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학에 입학하는 학부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이 수업하는 캠퍼스. 이학부 수학과, 후기 교양학부, PEAK 학생들은 3~4학년(후기과정)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게 된다. 대학원으로는 종합문화연구과, 수리과학연구과 등이 위치하여 있다.
3번째로 면적이 넓은 캠퍼스이며, 약 8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코마바 I 캠퍼스, 코마바 II 캠퍼스, 코마바 III 캠퍼스로 나뉘어 있지만 사실 학교 학생이 아닌 이상 코마바 제1,2,3캠퍼스가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보통 그냥 코마바 캠퍼스로 부른다.
고마바 캠퍼스는 전통적으로 “고마바노” 라 불렸는데, 18세기 초에도 막부의 여덟 번째 쇼군 때부터 이 장소는 한동안 쇼군 가문의 수렵장으로 쓰였다. 이 시기에 캠퍼스의 한 부분은 허브 정원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수렵장의 크기는 50 헥타르에 달했는데, 그 범위는 오늘날 코마바 공원과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면적을 포함했다.
1학년과 2학년이 있는 캠퍼스 답게, 동아리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신입생을 맞는 4월이 되면 100개가 넘는 동아리가 일제히 광고간판과, 신입부원을 맞기 위한 텐트열이 전개되는데 상당한 장관이다. 입학수속을 마친 신입생이 정신없이 선배의 권유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어느샌가 손에는 가입권유 광고지가 수백장이 들린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도쿄대학과 도쿄공업대학의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가 있으나, 월 40,000엔이 넘는 방세와 1년의 입거제한이 있다.
코마바 제1캠퍼스는 원래 농학부의 전신인 코마바농학교[3]가 있던 자리이다. 1935년에 코바마농학교는 구제 제1고등학교와 교지를 1대1 교환하여 현재의 교양학부의 전신이 되었다.[4]
교양학부 1호관: 주로 외국어 강의가 행해지는 건물. 이 1호관의 건물이 코마바캠퍼스의 상징이다. 신칸기에는 서클부스와 홍보 포스터로 가득 찬다. 3층에는 학생 상담실이 있고, 뒷편에는 생협 편의점이 있어서 수업이 많은 학생들이 애용하는데, 3시면 가차없이 닫아버린다.
5호관: 수리물리강의와 외국어 강의, 교양강의가 주로 행해진다.
6호관: 이과 학생들을 위한 물리, 화학, 생물실험 설비가 갖추어진 실험동이었다. 이 곳에서 매년 2천명의 학생이 실험을 했었다.[5]
7호관: 수학강의와 교양강의가 주로 행해지는 건물이다.
8호관: 여러가지 교양강의가 행해지며, 배리어 프리 기구가 설치되어있다.
강당(900번): 넉넉히 천명은 들어갈 수 있는 큰 강당이다. 한 번에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신청한 강의는 보통 이 곳에서 열린다. 입학 최종수속시의 집합장로도 사용된다.
학제교류동: 흔히 어드미니스트레이션동, 아도미로 더 잘 알려진 건물이다. 학생지원기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유학생은 여러가지 일로 숱하게 가야하는 건물.
10호관: 외국어 교육만을 위한 동이다. 1호관과는 다르게 시청각 설비가 전 교실에 갖추어져 있다.
11호관: 외국어 강의와 교양강의가 열리는 건물이다. 11호관이라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지만, 꽤나 낡았다.
12호관: 평범한 강의가 열리는 건물이다.
13호관: 12호관과 세트메뉴다.
정보교육동: 1학년들을 위한 기초정보실습과, 공대생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의 모든 컴퓨터는 아이맥이다...[6]
15호관: 작은 실험실과 부속 도서관이 있다.
16호관: 학부생에게는 레포트를 내러 가는 곳 이상의 의미는 없다. 대학원생들의 연구실로 주로 쓰인다.
17호관: PEAK 학생들이 쓰는 교실이다.
