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
이름 | 니벨룽의 노래 |
The Song of the Nibelungs | |
국가·소장 | 독일 / 뮌헨 바이에른 국립도서관 외 2곳 |
등재유형 | 기록유산 |
등재연도 | 2009년 |
제작시기 | 1200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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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독일의 영웅 서사시. 베오울프, 롤랑의 노래, 아서 왕의 죽음 등과 더불어 중세 기사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중세 고지 독일어로 집필되어 있으며 북유럽 신화의 에다 가운데 볼숭 일족의 사가에 나오는 시구르드의 일대기를 부르군트족이 겪은 역사적 사건에 맞추고 중세적 시각으로 다시 풀이했다.
2부작 구성으로, 1부는 지크프리트의 영광과 비극적인 죽음을, 2부는 그 부인인 크림힐트의 복수극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선 니벨룽겐의 노래[1]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간혹 니벨룽겐리드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오역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이 니벨룽의 노래와 원래의 북유럽신화에 나온 이야기를 합쳐서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했다.[2]
본래 신화적 요소를 담은 에다를 재풀이한 것인 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 가능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교훈이 무엇이다라고 쉽게 속단하기에 어려우며, 북유럽 신화부터 시작해서 기독교 사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적 지식에 기반해서 폭넓은 이해가 요구된다.
2. 시구르드 전설과의 관계
이 작품은 에다와 볼숭 사가에 나오는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일대기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간혹 문헌으로 정착된 시기만 보고 니벨룽의 노래를 볼숭 사가보다 오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3], 시구르드의 전설은 그 이전부터 구전이나 룬스톤 등으로 전해져 왔으며 단순히 문헌으로 성립한게 늦었을 뿐이다.[4]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시구르드/구드룬의 전설과 니벨룽의 노래가 특정한 선후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형의 이야기가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대륙의 독일-덴마크 지역에서 각자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설이 점차 지지를 얻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지역이 상대적으로 일찍 기독교화가 되었기 때문에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사라진 반면, 스칸디나비아 지역은 12세기까지도 완전히 기독교화 되지 않고, 특히 이런 사가들의 구심점이었던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는 본토와는 다르게 봉건제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기사도 같은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신화적인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니벨룽의 노래는 기독교와 기사도 개념이 적용된 작품이기 때문에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시구르드/구드룬 이야기와 내용뿐만 아니라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 자체가 많이 다르다. 니벨룽의 노래에는 기독교 가치관이 삽입되면서 오딘을 비롯한 북유럽의 신들이 언급되지 않는다. 브륀힐트도 원래는 반신반인인 발키리였지만 니벨룽의 노래에서는 아이슬란드의 여왕이자 용맹한 여전사로 나온다. 또한 시구르드의 가문인 볼숭가는 오딘의 자손가문이지만 지크프리트는 신의 자손이 아니라 그냥 크산텐(Xanten)의 왕(또는 왕자)이며 단지 초인적인 무력을 가진 전사이다. 명검 발뭉도 오딘이 내린 볼숭가의 가보 그람과는 달리 지크프리트 집안의 보물 중 하나가 되었고 전설에서는 등장인물들에게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했던 용의 보물도 맥거핀화 되었다.
3. 실제 역사와의 관계
한편 실존했던 부르군트족과 유목민으로 설명되는 훈족, 실존인물인 군터(군다하르) 왕과 에첼(아틸라), 디트리히 폰 베른(테오도리크 대왕) 등이 등장하며 실제 사건과 실존하는 지역을 소재로 삼아서 현실성을 높였으며, 이런 점들이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기사도의 명예와 정의, 신앙 등이 강조되면서 북유럽 신화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함도 많이 순화되었는데, 예를 들어 전설에서는 브륀힐트가 시구르드뿐만 아니라 그의 어린 아들 시그문드도 살해하고 그 둘이 화장될 때 자신도 불길에 뛰어들어 같이 죽지만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빠졌다. 또한 많은 학자들은 브륀힐트의 캐릭터가 메로빙거 왕조의 브룬힐트(Brunhilda of Austrasia, 543–613)에서 기원했거나 최소한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설에서는 지크프리트의 모델로 6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시게베르 1세(Sigebert I, 535-575)가 많이 거론되는데, 이름 Sigebert가 Siegfried와 나름 비슷하고, 상당히 용맹했으며, 인생의 절정기에 자객에게 암살된 것, 그의 부인이었던 브룬힐트(Brunhilda of Austrasia)가 브륀힐드 캐릭터의 원조로 유력하다는 것 등이 시구르드의 원조로 주목받는 이유이다. 시게베르 1세의 아내 브룬힐트와 킬페리크 1세(Chilperic I, 539-584)의 아내 프레데군트(Fredegunda)는 유럽사에서도 유명한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였다. 물론 브룬힐트에게는 동생이 프레데군트와 킬페리크 1세엑 살해당했으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이 두 사람 때문에 본인들의 남편들까지 원수지간이 되었는데, 결국 전쟁이 벌어져서 시게베르 1세가 킬페리크 1세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프레데군트가 보낸 자객들이 시게베르 1세를 암살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다만 원작자가 설령 시구르드/구드룬의 전설과 다른 전승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이 작품의 제목 자체가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인 '니벨룽'의 노래라고 되어 있고[5] 무리한 설정을 해가면서 신화의 내용을 따라가려고 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6] 북유럽 신화를 많이 참고한 것만은 확실하다.
