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3:48:25

히지카타 토시조(골든 카무이)

히지카타 토시조
土方 歳 三/ Hijikata Toshizou
파일:골든카무이3.jpg
파일:Hijikata_concept_art.png
원 작 애니메이션
이 름 히지카타 토시조
성 별 남성
생 일 1835년 5월 31일
연 령 72세[1]
출신지 무사시국
좋아하는 것 오차즈케
싫어하는 것 없음
성 우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타 조지[2]
파일:일본 국기.svg나카무라 유이치 (젊은 시절)
파일:미국 국기.svg 그렉 둘시
실사판 배우 타치 히로시

1. 개요2. 작중 행적3. 최후4. 기타

1. 개요

파일:히지카타 토시조.jpg
"남자는 몇 살을 먹어도 칼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법이잖나?"[3]
"いいか小僧ども この時代に老いぼれを見たら「生き残り」と思え"
"잘 들어라, 애송이들아. 이 시대에 늙다리를 보거든 '생존자'라 생각해라."[4][5][6]
만화 골든 카무이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름과 설정 둘 다 실존 인물인 히지카타 토시조에서 그대로 따왔다.

원래는 하코다테 전쟁에서 전사한 것[7]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중에서는 정치범으로서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탈옥할 기회를 노린 것으로 나온다. 히지카타 토시조는 1835년생이므로 작중 배경이 되는 1905년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척 칠순이다.

서양 군복과 코트를 빼입는 등 특유의 패션 센스는 건재하지만 젊은 시절과 달리 긴 장발에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 무기로는 일본도[8]윈체스터 M1892 라이플. 스핀로딩으로 한손 사격을 하면서[9] 근접시 일본도를 뽑아 베는 스타일리시 전투법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옆에선 전쟁 만화 연출 중인데 혼자서 사무라이 챤바라 서부극을 찍으시는 먼치킨 영감님이다.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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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의 설명을 통해 처음 언급되는데, 탈옥 기회가 생겼을때 군도를 뺏어들어 둔전병 세 명을 참살하고 탈옥을 주도했다고 한다. 기름종이로 문신을 베끼자며 우시야마를 찾아와 동지가 되도록 권유했다. 목적은 제7사단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에조 땅[10]을 되찾아 독립하는 것. 나가쿠라는 이에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분이 전쟁을 일으키겠다니, 당신은 그저 당신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묻지만 히지카타 본인은 "나는 앞으로 백 년은 더 살 생각이다"이라고 넘기고, 누가 그런 정신나간 생각에 동조하겠냐는 우시야마의 비아냥에 먼 옛날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라고 대답한다.

20화에서 나가쿠라 신파치[11]를 만나 당분간 살 거처와 자금을 조달받고, 먼저 카바토 감옥에서 출소한지 얼마 안 된 도적단 두목 시부카와 젠지로를 찾아가서 합류할 것을 권유하는데, 젠지로가 듣지 않고 숨겨둔 부하들을 시켜 죽이려 하자 라이플을 꺼내 머리를 날리고 발도술로 주변의 부하들을 베어버림과 동시에 장롱 뒤의 부하까지 싸그리 사살하면서 "이 자리에 있는 놈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라!"라고 명령하면서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는 동시에 '귀신부장' 히지카타 토시조의 부활을 알린다.

