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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윤(1982)/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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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롯데 자이언츠
2.1. 2001~2008 시즌2.2. 2009 시즌2.3. 2010 시즌
2.3.1. 2010년 올스타 선발 논란
2.4. 2011 시즌2.5. 2012 시즌2.6. 2013 시즌2.7. 2014 시즌2.8. 2015 시즌2.9. 2016 시즌2.10. 2017 시즌
3.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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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소속 내야수 박종윤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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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국을 대신해 선발 7번 1루수 출장이자 첫 1군경기 데뷔 2002년 6월 30일[1]

2.1. 2001~2008 시즌

2001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4순위(전체 3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2년에 1군에 처음 올라왔다. 2002 시즌이 끝나고 상무 야구단에 입대, 일찌감치 병역을 마쳤다.[2] 군 복무를 마친 후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8년까지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2. 2009 시즌

하위 타선의 공격력 강화를 위해 시즌 중반부터 김주찬외야수로 돌리고 1루수로 선발 출장하기 시작했다. 1루 수비 능력은 리그 최상급이지만, 1루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이 훨씬 중요시되기 때문에 수비력 만으로 주전 입성은 거의 불가능했다.

2할 6푼대의 타율은 1루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낙제점이고, 2군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탓에 1군 투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선구안이 많이 부족해서 0.13의 극악한 BB/K 및 0.306의 낮은 출루율을 보였다. 다만, 4할대의 장타율은 괜찮은 편이라, 대타로는 나쁘지 않았다.

장타력 좋은 빅뱃 자원이란 점에서 같이 2군에 있던 우타자 오장훈과 비슷한 유형이었는데 이 당시 롯데의 주축 타자였던 조성환, 이대호, 강민호, 홍성흔 등 중심타선에 설만한 토종 타자가 모조리 우타자였기 때문에 좌타로서 나름대로 장타력이 있다는 메리트 덕분에 좀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게다가 오장훈은 투수 출신이라 수비 능력이 상당히 나쁘기 때문에[3] 사실상 지명타자로 밖에 쓸 수 없어 수비 능력쪽에서도 박종윤이 좀 더 우위에 있었다. 이당시 롯데는 홍성흔이라는 사실상 고정 지명타자가 있었기 때문에 수비가 안되는 야수를 기용하는데에 부담감이 너무 심했다.

2009년 시즌은 타율 0.260, 홈런 2, 타점 19, OPS 0.696 을 기록.

2.3. 2010 시즌

스프링 캠프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2009 시즌보다 좀 더 중용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완전한 주전 1루수는 아니고 플래툰(상대팀에서 선발 투수로 좌완이 나오면 스타팅 멤버에서 빠짐)으로 자주 기용되고 있다.

2군에 있던 시절부터 국내 최고수준이라 칭찬받았던 1루 수비 실력은 여전하고, 컨택 능력이 09 시즌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치명적인 약점이있던 선구안이 많이 향상되었다.(5월 4일 현재 B/KK 0.5, 출루율 0.383)

이인구, 박정준이 퓨쳐스 리그(2군)에서도 워낙 부진해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면서 팀내 쓸만한 좌타자가 부족하고, 팀 내 하위타선이 워낙 부진한 탓에 1.5군급 선수 중에서는 그나마 공격력이 되는 편이라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시즌 출발은 매우 좋다. 4월 한달간은 워낙 잘해서 플래툰이 아닌 완전한 주전 1루수도 가능해 보였지만[4] 경험이 적어서인지 좌완 투수에게 약점을 보여 완전한 1루수 주전은 아직은 좀 힘들어보인다. 어쨌든 28세가 되어야 비로소 기회를 잡아가고 있다.

본래 1루수라는 포지션은 프로 레벨에서는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으로 말해야 하는 포지션이나 롯데의 수비 능력이 타팀에 비해서 낮은 편이라 1루수의 수비 능력도 중요하다. 박종윤의 가세로 2루수, 3루수, 유격수의 수비 능력이 좋아졌다.

4월 6일의 우익수 플라이 세레모니는 백미. 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묘사되었다.