의외로 에첼은 아틸라로서의 역사적인 이미지나 북유럽 버전과는 달리 보물을 탐내거나 적극적으로 부르군트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크림힐트의 형제들을 초대한것도 순수하게 '아내가 형제들을 그리워해서' 이며, 하겐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명예로운 기사라고 추켜세워준다.
이 점은 당시 유럽에서 아틸라가 헝가리의 민족영웅으로 대접받던 시절이라 이런 정세에 영향을 덜받는 북유럽과는 달리 독일쪽에선 그를 악역으로 묘사하기 힘들었던게 이유로 추정된다고 한다.
4. 성립 과정
기존에 게르만 족 사이에 전해지던 영웅 시구르드의 전설은 독일에선 지구르트란 이름으로 바뀌었고, 여기서 지크프리트란 이름으로 한 번 더 바뀌어 독일 민중들 사이에 구전되어 오고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이나 지역의 명칭 등으로 살펴볼 때 빠르게는 5~6세기경부터 전승되다가 13세기부터 문헌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정착 과정에서 중세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적 관념과 기사도 문학의 속성이 많이 가미되었다.서사시로 정착된 니벨룽의 노래는 중세 고지 독일어로 씌어져 있으며 중세기에 필사된 사본 및 이본 중 현존하는 것은 37개로[7]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 비해 현존하는 사본 수가 상당히 많은데, 이는 창작 당시부터 이 작품의 인기가 매우 좋았다는 것을 반영한다. 다만 이처럼 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본작의 내용 중 오스트리아의 빈 인근의 묘사가 정확한 까닭에 이 지역 출신의 기사가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모든 필사본이 그렇듯이 이 니벨룽의 노래도 사본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원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최초의 내용이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확실하게 알기 어렵다.
한편 이 작품의 저자는 시구르드 전설을 참고로 1부를 집필하였고, 2부는 구드룬의 전설과 여기에 부르군트족의 멸망과 관련된 다른 작품도 참고해서 집필한 듯하다. 원래의 전설은 특정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았던 반면 이 작품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군터왕은 실존인물이며 그가 에첼(아틸라)이 이끄는 훈족에게 죽음을 당하고 왕국이 일시적으로 멸망한 것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8]. 크림힐트(전설에서는 구드룬)의 복수에 해당되는 내용이 이런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에 꿰어 맞춰지면서 이야기의 배경 자체도 부르군트 왕국으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9]
한편 같은 작품으로 묶여 있긴 하지만 1부와 2부는 분위기와 작중인물의 성격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1부와 2부의 작자가 다르거나 2부가 다른 작가에 의해 대폭 개작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1,2부 사이에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전체 줄거리의 뼈대는 같은 작가가 작성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5. 줄거리
5.1. 1부
부르군트 왕국 군터 왕의 여동생 크림힐트가 지크프리트와의 만남과 비극을 예언하는 꿈을 꾸면서 시작된다. 크림힐트는 아름다운 매가 자신에게 왔으나 이내 독수리 두 마리에게 찢겨 죽는 꿈을 꾸고, 겁에 질려 깨어난다. 크림힐트의 꿈을 들은 모친 우테는 크림힐트가 조만간 결혼하지만 남편은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얼마후 크산텐(Xanten)의 왕(또는 왕자)이자 전사로 명망이 높은 지크프리트가 크림힐트에게 구혼하기 위하여 부르군트 왕성이 있는 보름스(Worms)로 찾아온다.[10] 군터왕의 신하인 하겐은 지크프리트가 굉장히 용맹한 무사로 용을 죽이고 그 피를 뒤집어쓰면서 불사의 몸이 되었기 때문에 위험한 인물이라고 경고하면서 괜히 인연을 맺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조언한다. 이에 군터왕은 지크프리트를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하필 이때 색슨족(Saxon)이 부르군트에 침입한다. 지크프리트는 군터를 도와 색슨족을 가볍게 물리치고 자신의 무력을 과시한다.
