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1:53:43

김정민(1999)/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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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구선수 김정민의 선수 경력을 서술하는 문서.

2. 클럽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어려서부터 대학 선수 출신인 부친에게서 축구를 배웠고 서울양전초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인천 U-12 팀에 들어갔다. 당시 김정민은 정우영과 짝을 이루어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각광받던 유망주였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인천 유스 산하의) 광성중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신천중학교로 가면서 학원 축구계로 움직였다. 학원 축구계에서도 김정민의 활약은 이어졌고, 이미 제2의 기성용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였다. 얼굴도 기성용, 체격도 기성용. 청소년 대표팀 월반까지 기성용과 똑닮아 축구 팬들에게 각인이 된 김정민을 노리는 고등학교 팀들이 넘친 것은 당연지사.

수많은 러브콜 끝에 김정민은 광주 FC기영옥[1] 단장이 적극적인 구애를 받고 광주의 유소년 팀 금호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금호고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놀라는 반응도 많았는데, 그만큼 기영옥 단장이 공을 들여서 이뤄낸 성과였다. 이후 금호고의 주축이자 핵심선수로 자리잡았고, 2017년에는 금호고의 후반기 고등리그 왕중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파일:Keumho_highschhool_kimjungmin.jpg
금호고 시절

경기-서울 지역에 이미 생활기반이 갖춰져있는데도, 타향살이(금호고)를 선택한 건, 광주FC 측에서 졸업 후 해외 진출을 돕겠다는 약속을 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일반 학원과 지원이나 육성 과정이 다른 프로팀 유스에서 선수 본인의 기량을 갈고닦을 수 있으며, 시민구단인 광주FC 역시 특급 유망주인 김정민을 데려와 구단 예산을 의결하는 시의회에게 호소할 카드[2]를 확보하고, 유스보상금 확보 측면에서도 좀더 나은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는 강점까지 있었기 때문에 애써 확보한 특급 대어를 해외로 보내는 출혈을 감수하며 김정민 영입에 공을 들였던 것.

2.2.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그리고 2017년 12월, 황희찬이 뛰고 있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의 강호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 5년 계약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떴다. # 매 방학마다 잘츠부르크의 2군 팀인 FC 리퍼링에서 훈련을 받았던 것이 인연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동안 키워줬던 광주 FC에게도 보은 차원에서인지 꽤 큰 이적료를 남겨주고 떠남으로서[3] 팀을 떠나기 전에도 마지막 예의를 다 했다. # 거기에 추후 K리그 복귀 시에도 광주와 우선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은 덤.

2018년 2월 7일 U-19 UEFA 유스 리그 스포르팅 CP U19팀과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여 이적 후 첫 경기를 가졌다.

이후 16강전 FC 포르투 U19팀과의 경기에 풀타임을 소화했다.

2.2.1. FC 리퍼링 (임대)

파일:FCLiefering_Kim_Jung_Min.jpg
잘츠부르크 유스팀에서 UEFA 유스리그 두경기에 출전한 후, 선배 황희찬처럼 잘츠부르크의 위성 구단인 2부리그의 FC 리퍼링으로 임대되면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다.
2.2.1.1. 2017-18 시즌
3월 3일 SV 리트와의 리그 22라운드 경기에서 프로 성인팀 데뷔전을 가졌으며, 전반 26분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데뷔전 데뷔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3월 10일 TSV 하텐베르크와의 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데뷔골을 넣었다.

4월 14일 카펜베르크 SV와의 리그 28라운드 경기에 후반 8분 교체로 나와 종료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다.

17-18시즌 오스트리아 2부리그에서의 성적은 13경기 출전 3골 2도움.
2.2.1.2. 2018-19 시즌
A매치 데이 기간 외에는 꾸준히 경기 명단에 포함되며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미드필더 자원으로 활용됐고 17경기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2.2.1.3. 2019-20 시즌
8월 17일 SV 호른을 상대로 시즌 첫 선발출장했다. 그간 리퍼링에서는 주로 3선에서 뛰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2선으로 나왔다.

