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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제1220호, 숙종의 언문 서간(1680년)[내용] | 《독립신문》 창간호(1896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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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근대 한국어(近代韓國語) 또는 근세 한국어(近世韓國語, Early Modern Korean)는 16세기 또는 17세기에서 19세기 말엽까지 쓰이던 한국어의 고어(古語)로, 현대 한국어의 전신인 언어이다. 한국 국내에서는 근대국어(近代國語)라고도 불린다. 언어적 변천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에 세분하여 전기 근대 한국어(16세기~18세기 중엽)와 후기 근대 한국어(18세기 중엽~개화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상단의 두 예시는 각각 전기 근대국어와 후기 근대국어의 예시로도 볼 수 있다.근대 한국어의 사용 시기와 범위에는 이설이 있는데, 비교적 현대적인 한국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일제강점기, 심지어 해방 직후까지도 언어적으로 근대 한국어의 특성이 상당수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 학계에서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공표되면서 기틀이 잡히고 근대 한국어가 현대 한국어로 이행했다고 본다.#
2. 특징
흔히 연상하는 개신교식 성경 어투, '(사극 등의) 옛날식 말투'[3]는 바로 이 시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오체가 이때 등장했으며, 현대인들도 어휘 등의 막힘을 빼면 당시 쓰였던 글을 대충이나마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4]현대 한국어의 전신이니만큼 중세 한국어에 비해 기존 자모의 발음이 크게 바뀌었으며, 오늘날까지 한국어가 갖고 있는 음운적인 특성은 이 시기에 대부분 완성되었다. 특히 아래아의 고유한 음가가 사라지고(제1음절에선 ㅏ, 제2음절 이상에서는 ㅡ로 합류), ㅓ의 음가가 지금과 같아졌다. 또한 이중모음이었던 ㅐ, ㅔ, ㅚ, ㅟ[5]등이 단모음화되었으며, 자음에서는 구개음화가 일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ㄱ, ㄲ, ㅋ 등 평음(예사소리), 경음(된소리), 격음(거센소리)의 경우에도, 평음과 경음의 VOT(Voice Onset Time, 성대 진동 시작 시간)는 거의 똑같이 짧았고, 격음의 VOT가 단연 길었다.[6] 이러한 음운 현상은 일제강점기에 통용되던 일본어의 일상적 한국어 음차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7]
16세기 영남·영동·관북지역을 제외하고는 성조가 소멸하면서 방점 표기가 불안정해지더니 사라지기 시작했고, 'ㅿ'(반치음)과 'ㅸ'(순경음)이 소멸했다. 어두 자음군이 소멸하고 된소리가 되었는데, 'ㅂ'계 합용병서 표기는 기원적으로 ㅂ계 자음군이었던 단어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19세기에 들어와 'ㅅ' 합용병서로 된소리를 표기했다. 17세기에는 구개음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19세기에는 'ㅅ, ㅆ, ㅈ, ㅉ, ㅊ' 음가에 변화가 생겼다.
또한 문법 차원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주격 조사 '가'가 출현한 것이다. 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엔 '이',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엔 '가'가 쓰였으며, 이 규칙은 현대 한국어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표기의 경우 중세 한국어나 현대 한국어에 비해 불규칙한 점이 많다. 음운 변화가 활발히 일어났지만 표기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생긴 차이 뿐만 아니라, 반대로 과도 교정으로 나타난 표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보조사 'ᄂᆞᆫ'이 아래아의 소멸에 따라 '는'으로 변화했는데 원래부터 '너는'과 같이 '는'이 들어갈 자리에 '너ᄂᆞᆫ'과 같이 'ᄂᆞᆫ'을 쓴 것 따위.[8] 문경새재의 '산불됴심' 표식 또한 '조심'이라고 써야 할 것을 과도 교정한 경우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며 많은 한글 문학이 창작되었으며, 민요나 판소리 등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세 한국어보다도 자료가 넘쳐흐르지만, 너무 많아서 비교적 관심을 덜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띄어쓰기와 가로쓰기가 처음 도입된 것도 근대 한국어 시기이다. 다만 개화기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좌->우로 향하는 좌횡서가 아닌 좌<-우로 향하는 우횡서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가로쓰기 표기법은 일제강점기까지 세로쓰기와 혼용되다가 대한민국 정부 성립 이후 좌횡서 형식이 보편화되면서 현재에 이른다.
3. 기타
향문천이 낭독한 근대 한국어[9] |
ILoveLanguages!에서 낭독한 근대 한국어[10]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구 언어) 영역 지문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현행 교육 체제 하에서 고등학교 교과서나 시험 문제, 기출 문제 등에 등재되는 고전 시가들은 그 작성 시기를 막론하고 근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다. 심지어 고대 한국어 시기의 시가들인 정읍사, 제망매가나, 중세 한국어 시기의 작품인 청산별곡, 성산별곡같은 것까지 몽땅 근대 한국어로 번역해서 등재했는데, 이유는 불명이다.
[내용] "명안공주방(여동생 명안공주 사저)에 가 있던 어머니 명성왕후에게: 밤 사이 평안하옵시니이까? 나가옵실 제 '내일 들어오옵소서.' 하였삽더니, 해창위(명안공주의 남편 오태주)를 만나 못 떠나 하옵시나니이까? 아무리 섭섭하옵셔도 내일 부디 들어오옵소서."[2] 현대어 풀이는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볼 수 있다.[3]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쓰는 '사극 말투'는 완전한 근대 한국어는 아니며, 시청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한국어를 바탕으로 근대 한국어의 어조를 모방한 것이 정착한 것이다. 실제 역사를 다루는 대중매체에서는 고대, 중세 한국어가 사용되었을 시대의 사극 작품에도 근대 한국어를 모방한 사극 말투가 사용되는데, 이는 고대, 중세 한국어의 경우 재구의 한계로 정확하게 고증하여 제대로 반영하기도 어렵거니와, 너무 오래 전의 언어라 현대 한국어와의 연결고리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청자들은 대부분 현대 표준 한국어 자막을 넣지 않는 한 이해가 불가능하며, 각본가 입장에서는 위의 관행으로 정착된 방법이 더욱 더 효율적이다. 현대 한국어도 토종 제주 방언은 표준어 자막이 없으면 알아듣기 힘든데, 중세/근세 한국어는 오죽하랴.[4] 당장 상단의 숙종 언문 서간을 봐도, 한국어 원어민 화자는 아래아(ㆍ)의 발음 정도만 알고 있다면 내용을 읽을 수 있으며, 19세기 말에 간행된 독립신문 창간호의 논설과 비교해 봐도 띄어쓰기가 도입된 것 외엔 큰 차이가 없다.[5] ㅚ, ㅟ의 단모음화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일어났다고 보는 설도 있는데 이 시기는 현대 한국어 시기로 분류되기도 한다.[6] 그러나 서울 방언을 기준으로, 대략 1965년(출생년)을 전후하여 평음의 VOT는 길어지는 한편 격음의 VOT는 짧아지며 둘의 VOT가 비슷하게 융합되어 버렸다. VOT 순으로 정렬하면 '경음 ≤ 평음 < 격음'이 '경음 < 평음 ≤ 격음'으로 바뀐 것이다.[7] 예를 들어, 김동인과 같은 작가들은 ひとつ를 '히도쓰'라고 음차했다.[8] 이는 모음조화의 파괴와도 관련있다.[9] 영상 속 예문은 문서 상단에도 첨부된 숙종의 한글 편지이다.[10] 1797년(정조 21년)에 편찬된 오륜행실도의 강혁거효(江革巨孝)편 낭독을 샘플로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