34화에서 은행을 습격해[12] 군자금과 함께 자신의 옛 애도(愛刀)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를 훔쳐내고,[13] 그곳에서 츠루미 중위와 처음으로 맞닥뜨리고 서로 총격을 주고받는다. 츠루미 중위가 타고 온 말을 타고 직후 도주. 츠루미 중위에 대해 '각오가 단단히 선 얼굴을 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츠루미 중위는 그를 '이 세상에 한을 남긴 악령'이라 평가했다. 37화에서 자신의 거처까지 몰래 찾아온 시라이시를 잡아놓고 문신을 베끼게만 해 주면 죽이지는 않겠다며 자신을 도울 것을 권유하고 그를 스기모토에게 붙여 간첩 비슷하게 이용하는 한편, 시라이시로부터 스기모토에 대해 듣게 된다.[14] 41화에서는 스기모토 일행을 미행해서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43화에서는 숙소에 묵고있는 스기모토 일행에게 아시리파가 귀엽다며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며, 다 죽어가는 할배연기를 하며 등장한다.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시라이시도 독자들도 그냥 엑스트라인줄 알았다가 얼굴이 클로즈업돼 히지카타임이 드러나는 컷에서 모두 깜짝 놀랐다. 이때 아이누 소녀인 아시리파에게 일본명[15]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데, 49화에서 스기모토 일행과 만난 키로란케가 어떤 나이 많은 일본인이 코쵸베 아스코라는 이름의 아이누 소녀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알려주면서 복선이 회수된다. 아시리파의 눈동자색을 보며 러시아인의 피가 섞여있다고 말하고 그가 아는 자 중에도 같은 눈을 한 사람이 있다고도 하는데, 나중에 아실파의 아버지인 달걀귀신이 일본 아이누가 아니라고 언급한다.[16] 자리를 떠나면서 시라이시에게 슬쩍 "(스기모토가 가진 문신들의) 본을 떠놔라."라고 명령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55화에서 59화까지 히지카타의 행적은 요짐보, 황야의 무법자 등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찬바라 영화 및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오마주나 다름없다. 55화에서 바라토 마을에서 만난 불량배들을 팔을 베고 라이플로 날려버리고는 "울부짖는 것은 각오가 없었다는 증거다"라고 일갈하고, 이발소에서 들은 정보[17]를 토대로 쿠스다 우마키치를 찾아가서 자신을 고용해 줄 것을 요구하는데, 우마키치가 이에 청어장 히도로의 임신한 첩을 잡아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자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발을 돌려 히도로를 찾아간다. 히도로는 딱 봐도 일흔이 넘는 노인이 젊은 사람들을 둘씩이나 해치웠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코웃음치는 히도로의 부하 두 명을 단숨에 베어버리면서 "이런 시대에 늙은이를 보거든 살아남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그 검술을 본 히도로의 부인이 아들과 함께 찾아와 히지카타가 처음에 요구했던 금액보다 많은 금액을 주면서 히도로 편에 서달라고 하는데, 히지카타와 함께 있던 나가쿠라는 히도로 집안의 실세가 그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저런 사람은 자기 첩을 인질로 볼 리 없다"며 나가려 하지만 함께 왔던 아들로부터 "우마키치가 히도로의 첩을 납치하려는 것은 그것을 빌미로 전에 빚 대신 담보로 받은 금괴 지도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귀띔에 눈빛이 바뀌고, 첩을 데리고 나오면서 경호로 붙어 있던 다섯 명을 모두 죽인 뒤에 그 아들에게 쿠스다가 저지른 짓이라고 하고 문신을 받아오게 한 다음 이발소로 옮겨둔다. 이발소 앞에 몰려든 양측 사이에서 이발소 주인이 첩을 데리고 나타났는데, 이미 쿠스다 우마키치와 그의 뒷배를 봐주던 분서장을 앞세운 오가타 햐쿠노스케가 문신 가까이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저격한다. 총성을 듣고 나가야 될지 말지 우물쭈물하는 히도로측 사람들에게 "이발소 앞까지 전진해라. 도망가는 놈은 베어버린다!"라며 전진할 것을 명하고, 오가타의 저격에 우마키치측의 저항으로 나아갈 수 없자 민가를 방패삼아 나아가면서 사격에 대응한다. 히도로 세력들에게 교대로 엄호 사격을 퍼부으며 전진하라는 명령을 해 놓고 히지카타 자신은 측면으로 우회해서 우마키치 세력 똘마니들을 검으로 베어버린다.[18] 무진전쟁을 거치며 근대 전술에 대한 식견을 쌓은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싸움 끝에 문신을 찾아 들어 간 히도로의 저택에서 먼저 문신을 손에 넣은 오가타와 마주친다.

80화에서 유바리에 있던 에도가이의 집에서 에도가이가 만든 가짜 문신과 진짜 문신을 구별해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등장, 드디어 스기모토와 만나게 된다. 스기모토는 히지카타에게 달걀귀신이 아이누에게 무기를 들게 해서 독립전쟁을 벌이자고 한 거냐, 달걀귀신은 정말 아이누가 맞는 거냐, 당신은 달걀귀신을 속이고 아이누의 매장금으로 다시 한 번 에조 공화국이라도 세우려고 하는 거냐 등을 묻는데, 아시리파가 옆에서 "우리 아버지는..."하고 뭔가 말하려는 순간 "손을 잡을지 여기서 죽고 죽일지 결정해라"며 아시리파의 말을 끊고, 옆에서 듣고 있던 오가타는 이 시점에서 아시리파가 달걀귀신의 딸인 거냐고 놀란 모습을 보인다. 일단 문신의 판별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일시 스기모토 일행과 휴전하고, 이에나가 카노가 쿠마기시 쵸안이라는 미술품 위조범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츠키가타의 카바토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듣는 순간 츠루미 중위가 보낸 니카이도의 습격을 받는다. 에도가이의 저택도 이때 니카이도의 습격으로 불에 타 버리는데, 저택에 진입한 니카이도와 몸싸움을 벌이다 히지카타를 찾는 스기모토의 목소리에 니카이도가 반응하는 틈을 타서 그의 오른발을 베어버린다.

86화에서 히지카타가 나가쿠라와 조우했을 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당시 카바토에서 간수들의 검술사범을 맡고 있던 나가쿠라를 히지카타가 먼저 알아보고 '가무신'(나가쿠라 신파치의 옛 별명)이라고 부르면서 히지카타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가쿠라는 형무소장 이누도 시로스케에게 내가 20년을 이곳에 출입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숨길 수 있냐고[19] 따지는데, 하코다테 전투에서 신정부군으로 참전했던 친형을 잃은 것에 대한 원한으로 이누도는 히지카타를 죽는 것만 못한 삶 속에 가둬 두고 천천히 말려 죽일 생각이었으며, 그가 삶의 모든 희망을 잃게 되는 그 순간에 사형시킬 생각이었다고 밝히고[20] 히지카타를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를 피우는 나가쿠라를 쫓아내라고 명령하지만, 간수들의 선처로 이누도 몰래 히지카타와 감옥문을 사이에 두고 재회할 수 있었다. 나가쿠라 신파치는 도바 후시미 전투 직후 곤도 이사미나 히지카타 토시조와 에도에서 마지막으로 만났고,[21] "내 가신이 된다면 동지로 받아주겠다"는 곤도에게 빡쳐서 "지금까지 신세 퍽이나 많이도 지고 간다"며 신선조를 떠나버렸는데[22] 사실은 그때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해서 신선조를 떠나게 하고 나를 당신들이 향할 사지에 같이 끌고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배려 아니었냐고 묻는 나가쿠라에게 "아니, 그냥 네가 멍청이라서 싫었을 뿐이야."라고 대답한다.[23] 카바토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쿠마기시는 이미 1년 전에 탈옥 중에 사살되었다[24]는 소식에 "아바시리 소장한테 인사라도 해 두는 게 좋겠군."이라며 아바시리로 달걀귀신을 직접 만나러 갈 생각을 한다.