4월 23일의 SK전에서 연타석 홈런 2방을 날렸다. 첫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날려 2:0으로 롯데가 이기고 있을때 비로 인해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는데, 롯갤에서는 롯데가 지는건 상관없는데 박분유의 홈런이 무효화되는 건 안된다고 하기도 했다. 5월 이후로는 다소 주춤한 편.

5월 11일 SK전에서 생애 첫 대타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박팡야

5월 중순부터는 로이스터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이 아닌 주전 1루수로 기용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5월 이후로는 완만한 하향세 중. 데뷔 후 첫 풀타임 출장이라 체력적인 문제인지 타율도 타율이지만 장타율이 많이 내려갔다. 최근 경기에는 나오지 않고 로이스터 감독이 비디오 분석까지 보여주며 특별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사에 나온 로이스터 감독의 말에 의하면 훈련할 때와 실제 경기때의 스윙이 다르다고 한다.

6월 12일 대 한화전에서 신경현 포수가 바운드볼을 요구하고 글러브를 땅에 깔아두고 공을 받으려하였으나 그 공을 어퍼스윙으로 쳐서 2루타로 만들어 신경현을 벙찌게 만들었던 적도 있고 포수가 공을 놓쳐서 폭투가 된 공을 심판이 볼 판정을 주려했으나 거기에 배트가 나가서 뒤늦게 스트라이크 판정을 주었던 경우도 있었다.

8월 21일 두산전에서는 가르시아의 어깨통증 때문에 대타로 들어와서도 바운드 될 공을 그대로 적시타로 만들어버렸다.[5]

하지만 7월 20일 트레이드로 온 황재균이 장차 3루를 보고 이대호가 1루로 갈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앞으로의 출전 가능성이 어렵게 되고 있다. 물론, 올시즌 현재 성적이 바닥을 달리는 황재균이 작년 정도의 성적을 내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으니 가능성이 없는건 아닌 편.

후반기 들어서는 타격의 기복이 커진데다 황재균의 존재때문에 그다지 나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로이스터 감독의 지지속에 계속 나오고 있다. 거기에 타격감이 회복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도 타격 7관왕의 이대호를 3루로 보내고 주전 1루수로 쓸 생각이 있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2010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타율 0.257, 홈런 8, 타점 51, OPS 0.687을 기록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차전은 결장하고 2010년 10월 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 스코어 4:11로 팀이 지던 9회초 2사에 1번타자 김주찬의 대타로 출장하여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아웃되어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다.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3.1. 2010년 올스타 선발 논란

2009년의 활약이 먹힌 것인지 2010년 동군 올스타로 선발되었다.

당장 1군이라 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크게 모자란 타율과 OPS, 오랜 2군 생활로 1군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란 평이 대다수였기에 올스타 선발은 큰 논란이 되었으며 이는 KBO측의 집계 온라인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한 표 몰아주기란 설로 이어졌다. 다만 2위 삼성 라이온즈채태인과는 3000여 표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압도적인 몰아주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어뷰징을 했었다는 글이 올라왔었으나 확실한 근거라고 보기에는 무리. 당시 박동희 기자도 이에 관해 언급을 했었다.

우선 올스타 선발은 실력이 아니라 팬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의 능력과 경기 기록을 통해 올스타 자격을 논할 수는 없으나 2010년 동군 올스타 10명 중 8명이 롯데의 선수란 점이 부각되어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몰표를 통해 올스타에 덤으로 출전했단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2008년에도 성적이 매우 나쁜 마해영이 롯데의 이름으로 역시 올스타에 뽑힌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박종윤 선수 본인은 큰 심적 부담감을 겪고 있다고 하며 2010년 동군 올스타 선수의 대부분이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란 점과 맞물려 "자격 없는 놈이 몰표를 받아 올스타에 선발 되었다."란 소리를 들어 괴롭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롯데 전원 올스타전 출전 사태가 일어나며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4. 2011 시즌

시즌 시작전에 나온 기사가 틀린게 아닌지 2010시즌의 극단적인 어퍼스윙에 어느 정도의 레벨 스윙도 보였다. 시즌을 앞두고 배번 역시 33번에서 36번으로 바꿨다.

