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5 18:35:46

그림힐드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4. 동명이인

1. 개요

Grímhildr

북유럽 신화에다볼숭 일족의 사가의 등장인물.

니블룽 일족의 규키 왕의 부인, 즉 왕후로 군나르, 호그니, 구드룬, 구토름, 구드뉘(혹은 굴론드) 5남매의 어머니이다.[1] 또한 마법사이기도 하며[2] 특히 물약으로 타인의 정신을 조종하는데 능통하다.[3] 이 능력으로 볼숭 가문의 드래곤 슬레이어 시구르드사위로, 전직 발키리였으며 이웃 나라의 공주이기도 한 브륀힐드며느리로 맞게 되지만….

시구르드 파트에서 벌어진 온갖 비극의 원인제공자 역할을 한다. 마법과 계략을 통해 니블룽 일족의 번영을 도모했고 성공한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무서운 속도로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최후에는 어린 손자들까지 비참하게 죽어서 대가 끊기는 결말을 맞이한다. 부르군트가 약소국이라서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을 상황이라면 모를까, 작중에서는 충분히 번영한 왕국이며 남부럽지 않을 자식들도 있는 상황에서 과욕을 부리다가 그렇게 됐으니 어찌보면 자업자득이다.

니벨룽의 노래로 대표되는 대륙 게르만 전설의 우테(Ute)와 같은 기원을 가진 캐릭터지만, 빌런인 그림힐드와는 달리 우테는 딱히 뭘 저지르진 않는다. 이름은 가면을 쓴(Grímr) 전투(hildr)라는 뜻으로, 마법을 이용한 은밀한 책략을 애용하는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4]

2. 작중 행적

그림힐드는 라인 강 남쪽의 부르군트 왕국을 다스리는 규키 왕의 왕비였으며, 현명했지만 동시에 사악한 심성을 지녔다.

그녀는 모험 중에 부르군트 왕국에 들린 시구르드의 무력과 그가 가진 파브니르의 보물을 탐냈고, 그를 자신의 딸인 구드룬과 이어줘서 부르군트의 국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시구르드에게는 이미 약혼녀인 브륀힐드가 있었으며, 한 술 더 떠서 입만 열면 약혼녀를 향한 사랑을 늘어놓는 팔불출이었던지라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모를 가진 구드룬을 보고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그림힐드는 우선 가장 큰 장애물 부터 치워버리기 위해 망각의 약을 넣은 맥주를 시구르드에게 먹여서 브륀힐드에 대한 기억들을 지워버렸고, 사랑을 잊은 시구르드는 그림힐드의 계획대로 구드룬에게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그 후로 약 3년이 지나는 동안, 시구르드는 완벽하게 부르군트에 정착해서 군나르와 호그니와 의형제의 맹세를 맺고, 셋이서 함께 모험을 떠나거나 외세로부터 왕국을 지켰으며, 그림힐드에게 손자인 시그문드 까지 안겨줬다.

그러나 그림힐드의 야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구르드의 전 약혼녀였던 브륀힐드 역시 일등 신부감이었던지라, 그림힐드는 장남 군나르에게 찾아가서 그녀에게 청혼하길 부추겼으며, 군나르 또한 어머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구르드 이외의 남자와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던 브륀힐드는, 자신이 살던 궁전 주변에 불의 장벽을 쳐놓고 이를 건너올 수 있는 남자만을 남편으로 삼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이에 군나르는 호그니와 시구르드를 데리고 브륀힐드를 찾아가서 불의 장벽을 넘으려고 했지만 당연하다시피 실패하고 만다. 그러자 그림힐드는 이 난관을 파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시구르드에게 변신 마법을 걸어서 그를 군나르로 변장시킨 후, 불의 장벽을 넘어 브륀힐드를 데려오도록 한다.

그렇게 그림힐드는 계획대로 브륀힐드까지 며느리로 맞아서 볼숭 가문과 부들룽(Buðlung) 가문이라는 명문가들과 사돈을 맺는데 성공했고, 이로서 니블룽 가문의 앞날은 창창한 듯 했으나...

구드룬이 브륀힐드와 말싸움을 하던 중에, 시구르드가 군나르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 욱해서 시구르드가 군나르로 변장을 하고 브륀힐드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까발리고 말았고, 이를 듣고 자신이 사기결혼 당한 사실을 깨달은 브륀힐드는 절망한 끝에 자신을 속인 시구르드와 니블룽 가문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운다.[5] 구드룬의 말에 따르면 그림힐드는 자기 나름대로 브륀힐드를 친딸처럼 아낀 듯하나, 예언을 통해 그림힐드가 시구르드의 기억을 망가트린 사실을 알고 있던 브륀힐드는 그림힐드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사기결혼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아예 시어머니를 구드룬이나 군나르 앞에서 대놓고 모욕하기까지 한다.