도중에 파견나온 7사단 군인들에게 시라이시가 붙잡히는데 시라이시가 달걀귀신과 접촉해 금괴의 위치를 듣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보니 키로란케와 함께 나서서 구하러 나서는데, 숫자로 상대가 안 되는지라 도중에 시라이시가 도망칠 수 있게끔 발목만 잡는 역할을 하려고 집이 무너졌다거나 길에 큰 나무가 쓰러졌는데 군인들이 와서 좀 치워달라고 하거나[25] 하면서 시라이시가 알아서 도망치게끔 틈을 만들어주는데 문제는 이놈이 그때마다 딴데 정신이 팔려서 아예 도망칠 생각을 안 한다. 결국 카무이 코탄이라는 계곡에 있는 흔들다리에서 군인들이 다리를 건너던 도중에 다리를 끊어서 급류에 빠지게 한 다음 키로란케가 뗏목을 타고 구하려 했는데, 시라이시는 일순간 스기모토가 자신을 죽이는 환영에 놀라[26] 키로란케를 놓치고 만다.

117화에서 살무사 오긴이 죽기 전에 남긴 문신 조각을 칸타로에게서 넘겨받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히지카타는 대뜸 밖을 향해서 총을 날리는데, 칸타로를 몰래 미행해 따라 온 츠루미 중위의 부하 군인을 겨눈 것이었다. 군인을 죽인 뒤 히지카타는 이 조각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이어 쿠시로 신문사에 있던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찾아가는데, "지금 시대는 칼로 겁박해도 국민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대사로 보아 언론을 통해 무언가 일을 벌이려는 듯 하다.[27] 124화에서 스기모토와 싸우던 토니 안지를 말리는데, 그와는 예전에 아바시리 교도소에 함께 수감되었던 사이인 것으로 보인다. 스기모토에게 그의 몫의 문신을 베낄 수 있게 해 주는 조건으로 토니 안지를 넘겨받는다. 토니 안지는 히지카타에게 스기모토와 싸울 때 '그리운 느낌'을 받았다며, 귀신마냥 흉포하지만 어딘가 상냥하고 배짱있는 목소리가 예전 처음 만났을 때의 히지카타 당신과 꼭 닮았다고 털어놓는다. 아바시리 감옥을 앞두고 키타미 마을에서 일행들과 함께 각자 사진을 찍는데,[28] 이때 불려온 사진사 타모토 젠조로부터 예전 그가 찍어두었던 젊은 날의 히지카타 자신의 사진을 넘겨받는다.[29]

125화에서 드디어 아바시리 감옥에 접근하는데, 스기모토와 키로란케가 히지카타가 일러준 거리만큼 지하로 땅을 파서 도착한 곳이 하필 간수장 카도쿠라의 숙소 바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카도쿠라 간수장의 아버지가 히코다테 전쟁 때 히지카타와 동료였기에 히지카타를 따르고 있었다. 아시리파를 달걀귀신에게 데려가 금괴의 행방을 밝히려고 하지만 아시리파가 스기모토를 구하기 위해 가버려 실패하고, 달걀귀신도 달아나버리고, 자신을 굴복시키려고 한 이누도를 죽이는 것에 그쳤다.[30] 처음엔 갑자기 수갑이 채워져 팔을 조금 베이나, 팔에서 흐른 피를 손바닥에 모아 이누도의 얼굴에 던져 시야를 차단한다. 그 후 허리를 베고 결국 그를 참수한다. 그 후 오가타의 저격에 의해 진짜 달걀귀신이 죽고 아시리파,오가타 일행과 스기모토 일행이 갈라지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후 이누도의 방 비밀장소에 숨었다. 문신 가죽을 전부 가지고 있던 나가쿠라와도 헤어지고, 가짜 문신 가죽을 가진 츠루미 중위나 아시리파를 데리고 간 키로란케와 오가타에 비해 뒤쳐진 듯했으나 숨어있던 방에서 문신 죄수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던 이누도의 자료를 입수했다.