가르시아가 빠지면서 팀내에 쓸만한 좌타자가 없는 관계로 2010시즌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꾸준히 출장 하고 있다. 아이러니한건 본인의 타격 실력은 더 늘었는데도 이대호가 1루 수비를 맡게 되면서 이대호가 지명타자로 가끔 나올때 이외엔 대타로만 출격하는 상황으로 작년보다 기회는 더 줄었다.

그래도 나올때마다 쏠쏠하게 타점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더니, 5월 17일 SK전 2회에서 2사 주자 만루상황에서 상대투수 고효준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뽑아내었다!

새로 부임한 양승호감독이 이대호를 1루수로 쓰겠다고 함에 따라 11시즌에서의 입지가 위태롭게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기회에 외야전향이 어떻냐는 말도 나오는 중. 그리고 결국 외야겸업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더불어 극단적인 어퍼 스윙을 레벨스윙으로 바꾸기 위한 훈련도 하고 있다고 한다. '외야 겸업' 박종윤,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

그러나 결국 타격폼 수정은 포기하고 예전 그대로의 퍼올리는 스윙을 그대로 쓴다고 한다. 타격폼을 바꾼 뒤로는 낮은 공에 대해서조차 답이 없었던 듯. 관련기사 일단 이대호의 발목부상이 여전한 관계로 이대호가 지명으로 들어갈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다시금 기회는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5월 이후로 타격감이 살아올라 대타로 자주 출장하다가 6월 5일로 이대호를 3루수로 밀어내고, 주전 1루수를 차지하였다. 이대호, 홍성흔, 박종윤을 동시에 출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대호가 3루수로 출장하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 시즌초엔 홍성흔을 좌익수로 내보내는 방법까지 써봤지만 그 결과는...

7월 23일 기준 타율 0.273, 홈런 2, 타점 23, OPS 0.693로 주전 1루수로는 모자랄지 모르지만 백업 대타 요원으로서는 과할 정도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SK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 3, 5차전에 대타로 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 출루율 0. 제대로 롯데를 말아먹은 원흉이 되었다.

2011년에 타율 0.282, 홈런 2, 타점 29, OPS 0.675를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 3, 5차전에 대타로 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이대호가 NPB의 오릭스 버팔로즈로 떠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양승호 감독은 2012시즌에는 조성환과 박종윤을 1루수로 플래툰으로 번갈아가며 기용할 뜻을 밝혔다. 그리고 결국 이대호는 오릭스 버팔로즈로 떠났다.

2.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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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013 시즌

작년 준PO 3차전에서 보여준 맥아리없는 모습 때문인지 해가 바뀌어도 여론이 극히 좋지 않았다. 시범경기에서 주전 1루수로 낙점받았는지 많은 타석을 소화했는데 별반 나아진 게 없어서 시즌 전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점점 좋아졌던 김시진 감독에 대한 여론도 덩달아 깎여내려갈 정도로 팬들에 대한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

3월 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 6번타자 1루수로 출장하였다. 이 경기에서 여지없이 4회말에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기록였고 6회말 1사 만루에서 포수 파울 플라이로 공격의 맥을 끊으며 팬들의 허파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9회말 4:5로 뒤진 1사 만루에서 장성호가 좌익수 앞 안타로 동점이 된 기회를 이어받아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끝내기 결승타점을 올렸다. 그리고 이것은 프로야구 개막전 최초 굿바이 희비가 되었고 역사에 남게 되었다.[6] 덕택에 안타 하나 없이 아이 러브 베이스볼 일일 MVP가 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다음날도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밥상이 차려질 때마다 타석에서서 그걸 또 모조리 말아먹었다. 이대수가 박종윤이 쳐 올린 뜬공처리 삽질만 아니었으면 또 밥상을 완전히 엎어질 뻔했고, 역전승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뒤지게 까였다.

