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01:02:56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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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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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축구 감독
파일:Pierre Littbarski.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Pierre Littbarski
본명 피에르 미하엘 리트바르스키
Pierre Michael Littbarski
출생 1960년 4월 16일([age(1960-04-16)]세)
서독베를린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68cm | 체중 64kg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1. FC 쾰른 (1978~1986)
RC 파리 (1986~1987)
1. FC 쾰른 (1987~1993)
제프 유나이티드 (1993~1994)
브란멜 센다이 (1996~1997)
감독 요코하마 FC (1999~2000)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1 / 수석 코치)
요코하마 FC (2003~2004)
시드니 FC (2005~2006)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7~2008)
사이파 FC (2008)
FC 파두츠 (2008~2010)
VfL 볼프스부르크 (2010~2012 / 수석 코치)
VfL 볼프스부르크 (2011 / 감독 대행)
국가대표 73경기 18골 (서독 / 1981~1990)
가족 아들 루시엔 리트바르스키[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7.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로, 1980년대 서독 대표팀의 주전 선수이자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베를린에 위치한 헤르타 첼렌도르프라는 클럽에서 뛰다가 1978년에 1. FC 쾰른으로 스카웃되었고, 1군으로 데뷔했다. 1979/80 시즌부터 주전으로 발돋움했는데 주포지션은 라이트윙이지만 레프트윙과 공격수로도 뛰었고, 뛰어난 드리블링과 탁월한 슈팅을 선보여 분데스리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았다. 1983년에 DFB-포칼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했고, 1985년에는 ARD가 선정하는 올해의 골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잠깐 뛰다가 쾰른으로 컴백했는데, 이때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새로운 전성기를 보내긴 했으나 끝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지는 못했다.

과거 쾰른 시절 동료였던 오쿠데라 야스히코의 도움을 받아 1993년 J리그가 출범하면서 오쿠데라가 있는 제프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말년을 일본에서 보냈다. 1995년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가 1년 만에 번복했고, 1997년을 센다이를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완전히 벗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81년 10월에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데뷔하여 곧바로 국가대표팀의 주전선수로 자리잡았고,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전경기 출장하고 2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으나 팀은 이탈리아에게 3:1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파일:슈틸리케_리트바르스키.png
슈틸리케를 위로하는 리트바르스키[2]
이후 꾸준히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UEFA 유로 19841986 멕시코 월드컵, UEFA 유로 1988,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내리 참가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는 주전으로 뛰다 토너먼트가 진행되면서 벤치로 밀렸는데, 반대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토너먼트에서 중용받았고, 마침내 결승전에서 주전으로 뛰며 우승을 경험했다.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했다.
파일:리트바르스키_마테우스.png
마테우스와 함께 월드컵 우승을 자축하는 리트바르스키

3. 플레이 스타일

리트바르스키는 독일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불릴정도로 드리블 실력이 뛰어났으며, 프리킥페널티 킥도 잘 찼으며, 윙어로서 필수적인 능력인 크로스 능력도 뛰어났다.

4. 지도자 경력

선수 커리어와는 달리 감독으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유일한 업적은 시드니 FC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우승한 것인데, 급료 문제로 사임하였고 이후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후에 VfL 볼프스부르크의 수석코치로 재임하다 임시감독을 맡았는데, 이 역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 시드니 명예의 전당: 2015

6. 여담

  • 특이하게 이름이 프랑스식인데, 본인피셜 부모님이 프랑스를 좋아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7. 같이 보기

1 슈마허 · 2 브리겔 · 3 브레메 · 4 푀르스터 · 5 헤르게트 · 6 에더 · 7 리트바르스키 · 8 마테우스 · 9 푈러
10 마가트 · 11 루메니게 · 12 슈타인 · 13 알괴버 · 14 베르톨트 · 15 아우겐탈러 · 16 · 17 야콥스
18 · 19 알로프스 · 20 회네스 · 21 롤프 · 22 임멜
파일:독일 국기.svg 프란츠 베켄바워

1 일그너 · 2 로이터 · 3 브레메 · 4 콜러 · 5 아우겐탈러 · 6 부흐발트 · 7 리트바르스키 · 8 헤슬러 · 9 푈러
10 마테우스 · 11 · 12 아우만 · 13 리들레 · 14 베르톨트 · 15 바인 · 16 슈타이너 · 17 묄러
18 클린스만 · 19 플뤼글러 · 20 · 21 헤르만 · 22 쾨프케
파일:독일 국기.svg 프란츠 베켄바워


[1] 아들의 국적은 일본이다.[2] 프랑스를 상대한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전에서의 사진이다. 당시 슈틸리케는 3번째 키커로 나와 승부차기를 실축했지만 그래도 팀은 승리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