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20:24:21

김헌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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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김헌곤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삼성 라이온즈

2.1. 2011 시즌

삼성 신인 타자 중 유일하게 2011 시즌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원래는 이영욱의 자리였으나, 이영욱이 어깨 부상으로 예상보다 늦게 합류하게 되며 김헌곤이 대신 참가하게 된 것이다.

시범경기에서도 홈런을 치는 등 맹활약하며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개막 하루 후인 4월 4일, 안지만이 1군에 올라오며 2군으로 내려갔다.

5월 7일 드디어 1군 데뷔를 했다. 5회초 조동찬을 대신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려다 곧바로 조영훈으로 교체되었다. 타석에 서진 못했지만 어쨌든 기록에는 남으니 1군 데뷔를 한 셈. 이후 10경기에 출장했으나 단 1안타에 5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등, 1군 기록은 좋지 않았다.

2군에서는 주로 1번타자, 좌익수/중견수[1]로 출장하는데 1번타자로서 출루율은 좋지만 도루는 오히려 정형식(남부리그 도루 1위)이 훨씬 더 많았다. 2011 시즌 남부리그 타율 2위(0.356), 최다안타 4위(94개), 최다 2루타 4위(22개), 최다 3루타 공동 2위(5개), 홈런 공동 2위(10개), 득점 공동 1위(65득점) 등을 기록했다.

2.2. 2012 시즌

2011 시즌 초중반 1군에 올라왔을 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2011 시즌 후 이영욱이 상무에 입대하고 오정복이 2차 드래프트를 거쳐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며 백업 외야수 경쟁자가 줄었다. 2012년 전지훈련 때는 백업 외야수 육성을 목표로, 신인 이동훈 대신 포함되어 2년 연속 운 좋게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4월 1일 박한이가 시범경기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며 강봉규박한이의 공백을 메꾸게 되며 우타 백업 외야수로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배영섭최형우가 부진한 상황에서 1군에서 기회를 받아 세 차례 선발 우익수로 기용되기도 했으나, 2군에서와 달리 선풍기 스윙만 작렬하며 타율 0.133으로 부진해 4월 1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2군에서도 2할 초반대의 타율로 부진하다가, 손목 부상으로 5월 30일 이후로 결장했다.

2.3. 2013 시즌

부상의 여파로 정규 시즌이 시작되고도 출장을 못하다가 한참이나 늦은 6월에서야 2군 경기에 출장했다. 1년을 쉬었음에도 좋은 타격감을 보여 주면서 7월 12일 1군에 올라왔다. 1군으로 올라오기 전까지 2군 기록은 15경기 42타수 타율 0.357 15안타 7타점 12득점 3도루.

7월 23일 NC전에서 7회말 무사에 이지영 대신 대타로 등장하였으나 삼진당했다.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해 결국 7월 29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9월 10일 다시 1군에 올라와 15일 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지만 첫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후 손목 골절로 이상훈으로 교체되었고[2]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결국 이후로는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 후 손목 수술을 받았다. 2년 동안 손목 부상으로 고생한 건 부상이 다 낫기도 전에 훈련을 했던 탓이었다. 평소 지독한 연습벌레라 팀 내 선배들이 쉬라고 말릴 정도라고 한다.

시즌 후 박해민, 이현동 등과 함께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하여 서류전형에는 합격했으나, 실기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2.4.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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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포항 NC전에서 내야땅볼 때 전력질주하는 모습.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전력질주는 되풀이된다.
손목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2군에서 붙박이 4번타자로 출장하던 중, 1군 외야진에 우타자가 부족해 5월 13일 1군에 올라왔다. 5월 14일 7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해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특히 안타, 2루타, 3루타를 고루 기록하면서 그동안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보였다. 다만 중견수 포지션에서 경쟁 중인 박해민에 비해 수비 범위가 좁다는 지적이 있다.

후반기부터는 주로 최형우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좌익수 자리에 출전하고 있다. 7월 26일 NC 다이노스와 경기에 8회 2사만루 상황에서 쐐기 2타점 적시타를 쳤으며, 7월 3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9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박해민의 대타로 나와 봉중근을 상대로 최강의 장점인 눈야구와 깡따구를 앞세워서 풀카운트 싸움 끝에 6구 몸에 맞는볼로 출루하여 동점을 만들었고, 다음 타자 채태인의 14구 일기토 끝내기 안타로 팀은 역전승리했다.