결국 군터 왕은 크림힐트와 지크프리트의 결혼을 승낙하면서 대신 자신이 아이슬란드 여왕 브륀힐트에게 구혼하려고 하는데 마침 그녀를 잘 알고있는 지크프리트의 힘을 빌려달라는 조건을 붙인다. 지크프리트는 기꺼이 승낙하고 일행은 12일간의 뱃길을 거쳐 아이슬란드에 함께 도착했다.
브륀힐트는 아름다운 여성이지만 엄청난 힘을 지닌 무적의 전사였다. 그녀는 평소 자신과 힘으로 자신과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최강의 전사만이 자신과 결혼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군터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창 던지기, 바위 던지기, 멀리 뛰기 세 가지 힘겨루기를 제안했으며 세가지 중 하나라도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구혼자를 죽인다는 무시무시한 조건도 걸었다. 이야기를 들은 지크프리트는 몰래 용으로부터 챙긴 보물 중 하나인 마법의 망토를 꺼내든다. 이 망토를 두르면 눈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사 12명의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며, 지크프리트가 이 망토를 두르고 몰래 군터 왕을 도와준 덕분에 군터 왕은 브륀힐트에게 승리를 거둔다.[11]
이에 브륀힐트는 군터왕과 함께 보름스로 돌아와서 결혼하고[12] 동시에 지크프리트도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브륀힐트는 군터의 무력이 의외로 시원찮은 것을 보고 실망했으며 천하장사인 지크프리트가 모종의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그를 꽁꽁 묶어 천장에 매단 채로 첫날밤을 보낸다. 군터는 다음 날 풀려난 후 다시 지크프리트에게 자신의 아내를 제압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고 대신 그녀와 직접 관계를 맺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 결국 지크프리트가 투명 망토를 쓰고 군터와 함께 신부 방에 들어간 후 엄청난 싸움을 벌인 끝에 간신히 브륀힐트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 지크프리트는 군터와 브륀힐트가 관계를 맺게 한다.[13]
지크프리트는 브륀힐트를 제압한 후 브륀힐트의 허리띠와 반지를 빼앗는데, 이 허리띠와 반지는 자신의 처녀성을 상징하는 물건이자 힘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이걸 빼앗긴 브륀힐트는 바로 괴력을 잃는다. 평범한 여성이 된 브륀힐트는 이제부터는 군터를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이야기한다. 지크프리트는 이 허리띠와 반지를 크림힐트에게 선물로 줬는데, 이 때문에 나중에 큰 낭패를 보게 된다.
결혼식 만찬 이후 몇 년이 평화롭게 흘렀다. 그간 지크프리트 부부는 크산텐으로 돌아가서 아들 군터 2세를 낳았으며 군터와 브륀힐트는 지크프리트 2세를 낳는다. 하지만 브륀힐트는 군터가 저 약한 무력으로 어떻게 자신을 제압했는지에 대해 계속 의심을 했고, 또한 남편의 신하인 지크프리트가 남편과 맞먹는 것을 불쾌해했다. 브륀힐트는 왕국의 축제 때 군터왕을 부추겨 지크프리트 부부를 보름스로 초대하는데, 여기서 크림힐트와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말다툼의 주제는 누구의 남편이 더 윗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지크프리트와 군터는 실제로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맹국의 왕으로 동등한 관계였다. 하지만 일전에 군터가 브륀힐트에게 청혼을 할 때 지크프리트가 군터의 신하로 위장을 했는데, 똑같이 왕의 신분으로 갈 경우 브륀힐트가 군터 대신 지크프리트를 선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력이 뛰어날지라도 여왕의 신분상 신하에게 청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신하로 위장을 한 것.