151화에서 나가쿠라 신파치나 우시야마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누도의 자료 속에서 찾아낸 기묘한 조각을 가지고 쿠시로의 장터에서 탐문을 다니고 있었다. 조각을 가지고 있던 것은 역시 문신죄수 가운데 한 명으로 8년 전에 구시로 해안가에서 체포되었다가 탈옥한 도이 신조라는 자였는데, 청어잡이 아이누 청년에게서 그 기묘한 조각의 정체는 아이누들이 에토피리카[31]라고 부르는 바다새의 부리 부분[32]이었고, 에토피리카라는 그 새는 쿠시로보다 윗쪽에 있는 네무로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다. 히지카타 토시조는 도이 신조라는 자와 막부 말기의 교토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도이 신조는 사실 가명으로 히지카타가 신선조 부장으로써 활약하던 시절 막부 말기의 교토에서 '칼잡이[33] 요이치로'라 불리며 상류층이나 막부의 중요 인사들을 죽이고 다녔던 인물이다. 도이 신조는 신분제가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근왕이념을 믿고 살인을 저질러 왔지만 신정부가 들어선 뒤 토사구팽 당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34] 그러다가 30년 전에 홋카이도의 아이누 코탄(마을)까지 흘러들어 와서 아이누 여인과 결혼해서 정착했지만 8년 전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에 의해 아내가 납치되자 납치범을 죽이고 살인죄로 체포, 수감 되었다. 하지만 아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아바시리를 탈출한 뒤,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고 마을을 떠나서 어장에서 인부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장에서 도이 신조는 아이누의 옷을 입고 일하면서 가족도 고향도 없고 이름도 모르며 걸핏하면 오줌을 지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오늘내일하는 다 늙어 치매기가 온 노인의 몰골을 하고 있었고, 같은 어장 인부로부터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우물거리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35] 하지만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청부업자로부터 '이케다 마고시치로'라는 이름을 듣고 방금과는 다른 살기 띤 표정으로 도끼로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있던 세 명의 발을 찍어버린 뒤에 "한 줄로 서라. 이 칼잡이 요이치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놈은 널렸으니까."라며 중얼거리고, 이어 청부업자 한 명의 머리를 라이플로 명중시키며 "내가 그 맨 앞이다."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한 히지카타 토시조를 알아보는데, 이 시점에서 히지카타 토시조의 얼굴이 젊은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 연출을 보면 도이 신조(칼잡이 요이치로)의 시각에서 그 자신이 살았던 막부 말기의 교토와 현재 홋카이도 네무로의 어장이 겹쳐 그려지며, 히지카타를 향해서도 "평소에는 곤도나 오키타와 같이 돌아다니더니 오늘은 혼자 순찰 도는 모양이지?"라며 마치 자신이 지금 과거 교토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현상금 사냥꾼 몇 명을 쓰러뜨린 뒤 노년의 히지카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신센구미 시절의 젊은 히지카타의 모습을 겹쳐 보고 좌막파 인사들을 베어 죽이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미쳐 날뛰던 도이 신조 앞에 나타난 히지카타는 막부 말기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 일본의 역사를 보면 칼잡이 요이치로라는 인물이 그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것은 아니었을 거라며 자신과 같은 좌막 세력들 또한 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고 바스러져 사라졌다고, 러일전쟁이 일본의 피로스의 승리로 끝난 뒤에도 여력이 건재해서 일본 열도로의 남하를 멈추지 않던 러시아와 그런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일본으로써는 카라후토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며,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것보다는 양국 사이의 하나의 완충지대가 필요하고[36] 그러기 위해서는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를 독립시켜서 해외 이민자들을 모아 다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자신의 이상에 대해 털어놓는데, "나는 앞으로도 일본을 위해 싸울 거다."라고 말하는 히지카타의 모습이 노인에서 다시 젊은 시절의 히지카타로 돌아가있다. 도이 신조는 "네가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은 과거에 멈춰 있기 때문이었냐"라며 자신은 이제 너무 늙어서 그런 이상을 가질 수도 기대를 걸 수도 없다고 자조하듯 중얼거린 뒤 히지카타 토시조를 향해 칼을 쳐들고 그런 그를 신선조 부장의 모습으로 돌아온 젊은 모습의 히지카타가 베어버린다. 도이 신조는 히지카타가 건넨 에토피리카 부리는 자신의 아이누 아내가 네무로를 잊지 말라고 건네 준 유품이었다며 편하게 쉴 수 있게 최후의 일격을 제안하는 히지카타에게 "천하와 국가를 위해서랍시고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서 끝내 근왕파의 도구에 불과했던 나에게 편한 죽음은 과분하다"며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자신만이 염치없게 이 땅으로 들어 와 아이누(인간)으로써 살았다고 자조하며 죽음을 맞는데, 히지카타는 숨을 거둔 그의 앞에서 "나는 하코다테에서 죽지 못한 것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 나에게 아직 남은 역할이 있기에 살아남겨진 것이므로"라고 대답한다.

