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4 00:50:46

대한제국군/인사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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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895년
1896년 1897년 1898년 1899년 1900년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인물별 기록 장교 사병


1. 개요
1.1. 연간 신규 획득 자원 규모1.2. 인물별 기록1.3. 인사상의 특징1.4. 편제상의 특징
2. 1894년3. 1895년4. 1896년5. 1897년6. 1898년7. 1899년 8. 1900년9. 1901년10. 1902년11. 1903년12. 1904년13. 1905년14. 1906년15. 1907년16. 1908년17. 1909년18. 1910년

1. 개요

대한제국군의 인사명령을 정리한 항목이다. 구 한국군의 장교 계급이 1894년 12월에 기틀을 잡았기 때문에 조선군 시절부터 일부를 병행하여 설명한다.

1896년부터 양력이 사용된다.

1.1. 연간 신규 획득 자원 규모

승정원일기를 통해 연간 장교 획득 규모를 추정한 것이다. 일부 장교는 징계로 계급이 박탈되었다가 다시 임용되는 경우도 있다.

특수사관의 경우 다른 계급 명칭을 적는 경우가 있어, 현대의 계급으로 비교할 수 있게 계급명을 적는다.
연도 소위 중위 대위 소령 중령 대령 소장 중장 원수 합계
1894년 5 6 4 2 - - - - - 17
1895년 77 63 50 30 6 3 2 231
1896년 8
1897년 28
1898년
1899년 47
1900년 171
1901년 2 1
1902년 307
1903년 111
1904년 53
1905년 1
1906년 8
1907년 10
1908년 -
1909년 -
1910년 -
합계

1.2. 인물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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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사상의 특징

정령(대령) 이상의 군사계급을 가진 장교 73명을 살펴보면 몇 가지 인사의 특징을 알 수 있다.

1850년대에서 1860년대에 태어난 무관들 일부는 별기군, 연무공원, 조선군 시위대, 조선군 훈련대 등을 거쳤다. 그런 탓에 신식군대 형성에 있어서 완전히 문외한은 아니었다. 이런 인적 자원은 주로 1890년대 후반에 정위나 참령 등의 장교로 임용되어 대대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대한제국군 친위대, 대한제국군 시위대, 대한제국군 진위대의 대대장이나 연대장 보직을 이들이 맡았다.

이런 선배 세대 장교들은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등 군사 외의 업무에도 종사하였다. 직업군인이 지방관을 맡는 일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관습이었다.[1] 이순신만 해도 지방관으로 근무하곤 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대한제국군 창군 이후에도 이어져서 영관급 장교들이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해외의 사례를 봐도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에서나 전쟁에서 점령사령부 등의 사례를 보면 군인이 문관이 맡을 행정직을 맡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했다.

이와는 별개로 중앙부처의 주요 각료들에게도 장성급 군사 계급을 부여했다. 이들은 실제 군대 관련 업무와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그때문에 대한제국군은 병력 규모에 비해서 장성급이 많았다. 대령급인 정령 보다 중장급인 부장이 더 많았다. 이는 안보상의 위기로 인해 원수부(대한제국)와 군대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당대의 분위기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들은 근대적 장교 제도가 정립된 대한제국군에 입대하였다. 그래서 이 연령대부터 참위부터 단계별로 정상적으로 진급해가는 장교들이 나타났다. 특히 1900년 임관자는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뒤, 보병, 포병, 기병, 공병 등 근대적인 육군 병과를 수행하기 위해 빠르게 진급했는데 보병장교인 노백린이나 포병장교인 어담이 이에 해당한다. 육군무관학교도 성립하면서 1901년부터 장교 자원을 공급하였고 이들 정해진 근무 연한을 따라 진급하였다. 무관학교 1회 졸업자들이 군대 해산 당시에 보통 정위에서 부위였다.