21KOMCEE: 코무씨로 알려진 교실이다. WEST와 EAST가 있으며, EAST에는 이과 학부생은 강제로 하여야 하는 물리, 화학, 생물 등의 실험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커뮤니케이션 플라자: 북관과 남관이 나누어져 있다. 북관과 남관, 그리고 도서관이 ㄷ자 형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남관은 생협학식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1층과 2층이 있으며, 2층이 약간 고급스럽지만 더 비싸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이 곳에서도 자주 개최한다. 층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신입생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면서 홍보를 한다. 북관의 경우 1층에는 생협과, 서점으로 쓰인다. 2층과 3층의 경우 다목적실과, 음악실이 있는데, 사전신청을 하면 얼마든지 이용 할 수 있다. 춤 동아리나 음악동아리들이 자주 쓴다. 방음시설과 악기 설비가 매우 훌륭하다.
도서관: 코마바 캠퍼스의 도서관이다. 4층의 건물이며, 건물 외양이 세련되었다.[7] 시험기간에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며, 가끔 동네 주민이나, 지역 고교생이 방문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입장시에는 학생증이 필요하므로 이외에는 카운터에 문의해야한다.
체육시설: 제1체육관, 제2체육관, 제1그라운드(축구, 야구, 육상) 과 제2그라운드(럭비), 야구장, 궁도장, 테니스코트가 있으며, 트레이닝을 위한 헬스장도 갖추어져 있다. 다만 샤워장의 상태는 영 아니다. 궁도장은 최근에 다른 곳으로 분리되었다.
보건센터: 정보교육동 옆에 있으며, 대학 보건센터가 엑스레이를 보유하고있다. 돈을 받는데, 꽤나 비싸며 학생에게도 가차없다.
학부 교육이 이루어지는 코마바I 캠퍼스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 이 곳은 학제 연구를 위한 캠퍼스로, 생산기술 연구소가 위치하여 있다. 대학 부속 연구소로는 일본 최대 규모로, 전세계로 쳐도 굴지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8]
생산기술연구소는 원래 치바시에 설립된 도쿄제국대학 제2공학부가 전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물성연구소[9]와 함께 도쿄대학 롯폰기 캠퍼스로 이전했고, 2001년에 현재 부지로 본부를 이전했다. 치바시에 남겨진 부지는 치바대학의 본부인 니시치바 캠퍼스가 되었다. 참고로 당시 생산기술연구소의 일부 대규모실험시설은 치바시에 남겨졌지만, 후에 생산기술연구소 대규모실험 고도해석 추진기반으로서 도쿄대학 카시와 캠퍼스로 이전하게 된다.
공학계연구과, 이학계연구과,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정보이공학계연구과, 종합문화연구과, 의학계연구과, 농학생명과학연구과, 학제정보학부 등의 전공 과목 일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연구소와 연구센터 및 대학원 등이 존재하는 연구 중점 캠퍼스. 신영역창성과학연구과, 이학계연구과, 공학계연구과의 일부 연구실 및 과학계 연구소가 밀집되어 있다. 다만 이곳에 거점을 두는 이학부와 공학부 등의 연구실도 있기 때문에, 학부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졸업논문 연구를 위해 카시와 캠퍼스에 상주하는 4학년 학부생들도 있다.
두번째로 넓은 캠퍼스이며, 구역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누어져 있어 각각 카시와 캠퍼스, 카시와II 캠퍼스, 카시와노하에키마에 캠퍼스라고 한다. 혼고 캠퍼스까지는 예약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으며, 카시와노하 캠퍼스역에서 캠퍼스까지도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1999년에 조성한 캠퍼스로, 원래는 미군 카시와통신소가 있던 부지였다. 1995년과 1998년에 걸쳐서 도쿄대학은 카시와노하 공원 인근의 토지와 치바현 카시와 북부 지역 인근 토지를 획득했다. 당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연구소들을 여기로 모았고, 또한 점점 부지가 모자라게 된 혼고 및 코마바 캠퍼스에서 일부 연구 센터와 대학원 연구과 등의 연구기관을 카시와 캠퍼스로 이전하게 된다.