208화 시점에서는 토니 안지를 눈사태로 유인하여 쓰러트리고 생포해가던 7사단의 아리코 리키마츠 일등병과 접선하여 달걀귀신이 아리코의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밝히며 그를 포섭하여 세키야 와치로의 인피 문신을 토니 안지의 것으로 속이고 츠루미 중위의 문신을 전부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츠루미 중위는 토니 안지의 가죽 사본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리코의 계획은 실패하고 역으로 가족을 빌미로 협박당하여 가짜 가죽을 들고 이중 스파이로 심어진다. 그러나 이 역시 히지카타의 계획으로 츠루미 중위가 사용하려던 가짜 가죽 5장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모든 가짜 가죽을 전부 손에 쥐게 되었다.[37][38]

245-246화에서 우에지를 쫒던 우시야마를 우연히 보고 따라가다가 스기모토와 마주쳐 결투를 벌이게 되나, 그 와중 아시리파와 대면하게 된다. 히지카타의 큰 그림 속의 아이누족의 미래에 대해 묻는 아시리파에게 일본의 홋카이도 삼림개척은 언젠가 홋카이도를 황폐화시키게 될테니, 새로 건국하는 에조 공화국의 주력산업은 탄광으로, 그리고 그 노동력은 외국인들의 이주를 받아들일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기간 단일민족이었던 야마토(일본) 민족보다 오랜기간 소수민족과 일본, 러시아와 공존해온 아이누가 에조의 상징으로 더 어울리기에 아시리파를 다민족 국가의 지도자로 추대할거라 설득하고[39] 이후 아시리파는 어디까지나 7사단과 러일전쟁 귀환병을 위해 아이누 금괴를 사용하려는 츠루미 중위에게 빼앗기는것보단 낫다며 일시적으로 협력을 받아들인다. 이후 아시리파의 독대에서 히지카타 세력에 없는 두 사람의 문신 가죽을 공유하는 대가로 자신의 문신가죽을 전부 보여주게 되지만 아시리파는 생각했던 암호가 맞지 않은 것을 보고 당황한다.

잭 더 리퍼 사냥 때는 임시로 스기모토 일행과 휴전을 하고 편을 짜 함께 다음 습격 예정지에서 매복하나, 스기모토 일행은 이미 배신의 전적이 있는 히지카타가 또 배신하지 말란 법도 없다며 경계중이며 카도쿠라 조의 잘못된 신호에 잭을 놓치고 만다. 이후 스기모토가 거의 잡은 잭을 우시야마가 마무리짓고 그 시신을 회수해서 현장을 빠져나간다.

3. 최후

가무신... 그땐 재밌었지...
그래도... 이제야 겨우, 더 재밌어질 터였는데...
그때보다 더 날뛰자고... 내 인생의 봄은 이제부터라고...

분하군...
마지막 유언
하코다테행 열차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코이토 오토노신과 싸우다 머리에 중상을 입는다. 신센구미 시절의 환상을 보며 불곰을 정면에서 칼로 찔러 도망가게 한 뒤, 계속해서 홋카이도 제7사단 병사들을 쳐죽이다가 병사들의 총에 맞는다. 이후 스기모토에게서 히지카타 자신을 겹쳐보며 스기모토에게 자신의 애도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를 건네주고 "의리에 목숨 거는 사람들끼리 내가 받은 은혜 정도는 부탁하게 해 주게. 금괴와 권리서가 일본인과 아이누족 모두에게 구원이 될 수 있게 해 줘."며 부탁한다. 그리고 옛동료 나카쿠라 신파치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시신은 나가쿠라가 수습하여 역사대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이후 그의 애도는 과거 동료였던 에노모토 다케아키에게 신분 보증용으로 쓰여, 메이지 신정부가 부정하려던 에조 권리서를 공신력있는 문서로 인증하고, 홋카이도에 아이누 국립공원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4. 기타

오차즈케에 얇게 썬 단무지를 올려 먹는 식성이 있는데 실제 히지카타도 친척인 하시모토가가 담근 단무지를 매우 좋아해서 나무통에 가득 담아서 가져왔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40] 카즈노코(청어알)에 얇게 썬 오징어와 다시마를 간장에 절인 '마츠마에 장아찌'를 먹으며 "마츠마에 번이 낳은 좋은 것은 이것과 나가쿠라 신파치 뿐이다"라고 평한다. 맥주도 곧잘 마시는 것 같은데 우시야마의 언급으로는 삿포로 맥주를 두고 "전쟁에서 진 것은 분해도 맥주는 맛있다"고 했다고.[41]

틈틈이 신문을 읽으며 일본 및 러시아미국 등지의 국내 정세[42]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등 새로운 정보 동향에 민감하고, 죄수들에게 문신을 새긴 달걀귀신이 사실은 아이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는 등[43] 무신전쟁에 참가했던 경험과 연륜이 더해져 노련함을 드러낸다.

신선조 부장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자신이 죽인 젠지로를 보며 "이 녀석은 곤도 씨만큼의 그릇은 아니었나... "라고 중얼거리거나, 스기모토를 두고 "우메도[44]도 비슷한 상처가 있었는데, 그 속에 감춘 흉포함은 쿠와지로[45]인가"라고 하거나, 시라이시를 스기모토에게 밀정 비슷하게 붙이면서 "사이토 하지메가 될 것인가, 사에키 마타사부로가 될 것인가..."[46]라고 중얼거리는 등 옛 신선조 동료들에 비유해 인물평을 하기도 한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에 맞지 않게 마음이 젊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우시야마는 카노와의 대화 중에 "마음이 젊은 영감"이라고 했고, 시라이시도 히지카타 토시조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스기모토에게 도저히 일흔을 넘겼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젊음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며 함께 수감된 죄수들끼리 무슨 인어고기라도 먹은 것 아니냐고 수군대기도 했다고 소개한다.[47] 스기모토가 "자는 중에 건드리면 흉포해진다"고 하는 아시리파가 히지카타 옆에서는 얌전하게 잠이 드는 것을 보면 토니 안지가 말한 '흉포함 속에 다정함을 감추고 있다'는 언급이 맞는 듯.[48] 바라토 마을에서 우마키치를 찾아가 자신을 고용해 달라고 하지만 우마키치가 히도로의 임신한 첩을 인질로 쓰겠다며 잡아올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자 "싸움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번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기도 하는 등, 마냥 악인은 아니다.[49]