순번 이름 한자 출생 참위
OF-1
부위
OF-1
정위
OF-2
참령
OF-3
부령
OF-4
정령
OF-5
참장
OF-7
부장
OF-8
대장
OF-9
(대)원수
OF-10
1 구연하 具然河 ? 1900 1905 1906
2 구영조 具永祖 ? 1898 1900 1903
3 권중석 權重奭 1858 ? 1903 1904 1904
4 권중현 權重顯 1854 ? 1904
5 권태익 權泰益 ? 1904 1905
6 길영수[2] 吉永洙 ? 1898 1899 1901 1903 1905
7 김승규 金昇圭 1861 1898 1904
8 김영준 金永準 ? 1900
9 김영진 金永振 ? ? 1904 1904
10 김정근 金禎根 ? 1896 1899 1904
11 노백린 盧伯麟 1875 1900 ? ? 1905 1905 1906
12 민병석 閔丙奭 1858 1898
13 민상호 閔商鎬 1870 1897 1902
14 민영기 閔泳綺 1858 1896 1898
15 민영철 閔泳喆 1864 1900 1903
16 민영환 閔泳煥 1861 1896
17 민영휘 閔泳徽 1852 1901
18 민형식 閔炯植 1859 1906
19 박제순 朴齊純 1858 1905
20 백성기 白性基 1860 1896
1902
[3]
21 신기선 申箕善 1851 1895
22 신재영 申載永 ? 1898 1905 1906
23 신태준 申泰俊 ? 1899 1899 1902 1904
24 신태휴 申泰休 ? 1894 1898 1904
25 심상훈 沈相薰 1854 1897
26 안경수 安駉壽 1853 1895
27 양성환 梁性煥 ? 1897 1903 1904 1904
28 어담 魚潭 1881 1900 ? ? ? 1905 1906
29 엄주익 嚴柱益 1872 1902 1904
30 엄준원 嚴俊源 1855 ? 1902 1903
31 오보영 吳普泳 ? 1897 1900 1904 1905 1906
32 원우상 元禹常 1839 1896 1904
33 유기환 兪箕煥 1858 1898
34 윤영렬 尹英烈 1854 ? 1905 1906 1906
35 윤웅렬 尹雄烈 1840 ? 1903
36 윤철규 尹喆圭 ? 1895 1895 1901 1904
37 윤택영 尹澤榮 1876 1907
38 이강 李堈 1877 1906
39 이건영 李健榮 ? 1899 1900 1906
40 이근택 李根澤 1865 ? 1901 1903
41 이근형 李根馨 ? 1900 1903 1905
42 이근호 李根澔 1860 1906
43 이기홍 李起泓 ? 1898 1905 1906 1907
44 이남희 李南熙 ? 1897 1903 1905 1906
45 이도재 李道宰 1848 1895
46 이병무 李秉武 1864 1898 1904 1905 1905 1907
47 이봉의 李鳳儀 ? ? 1903
48 이용익 李容翊 1854 ? 1903 1907
49 이용태 李容泰 1854 1904
50 이윤용 李允用 1854 ?
51 이재면 李載冕 1845 1907
52 이재순 李載純 1851 1899
53 이재완 李載完 1856 1907
54 이종건 李鍾健 1843 1897
55 이준용 李埈鎔 1870 1907
56 이지용 李址鎔 1870 1901 1904
57 이척 李坧 1874 1898
58 이태래 李泰來 ? 1898 1904 1905
59 이학균 李學均 ? ? 1895
60 이한영 李漢英 ? 1896 1898 ? ? 1905
61 이형 李㷗 1852 1898
62 이희두 李熙斗 1869 1898 1899 1900 1904 1905 1905
63 장화식 張華植 1853 ? 1904
64 정기택 鄭騏澤 ? ? 1903
65 조동윤 趙東潤 1871 ? 1898 1899
66 조성근 趙性根 1876 1904 1905 1906 1907
67 조철희 趙轍熙 ? 1898 1899 1899 1902 1906
68 조희연 趙羲淵 1856 ?
69 주석면 朱錫冕 1859 ?
70 한규설 韓圭卨 1848 1905
71 한진창 韓鎭昌 1858 1898 1899 1904 1907
72 현흥택 玄興澤 ? 1894 1895 1905
73 홍순찬 洪淳瓚 ? ? 1904

1.4. 편제상의 특징

오늘날의 대대 참모부나 연대 참모부 같은 장교 참모 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군부(대한제국)원수부(대한제국)에만 소수로 참모부서가 존재했는데 오늘날의 육본이나 사령부의 참모 부서와 비교하면 작은 편이다. 그런 탓에 장교의 군내 직위 상당수가 지휘관(대대장, 중대장)이나 지휘자(소대장)였다. 그런 탓에 사병과 장교의 비율이 오늘날의 군대에 비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가령 진위대의 경우 대대가 최대 편제 규모였을 때 곡호대를 제외하고 장교가 29명[4]에 부사관이 79명에 병사가 900명에 달했다. 장교와 사병(부사관+병)의 비중이 1:33에 달한다.

군의관이나 경리장교, 수의사관은 별도의 계급 체계로 분리되어 있다. 일반 전투 병과 장교가 경리 업무를 맡을 경우 이런 계급으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또한 전투를 지원하는 부대가 적었다.

2.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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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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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8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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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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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8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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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8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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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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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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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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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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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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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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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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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9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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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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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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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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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위 문관들이 서울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여, 지방관으로 파견되는 걸 꺼려서 급이 낮은 지방관 자리가 무관들에게 개방되었다는 인식도 있다.[2] 황국협회보부상 등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군인 계급을 받아 출세했는데 철도 등 주로 행정업무에 종사했다.[3] 징계 사면에 따른 재임용[4] 대대본부 4명에 중대장 5명, 소대장 2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