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의 역사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373a3c>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 현대 | |||||||
발트족 | 폴란드 왕국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폴란드 분할 | 러시아 제국 | 독일국 | 근대 왕국 | 제1공화국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 <colbgcolor=#7b383b> 소련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 소련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 제2공화국 | |
중세 대공국 | 나치 독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 리투아니아 임시정부 |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Lietuvos Tarybų Socialistinė Respublika Литов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 |||||
국기 | 국장 | ||||
1918년 12월 16일 ~ 1919년 2월 27일 | |||||
수도 | 카우나스 | ||||
언어 | 리투아니아어, 러시아어 | ||||
정치체제 | 사회주의 | ||||
역사 | • 건국: 1918년 12월 16일 • 멸망: 1919년 2월 27일 |
지도 | |
검은색 테두리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이다. | |
1. 개요
1918년 12월 16일 빈카스 미케비치우스-카프수카스가 이끄는 임시 혁명 정부에 의해 선포되었다. 이후, 1919년 2월 27일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과 합병하여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되었다.2. 1차대전의 종결, 소비에트 러시아의 서부 공세
독일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했고 콩피에뉴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그 후 독일군은 발트3국 인근 영토에서 후퇴하기 시작했고, 이틀 후, 러시아 SFSR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보장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했다.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개시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확산시키고 친소련 공화국을 건국했다.3. 건국
정부는 12월 16일자로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는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러시아 신문에 처음 발표되었고, 그 후 라디오에서도 발표되었다. 이후, 12월 22일 정식으로 독립국으로 인정받았다.4. 독일군의 공세와,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과 연합
1919년 2월 8일부터 15일까지 리투아니아와 독일 의용군은 러시아 SFSR의 진격을 저지하고 리투아니아의 임시 수도 카우나스를 점령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 후, 2월 말 독일군은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북부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독일군의 공세와 지역 주민들의 지지가 떨어지자, 소비에트 러시아는 약한 리투아니아와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합병하기로 결정했다.1920년 7월 14일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러시아는 빌뉴스를 점령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이틀 전에 서명한 소비에트 러시아-리투아니아 평화 조약에 따라 도시를 리투아니아 행정부에 양도하지 않았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벨로루시 공화국과 같이 리투아니아 정부를 전복하고 소비에트 공화국을 재건하기 위한 쿠데타를 계획했다. 그러나 바르샤바 전투에서 패배하고 폴란드군에게 대패하여 후퇴했다. 후퇴 후, 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과 연합하여 리투아니아-벨로루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