4월 2일, 시즌 전부터 롯팬들의 어그로를 끈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역시나 선발로 출전해서 2회초 첫번째 밥상이 차려진 상황에서 타석에 섰다. 진루타만 쳐줘도 절을 해야할 상황에서 이번엔 번트뜬공 병살로 말아먹다가, 7회초 무사 3루에서 2점 홈런[7], 8회초 2사 3루에서 1타점 안타를 기록하여 3타점을 기록하며 롯빠들을 지옥과 천당으로 들었다놨다 하면서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4월 4일 경기에서는 왼쪽 정강이에 사구를 맞았는데, 수비 중에 같은 위치에 충격을 받으면서 고통을 호소, 교체되었다. 인근 병원으로 가서 X레이 촬영을 했다고 한다. TV를 통해 환부가 제법 많이 부은 것으로 보였으나, 경기 후 김시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큰 부상은 아닐 것으로 보이며 이튿날까지 경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한다.

이후 타격부진에 시달리고 김대우가 4번 지명타자를 맡게 되고 장성호가 1루를 맡게 되면서 주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지만...

4월 24일, SK전에서 6:7로 뒤진 8회말 1사 1,2루에서 대타로 등장. 여지없이 몸쪽 낮은볼을 당겨쳐서 1루선상을 빠져나가는 2타점 3루타를 기록, 8:7 역전승에 공헌했고, 25일 경기에서는 5:0으로 앞선 8회말에 2사 1,3루에서 또 대타로 출장하여 SK 와이번스의 이재영을 상대로 1타점 좌전안타를 기록하였다. 최악인 팀 분위기를 추스려야 하는 중요한 경기에서 알토란 활약을 해주며 팬들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그 뒤 별 활약이 없다가 5월 18일 SK전에서 또 2안타 2타점이라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진짜 SK에게는 뭔가 있는듯.

6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김병현을 상대로 선제 쓰리런을 작렬시켰다. 곧 동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대타 박준서의 적시타로 6:3으로 승리했다.

7월 24일, 김시진 감독은 타격 부진을 이유로 정태승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였다. 2명을 대신해 강영식김수완을 1군으로 등록시켰다.

8월 6일, 김시진 감독은 다시 박종윤을 조홍석과 함께 1군에 다시 올렸다. 김시진 감독은 잘치는 타자들을 4번에 올리면 이상하게 못한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박종윤을 4번에 쓰겠다고 하였다.

8월 30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송창현을 상대로 3:0으로 뒤지던 경기를 3회말 2사만루 볼카운트 1볼에서 친 타구가 담장을 넘겨버리며역전 만루홈런을 만들어냈다. 이 홈런이 결승점이 되었고 롯데로써는 2013시즌 첫 만루포로 기록되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박종윤이 좋아하는 낮은 볼이 아닌 높은 공을 받아쳐서 만든 홈런이라는 점.

시즌 최종적으로는 1루수나 지명타자, 4번 타자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스탯인 7홈런 42타점을 기록했다.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루율. 0.298의 출루율은 타격이 중요한 1루수에게는 허용될 수 없는 성적인데다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뒤에서 2위이다. 꼴찌인 NC의 권희동은 2군도 경험하지 않은[8] 대졸 신인이었다. 박종윤의 13시즌 sWAR은 0.08로, 1루수 주전 중 최하급.

결국 2013년 11월 17일, 한 때는 같은 팀 소속이었던 최준석[9]을 FA로 영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이대호 있던 시절의 역할인 백업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상황... 여기에 루이스 히메네스까지 들어온 바람에 안 그대로 만석이던 1루 자리는 더더욱 없어졌다. 경찰청에서 2군을 초토화시킨 장성우도 백업 포수와 함께 지명타자 출장까지 함께 노릴 가능성이 있고, 지난 시즌 초 반짝 선전한 김대우도 여전히 좌익수와 지명타자 자리를 노릴 것이기 때문에 1루수 자리 확보가 더욱 힘들다. 그래도 박종윤도 경쟁력이 없진 않은 것이, SK 와이번스에게는 강한 모습을 2013년에도 어김없이 보여줬기 때문에 SK전 한정으로는 자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담으로, NC 다이노스에게도 나름 강한 면을 보이긴 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골프스윙이 잠수함 투수에게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10] 이재학, 우규민, 이태양, 김병현 등 신기하게도 잠수함 선발이 꽤 나타난 2013시즌의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그는 백업 1루수 겸 좌타 대타로서 유용한 존재이다.

