도는 높지만, 유럽의 최대 인구 밀집지역 한복판에 위치한 입지로 인해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주변국으로부터의 통과 수요가 매우 많고,[6] 도로망 설계상 안트베르펀과 브뤼셀의 외곽 순환도로를 피해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두 도시의 외곽 순환도로는 교통 체증으로 악명높다. 두 순환도로 모두 이름만 순환도로일 뿐 실질적으로는 반쪽짜리 순환도로라 한 쪽으로 교통량이 집중된다는 점도 교통 체증에 일조했다.[7]
또한 교외 지역의 난개발을 방치, 한편으로는 장려한 결과로 벨기에는 이웃 네덜란드와 달리 주거지와 비주거지 사이의 경계가 매우 흐려진 상태로, 농로와 국도를 막론하고 모든 길을 따라 주택과 상업시설이 길게 선형으로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시내 도로와 시외 도로의 경계가 매우 흐려진 상태로, 플란데런이 유럽에서 유일하게 시외 도로의 제한속도를 70 km/h 로 제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결과로 주변국의 국도와 지방도급 도로들은 시가지와 분리되어 고속도로를 보조하는 도시간 이동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반면, 벨기에는 N자[8]가 붙은 주요 간선도로들조차 대개 왕복 2차로에 양쪽으로 주택과 상업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차 시내 도로와 기능상 큰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이는 집산도로 및 국지도로와 주간선도로(고속도로) 사이의 계층 공백을 초래하여 고속도로의 혼잡을 가중시켰다.
4. 철도 교통
형식상 철도 상하분리가 이루어져 시설은 INFRABEL, 운영은 벨기에 국철(NMBS/SNCB)이 맡는다. 이웃 네덜란드와 달리 민영 사업자의 영향력이 매우 미미한 관계로 양자간 잡음은 크지 않고, 2014년까지 INFRABEL이 지주회사를 통해 NMBS 산하에 있었을 정도로 사실상 상하통합에 가까운 구조로 인식되고 있다. 벨기에 국철 외에도 국외 사업자로 유로스타(구 탈리스 포함), 독일철도 (DB), 룩셈부르크 국철(CFL)이 벨기에와 인접국을 연결하는 중장거리 국제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프랑스 접경지역 코르트레이크에는 프랑스 SNCF의 TER 열차가 진입한다.전력 공급 방식은 직류 3000볼트를 사용하고, 보안장치로 TBL을 사용해 왔다. 140 km/h 이상으로의 증속이 어려웠던 옆나라 네덜란드의 ATB와 달리 TBL은 고속선에도 사용했을 정도로 꽤 쓸만한 물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타국에 비해 매우 선도적으로 ERTMS 도입을 실행하여 2024년 기준 대부분의 주요 선구에서 ERTMS를 지원하고 있다. 이웃 네덜란드가 ERTMS로 ATB의 속도 한계를 해소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ERTMS 도입 상황이 지지부진한 모습과 대조적이다.
특기할 점으로, 벨기에는 비도시 지역 철도망을 더욱 조밀하게 보조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인터어반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를 위해 당시 벨기에 국철(NMBS/SNCV)과 별도로 인터어반 운영을 담당하는 별도의 국철 사업자(NMVB/SNCV)를 두어 1990년 연방화 직전까지 유지했다. 연방화 이후 이는 각 지역 정부로 쪼개 이관되어 현재의 De Lijn, TEC, MIVB로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초 벨기에의 인터어반 네트워크는 전국 철도망 규모에 맞먹는 규모를 자랑했다. 당시 인터어반 네트워크는 단순히 승객을 수송하는 차원을 넘어 농촌 지역의 화물(거름, 생산물, 연료, 건축자재 등)을 수송하는 역할도 담당하여 외곽 지역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고, 지금의 극도로 분산된 벨기에식 스프롤의 기원이 되었다. 이 당시 인터어반 네트워크의 유산은 해안가의 Kusttram과 브뤼셀 트램의 외곽 노선들, 그리고 샤를루아 프리메트로의 서부 구간에만 남아 있다.