브륀힐트는 지크프리트가 대단한 영웅인 건 맞지만 엄연히 군터 왕의 부하인만큼 남편과 맞먹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신하의 예우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륀힐트에게 청혼할 당시 지크프리트가 군터의 신하로 위장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군터의 신하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라고 맞섰다. 싸움이 격해지자 결국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선물로 준 브륀힐트의 허리띠와 반지를 보여주면서 당신과 군터를 결혼시킨 것도 사실은 내 남편이었고 당신을 제압하고 먼저 관계를 치른 것도 내 남편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당신은 그의 하룻밤 상대에 불과한데, 그런 주제에 무슨 윗사람 행세를 하려 드냐고 조롱한다. 비로소 지크프리트와 군터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브륀힐트는 치욕과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절친이었던 군터왕과 지크프리트의 사이도 서먹해진다. 군터는 특히 첫날밤 자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브륀힐트와 관계를 치렀다는 것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표면상으로 군터왕은 자신의 동생이자 지크프리트 부인의 행위를 용서한다고 했으나 부하 하겐이 왕과 왕비의 명예를 더럽힌 지크프리트를 죽이겠다고 하자 말리는 척 하면서 이를 묵인한다.[14]
하겐은 크림힐트에게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보호해주고자 하니 그의 약점이 있는 곳을 옷에 표시해달라고 부탁하고, 크림힐트는 하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옷에다가 눈에 띄는 하얀 실로 표식을 수놓아서 약점의 위치가 표시되도록 한다. 이어 하겐은 자신의 병사들을 시켜서 가짜로 소동을 일으킨 후 이민족이 부르군트 왕국에 쳐들어왔으니 지크프리트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지크프리트는 흔쾌히 이를 승낙한다. 하겐은 지크프리트와 함께 적을 치러 출병하는데, 지크프리트가 강가에서 물을 마시는 사이에 하겐은 약점의 위치를 정확하게 창으로 찔러 그를 살해한다.
돌아온 하겐은 크림힐트에게 남편의 죽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둘러대는데[15] 크림힐트는 납득하지 못한다.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장례식에서 하겐이 지크프리트의 시체 앞에 서자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 하겐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결국 하겐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순순히 인정하지만 모든 것은 군터 왕을 위하여 한 것이며 왕(과 왕비)에게 충성해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명한다.
이에 크림힐트는 지크프리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지크프리트의 유산인 막대한 보물을 이용하여 전사들을 모으려고 한다. 이런 크림힐트의 행동에 위협을 느낀 하겐은 군터 왕의 허가를 얻어 크림힐트로부터 지크프리트의 유산을 모두 강탈한 후 라인강 어디엔가 숨긴다. 하겐은 이 때 지크프리트의 검인 발뭉도 얻게 된다.
5.2. 2부
원통한 크림힐트는 복수를 맹세하고 지크프리트의 보물을 되찾을 생각을 하지만 당장은 힘이 없기 때문에 조용히 지내야 했다. 몇 년 후 훈족의 왕 에첼이 크림힐트에게 구혼해온다. 크림힐트는 복수를 위하여 에첼의 구혼을 받아들이고 헝가리에 있는 에첼의 성으로 가서 결혼한다. 하겐은 이를 간파하고 군터에게 이 혼인을 저지해야한다고 조언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이후 크림힐트가 에첼의 아들 오틀리브(Ortlieb)을 낳자 에첼은 이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를 계획하고 군터왕을 비롯한 부르군트의 무사들도 초청한다. 하겐은 이 초청이 크림힐트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군터왕에게 가면 죽을 테니 가지 말자고 말렸지만 군터왕은 오빠로서의 명예를 생각해야 한다며 초청에 응하겠다고 결정했고, 하겐을 비롯한 군터의 측근들도 왕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다. 에첼의 왕성으로 가는 도중에 예언자로부터 예언을 듣는데, 그에 따르면 하겐의 예상대로 군터왕 일행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터왕은 이미 가기로 약속한 이상 돌이킬 수 없다며 참석을 강행한다.[16][17]
드디어 군터왕이 에첼의 왕성에 도착하고 궁궐에서는 환영 연회가 개최된다. 에첼 부부는 반갑게 부르군트의 손님들을 맞아들이고 부르군트의 무사들이 무기를 갖고 연회장에 들어오는 것도 특별히 허락해 준다. 그런데 크림힐트가 하겐을 보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크림힐트는 하겐이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고 발뭉도 훔쳐갔으며 남편의 황금도 빼앗아서 숨겨두었다고 모욕을 준다. 이에 하겐은 크림힐트의 말은 거짓이며 모든 것은 크림힐트 본인이 꾸몄다고 반박
어쨌건 연회는 개최되고 그럭저럭 진행이 되었는데, 도중에 크림힐트의 사주를 받은 훈족의 전사들이 부르군트의 전사들을 도발하면서 충돌이 벌어지고 이 충돌이 본격적으로 죽고 죽이는 전투로 비화된다. 처음엔 사소한 말싸움이었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지 않고 분쟁을 키우다 결국 유혈사태로 번진 것. 하겐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에첼과 크림힐트가 낳은 오틀리브를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단칼에 베어 버린다. 이로써 양측이 타협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고 이제 복수만 남았다.