겨울 이적 시장전까지 총 11경기에 출전하여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2.2.2. FC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 (임대)

파일:FC Admira Wacker Mödling_Kimjungmin.jpg
2020년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1부리그 10위팀인 FC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으로 임대되었다. 임대 기간은 2020-2021 시즌까지 1년 6개월. 2부소속 FC 리퍼링에서 2시즌을 보내고 1부리그 하위권팀으로 재임대된 만큼 이제 고정적인 출전 시간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 소속팀 잘츠부르크의 전 소속 선수 케이타, 할란드, 미나미노 등의 이적 건을 참고해 보면, 주축 선수들이 시즌 중에 이탈하는 상황으로 발생하는 1군의 빈자리는 타 1부리그 팀에 임대 중인 선수들의 임대복귀로 메워지는 경우가 잦으며, 리퍼링에서 1군으로 수직콜업되는 경우는 예외적인 일이기에 김정민은 잘츠부르크의 선수 육성 프로세스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임대이적건이라고 이해하면 무방할 듯 하다. 한국인 선배인 황희찬도 김정민의 케이스처럼 리퍼링에서 2시즌 임대 후 1부리그로 재임대or본팀 복귀 예정이었지만 뛰어난 활약을 보여 1.5시즌만에 1군으로 콜업된 특수한 사례이다.

일각에서는 기성용은 이 나이에 A대표와 셀틱 주전이었다며 비관하지만 기성용이 이례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황희찬도 2019년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고 국대에 승선하는 많은 선수들이 청대에서 주목받지 못했거나 청대와 인연이 없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너무 가혹하다. 펠레나 메시, 음바페 같은 이른 나이에 미친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도 있는 반면 더브라위너와 케인, 임모빌레, 오바메양 같이 20대 중후반에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오른 경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뫼들링의 주전 홀딩 미드필더가 임대 신분인 탓에 6개월 후에 그라츠로 복귀하고, 팀에서 잠재력 있는 활약을 보이던 3선 자원도 장기 부상 중인 상태여서 후반기부터 3선 미드필더로 출전할 것으로 보였으나 이적 후 세 경기 출전 이후 코로나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었다. 그 사이 감독이 바뀌면서 남은 리그경기에선 출전 명단에 들지 못하게 되었고 19-20 시즌 최종 성적은 3경기 출전에 그쳤다.

# 2020년 7월 23일 구단 홈페이지에 아드미라 바커 뫼들링을 떠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1년 더 남아있는 임대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보인다. FC 리퍼링 복귀 혹은 새로운 구단을 찾아볼 것으로 예상된다.

2.3. 비토리아 SC

파일:김정민.png
# 2020년 7월 27일 비토리아 SC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19-20 시즌 여러 요인으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4] 좋게 보는 시선이 많다. 어쨌건 비토리아 SC도 유럽대항전에 얼굴 좀 비치는 클럽이다보니 그간 지내던 임대 소속팀보다는 확실히 한 수 위의 클럽이기 때문에 주전 경쟁을 이겨내는 것이 관건이다. 한편 비토리아 SC에는 2020년 2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정성원 선수가 넘어갔기 때문에[5] 같은 한국인 선수가 있다는 점에서 적응 면에서는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

2.3.1. 비토리아 SC B

9월 18일 리그 1라운드 우스 벨레넨스스전에서 벤치 멤버로 대기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이후 13라운드까지 모두 벤치 멤버에도 들지 못했다. 계속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B팀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 구단 홈페이지 확인 결과 김정민은 1군이 아닌 B팀 소속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11월 말부터 B팀의 3부 리그 일정을 소화했으며 총 8경기(4선발)를 출전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후보 명단에 한 차례 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1군 기록이었다.# 결국 김정민은 강원으로의 임대를 선택한다.

2.3.2. 강원 FC (임대)

파일:강원김정민37.png

3월 26일, 강원 FC는 김정민의 임대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에이전시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 최근 논란이 되는 박정빈이나 백승호와는 다르게 광주 FC와 정상적으로 복귀우선 부분을 해결한 후 입단한 것이라고 한다. #

입단 직후엔 우선 K4리그에 참가중인 강원 FC B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4월 4일자 K4리그 3라운드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 상대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하여 여러 좋은 모습을 보이며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후 꾸준히 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K4리그에서 15라운드까지 13경기 3득점 2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강원 FC B에서 4라운드 경기(4월 11일)를 마치고 4월 14일에 1군으로 콜업되어 청주 FC와의 FA컵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다시 2군으로 돌아갔다. 이후 6월말을 기점으로 임대계약이 만료되었다.