2.7. 2014 시즌

시범경기에서조차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며 선발 라인업에서 볼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의 부상공백으로 인해 3년 연속 개막전 1루수로 출장했다. 타순도 무려 5번. 그런데 정작 본 시즌에서 사직구장 첫 홈런을 터뜨리고 개막 4경기 4-5-6을 찍으며 황재균과 함께 공수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한 달씩 중심타자급 성적을 찍고도 시즌을 말아먹어 온 박종윤이라 팬들의 기대치는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일단 잘 해주면 고맙다. 김시진 감독이 복귀를 준비중인 히메네스와 비교하면서 고민을 할정도. 히메네스 복귀 이후에도 최준석과 플래툰으로 출장하고 있으면서도 주전 1루수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4월 중순까지의 평가.

4월 말부터 최준석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1할대 타격을 치니까 당연히 주전 1루수로 낙점이 확정됐다. 5월 8일 기준으로 규정타석에 약간 못미치는 타석으로 타율이 0.367이다. 장타율은 5할 9푼대. 이쯤 되다보면 최준석의 용도가 박종윤의 액막이라는 썰까지 나올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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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손석히 트리오는 용도폐기되고 요새 꼴빠들 사이에는 손히팡으로 클린업이 뇌리에 박혀버렸다.

6월에 접어든 현재도 꾸준히 타격감을 유지하는 중...인 줄 알았는데 조금씩 타율이 떨어지면서 이제 0.315까지 내려왔다. 아마도 좌익수 수비 연습을 병행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6월 11일 경기에서 좌익수 선발출장을 했다. 역시 펜스플레이나 어깨면에서는 약점을 보였지만, 좌익수 출장한 경기에서는 2008시즌 김주찬 보는 느낌으로 보면 될 듯. 그리고 최준석이 임종혁으로 교체된 이후 1루 자리로 돌아가 8회, 강영식을 구하는 엄청난 수비를 선보였다!

이후로도 계속 타격감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구멍이던 12, 13시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 한번 타격감이 죽으면 컨택과 선구안이 동시에 수직낙하하던 과거와 달리 감이 떨어져도 스스로 회복하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2년간 그를 불신해왔던 롯데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있다. 6월 19일 NC전에서는 역전 결승 3점홈런을 때려내 시리즈 스윕을 당할 위기에 빠졌던 팀을 구해냈다.

그리고 최준석이 6월 무섭게 부활한 데 이어 박종윤 본인이 생존을 위해 좌익수 옵션을 추가하면서 꿈의 손석히팡 클린업이 완성되었다.[11] 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께가 약해 좌익수를 보지 않는 것도 있지만[12] 이전까지는 굳이 좌익수 포지션까지 주어가며 타자 박종윤을 기용할 필요가 없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

6월 28일 NC전에서 3회초 무사 만루에서 이종욱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서 병살타로 연결시킨 1루 수비를 보여주었고, 이는 그대로 팀 승리의 밑바탕이 되었다. 여기에 6회말 2사 2루에서 1타점 2루타를 기록한 것은 덤. 급기야 골키퍼에 빗대서 기사가 나왔을 정도.[13] 그리고 그 베플은... 정성룡 보고있나... 다만 방송사 인터뷰는 인터뷰 이후 부진하다는 징크스 때문에 사양했다. 인터뷰는 시즌후에 하겠다고 밝혔었다.