산학관 제휴를 목표로 하는 퓨처 센터 추진 기구가 위치하여 있다. 이 기구는 시민의 요망에 대해서 현지의 기업이 응하며 대기업과 대학에 연결해, 신기술의 사업화 전개를 도모하는 새로운 모델을 구축해, 여러 과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 애초에 이 곳이 카시와노하 캠퍼스역을 중심으로 국제학술도시를 목표로 한 카시와노하 국제 캠퍼스타운 구상이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다.
[1]한국어 지도 사진[2] 통칭 츠쿠코마[3] 일본의 근대농학의 발전에 기여한 두 학교(삿포로농학교, 코마바농학교) 중 하나로, 미국의 농업을 배우던 삿포로농학교와 다르게 코마바농학교는 독일의 농업을 배우던 곳이었다.[4] 현재도 수리물리과학동 앞과, 1호관과 정보교육동 사이에서 그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캠퍼스 내 건물들의 일부가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5] 현재는 콤씨 이스트에 새 실험실이 설치되었다.[6] 굳이 이곳 뿐 아니라 학교 내 모든 ECCS 단말은 아이맥이다.[7]안도 타다오가 설계하였으며, 특유의 신념 덕분에 창가 자리는 겨울에 춥다.[8] 일본 최대 규모의 부속연구소답게 카시와 캠퍼스에 있는 생산기술연구소의 대규모실험 고도해석 추진기반의 규모도 상당한데, 운전면허 시험장 뺨치는 도로가 실험소에 깔려져 있고, 심지어는 철로도 깔려 있어서 도쿄메트로 01계 전동차가 실험 주행용으로 사용되고 있다.[9] 후에 카시와 캠퍼스로 이전했고 그 부지에는 현재 정책연구대학원대학과 국립신미술관이 설립되었다.[10] 교양학부, 이학부 수학과, PEAK 등은 3,4학년도 코마바 캠퍼스에서 수업한다.[11] 그래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 1949년에는 제1고등학교(현, 코마바 캠퍼스)와 통합하여 예과 과정(현재 1,2학년 교양과정) 학생들은 코마바 캠퍼스로 보냈고, 그래도 점점 부지가 모자라게 되자 1999년에는 연구 중점 캠퍼스인 카시와 캠퍼스를 조성해서 일부 대학원 연구과와 여러 연구소 및 연구 센터 등의 연구기관을 카시와 캠퍼스로 이전하게 된다.[12] 번 : 다이묘가 지배한 통치 구역[13] 그러나 학생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으며 부속 병원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탑승한다.[14] 대학 부속 연구소로는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곳. 원래 치바시에 설립된 도쿄제국대학 제2공학부가 전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물성연구소와 함께 롯폰기 캠퍼스로 이전했고, 2001년에 현재 코마바II 캠퍼스로 본부를 이전했다. 참고로 치바시에 남겨진 부지는 현재 치바대학의 본부인 니시치바 캠퍼스가 되었다.[15] 大規模実験高度解析推進基盤. 생산기술연구소의 일부 대규모실험시설은 종전 후에도 치바시 이나게구에 남겨졌지만(부속 치바실험소; 千葉実験所), 도쿄대학 카시와 캠퍼스가 설립되며 생산기술 연구소의 대규모실험 고도해석 추진기반으로서 카시와 캠퍼스로 이전하게 된다.[16]롯폰기(六本木) 캠퍼스에서 이전했으며 그 부지에는 현재 정책연구대학원대학과 국립신미술관이 설립되었다.[17] 재일교포 출신으로 물성연구소 특별교수가 된 신식(辛埴) 교수가 재직 중으로, 현재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서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18]나카노(中野) 캠퍼스에서 이전했다.[19] 타나시(田無)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0] 20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 및 201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가지타 다카아키[21] 코마바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2] 코마바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3] 혼고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4] 코마바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5] 혼고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6] 혼고 캠퍼스에서 이전했다.[27] 사진을 보면 운전수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28] 차기 일본 1000엔 지폐의 인물이다.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1901년)[29] 이전하고 치바시에 남겨진 이 부지는 치바대학의 현재 본부인 니시치바 캠퍼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