부르군트의 전사들은 매우 용맹하였기 때문에 곧 훈족을 몰아내고 연회장을 장악했으며 이에 맞선 훈족 전사들은 계속 죽어나갔다. 크림힐트와 에첼은 자신들의 아들을 죽인 하겐만 넘겨주면 다른 부르군트 무사들의 생명을 보장하겠다고 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한다. 훈족은 부르군트인이 장악해버린 연회장을 불태워버리고 이로 인해 부르군트 병력 상당수가 죽는다.
이로써 승부는 기울어지고 부르군트족의 무사들은 모두 죽고 하겐과 폴커, 군터 왕 등 세 명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18] 이 세 명은 완강하게 버티는데, 결국 훈족의 동맹이자 에첼왕의 궁전에 머무르고 있던 디트리히 폰 베른과 그 부하 힐데브란트가 직접 나서게 되고, 그들은 하겐의 친구 폴커를 살해하고 하겐과 군터왕을 붙잡는다. 포로가 된 두 사람은 일단 따로 수감되는데, 크림힐트는 붙잡힌 하겐에게 자신에게 빼앗아간 지크프리트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이실직고하라고 한다. 하겐이 그 보물은 군터 왕의 것이라며 거절하자, 크림힐트는 자신의 오빠이기도 한 군터 왕을 살해하고 그 목을 하겐에게 보여주면서 이제 보물의 소유자가 죽었으니 보물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한다. 이에 하겐이 분노하여 절대로 보물의 소재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크림힐트는 분통이 터진 나머지 하겐에게 빼앗은 발뭉으로 하겐의 목을 베어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용사 하겐이 크림힐트같은 여성의 손에 죽었다는 것에 분통이 터진 힐데브란트가 크림힐트를 옥좌에서 끌어내 살해한다.[19] 이로써 지크프리트의 보물의 소재는 영원히 묻히고 부르군트의 왕족도 모두 죽으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6. 작품 관련 사항
중세나 그 이전의 작품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구전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버전이 탄생하게 되며, 심지어 기록으로 정착된 후에 필사로 전해지면서도 필사자의 첨삭이 가해지기 때문에 필사본마다 내용이 달라진다. 나무 위키에서 니벨룽의 노래 관련 항목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작품의 세부 내용이 항목마다 제각각인데, 한쪽이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승마다 세부사항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벌어지는 당연한 현상이다. 이 항목에 소개된 줄거리 역시 모든 전승에 담긴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니벨룽의 노래와 같이 오래 전에 창작된 작품은 한쪽 이야기만 따라갈 게 아니라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식으로 참고하는 것이 좋다.현재에도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문이 고지 독일어 운문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에는 산문체로 바꾼 현지어로 번역해서 읽는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 분야에서도 상당히 유명한데, 아이들이 읽기에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부분이 많고 성적인 내용도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대폭 삭제하거나 각색을 해서 내보낸다.