[1] 1907년 기준[2] 피스메이커 쿠로가네에서 히지카타 토시조를 맡은 적이 있었고 박앵귀 시리즈에서는 세리자와 카모를 맡은 경력이 있다.[3] 12화에서 유곽에서 우시야마를 습격해 자신의 편에 서라고 설득하면서, "요즘 시대에 칼이나 차고는 제국 육군을 베겠다고?"라는 우시야마에게 한 대답이다.[4] 바라토의 도박장에서 척 보기에도 늙은 자신을 깔보듯 말하는 히도로의 부하 두 사람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나서 한 대사. 좀 더 친절하게 풀어서 표현하면 "이런 시대에 칼 찬 노인을 봤다면 보신전쟁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인 줄 알아라."라는 뜻이다. 메이지 유신 당시 폐도령을 통해 군경 외에 사무라이나 일반인이 칼을 차고 다니지 못하게 금지했기 때문이다.[5] 마루마루의 불법 역식본에서는 "잘 들어라, 소승들. 이런 시대에 늙은이를 보거든 '살아남음'이라 생각해라."라는 직역스러운 발번역이 됐는데, 다른 불법 역식본에서 나온 반갈죽과 함께 밈이 되기도 했다. 小僧는 일본식 발음으로 '코조'라고 읽으며 철부지 남성을 하대하는 뉘앙스로 쓰이지만, 한국에서 '소승'이라 하면 스님이 자기 자신을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1인칭(ex. 소승에게 시주 부탁드립니다)이다. 따라서 소승이라 직역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한 일본어에서 특정 동사를 연용형으로 명사화시켰을 경우, 단순히 그 행동의 명사형만이 아니라 해당 잣대에 해당되는 무언가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살아남은 자' 혹은 '생존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당연하다(다음 일본어사전). 마루마루 불법 역식본의 한가지 기묘한 점이라면 같은 문장의 비슷한 유형의 표현인 오이보레老いぼれ는 '늙은이'라고 올바르게 번역했다는 것이다.[6] 작가가 알고 쓴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북미권에도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 직종에서 살아남은 노인을 조심해라(Beware of an old man in a profession where men usually die young)'라는 말이 있다.[7] 당시 신선조 잔당은 홋카이도 하코다테자리를 잡고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었다.[8] 원래는 보통 일본도를 썼지만, 날이 무디다며 34화에서 자신이 예전에 쓰던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를 은행에서 가로채온다. 그 와중에 군자금 챙기는 건 덤이다. 다만 실제 역사 상에서는 토시조가 고료카쿠 전투 이전에 히노의 생가로 보내서 이후 계속 토시조의 둘째형 히지카타 키로쿠가 보관, 현재는 키로쿠의 5대손이 운영하는 히노시 히지카타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다.[9] 레버액션 식이기에 한쪽 팔로만 장전하는 스핀로딩이 가능해 다른쪽 팔로 칼을 휘두를 수 있다.[10] 1783년에 그려진 일본 지도만 해도 혼슈 위쪽, 홋카이도와 그 근처 섬들은 그려지지 않았다. 일본 땅으로 편입되고 홋카이도란 이름이 붙은 건 무진전쟁 종전 후. 작중에서 홋카이도가 일본에게 흡수된 지는 30년도 채 안 된 것이라 볼 수 있다.[11] 나가쿠라 신파치는 실제로 러일전쟁이 끝나고 10년 뒤인 1915년까지 살았다.[12] 이때 시내 한복판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시선을 쏠리게 해놓고 은행을 터는 작전을 구사했다.[13] 나가쿠라 신파치의 대사로 봐서 이곳에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가 있음을 알려준 것이 그였을 가능성이 높다. 웹에는 노년이 된 주인과 의 재회 장면을 그린 팬아트도 존재하는데, 꼭 옛 칼을 찾자고 대낮에 저렇게 요란하게 일을 벌였어야 했느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은행 습격은 칼을 찾는 것 외에도 자금 마련이라는 목적도 있었기에 적절한 지적이라 보기 어렵다.[14] 이때 시라이시에게 "너와 네 부하(스기모토와 아시리파를 자신의 부하라고 소개했다) 중에 한 명이라도 문신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시라이시는 "없다"고 대답했다.[15] 당시 일본 신정부는 아이누들에 대한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아이누들을 일본식 이름으로 호적을 작성하게 했다.[16] 정확히는 아이누 행세를 하고 있는 극동 러시아 아무르 강 주변 소수민족 출신 빨치산일 거라고 하는데, 달걀귀신도 실은 이들 빨치산의 일원으로, 제정 러시아를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독립 운동에 사용하려고 7인의 아이누를 죽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잉카르맛에 의해 아시리파의 아버지가 러시아에 의해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었던 폴란드인임이 밝혀진다.[17] 원래 바라토 마을에서 청어장을 하던 히도로 이치미는 마을에서 도박장을 경영하면서 도박빚을 못 갚는 사람을 빚 대신 청어장에서 노역시켰는데, 이 청어장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에 심복이었던 쿠스다 우마키치가 빡쳐서 그 밑을 나와 자신이 새 도박장을 차렸고 히도로와 충돌하며 마을에 야쿠자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히지카타가 벤 것도 히도로의 아들이 데려온 야쿠자들 중 하나. 