5. 대중교통
벨기에의 대중교통은 시내 교통과 도시간 교통을 별도로 떼어내고 설명하기 어렵다. 브뤼셀, 안트베르펀, 겐트, 샤를루아, 리에주에는 시내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별도의 기관이 존재했지만, 그 외 도시들은 전국 인터어반 네트워크를 운영 및 감독하던 국영 SNCV/NMVB가 시내 노선까지 전부 담당했기 때문이다. 인터어반이 전부 버스로 대체된 이후에도 SNCV/NMBV는 전국 버스 노선들을 담당했고, 1991년 벨기에의 3차 국가 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역 교통이 각 지역들(플란데런, 왈롱, 브뤼셀)의 소관으로 넘어가자 SNCV/NMVB가 플란데런의 De Lijn, 왈롱의 TEC, 그리고 브뤼셀의 STIB/MIVB로 쪼개지며 시내 대중교통 운영 기관들까지 역으로 합병했기에 사실상 브뤼셀을 제외하면 전국 모든 대중교통을 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형태가 되었다.브뤼셀에는 지하철이 운영 중이며, 안트베르펀, 겐트, 브뤼셀, 샤를루아, 리에주에는 트램이 운영 중이다. 트램의 경우 2025년 전형적인 프랑스식 현대식 트램으로 신규 개통한 리에주를 제외하면 구세대 레거시 노선망을 바탕으로 현대화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궤간도 브뤼셀[개궤]과 리에주를 제외하면 전형적인 구대륙 구세대 트램답게 미터 궤간 협궤를 사용하며, 전국 인터어반 네트워크도 이에 맞춰 미터 궤간으로 건설되었다.[10]
인접한 서독의 슈타트반과 유사하게 비슷한 시기 도심에 트램 전용 지하 터널을 건설하는 Premetro가 브뤼셀, 안트베르펀, 샤를루아에 건설되어 있다. 지금의 형태는 사실상 서독 슈타트반 모델을 이름만 프랑스어식으로 바꾼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나,[11] 근본적으로 (샤를루아를 제외하면[12](K-AGT)이나 로스앤젤레스 C선, 혹은 비엔나 U6과 유사한 형태다.]) 장래 중전철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임시로 트램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형태로 의도했기에 터널 자체의 규격은 중전철에 가깝다. 브뤼셀의 프리메트로 3/4호선 구간을 제외하면 메트로 전환 계획은 전부 폐기되었지만, 이러나 저러나 프리메트로가 깔린 도시들에서는 시내 트램 네트워크의 중추로 기능하고 있다.
인접한 네덜란드처럼 도시권 내 통근을 위한 고속버스 이용 광역버스가 폭넓게 사용된다. 특히 철도망이 부실한 반면 E34 고속도로가 지역 중심을 연결하는 켐펀 지역에서는 E34 고속도로의 안트베르펀 방면 갓길차로에 버스전용차로까지 설치해가며 고속 통근노선(Snelbus)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한국처럼 고상 좌석버스를 사용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으며, 예외라면 인구가 희박한 왈롱 남부의 시골 지역 중거리 노선들 또는 뢰번, 브뤼셀의 대학 캠퍼스에서 철도 교통이 미비한 림뷔르흐 동부를 특정 시간대에 한해 연결해 주는 Snellijn 정도.
BRT를 활발히 도입하는 옆나라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달리 딱히 BRT 시스템이 활발히 설치되고 있지는 않다. 리에주[13]에 초창기 형태의 BRT가 존재했던 정도. 다만 21세기 들어 플란데런 전역에 계획된 광역 LRT 노선들이 엎어지면서 Trambus 이름을 달고 BRT로 전환된 바 있다. 플람스브라반트 북부(Ringtrambus)와 림뷔르흐(Spartacuslijnen)의 지역간 BRT 프로젝트들이 대표적.
6. 항공 교통
브뤼셀 자벤텀 공항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상당한 노선망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사베나 항공이 플래그 캐리어로 이름을 날렸으나, 스위스에어에 인수된 뒤 같이 파산하여 현재 플래그 캐리어는 루프트한자 소속인 브뤼셀 항공이다.한때 서유럽의 주요 항공사 중 하나로 꼽혔던 사베나 항공이 파산한 이후 벨기에인들은 대개 장거리 항공노선 이용 시 주변국이나 중동에서 환승편을 타거나, 아예 고속철도를 타고 스키폴 국제공항이나 샤를 드 골 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추세다. 이를 위해 유로스타(구 탈리스)와 베네룩스트레인이 스키폴로, TGV가 샤를 드 골 국제공항으로 매 시각 운행되고 있다.
저가 항공사들은 샤를루아 북쪽의 샤를루아 브뤼셀 쉬드 공항에 취항하고 있다.