2.3.3. 부산 아이파크 (임대)

2021년 7월 부산 아이파크로 임대되었다.# 부산에 중앙 미드필더들 중에 박종우가 부상, 김진규가 올림픽으로 빠져있어 팀의 뎁스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7월 24일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도마고이 드로젝의 교체 선수로 출장하여 K리그 데뷔전을 가졌다. 8월 7일 FC 안양과의 경기에서 60분경에 교체 출전하였다.

2021년 9월 18일자 K리그2 30라운드 FC 안양 전에서 선발출전하였으나, 전반 36분에 박태준에게 무리한 태클을 가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했다.9월 27일 서울 이랜드와의 경기에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되었다.

부산 이적 후 꾸준히 경기에 출장을 하고 있으나 나름 미드필더로서 볼배급 역할은 중원에서 확실하게 해주고 떠났다.
2021시즌 부산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포함해 13경기 출전.

임대 당시 1년 6개월 임대로 왔기 때문에 2022시즌에도 부산에서 뛸 것으로 예상된다.

2021시즌 : 13경기
K리그 2 : 13경기

2022시즌 청주 FC와의 대한축구협회 FA컵 2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이끌었다.

2022시즌 : 21경기 3골
K리그 2 : 19경기 1골
FA컵 : 2경기 2골

2022년 12월 23일 FC 안양으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2.4. FC 안양

2023년 1월 10일 FC 안양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경기에 못 나오고 있다. 2023 시즌이 개막하고 벌써 18라운드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치에 비해 점점 더 아쉬운 모습이라 매우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기량을 발전시켜서 출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10월 7일 리그 35라운드 김포 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송준석의 감아차기가 본인을 맞고 들어가며 자책골을 기록했다.

2.5.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4년 1월 15일 아시안 게임 당시 인연이 있는 김학범 감독이 있는 제주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1월 20일 제주 구단은 김정민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이전 시즌 FC 안양에서 기회를 못 받은것에 비해 출전시간을 적지 않게 보장받으면서 시즌 전반적으로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팀의 키커로서 역할하기도 하였다.
다만 유망주의 나이에서 벗어난 만큼 확실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KFA_kimjungmin.jpg

중학생 시절부터 형들을 제치고 연령별 대표팀에 선출되어온 태극 전사들의 특급 유망주였다. 기성용의 뒤를 이어 A대표팀에 데뷔한다면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공적으로 기성용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현재는 그러한 기대가 사라진 상태다. 2019년 U-20 월드컵 포르투갈 전지훈련 명단에 들었으며 99년생은 김정민, 조영욱, 전진우가 있었다.

3.1.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3.1.1. 2014년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

8강 일본전에서 환상적인 개인기로 일본 수비수를 무력화 시킨 뒤 이승우에게 밀어줘서 오픈찬스를 만들어줬고, 이는 그대로 선제골로 이어졌다. 대회에서 이승우에 이어 두번째로 주목받은 선수.

3.1.2. 2015년 FIFA U-17 월드컵

대한민국이 16강진출하는데에 큰 기여를 했으며 영국 가디언 축구기사 매체에서 1999년생 세계유망주 60인에 선정되었으며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선정 되었다.

3.2.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2016년 6월 3일 U-18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했다.

2016년 9월에 열린 카타르 4개국 친선대회에 U-19 대표로 참가했다. 2016년 11월에 열린 U-19 수원 컨티넨탈컵에 U-19 대표로 참가했다.