결국 브륀힐드는 자기 자신을 인질로 삼아서 군나르에게 시구르드를 죽이라고 종용했으며, 이를 받아들인 군나르는 호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구르드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군나르와 호그니 둘 다 시구르드와 의형제의 맹세를 맺었기 때문에 그를 해칠 수 없었고, 당시에 너무 어려서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막내 구토름에게 암살을 맡긴다. 이때 형제는 구토름을 완벽한 살인자로 만들기 위해 약을 먹여서 난폭하게 만들었는데, 그림힐드도 여기에 가세해서 마법으로 구토름의 정신에 시구르드를 향한 살의를 세겨넣는다.[6]

결국 구토름은 시구르드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으나 본인 또한 시구르드에게 반격당해 죽어버렸고, 손자 시그문드도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살해당한다. 그러나 브륀힐드를 위해서 사위와 손자를 죽인 보람조차 없이, 그녀는 시구르드를 죽인 니블룽 일족을 비웃고는 그들의 파멸을 예언한 뒤 단검으로 가슴을 찔러서 자결해버린다.

그렇게 겨우겨우 얻은 사위와 며느리에 더불어 막내 아들과 손자까지 명을 달리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을 죽인 가족들에게 정이 털린 구드룬 역시 시구르드의 딸을 임신한 몸으로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브니르의 보물들은 그대로 부르군트에 남겨졌기에 니블룽 일족은 그 막대한 재산만이라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동맹을 향한 그림힐드의 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으니, 그녀는 기어이 가출한 구드룬을 데려와서 브륀힐드의 오빠인 아틀리와 재혼시킬 계획을 세운다. 반면 고 에다의 <니블룽 일족의 살해>(Dráp Niflunga)에서는 아틀리가 먼저 니블룽 일족을 찾아와서 브륀힐드를 죽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일족은 이에 대한 배상으로 구드룬을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이를 위해 구드룬의 행방을 찾던 그림힐드는 수소문 끝에 딸이 덴마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무작정 끌고 오긴 미안했는지 딸을 회유할 배상금과 선물을 챙겨서 아들들과 함께 호위들을 동원해서 덴마크로 떠났다. 아니나다를까 구드룬은 가족들과 말조차 섞고 싶지 않아했으며, 돈과 선물을 건내려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그림힐드는 딸이 이럴 줄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시구르드의 기억을 날렸던 것과 유사한 망각의 약을 미리 준비해뒀다가, 피로 붉은 을 새긴 뿔잔에 술과 함께 섞어서 구드룬에게 먹여서 오빠들이 시구르드를 죽인 사실을 잊게 만든다.[7]

이 약에는 바다뱀, 수확되지 않은 이삭[8], 짐승의 내장, 온갖 종류의 약초, 불탄 도토리, 모닥불의 , 제물로 바쳤던 동물의 내장, 삶은 멧돼지 등의 바다의 힘을 담은 무시무시한 재료들에 더불어 구드룬의 아들, 즉 손자 시그문드의 피까지 들어있었다.[9]

기억을 잃은 구드룬은 가족들과의 재회에 기뻐했지만, 아틀리와 재혼해야한다는 말을 듣자 시구르드 때문에 다른 남자들은 성이 안 찬다거나, 그들 사이에 자식이 생겨봤자 좋을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우려를 내비치며 이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그림힐드는 재혼을 거부하는 구드룬을 어르고 달래며 설득했고, 심지어 협박까지 해가며 마음을 돌리려했지만, 참다못한 딸이 "아틀리가 군나르와 호그니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니블룽 가문을 몰락시킬 것."이라 예견하자 자신의 원대한 계획이 장렬하게 망할 거란 소리에 버튼이 눌린 건지 언령 마법을 써서 그녀를 강제로 굴복시켜버린다.

그렇게 그림힐드와 일행은 본의 아니게 아틀리와 재혼하게 된 구드룬을 데리고 부르군트로 돌아왔고, 계획대로 아틀리와의 결혼을 통해 다시 한 번 부들룽 가문과 사돈을 맺게 된다.

허나 이는 결국 니블룽 일족을 결정적으로 몰락시키고 만다.