7. 수운
유럽 제 2의 항만인 안트베르펀항(한국에서는 영문명 앤트워프항으로 알려짐)이 있으며, 이외에 겐트와 브뤼헤 또한 자체적인 나름 규모 있는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 로테르담이 라인강의 내륙 수운을 중심으로 루르 공업 지대의 물동량에 주력한다면, 안트베르펀은 전통적으로 철도(Ijzeren Rijn)와 고속도로(1960년대 이후)를 통해 루르 이남 지역(쾰른, 라인-마인 등)과 프랑스 북부의 물동량, 그리고 전통적으로 중공업이 발달한[14] 벨기에 내륙의 자체 발생 물동량에 집중하는 편이다.옆 나라 네덜란드처럼 내륙 수운도 상당히 발달해 있다. 내륙의 주요 산업 지대인 브뤼셀, 샤를루아, 겡크는 모두 대규모 운하를 통해 안트베르펀으로 연결되며, 이 운하들은 전통적으로 벨기에 중공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다. 때문에 옆나라 네덜란드와 달리 벨기에의 산업 지대들은 주요 운하들을 따라 선형으로 분포한다. 안트베르펀과 림뷔르흐, 그리고 리에주의 석탄 및 산업 지대를 연결하고 E313 고속도로와 207호선 산업철도가 병주하는 알버트 운하(Albertkanaal) 일대의 선형 산업 지대가 대표적이며,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규모만 축소된 형태의 선형 산업 지대가 튀른하우트 방면 운하를 따라 분포해 있다. 이 경우 오로지 소규모 운하와 이를 병주하는 인터어반 철도를 통해 산업 지대의 발달이 이루어진 케이스.[15]
8. 관련 문서
[1] 울산광역시 면적이 1056 km² 이다. 벨기에 면적은 약 3만 km². 이 기준에 걸리는 국가들 중 벨기에보다 도로 밀도가 높은 국가 및 지역으로는 모나코. 바티칸 시국, 마카오, 마셜 제도, 버뮤다, 몰타, 맨 섬, 바레인, 저지 섬, 싱가포르, 지브롤터, 바베이도스, 리히텐슈타인이 있다.[2] 이 당시 보급된 주택 형태는 앞마당을 생략한 전형적인 도심형 맞벽 타운하우스 구조였기에 벨기에 시골 지역에서는 시내 한복판에 있을법한 맞벽 건물이 혼자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3] 당시 인접국들의 상황을 보면,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기의 탄압으로 가톨릭 교회의 세력이 크게 축소되었고, 이후의 정치적 패러다임도 가톨릭 세력 없이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을 중심으로 비종교적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벨기에와 유사하게 가톨릭 - 자유주의 - 사회주의의 '기둥화'가 이루어졌으나, 네덜란드의 기둥화는 개신교 세력이 추가된 4개 기둥으로 구성되어 가톨릭의 세력이 약했고, 벨기에와 달리 도시화에 친화적이고 중상주의적이던 자유주의 세력과 개신교가 19세기 정치적 담론을 주도했기에 인구 분산을 유도할 유인이 약했다. 반면 당대 벨기에에서는 개신교 세력 없이 가톨릭 - 자유주의 - 사회주의의 세 기둥만이 존재했고, 중상주의적인 네덜란드와 달리 벨기에는 림뷔르흐와 왈롱의 석탄에 힘입어 중공업에 기반한 공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엘리트 계층의 상당수가 공업 자본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당시 공업 발전으로 인해 1600년대부터 쭉 네덜란드에 뒤처져 있던 벨기에의 1인당 GDP는 19세기 말 산업화 이후 1913년 기준 네덜란드의 1인당 GDP를 추월한다.[4] Algemeene Nederlandsche Maatschappij ter Begunstiging van de Volksvlijt; 독립 후 Société Générale de Belgique / Generale Maatschappij van België[5] 예로 WEF 세계 경쟁력 보고서의 설문에서 벨기에는 구 공산권을 제외하면 EU 꼴찌를 기록했다. DOI: 10.2760/270230 다만 주관적 인식을 다루는 설문 결과이므로 객관적 도로 품질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 벨기에 도로를 달려 보면 적어도 인접국들에 비해서는 질적 차이가 눈에 띄게 난다.[6] 네덜란드 -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의 인구 밀집지역 일드프랑스에서 독일의 인구 밀집지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으로 이동 시 벨기에를 거쳐가야만 한다.[7] 브뤼셀의 순환도로는 남쪽 구간이 도시화 이후 건설되어 남쪽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 사실상 3/4 순환도로인 상태고, 안트베르펀의 경우 근래 서북부 구간을 완성했으나 이 역시 서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프랑스 - 네덜란드간 교통량 상당수를 차지하는 E17 - E19 루트에서 쓸모가 없다.[8] 본래 국도를 의미했으나 국가 구조 개편 이후 각 주 정부와 도에서 관리하는 도로로 변경되었다.[개궤] [10] 안트베르펀 지역에 한해 인접 네덜란드 인터어반들의 1067mm 케이프 궤간에 직통하기 위해 케이프 궤간으로 건설되었다가 1차대전 후 미터 궤간으로 개궤되었다.[11] 다만 서독 슈타트반의 보편적 형태와 달리 광폭 고상 차량에 고상홈을 조합한 시스템은 아니다. 쾰른,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의 저상홈 사용 노선들과 비슷하다.[12] 샤를루아의 경우 장래 전 구간 고가, 지하 또는 성토구간을 활용한 입체교차화를 계획하긴 했으나 차량과 승강장 길이는 트램 차량의 그것을 그대로 유지한 Light Metro 형태로 계획되었다. 샤를루아 프리메트로의 M4와 (버려진) M5가 이 당시 계획된 형태대로 실현된 케이스이다. 한국의 부산김해경전철[13] 지금 남아있는 짧은 전용도로 구간만 따지면 70년대 Busway 모델의 전형이다.[14] 석탄이 나기 때문에 림뷔르흐와 왈롱 지역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중공업 발달 지역이다.[15] 이러한 식으로 운하, 도로, 철도, 인터어반 등 인프라를 병주시켜 선형 공업 지대를 개발하는 모델은 Maarten Van Acker의 박사 논문 From flux to frame: designing infrastructure and shaping urbanization in Belgium 에서 더 자세히 읽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