결론적으로 3~4월에만 잘하다 나중에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이전 모습과는 달리 손아섭을 이어 꾸준히 안타와 타점을 생산하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09, 7홈런, 73타점, 장타율 0.445, 출루율 0.343, OPS 0.788을 기록하면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타고투저 탓에 포지션에 비해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다. 단적으로 데이터만 봐도, 박종윤의 시즌 sWAR은 1.19으로, 리그 성향을 고려하면 2012년과 큰 차이 없는 성적이고 나름대로 자신의 커리어하이였는데도 주전으로서 부족한 성적이다. [14] 시즌 초반의 페이스에 비해서도 약간 아쉬운 면은 있다. 그러나 좌익수 겸업과 힘든 주전경쟁을 이겨낸 시즌이었고,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닌 상황에서 30대에 접어든 타자가 생애 첫 풀타임 3할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1월 4일자 박동희의 야구탐사에서는 박종윤의 출전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즉, 출전 기회도 줄었는데 어찌어찌 선발 자리를 지키고 3할을 지켜낸 셈이다.

2.8.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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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와 역대급 막상 막하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해 박종윤이 300타석 출전한 1루수 중 WRC+가 프로야구 역사상 최하위(!!)였다. [15] 경악스럽게도 이런 선수의 대체제가 없어서 기용되었으나 이종운한테도 후반기에는 신임을 잃었는지 대타 자리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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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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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1군에서 김상호와 플래툰으로 나오며 조원우 역시 박종윤을 버리지 못했다고 욕을 먹었다. 다만 출전한 경기 수는 2009년 이후로, 타석 수는 2011년 이후로 가장 적었고, 경쟁자였던 김상호가 다음 시즌 박종윤과 판박이인 성적을 찍으면서 조원우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었다.

2.10. 2017 시즌

이대호가 마침내 복귀하면서 롯데 팬들은 드디어 쫓아낼 수 있겠다고 좋아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호라는 확실 한 1루 자원이 왔음에도 일반인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다. 대신 애리조나로 안 가고 대만으로 갔다.

2군에서도 김상호 등에게 밀려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아마 이번 시즌 종료 후 방출되거나 손용석처럼 은퇴할 듯하다.

그런데 7월 현재 정작 이대호도 150억 먹튀 모드로 가고 있는 데다가, 김상호가 대타로서 완전히 죽을 쒀버리면서 사실상 반 강제로라도 올라올 가능성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대호가 8월부터 부활의 조짐이 보여서 이게 완전히 부활된 거면 보기 힘들 듯하다. 올라올 가능성이 7월보단 조금 낮아질 듯...

결국 이번 시즌은 이대호가 부활하면 1군에서 보기 힘들고 부상이라던가 먹튀로 가게 된다면 올라올 가능성은 많다.

그 이후 8월부터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두 타선에서 아주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번시즌 몇 달도 남지 않았으니 사실상 1군에 올라오기는 요원해진 듯. 황진수가 콜업되면서 빈자리가 된 2군 1루수 자리마저 육성선수인 최승훈에게 밀렸다. 5월 18일 이후 2군 출장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2017시즌 롯데 구상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는 셈.

9월 1일 시행된 확대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하면서 2017시즌은 아주 큰 이변이 없는 한 1군에 진입할 일이 없어졌고, 결국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군 경기에서 나오지 못하는 건 여전한 데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즌에서 줄부상이 이어진다고 한들 김민수, 이재욱, 이석훈, 홍지훈 등 신인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확률이 매우 크다. 롯데가 미친 듯한 후반기를 보내면서 조원우 감독의 유임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으며, 유임된 [조원우]] 감독이 선수 기용 방침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롯데에서의 선수 박종윤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11월 14일에 정말 오랜만에 근황이 공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아직 은퇴를 고려하지는 않는 듯 하다.기사 물론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면 다른 팀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2017년 11월 25일 강영식, 이재곤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000>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sWAR
2001 롯데 1군 기록 없음
2002 10 29 .241 7 1 0 0 5 2 0 1 11 .258 .276 38.9 -0.08
<rowcolor=#fff>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wRC+ sWAR
2003 롯데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
2005 6 7 .000 0 0 0 0 0 1 0 0 2 .125 .000 -68.3 -0.12
2006 1군 기록 없음
2007 8 9 .222 2 1 1 0 1 1 0 0 1 .222 .556 103.5 0.05
2008 15 34 .206 7 1 0 2 4 5 0 0 11 .229 .412 68.1 -0.03
2009 47 123 .260 32 8 1 2 19 9 0 3 23 .306 .390 72.3 -0.16
2010 110 307 .257 79 17 2 8 51 32 5 10 49 .284 .404 77.6 -0.05
2011 111 149 .282 42 7 0 2 29 24 3 7 27 .306 .369 80.8 0.07
2012 121 416 .257 107 19 4 9 47 41 5 22 64 .302 .387 88.5 0.72
2013 115 381 .255 97 24 2 7 58 37 4 21 56 .298 .383 78.4 0.08
2014 123 440 .309 136 31 4 7 73 59 0 22 65 .343 .445 92.7 1.12
2015 98 314 .255 80 11 3 4 28 29 0 7 38 .277 .347 54.0 -1.23
2016 73 195 .282 55 5 1 1 17 24 3 10 25 .322 .333 64.6 -0.51
2017 1군 기록 없음
<rowcolor=#373a3c> KBO 통산
(12시즌)
837 2404 .268 644 125 18 42 332 264 20 103 372 .303 .387 77.6 -0.16

