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2 06:18:50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Prince Harry, Duke of Suss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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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Henry Charles Albert David)
출생 1984년 9월 15일 ([age(1984-09-15)]세)
영국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
신체 186cm
학력 웨더비 스쿨
러드그로브 스쿨
이튼 칼리지[1]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배우자 메건 마클 (2018년 결혼)
자녀 아치
아버지 웨일스 공 찰스
어머니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
형제 윌리엄
계승서열 6위
서명 파일:1280px-Prince_Harry's_signature.svg.png

1. 개요2. 작위3. 생애4. 결혼5. 독립6. 자녀7. 기타

1. 개요

영국왕족.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차남이자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의 남동생이다. 공식적으로 서식스 공작 전하(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Sussex)라고 불린다. 이름은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Henry Charles Albert David)이며, 태어났을 때는 왕위 계승 서열 3위였다. 군대에 복무할 때 웨일스의 공자였기 때문에, 웨일스를 성으로 사용했었다.[2] 현 왕위 계승 순위 6위.[3]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와의 약속으로 결혼 후에 서식스 공작(Duke of sussex) 작위를 받았으며, 덤버턴 백작(Earl of Dumbarton)과 카일킬 남작(Kilkeel Baron)의 작위도 함께 받았다.[4]

2018년 5월 19일 미국인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하였고, 2019년 5월 6일 아들 아치 마운트배튼윈저가 태어나 아버지가 되었다.

2020년 1월 왕실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 이혼녀와 결혼했다는 점과 이러한 행보는 에드워드 8세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2.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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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 웨일스의 공자 헨리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Henry of Wales (1984년 9월 15일 ~ 2018년 5월 19일)
  • 서식스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Sussex (2018년 5월 19일 ~ 현재)
    • 스코틀랜드에서는 덤바턴 백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Earl of Dumbarton (2018년 5월 19일 ~ 현재)
    • 북아일랜드에서는 카일킬 남작 Baron Kilkeel (2018년 5월 19일 ~ 현재)

2020년 봄부터 왕실 고위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전하(His Royal Highness) 호칭을 가지고 있으나 대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5]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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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 15일 런던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영국찰스 왕세자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같은 해 12월 21일 윈저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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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의 해리왕자. 참고로 신고있는 빨간색 신발은 훗날 조카 샬럿 공주폴란드 순방 때 신기도 하였다.

어머니 다이애나 스펜서는 해리와 형 윌리엄 왕세손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유롭게 자라길 바랐기 때문에, 형과 함께 영국 왕족 최초로 학교를 다녔으며 디즈니 월드맥도날드에 가거나 에이즈 병동에 방문하는 등, 이전 왕족들에 비해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다.

1997년 8월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와 할아버지인 필립 공,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 버킹엄 궁전 앞에 다이애나를 추모하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사진과 꽃을 천천히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해리 왕자의 모습은 많은 영국 국민들에게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해리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다. 다이애나의 장례식에서 필립, 찰스, 윌리엄, 스펜서 백작과 함께 어머니의 관을 따라 걷을 때,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왕실 어른들의 명에 따르기 위해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해리가 두 손을 너무 꼭 쥐어 한쪽 손의 손톱이 맞잡은 손바닥에 파고 들어 피가 났을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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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스펜서의 장례식에서.

어머니인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 이후 큰 충격을 받고 갑자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대마초를 피다가 적발되지 않나,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파티걸들과 함께 클럽을 전전하지 않나, 파티에 나치 독일군 장교 복장을 하고 참석하거나#[6] 나체 파티에서 나체 놀이를 하거나# 여러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등 할머니에게 골치만 썩히는 왕실의 골칫거리이자 사고뭉치로 전락했다. 항간에서 '반항기 왕족' 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이런 비행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군대가면 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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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해리 왕자는 샌드허스트에 입학해 영국 육군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생도 시절에 파키스탄에서 교육받으러 온 생도에게 파키(paki)[7]라 불러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할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을 생각케하는 대목. 이 외에도 형에 비해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편이다.[8] 군에서는 영국군 근위대 블루스 앤 로열스 연대 기계화보병 소대장을 거쳐 육군 항공대에서 AH-64 화기관제사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보병일 때 한번(2007년), 아파치 화기관제사로 한번(2012년), 총 2번 참전했으나 언론에 그의 활동이 노출되면서 선전효과를 노린 탈레반이 2012년 9월 10일 해리 왕자가 주둔하던 바스티온 기지를 총공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안전 문제 등으로 영국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계급은 "대위"이다. 1월 5일 소령진급 시험을 통과해, 영국 왕실 최초로 장성 계급을 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9] 그러나 왕실에서의 의무가 늘어남에 따라, 2015년 6월 전역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2015년 4월에 1개월간 호주군 파견 근무를 하는 것이 마지막 야전 임무라고 한다.# 이후 해리 왕자는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로얄 빅토리아 훈장 기사 커맨더장을 수훈했다.