6.1. 현대적 관점에서의 문제점
니벨룽의 노래는 분명 뛰어난 작품이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개연성이 약하거나 설정 구멍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번역자/편집자들은 작품을 번역/편집할 때 이런 부분에 각주를 달거나 나름 번안을 해서 작품의 약점을 보완하기도 한다.일단 복수의 화신 브륀힐트가 1부 후반부터 증발해버리는 문제가 있다. 이 항목을 보기 전에 줄거리만 보고도 느낀 사람이 있겠지만 지크프리트가 죽은 이후 그녀가 어떤 행적을 보이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데, 이는 니벨룽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영화나 연극을 비롯한 다른 작품을 만들 때도 문제가 되는 사항이다. 사실 브륀힐트는 원래의 전설에서는 굉장한 임팩트가 있지만 바뀐 설정에서는 수습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는데, 때문에 원작자가 실수로 누락했거나 죽음 등의 이유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20]
2부는 더 문제가 많은데, 대표적인 문제는 하겐과 군터왕을 비롯한 부르군트의 전사들이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 굳이 에첼왕의 초대에 응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피해를 좀 입는 수준이 아니라 왕이 죽고 왕국 자체가 멸망해버릴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원래 전설이었던 이야기를 무리하게 역사적 사건에 맞추다 보니 개연성이 희생당하는 결과가 초래됐는데, 원작자도 이런 문제를 인식했는지 부르군트족 무사들이 에첼에게 간 것은 운명이라거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거나 등의
또한 마무리가 쉽지 않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베른의 디트리히와 힐데브란트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으로 소환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디트리히(와 힐데브란트)는 2부 후반부까지 언급이 별로 없다가 훈족이 부르군트족 무사들에게 호되게 당한 후에 나타나서 마무리를 하는데, 이런 천하무적의 무사가 왜 자기편이 모조리 죽어나갈때까지 전투에 앞장서지 않았는지 의문. 사실 이 부분은 해명이 어렵지 않은데, 애시당초 디트리히는 전우이기도 했던 부르군트와 싸울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평화주의자 포지션이었던 디트리히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크림힐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르군트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고, 후에도 크림힐트를 부르군트에게서 보호해줄 지언정 그래서 크림힐트는 훈 족과 에첼의 봉신들만을 동원해야 했다. 그런 디트리히가 결국 싸우게 된 것은 전적으로 베힐라렌의 뤼데거의 죽음이 원인이다. 뤼데거는 디트리히가 자신의 나라를 잃고 망명하던 길에 그를 맞이해서 극진히 대우해주고 깊은 우정을 나누었는데, 크림힐트와의 약속이 있어 뤼데거가 어쩔 수 없이 부르군트와 싸우다 전사하자 디트리히의 인내가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죽음이 확실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힐데브란트를 파견했다가 그를 걱정한 다른 부하들까지 따라갔는데, 부르군트 측에서는 뤼데거의 시신을 인도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싸움이 벌어져 힐데브란트를 제외한 나머지 전원이 전사한다. 이렇게 되자 싸울 의지가 전혀 없었던 디트리히가 나설 수 밖에는 없었던 것.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디트리히는 항복을 요구하고 그들이 무사할 것을 보장했을 뿐 아니라 대화가 결렬된 후에도 디트리히는 그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여 크림힐트에게 인도해 그들을 죽이지 말 것을 요청하기까지 한다.
기타 1부와 2부의 간극이 많은 것도 문제가 되는데, 예를 들면 1부에서는 기사도와는 거리가 멀고 무력도 별볼일 없었던 군터왕이 2부에서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명예 때문에 에첼왕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훈족의 거센 공격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기사도 충만한 막강 전사가 되어 있다. 이렇게 명예를 존중하고 뛰어난 무용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왜 브륀힐트와 결혼할 때 지크프리트한테 도와달라고 애걸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1부와 2부를 완전히 별개의 작품으로 본다면 이런 약점은 큰 상관이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본질적으로 지크프리트가 다스렸던 크산텐이라는 나라의 실체가 너무 애매모호하다. 자기 나라의 왕(자)이자 영웅이 다른나라의 일개 신하에게 살해당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군사적 보복은커녕 항의성명조차 없고[21], 이 나라의 왕비가 남편이자 국왕의 죽음을 갚아주려고 하는데 자기 나라의 국력을 활용할 생각은 전혀 안하고 상관이 없는 훈족에게 의뢰를 한다.[22]
7. 등장인물
8. 등장기물
9. 기타
부르군트족은 항목에도 있듯이 서로마제국 멸망기에 잠시 등장해서 훈족을 비롯 동고트족/프랑크족과 같은 막강한 세력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사라져버린 약체 부족이었으며 부르고뉴라는 지명을 남긴 것을 빼면 역사적으로 딱히 주목할 만한 행적도 없지만 이 니벨룽의 노래라는 작품 하나 덕분에 현재에도 꽤 관심을 받는 부족이 되었다. 더불어 실제 군터왕도 아틸라에게 썰려나간 많은 부족장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 작품 덕에 듣보잡 신세를 면한 것을 넘어 셀럽의 반열에 올랐다. 다만 어딜가나 자기한테 과분한 여성을 탐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자멸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지라 이게 좋은 일인지는 불명.지크프리드에게 영광과 몰락을 준 보물의 원 소유주였던 니벨룽의 가문은 의외로 실존했던 가문.