[1] 출처: 포토로[2] 입대 동기들이 조동화, 박재상, 이성우, 오윤이다.[3] 정작 박종윤도 투수 출신이지만 타자로 빠르게 전향을 했기 때문에 수비가 뛰어났다.[4] 하지만 이건 박종윤의 존재때문이라기보다는 쓸만한 3루수의 공백때문에 그나마 3루 수비가 나은 이대호가 들어간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대호 외의 3루수들은 타격, 수비 모두 불합격, 김주찬의 경우에도 1루수보다는 그나마 중견수가 나은편.[5] 두산전에서의 모습만 본다면 이전과는 달리 어느정도 선구안이라든가 스윙의 메커니즘에 변화가 있는 듯.[6] 물론 끝내기 자체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절대 폄하해선 안 된다. 국가대표 타자들도 끝내기 찬스를 놓치는게 수두룩한 스포츠가 야구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홈 개막전이다.[7] 낮게 던졌는데 그걸 퍼올려서 홈런. 역시 이 문서 맨 위의 이미지를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8] 그리고 권희동은 저조한 타율과 출루율에도 불구하고 15홈런과 높은 순장타율을 기록했다. NC의 얇았던 선수층과 앞으로 성장 기대치를 감안하면 이해 못할 기용이 아니다. 즉 당장 주전 1루수 급의 성적을 내줘야 하는 박종윤과 처지가 다르다.[9] 게다가 이 둘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10] 그런데 2013년 스윙을 고치다 좌완 우완 사이드암 상대 성적이 비슷비슷해져 버렸다.[11] 박흥식 코치는 히메네스-최준석-박종윤 클린업이 완성되면 손아섭-정훈 테이블세터로 지그재그 타선을 구축하는 것 또한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12]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좌익수로 전향한 김응국도 어께가 약했다.[13] 이 경기 며칠 전에 홍명보호는 알제리에게 처참하게 박살났고 정성룡은 SNS에 퐈이야드립을 쳐서 팬심이 대폭발했다.[14] 스탯티즈 WAR은 타격이 포지션 대비 리그 평균정도면 WAR 2~2.5 정도를 부여받는다. 팬그래프나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평균급 선수의 WAR을 2를 부여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스탯티즈에서 풀타임 0WAR을 기록한 선수는 대체선수급도 안 되며 아니라 지금 당장 팀에서 쫓아내야 하는 수준의 선수라는 소리이다. 물론 포구를 잘 하는만큼 수비에서 어느정도 WAR을 벌겠지만 타격만 보면 이 시즌 박종윤은 그냥 대체선수급이라는 뜻. 물론 타고투저를 감안해도 wRC+가 90을 넘는 등 여전히 주전급은 아니지만 여타 시즌보다는 확실히 세이버 상으로도 나은 모습이었다.[15] 사실은 권두조에 이은 뒤에서 2위로 나와 있는데, 권두조의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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