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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독립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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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볼셰비키와의 전쟁 (1918년 12월~1919년 8월)3. 베르몬트군과의 전쟁 (1919년 6~12월)4. 폴란드와의 전쟁 (1919년 5월~1920년 11월)


영어: Lithuanian Wars of Independence
리투아니아어: Laisvės kovos[1]

1. 개요

리투아니아 독립전쟁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이 싸운 세 차례의 전쟁을 일컫는다. 1918년에서 1920년 사이 벌어졌으며 첫번째는 볼셰비키 침공군과, 두번째는 베르몬트군[2],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란드군이다.

2. 볼셰비키와의 전쟁 (1918년 12월~1919년 8월)

폴란드 분할로 러시아 제국령에 속했던 리투아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에게 전 영역이 점령되었다.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 국가평의회(Lietuvos Taryba)는 독일과 러시아에 모두 독립을 선포했다. 3주 후 볼셰비키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조인하여 리투아니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했다. 얼마 안가 독일도 서부전선에서 패배하여 리투아니아는 완전히 독립을 쟁취했다. 독일군은 리투아니아에서 물러났지만 동쪽의 볼셰비키와 남쪽의 폴란드가 독일군의 빈자리를 노렸다. 12월 16일에는 리투아니아 공산당이 볼셰비키의 괴뢰정권인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3]

볼셰비키의 서부전선군은 후퇴하는 독일군으로부터 10~15km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다급하게 병력을 모으는 한편 독일로부터 군사원조를 받아냈다.[4] 1918년 12월 12일 리투아니아 동부에 도착한 서부전선군 병력은 3개 사단 1만 8천~2만 명이었다. 그 가운데 리투아니아인은 5천명이었다. 당시 리투아니아군의 병력은 3천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훈련되지 않은 지원병들뿐이었다. 서부전선군은 22일 자라세이와 슈벤치오니스, 23일 우테나, 27일 로키슈키스를 점령했다. 이듬해 1919년 1월 5일에는 수도 빌뉴스, 9일 우크메르게와 파네베지스, 15일 셰울레이, 25일 텔셰이를 추가로 점령했다.[5] 이때까지 붉은 군대가 점령한 리투아니아 영토는 전체의 2/3에 달했다. 전선은 라트비아군과 독일인 부대가 벤타 강에서 붉은 군대를 막아선 후에야 안정화되었다. 독일은 후퇴하는 자국군과 볼셰비키 간의 전투를 막기 위해 1월 18일 협정을 체결하여 일시적인 휴전선을 긋고 카우나스에 대한 공격을 금지했다.

물론 볼셰비키는 협정을 지킬 생각은 딱히 없었고 2월 7일 중부 카우나스에 대한 공세를 개시했다. 붉은 군대는 카우나스의 북쪽과 남쪽으로 진격하여 도시를 포위, 점령할 계획이었으나 리투아니아군과 독일군의 격렬한 반격으로 15일 실패로 돌아갔다. 볼셰비키의 공세에 경악한 독일은 샤울레이 여단(Brigade Schaulen)을 파병하였다. 그달 말 리투아니아군과 독일인 부대는 반격을 개시하여 3월 중순까지 북서부 샤울레이, 셰두바, 요니슈키스 등을 해방시켰다.

남부에서도 3월에 개시된 폴란드군의 반격 공세에 호응하여 4월 초 리투아니아군의 반격이 개시되었다. 폴란드군은 4월 21일 빌뉴스를 해방시켰다. 폴란드군은 붉은군대를 두들겨 패 동쪽으로 밀어붙였고 리투아니아와 볼셰비키 간의 전선은 매우 줄어들었다. 즉 리투아니아에 대한 볼셰비키의 위협은 줄어든 반면에 폴란드의 위협은 오히려 증가했다. 볼셰비키는 폴란드 전선에서 리투아니아의 지원을 얻을 목적으로 1920년 7월 12일 리투아니아와 강화조약을 체결하여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리투아니아 점령의 꿈은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으며, 7월 14일 빌뉴스를 재점령한 후에도 리투아니아로 반환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리투아니아 점령을 다시 한번 획책했다. 볼셰비키는 8월 바르샤바 전투에서 옥수수가 털린 후에야 빌뉴스를 리투아니아에 양도했다.

3. 베르몬트군과의 전쟁 (1919년 6~12월)

서러시아 의용군(베르몬트군)은 독일계 러시아인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에 잡혔던 러시아 제국군의 반공 포로들이 세운 군대로 볼셰비키 세력에 반대하여 볼셰비키와 싸우는, 그리고 알렉산드르 콜차크 러시아국을 포함한 백군과 연계하고자 하던 조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독일에 빼앗겼던 구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되찾는데 더 주력하였고 라트비아에서 신생 라트비아 제1공화국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전까지는 라트비아에서 주로 활동하던 베르몬트군은 1919년 6월을 기점으로 리투아니아로 넘어오게 된다. 베르몬트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기 시작할 당시 리투아니아는 볼셰비키와의 전쟁에 바쁘던 와중이라 외교적 반발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10월 경이 되어 베르몬트군이 샤울레이를 비롯한 서부 리투아니아 상당수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강제하는 등의 강압적인 통치를 펼치자 지역 빨치산과 연계하여 11월 경 주요 승리를 거뒀다. 또한 베르몬트군도 서방 연합군의 압력으로 철수하기 시작하여 12월이 돼서는 베르몬트군은 리투아니아를 완전히 떠나게 되고 리투아니아는 베르몬트군에 대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4. 폴란드와의 전쟁 (1919년 5월~1920년 11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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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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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는 리투아니아의 독립 당시 폴란드인과 아슈케나짐 유대인이 다수가 된 상태였는데 이를 빌미로 폴란드가 리투아니아를 침공, 그후 국제연맹의 중재로 물러나게 된 이후 젤리고프스키의 반란을 앞세워 괴뢰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을 수립하고 임시수도 카우나스까지 진격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일컫는다.

폴란드와의 전쟁으로 리투아니아는 빌뉴스를 잃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되찾지 못하게 된다.


[1] 직역하면 "자유 투쟁"[2] 영문명칭은 Bermontians, 정식 명칭은 서러시아 의용군이다. 베르몬트군이라는 별명은 지휘관인 파벨 베르몬트아발로프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라트비아 독립 전쟁과 리투아니아 독립 전쟁에서 싸웠다.[3] 1919년 2월 27일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병합됨.[4] 주로 작센 지방에서 많이 왔기 때문에 독일인 지원병을 '작센 지원병'이라 부르기도 한다.[5] 빌뉴스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현지 폴란드인 민병대와 서부전선군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