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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대 비오 8세 | → | 제254대 그레고리오 16세 | → | 제255대 복자 비오 9세 |
<colbgcolor=#ffe100,#ffe100><colcolor=#670000,#670000> | |
| |
교황명 | <colbgcolor=#FFFFFF,#1F2023>그레고리오 16세 (Gregorius XVI) |
본명 | 바르톨로메오 알베르토 카펠라리 (Bartolomeo Alberto Cappellari) |
출생 | 1765년 9월 18일 |
베네치아 공화국 벨루노 | |
사망 | 1846년 6월 1일 (향년 80세) |
교황령 로마 | |
재위기간 | 1831년 2월 2일 ~ 1846년 6월 1일 (15년 119일) |
장례미사 | 1846년 6월 6일 |
서명 | |
문장 | |
1. 개요
가톨릭의 제254대 교황.2. 교황 즉위 전
가톨릭 역사상 주교품을 받지 않은 채 추기경으로 서임된 바 있는 마지막 교황이다.[1] 성 베네딕도회 까말돌리 연합회[2] 출신으로서, 바티칸에서 관리로 일하였다가 탁월한 능력 덕택에 추기경에 올랐다.2.1. 교황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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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재위 기간
그 역시 이 시기의 교황들처럼 보수 반동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는 보수주의의 물결이 불던 유럽의 열강들조차도 비판할 정도로 심각했다. 철도를 '지옥의 길'이라 부르면서 교황령 전역에서 철도 건설을 금했으며, 이 무렵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오스트리아 제국의 힘을 빌려 강하게 진압했다. 언론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단속당했다.교황령 외부에서도 그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1832년에 러시아 제국에 맞서 봉기한 폴란드인[3]들이 가혹하게 진압되었지만, 교황은 가톨릭 신자들을 지지하기는커녕 반란을 규탄하는 칙서를 발표했다. 당시는 프랑스의 자유주의자 사제들을 중심으로 "교회는 압제자가 아닌 대중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었는데, 그레고리오 16세와 교황령은 이를 철저하게 비판했다.
비록 그레고리오 16세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면모로 교황령의 진보를 막았지만, 고전적인 교황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했다. 노예 무역을 맹비난했으며[4], 해외선교에 관심을 보여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업을 재조직했고, 전 세계에 걸쳐 70여 개의 새로운 교구를 건설했다. 한국 가톨릭도 그 은혜를 받은 곳 중 하나로,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파리 외방전교회의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5]했으며[6], 캐나다와 미국에 각각 4개와 10개의 교구를 설정했다. 사실 선대 교황인 비오 6세 때, 조선에 가톨릭이 자생했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교황청에 전해졌지만 당시 비오 6세는 프랑스에 유배되어 있었으며 무얼 할 수 없는 채로 사망했기에, 그 역할을 그레고리오 16세가 맡았던 것. 비오 6세는 죽기 전 당시 추기경이던 카펠라리 추기경(=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비상금을 털어서 그 역할을 맡겼다고 한다. 이와 함께 100여년 뒤 조선인 성인이 될 정하상 바오로가 목숨을 걸고 신부 파견을 요청하는 청원문(편지)을 써서 로마 교황청까지 전달한 것도 조선대목구를 설정하는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25년에 쓰여졌으나 1827년에야 교황청으로 어렵사리 전해진 이 편지를 읽은 그레고리오 16세는 "동방에 주님의 기적이 일어났구나"라고 말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파리의 성모로 인해 생겨난 통칭 기적의 패를 자기 책상에 있는 십자가 아래에 뒀다고 전해진다.
1836년에는 바티칸 미술관 내에 에트루리아 미술관과 이집트 미술관을 설립했으며,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도 그리스도교 미술관을 세워 많은 예술품을 수집했다.
4.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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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그레고리오 16세의 무덤. 석관 좌우에 장식된 조각상은 각각 '지식'과 '신중함'을 의인화했다. |
유럽에서 사진이 어느 정도 상용화된 1846년[7]에 사망했음에도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교황청에서 사진 촬영을 "신성한 교황님께 어딜 감히 괴상한 물건을 들이대느냐"는 신성모독급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때문에 사진을 촬영한 최초의 교황이란 타이틀은 후임인 비오 9세가 가져갔다.
[1] 훗날 요한 23세는 "모든 직급의 추기경의 서임은 주교의 서품을 받은 다음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규정을 바꾸었다. 이 규정이 훗날 바뀌지 않는 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상태로 교황이 되는 케이스는 그레고리오 16세가 마지막으로 남게 될 것이다.[2] 베네딕도회 총연합 소속의 연합회로, 로무알도 성인이 1012년 설립한 최초의 은수 수도회이다.[3] 폴란드는 폴란드 왕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였다.[4] 교황들은 노예 무역이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노예 무역을 비판해 왔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는 다 평등하니까.[5] 단순히 은혜를 받았다기보다는 후술될 조선의 성인 정하상 바오로의 생명을 건 직접 요청과 청나라 가톨릭 교회의 조력이 있었기에 겨우 가능했던 것이었다. 마카오에서 라틴어와 한자를 모두 통달한 사제가, 조선에서 목숨을 걸고 만주를 거쳐 청나라 교구까지 온 정하상의 한문 서신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번역본을 로마 교황청에 보냈다.[6] 하지만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지는 못한 채 만주에서 사망해, 앵베르 주교가 제2대 조선대목구장이 되었다.[7] 주요국 정상들과 비교해보면 1842년 프랑스 루이필리프 1세가, 1843년 미국 존 퀸시 애덤스가, 1844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각국 역사상 정상으로서 최초로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