실제 힐데브란트가 상속한 영지 중에 니벨룽 전설이 짙게 남아있는 부르군트 지역이 포함되어 있는 데다가 <프레데가르 연대기>[23]에서도 힐데브란트가 니벨룽의 혈통이라는 주장이 담겨져 있다. 게다가, 힡데브란트의 아내인 아우스트라지아[24]의 엠마의 존재 자체에서 알 수 있듯, 기존에 존재하던 전설에 살을 붙여 의도적으로 영웅의 혈통을 포함시킨 흔적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혈통을 조작해서 신 또는 위대한 영웅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예가 드문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작품인 만큼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서브컬쳐가 꽤 있다. 전술한 바그너의 오페라 외에 이 니벨룽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들도 언급할만 한데, 프리츠 랑의 1924년작 <니벨룽의 노래>가 유명하며, 당시로써는 큰 흥행을 하였다. 2004년에는 "니벨룽의 반지"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어 2005년 10월 28일에 개봉했다. 이 영화는 저예산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받았으며 그래서 발퀴레(2부)와 지크프리트(3부)가 나왔다. 스토리는 니벨룽의 노래 원작보다는 영화와 동명인 바그너의 작품과 비슷하다.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오르페우스의 창에서 주인공들이 다니는 성 세바스찬 음악학교는 매년 카니발에서 이 연극을 공연하는 전통이 있다고 나온다. 여기서 유리우스는 두 번이나 크림힐트를 연기하게 되며 만화의 전개에 있어 중요한 극적 장치로 활용된다.
10. 관련 항목
[1] 독일어에서 -en은 중성 명사 소유격 어미로,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어의 관형격 조사 '~의'쯤 된다. 따라서 니벨룽겐이 아닌 니벨룽의 노래가 올바른 번역. 그러나 한국어 번역판은 죄다 니벨룽겐의 노래다. 니벨룽의 노래라는 제목은 Karl Lachmann의 분류에 따른 3가지 가장 오래된 완전한 판본 중 C판의 마지막 구절 (hie hât daz mære ein ende: daz ist der Nibelunge liet: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것이 니벨룽의 노래이다) 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중세독일어 Liet는 현대 독일어로 노래를 뜻하는 Lied로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구절을 뜻하는 Stophen 이나 서사시를 뜻하는 Epos로 번역된다. 하지만 원문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B판의 마지막 구절은 diz ist der Nibelunge not(=Untergang)이다. 이를 번역하면 "이것이 니벨룽의 몰락이다" 인데 B판이 유명세를 탔다면 니벨룽의 노래는 니벨룽의 몰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덧붙여 이 전설을 차용해서 쓰인 소설이 니벨룽'엔'의 반지로 발매되기도 했다.[2] 그런데 니벨룽의 반지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오페라는 '니벨룽'이라는 제목만 차용했을 뿐 대부분의 줄거리는 북유럽 신화에서 가져왔다. 마지막 4부 '신들의 황혼'에 군터왕이나 하겐 등이 나오는데 니벨룽의 노래와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성을 갖고 있다.[3] 문헌으로 정착된 시기에 대해 학자들은 니벨룽의 노래는 12세기 말 ~ 13세기 초, 볼숭 사가는 13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4] 크림힐트와 에첼만 봐도 니벨룽의 노래가 모든 지크프리트 기반 전설의 원전이라기엔 어패가 있다. 2부의 모티브가 된 훈족의 부르군트 공격과 일디코 이야기는 오히려 부르군트의 공주가 훈족 왕과 결혼해서 그에게 복수했다는 에다의 아틀리의 노래가 더 역사적 기록과 유사하며 실제로 이쪽이 더 오래됐다.[5] 니벨룽은 신화에서 군나르왕과 구드룬이 속해있는 니플룽(Niflung)가문의 독일식 발음인데, 군나르와 구드룬에 대응되는 군터왕과 크림힐트는 부르군트족 소속이다. 따라서 내용 측면에서만 보면 '부르군트의 노래'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좀 더 상징성을 강화하고 신화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해 니벨룽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6] 예를 들어 1부 초반에 하겐이 군터왕에게 지크프리트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시구르드의 전설과 상당히 비슷하다.