1군 76경기에 출전하여, 데뷔 후 가장 많은 1군 경기를 소화했다.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채태인의 대주자로 출장하여 최형우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에 이은 혼신의 슬라이딩으로 홈인하여 팀의 끝내기 역전승에 공헌하였다. 6차전에서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여 안타는 없었으나 1회 서건창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어 선발 윤성환의 부담을 덜어 줬고, 7회 초에 희생번트를 성공시켜 대량 득점의 발판을 놓는 활약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박해민이 중견수로 가고 본인은 좌익수로 옮겼다. 경기 끝나고 통합 4연패를 자축하는 단체 세레모니를 하면서 커리어 첫 우승반지를 끼는 영예를 안았다.

2014년 페넌트 레이스 종료 후 상무 야구단에 다시 지원해서 11월 20일에 최종 합격했다.

2.5. 상무 피닉스 야구단

2.5.1. 2015 시즌

상무의 주전 중견수로 출장했는데, 여름 들어 부진하며 성적이 떨어졌지만 시즌 초반에는 2군을 폭격했다. 2015 시즌 최종 성적은 2군 96경기 309타석 105안타(2루타 14개 3루타 3개 홈런 11개) 28삼진 8사구 48볼넷 .340 - .436 - .511 OPS .947.

2.5.2. 2016 시즌

상무에서 주전 중견수로 나왔다. 시즌 성적은 2군 77경기 254타수 96안타 8홈런 65타점 63득점 9도루 43볼넷 18삼진. 타율 0.378. 7월 말부터 결장하는 경기가 늘어나고, 그나마 나올 때도 대타나 대수비로 나왔다. 이 때문에 홈런은 전년도 대비 조금 줄긴 했는데, 퓨처스 전체 타율 1위를 했다. 참고로 2위는 박찬도.

9월에 제대했으나, 팀 상황이 영 좋지 않은지라 1군에는 당연히 등록되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고 FA로 이적한 최형우가 쓰던 34번을 달게 되었다.

2.6.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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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부터 이적한 최형우를 대신해 주전 좌익수로 뛰기 시작했다.

2.7.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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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중 유일하게 3할 타율과 150 안타를 기록한 사실상 김헌곤의 커리어 하이 시즌.

2.8.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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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팀 내 최고의 토종 타자로 성적 자체는 2018년보다 낮지만, 2018년이 극악의 타고투저 시즌이었음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커리어하이 시즌이라 볼 수도 있다.[3] 다만 WAR 대비 낮은 WPA가 흠.

2.9.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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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만큼은 아니지만, 2017-2021년까지의 시즌들 중 가장 부진했던 시즌.

2.10.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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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9년만큼은 아니더라도 주전 좌익수로서 하위타선에서 나름대로 제 몫을 해냈다. 다만, 전반기 좋은 활약을 보이다 후반기에 서서히 무너진 것이 아쉬웠다.

2.11.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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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직전 시즌이자 팀의 주장을 맡았던 시즌.[4]

김헌곤의 2022시즌은 본인의 커리어로우를 넘어 KBO 리그 역사에도 길이 남을 정도로 부진한 시즌이다.[5] 홈 개막전 끝내기 병살타, 43타석 연속 무안타 등 시즌 내내 주장으로서 팀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민폐만 끼쳤고, 자팀 팬들에게도 완전히 외면당하는 등 나쁜 의미로 전설이 된 시즌이 되었다. 결국 2022 시즌 과도한 자리보전 욕심으로 허삼영의 비호를 받으며 꾸준히 경기에 출장한 끝에 시즌을 말아먹은 원흉 중 하나가 되었기에, 팬들의 지지를 완전히 잃었고 시즌 후 FA에서도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6]

2.12.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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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커리어에 치명적인 허리 수술과 재활을 거쳐 올해 복귀조차 불투명했으나 빠르게 2군 경기에 출장하고 시즌 막바지엔 1군에서 모습을 보여 내년 복귀에 일말의 희망을 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팬들의 반응은 여전히 좋지 않다.

2.13.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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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초반에는 좌익수로 나오다가 정형식이 1군으로 올라간 후로는 중견수로 출장했다.[2] 이미 손목이 상당히 안 좋은 상태여서 마취 주사까지 맞았다. 마취주사 때문인지 김헌곤은 손목이 골절된 지도 몰랐고, 다행히 트레이너가 김헌곤의 손목 상태를 눈치채면서 바로 교체되었다.[3] 실제로 스탯티즈 기준 wrc+는 2019년이 107.6으로 제일 높다. 2018년은 103.9.[4] 허삼영 감독 사퇴 후 오재일로 주장이 변경되었다.[5] 한 타자가 당해 시즌 큰 부진에 빠졌다면 가차없이 22시즌 김헌곤과 비교받게 될 정도다.[6] 리그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연속 타석 무안타 기록이나 시즌 WAR 추세가 무려 2018-2019년 크리스 데이비스와 비슷하다. 전반기까지만 보자면 2019 시즌 크리스 데이비스를 연상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