2017년 11월에 열린 2018 AFC U-19 챔피언쉽 예선에 참가하여 말레이시아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3.2.1. 2019년 FIFA U-20 월드컵

2019년에는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에 출전했다. 아시안게임 때 보였던 단점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중으로 아쉬운 면이 있었으나 정호진이 수비적으로 받쳐주고 공격적인 롤을 부여받자 킬패스들이 나오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월드컵 내내 출전한 부작용으로 인한 체력고갈이 다른 선수들보다도 눈에 크게 띄는 편이었고, 결국 결승전에서 이게 제대로 터져 패배에 일조하면서 인스타 테러를 당했다.[6] FIFA 주관 남자 축구 대회 역사상 최고 성적을 거둔 이번 대표팀에서 대회가 끝난 이후 이미지가 악화되고 비난을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선수이다.

U-20 월드컵의 폼으로 보면 당분간 성인 국대 선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포스트 기성용의 포지션은 벤투호에서 황인범과 정우영이 채우고 있고 A매치 선발 데뷔전에서 좋은 폼을 보인 백승호의 존재도 있으며, 이강인 또한 U-20 월드컵 결승까지 하드캐리한 것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김정민이 이 둘을 뚫고 가기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3.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3.3.1.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에 팀내 최연소 선수로 선발되었다.

조별예선 2차전인 말레이시아전에 선발 출장하여 이진현과 함께 중원을 구성했으나, 장점이라던 롱패스들은 모두 부정확했고 지공 상황에서 공을 뺏겨 흐름을 자주 끊기게 만들고, 이른 시간의 선제 실점으로 빨리 동점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경기장을 어슬렁거리며 템포를 죽이는 등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다 후반전에 결국 손흥민과 교체되었다. 송범근, 황현수에 버금가는 패배의 원흉.

베트남과의 4강전에도 선발 출장하였는데 말레이시아전보단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였지만 딱히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수비가담이 많이 부족한모습으로 역습시 커버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망감을주었다. 여기에 투지나 적극성도 많이 결여돼 보였고 스타팅 라인업 중에서 제일 체력이 비축돼있는 멤버였을텐데도 후반에 가더니 체력이 너무 빨리 방전돼 버렸다. 경기가 끝날 무렵 장지현 해설위원도 "김정민 선수 많이 배웠겠네요."라며 기대에 부응하지못한면을 애써 포장했다.

결승 일본전에 선발로 나와 교체로 나가기 전까지 안정된 경기력을 보였다. 이번 대회 통틀어 가장 잘한 경기였다. 군면제도 받았고 생일이 아직 지나지도 않은 만 18세 선수인 만큼 이번 대회로 본인이 더 깨닫고 축구 두뇌를 발달시켜야 할 것이다.

3.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8년 11월 5일, A매치 평가전 명단에 뽑히면서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의 부름을 받았다. 선발 배경에 대해서 대표팀의 파울루 벤투 감독은 소속팀 활약이 부족하지만 직접 관찰하고 싶은 선수이므로 본인 눈으로 자질을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호주전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투입되어 첫 A매치를 가졌다.

2019년 3월 A매치에서도 신성 이강인, 백승호와 함께 포함. 처음 뽑힌 것은 아니었지만 공식 A매치에서의 활약이 거의 없었던만큼 기회를 잡았을때 기량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여졌다. 허나 이번에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3월 A매치를 마지막으로 6월 A매치부터는 이강인, 백승호에 묻힌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향후 선수 본인이 소속팀에서 경기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지 않는이상 A대표팀에 발탁되기는 힘들게 됐다.

[1] 기성용의 아버지.[2] 시민구단이 있는 지자체에서 회의때마다 공통적으로 자주 강조하는게 지역 인재육성(능력)이라고 한다.[3] 70만 유로. 한국 돈으로는 9억원 가량 된다. 광주같은 영세한 시민구단들에게는 상당한 거금인 셈.[4] 단순 실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리그 중단과 감독 교체 등 외적요인도 작지 않다.[5] 정확히는 프로 콜업 후 바로 임대를 맺고 포르투갈로 넘어갔다.[6] 결승전 패배에 가장 큰 지분을 담당한 센터백 김현우는 대회 내내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하면서 남아공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애초에 김현우가 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가 김정민의 삽질 때문에 무리하게 중원으로 올라간 탓이었기 때문에 김정민에 비해 비난이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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