그러나 미래가 어쨌건 그림힐드의 등장은 여기까지다. 최후가 묘사되는 본작의 다른 빌런들과는 달리 그림힐드가 이후로 어떻게 살다 갔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물론 그림힐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니블룽 일족이 완전히 망해버렸기에 그녀 역시 이 운명에 휘말려서 죽었다거나, 가족들이 모두 죽어버린지라 어딘가에 의탁해서 외롭게 살다 갔을 거란 추론은 가능하다. 혹은 본격적인 파멸이 시작되기 전에 노환으로 병사 했거나, 편하게 자연사 했을 가능성도 있다.[10]

3. 기타

그림힐드의 자식들 중에서 구토름은 볼숭 일족의 사가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지만, 고 에다에서는 "구토름은 규키의 혈족은 아니지만 군나르와 호그니의 형제이다."라고 설명되며, 신 에다에서도 규키의 양자라고 나온다.[11] 양자라는 말 그대로 다른 집안에서 입양해온 자식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림힐드가 다른 남자에게서 얻은 자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대해선 규키와의 결혼은 사실 두번째 결혼이며 구토름은 전남편에게서 본 자식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으며, 구토름이 보통 막내로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규키와의 결혼생활 중에 외도를 저지르고 얻은 자식일 가능성도 있다. 우연찮게도 티드렉의 사가의 호그니 역시 국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왕비가 엘프와 동침해서 낳은 혼외자라는 설정이 있다.[12]

4. 동명이인

다른 작품인 <그리드의 양자 일루기의 사가>(Illuga saga Gríðarfóstra)와 <뺨에 털이 난 그림의 사가>(Gríms saga loðinkinna)에서도 동명이인들이 나오는데, 둘 다 위의 그림힐드와 마찬가지로 왕비이자 마녀다.표준형 마녀이름

게다가 두 사가 모두 스토리나 작중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그림힐드 모두 전처의 딸에게 마법을 걸어서 트롤로 변신시킨 뒤에 황야로 추방했다가, 자신은 이후에 나타난 주인공에게 처단당하고 전처의 딸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마치 백설공주의 사악한 왕비를 연상케하는 행적을 보여준다. 마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사악한 왕비의 이름이 그림하일드라는 설정이 있는데, 이 그림힐드들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1] 구드뉘(굴론드)는 존재감이 적어서 그냥 4남매로 치기도 한다.[2]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인지 마법사보다 마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3] 다만 물약의 지속기간이 영원한 것은 아닌지, 희생자였던 시구르드와 구드룬 모두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억을 되찾았다.[4] 아이러니하게도 딸 구드룬의 대륙 게르만 버전인 크림힐트와 동일한 어원을 가졌다.[5] 이전까지는 비록 시구르드와 맺어지지 못한 사실에 한을 품긴 했어도, 그가 결국 구드룬과 이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봤던지라 운명에 수긍하고 군나르를 남편으로 대우했다. 그러나 시댁의 속임수에 의해 "불의 장벽을 넘을 만큼 용감한 남자라면 그와 결혼하겠다." 자신의 맹세까지 더럽혀졌다는 사실을 깨닫자 멘탈이 깨져버린 것.[6] 앞서 시구르드를 매우 탐냈던 것과 비교해보면 모순되는 행동인데,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군나르처럼 시구르드를 죽이고 재산과 영지를 빼먹을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호그니처럼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것으로 보인다.[7] 즉 남편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는 잊어버린 상황이다.[8] 펭귄 북스에서 출판된 Jesse L. Byock의 번역판에서는 다시마해조의 켄닝(kenning)이라는 주석을 달아놨다.[9] 다만 이 파트의 원본이 되는 고 에다의 <구드룬의 두번째 시>(Guðrúnarkviða II)에서는 속죄의 피(sónar dreyri)라고 나오기 때문에, 사가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아들의 피(sonar dreyri)로 잘못 기록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10] 이후 호그니가 아틀리를 비난하며 "네가 내 친족 여인을 잡아가서 굶겨 죽인 뒤에 그녀의 재산까지 빼았지 않았더냐!" 라고 하는데, 이 친족 여인이 그림힐드라는 말도 있다. 허나 다른 친족도 아니고 부모를 죽인 원수를 상대로 그가 보낸 사절단을 환대하고, 불길한 징조를 보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아내들에게 "왜 근거도 없이 매부를 의심함? 가면 잘 대접 받을텐데... 뭐 죽으면 그게 운명이겠지." 정도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다.[11] 을유문화사의 신 에다의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구토름을 군나르와 호그니의 이복형제라고 번역했지만, 양자라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구토름은 규키의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부형제라고 보는 게 옳다.[12]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하겐이 이 설정을 반영해서 알베리히의 아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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