[7] 1220년경 작성된 사본이 현존하는 최고본(最古本)이다. 37개 사본 가운데 완성본은 11개이며 나머지는 일부나 단편만 남아 있다.[8] 물론 부르군트의 소수의 무사들이 훈족의 전사들을 대량 살상하거나 이런 내용은 당연히 허구이다. 부르군트족 항목 참조.[9] 다만 군터왕 시절의 부르군트 왕국은 이후 재건된 부르군트 왕국보다 좀 더 동쪽에 있었고 작품에도 이런 점이 반영되었는데, 예를 들어 서사시에 나오는 군터왕의 왕궁은 재건된 왕국의 영토에는 속하지 않았던 현재의 보름스(Worms)에 있다.[10] 지크프리트는 전승에 따라 크산텐의 왕자이기도 하고 왕이기도 하다. 독일 서부에 있는 크산텐은 현재에도 지크프리트 고향이라고 광고하면서 관광객들을 끌어모은다.[11] 브륀힐트가 얼마나 힘이 셌는지 지크프리트는 12명분의 힘을 주는 망토를 두르고도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12] 아이슬란드 왕국은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외삼촌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후 대사를 보면 부르군트와 통합된걸로 추정된다[13] 이에 대해 초기 전승에서는 브륀힐트와 첫날밤을 보낸 게 지크프리트가 맞았으나 이는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던 간통이기에 이후 문서화되는 과정에서 검열된 게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디트리히의 사가에서는 실제로 군터의 묵인하에 지크프리트가 브륀힐트와 첫날밤을 보낸다.[14] 일부 전승에서는 브륀힐트가 하겐에게 자신을 모욕한 지크프리트를 죽이라고 요구하는데, 중세적 관점에서 나름 이 요구는 의미가 있다. 왕과 여왕에게 절대 충성하는 하겐 입장에서는 왕이 대놓고 허락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덥썩 나서기가 힘든데, 여왕의 명령이 있다면 확실하게 지크프리트를 죽일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15] 적과 싸우다 등을 찔려 죽었다거나 멧돼지 쁠에 받쳐서 죽었다거나......전승마다 제각각이다. 뭐라고 거짓말을 하건 크림힐트는 당연히 믿지 않는다.[16] 후술하듯이 이 부분은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있다.[17] 어떤 설정에서는 예언자가 일행 중에 승려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죽는다는 예언을 하고, 이에 하겐이 자신들과 동행하고 있던 승려를 죽여서 에언을 깨뜨리려 하지만 그가 달아나는 바람에 실패한다.[18] 전승에 따라서는 폴커도 일찍 죽고 하겐과 군터왕 둘만 남는 경우도 있다.[19] 군터왕은 크림힐트가 직접 죽이지 않고 사람(물론 남자)을 시켜 죽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하겐은 여성인 크림힐트가 직접 죽여버렸기 때문에 힐데브란트가 동요한 것이다.[20] 그나마 브륀힐트의 행적은 니벨룽의 노래와 다소 연계성이 있는 티드렉 사가에서 드러나는데, 하겐의 아들인 알드리안에게 그가 에첼을 죽이게 만든다.[21] 그것도 기사도 정신에 완전히 위배되는 방식으로 죽였다. 뒤에서 몰래 찔렀으니 말이다.[22] 일단 공식적으로 지크프리트의 죽음은 사고사로 되어있기 때문에 문제를 삼을 수 없었다고 하면 납득하기 쉽지는 않지만 변명거리가 되기는 한다. 크림힐트도 자신이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가르쳐줬기에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 확실한 물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또한 2부 시점에서 크림힐트는 엄연히 훈 족의 왕비이며, 훈 족의 국력이 최고 수준이라고 명시가 되어있고 에첼에게도 지크프리트의 황금을 얻기 위한 이해관계가 있는 만큼 보복에는 크산텐보다도 더욱 적합할 수 있다.[23] 초기 프랑크족의 전승이 기록된 서적. 다만 이런 류의 전승이 그렇듯 소실된 부분도 많고, 남아있는 판본에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24] 니벨룽의 반지의 주요 무대로, 메로빙거 왕조 시절 네덜란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독일의 일부 지역 포함된 옛 지역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