히도로와 쿠스다는 각기 삿포로 본서장과 현지 분서장에게 뇌물을 주며 그들을 구워삶고 있어서 경찰에서도 나서지 않는다.[18] 정면에서 선제사격을 가하고 측면을 돌아 발도공격을 하는 전술은 신선조가 자주 애용하던 전술이었다는 해설이 나온다.[19] 작중 대사로는 정부까지 속였다고 언급된다.[20] 심지어 자신의 아바시리 전근에 맞춰서 히지카타를 아바시리로 이송시킬 계획이었다. 말 그대로 두고두고 따라 다니면서 괴롭혀 주겠다는 것.[21] 작중 나가쿠라의 언급에 따르면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1868년)에 마지막으로 히지카타와 만났고, 히지카타 토시조가 죽었다고 알려진 시점이 1869년, '20년이나 나를 속였다' 운운하는 것이나 작품의 현재 배경이 1905년임을 생각하면 히지카타가 아바시리로 옮겨진 것은 대략 1888년에서 1889년 이후의 일로 추정할 수 있다.[22] 작중에서 곤도 이사미와 대립하면서도 신선조에 그때까지 남은 것은 히지카타 토시조 때문이었고 그가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할복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나가쿠라 신파치는 신선조 국장인 곤도 이사미를 자신과 동등한 '동지' 정도로 생각했지 자신의 위에 있으면서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로 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가쿠라 신파치 항목 참조.[23] 이 장면에서 나가쿠라와 히지카타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다.[24] 사실은 죽지 않고 아이누로 변장해서 숨어 있었다. 아시리파를 인질로 잡고 있었지만 문신을 감별하는 방법을 묻는 아시리파에게 대답하기 직전에 독화살에 맞아 죽는다.[25] 군인들 대사로 "베여서 넘어진 것 같은데 누가 이런 짓을 했지?"라고 나오는데 정황상 히지카타가 베었을 가능성이 크다.[26] 스기모토가 히지카타와 만난 뒤로는 그가 히지카타의 끄나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을 스기모토가 알게 되면 자신을 죽일까봐 겁 먹고 다녔고 돌아가봐야 스기모토가 언제 자신을 죽일지 겁먹고 악몽에 시달리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판이었다.[27] 124화에서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저곳의 신문사를 살 생각이라고 한다.[28] 잉카르맛과 키로란케가 정말 츠루미 중위의 끄나풀인지 자신들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지 사진을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물어보려는 용도로. 나중에 아시리파가 스기모토를 구하기 위해서 달아난 뒤에는 달걀귀신에게 자신과 아시리파의 관계를 설명하고 금괴가 있는 곳을 듣기 위해서 쓰려고 했다.[29] 흔히 알려진 양장 차림의 그 히지카타 토시조의 사진 맞다. 그 사진을 찍은 장본인 타모토 젠조도 실존인물이다.[30] 260년 동안 '충성'해온 막부를 갈아엎은 무사들이 국책이랍시고 다시금 국민들에게 충성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모순을 정당화하고 납득하기 위해서 예전 막부를 섬겼던 무사들을 전향시켜 지배해야 했고 그러자면 '전향 ' 따위 없이 막부를 끝까지 따르다 장렬히 전사한 그들이 '패자'일 망정 오히려 민중들 사이에 강렬한 인상만을 남기며 시대를 거듭할수록 차츰 '순교자'로써 미화되어가는 것들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냐고, 무사들의 지배를 받으며 평생 땅이나 파먹고 살던 히지카타 자신과 같은 농민들이 정작 무사들이 그렇게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다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충의라는 미덕을 무사들보다 훨씬 더 잘 관철해 냈다는 진실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이 아니냐며 일갈한다.[31] 아이누어로 '아름다운 부리'라는 뜻[32] 이성을 유혹할 때 쓰는 장식 같은 부분으로 번식기가 지나면 떨어져 나간다고 언급된다.[33] 원문에서는 人斬り("히토키리"라고 발음된다.) 라는 단어. 문자 그대로 "사람을 베는 이"라는 의미로서, 유신지사측이 막부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고용한 암살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바람의 검심 영어판 자막에서도 "the man slayer"라고 번역되는데, 칼잡이라는 단어는 원문에 비해 훨씬 순화된 단어인 것(이와 관련해서 바람의 검심 1권 부록에서 번역자가 人斬り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심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만화 바람의 검심으로 알려진 히무라 켄신이 추억편에서 막부측 인사들을 베고 다녔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만화 바람의 검심에서도 히무라 켄신사이토 하지메의 관계로 묘사된 바 있지만, 막부의 요인들을 암살 혹은 테러하는 이 칼잡이들과 교토의 치안을 수호하는 신선조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다.[34] 히지카타 뿐 아니라 그의 칼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지원을 받는 청부업자와 이누도가 있던 아바시리 감옥의 간수들에게 쫓기고 있었다.[35] 때문에 어장 인부들이 묵던 숙소 안으로 들이닥친 청부업자들이 그를 '칼잡이 요이치로'라고 부르자 인부들은 노망나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영감이 살인은 무슨 살인이냐며 어이없어 한다.[36] 작중 에조 공화국이 그런 역할을 노린 것이었다고 설명된다.[37] 다만 히지카타의 가짜 가죽에 대한 판단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적어도 5장은 가짜가 확실해 보이지만 에도가이 야사쿠가 가짜 가죽 6장을 만들었고, 이를 전부 츠루미 중위에게 넘겼는데, 히지카타 일당은 그의 박제점에서 고양이가 우연히 꺼낸 인피 문신을 하나 발견하며, 그 전에도 츠루미 중위가 기름상에서 가짜 가죽을 미끼로 벼락강도를 유인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기름상의 문신이나 고양이가 꺼낸 문신 중 하나는 진짜라는 결론이 성립하기 때문.[38] 실제로 이후 츠루미 중위가 일부러 진짜 가죽을 섞어두어 가짜 가죽 구별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 드러난다.[39] 이때 스기모토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지는데, 츠루미 중위에게 이용당하건 히지카타에게 이용당하건 아시리파가 이용당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 거기다가 히지카타가 아시리파를 설득할 때 '아이누가 짓밟히건 말건 상관없다면 아시리파는 산 속에서 살아도 된다'며 역린을 같이 건드렸다.[40] 이 일화가 박앵귀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단무지 자체를 좋아하는 걸로 유명해졌다. Fate/Grand Order에서도 이 일화를 반영해 히지카타 토시조가 단무지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묘사가 나온다.[41] 삿포로에 처음으로 맥주 양조소를 연 무라하시 히사나리(村橋久成, 1842-1892)는 사쓰마 출신으로 무진전쟁 때 신정부군에 참전해 싸운 군인이었고 전쟁 뒤에는 홋카이도 개척사의 한 사람으로 도쿄에 있던 양조장을 홋카이도로 옮겨오게 한 인물이다. 추운 지대에 있어서 맥주 양조에 필요한 얼음을 대량으로 구하기가 수월했다고.[42] 제정 러시아 백인계 정부군 외에도 레닌이 이끄는 유대계 공산당, 시베리아 인근 토착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빨치산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나온다.[43] 금괴의 이동 경로가 오타루에서 홋카이도 아닌 외부를 향하고 있었다는 점을 통해서 유추해 낸 것이다.[44] 신선조 대원이었던 우메도 카츠노신(梅戶勝之進). 텐만야 사건 때 사이토 하지메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공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45] 똑같이 신선조 대원이었던 오오이시 쿠와지로(大石鍬次郎). 곤도 이사미나 히지카타 토시조에게도 신임이 두터웠지만 '참살자 쿠와지로'라 불릴 정도로 출세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미야 사건 이후 사카모토 료마의 암살범으로 몰려 처형되었다.[46] 두 사람 모두 신선조의 대원이자 밀정 노릇을 했지만 사이토 하지메가 천수를 누린 것과는 달리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거꾸로 회유당해서 처단되었다고.[47] 여기서 시라이시가 아시리파에게 야오비쿠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인어고기를 먹은 소녀는 불로불사가 되었지만 영원히 살게 된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몇 백 년을 살아간 끝에 결국 비구니가 되어 세상을 허무하게 여기며 굴 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중에서 히지카타의 얼굴이 비친다. 이어 스기모토의 대사가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한 자의 괴로움인가"인데, 다음 화에서 스기모토를 만난 키로란케가 "전쟁영웅을 만나게 되다니"라고 감탄하자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대답하는데, 처음 히지카타의 계획을 들은 나가쿠라가 "당신은 그저 죽을 자리를 찾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던 것과 함께 놓고 보면 의미심장하다. 작가가 은근히 히지카타를 진 주인공으로 구상하고 있거나 아니면 스기모토와 히지카타를 동등한 비중으로 두고 작품을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될 정도. 사실 스기모토를 종종 '젊었을 적의 히지카타 같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그리고 마지막에 스기모토에게서 젊을 적의 자신을 겹쳐보고 자신의 검을 맡기는 것으로 완성된다.[48] 심지어 아이누 마을에서 다같이 연어 치타탑을 만들어 먹을때 치카파시가 히지카타 토시조의 검을 뽑으며 ‘이걸로 치타탑 해도 돼?’라고 묻자 치카파시를 다정하게 무릎에 앉혀 손자와 놀아주듯 검을 가지고 같이 치타탑을 했다.[49] 사실 자신의 대의를 막는 사람을 가차없이 죽였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태까지 악인이라 할 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항상 어린아이를 손주 돌보듯 다정하게 대하고,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칼을 대지 않는 다정한 할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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