2015년 2월 엠마 왓슨과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세간의 반응은 충공깽... 그리고 곧바로 영국 왕실 측에서 열애설에 대해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4월에는 제니퍼 로렌스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 외에도 형수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의 여동생 피파 미들턴과도 염문설이 도는 등, 형에 비해 열애설이 자주 도는 편이다.

약 30여년 전 방문했던 어머니 다이애나를 따라서 지뢰퇴치를 위해 앙골라를 방문하였다.#

윌리엄 왕세손에 비해 해리는 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해리 왕자가 사실 찰스의 아들이 아니라 다이애나 스펜서가 모 영화배우와 바람이 나서 얻은 자식이라서 그렇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그 배우와 해리 왕자를 비교해 보면 정말로 많이 닮기는 했다. 또는 승마 코치였던 제임스 휴이트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찰스는 둘째 자식은 꼭 딸이기를 바랐는데 정작 또 아들이라 실망한데다가, 적발이라서 더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리의 젊은 시절 사진과 그의 할아버지인 필립의 젊은 시절 사진을 비교하면 매우 비슷하다. 또한 어머니 다이애나는 해리를 낳은 후인 1986년에 제임스와 처음 만났다. 마지막으로, 해리의 붉은 머리는 스펜서 가의 특질 중 하나일 뿐이다. 결정적으로 저 소문이 신빙성이 전혀 없는 것이,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서 유전자 검사를 안 했을리가 없다. 만약, 해리가 찰스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다이애나를 미워했던 왕실과 타블로이드 언론이 그 사실을 대서특필했을 것이며, 다이애나가 이혼을 신청하기 전 이미 왕실에서 그녀를 내쫓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한편 다이애나는 1991년 전기작가 앤드류 모튼과의 인터뷰에서 "해리를 임신했을 때 찰스와의 금슬이 가장 좋았지만, 해리가 태어난 이후 부부관계가 완전히 파탄났다"라고 말한 후, "그러나 해리는 부부에게 있어 엄청난 기쁨이며, 어쩌면 윌리엄보다도 아빠와 더 친밀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호주 대체역사소설 Axis of Time에서는 군에 계속 남아서 SAS 대대장을 지내던 중, 탑승한 함선을 포함한 다국적군 함대가 타임슬립으로 2차대전 시대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젊은 날의 할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일각에선 영국의 스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조카 조지 알렉산더 루이 왕자와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 루이 아서 찰스 왕자의 탄생으로 왕위계승권이 물건너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 윌리엄 왕세손과 형수 캐서린 왕세손비, 조카들과는 매우 사이가 좋다. 사진을 뒤져봐도 낌새가 이상한 건 없다.

탈모로 보는 이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형 윌리엄 왕세손과 달리, 매우 풍성한 모발을 지녔다. 이 때문에 왕위 대신 풍성함을 물려 받은 진정한 승리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완전한 풍성함은 아니라, 아버지 찰스 왕세자처럼 머리 정수리 쪽이 휑하다.

전역 후에는 수염을 기르고 있다. 수염을 싫어해서 왕실 남성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을 금지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해리 왕자만큼은 수염을 기르는 것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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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진 찍은 사람은 리디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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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당시 호주군에 파견되어 복무하기도 했으며, 이때의 인연으로 호주에 매년 방문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호주에서 인기가 많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사후 찰스 왕세자가 영국의 왕이 되어도, 호주는 찰스가 아닌 해리를 군주로 추대해야 한다"는 농담도 간혹 나올 정도이다.[10]

4.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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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영국 왕실에서 미국 배우 메건 마클(Meghan Markle)과의 열애설을 공식으로 인정했다. 메건이 혼혈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인 어그로가 성행하여 꽤나 골치를 썩인 듯.

정작 본인도 인종차별을 한 적 있다. 샌드허스트에 있던 당시에 같은 교육생인 파키스탄군 소속 육군사관생도 아흐메드 라자 칸(Ahmed Raza Khan)에게 파키(Paki)라는 멸칭으로 불렀다가 욕을 먹자 전화를 해서 사과했다. 칸 본인이 나서서 해리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변호해 줬지만 이래저래 영국 왕실은 욕을 먹었다.

2017년 5월 3일(현지 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약혼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리 왕자에게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두 사람을 축복했다고 한다. 해리의 형인 윌리엄과 형수 캐서린 미들턴도 두 사람의 결혼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금씩 윌리엄과 캐서린이 혼혈인 메건을 반대하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유는, 아버지 찰스의 재혼, 작은 아버지 앤드류의 이혼과, 고모 앤 공주의 재혼 등으로 적지 않은 흠집이 난 왕실에 백인 여성을 며느리로 들여야, 조금이라도 윈저 가문에 면을 세워줄 수 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찌라시일 뿐이므로, 맹신할 필요는 없다.

메건 마클에게 준 약혼 반지는 어머니 다이애나의 유품으로 제작되었으며[11] 해리 왕자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현재 두사람은 해리의 공식 거처인 켄싱턴 궁 내의 Nottingham Cottage(윌리엄과 캐서린의 신혼집)에서 벌써부터 동거중이라고 한다. 이는 영국 왕실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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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17년 11월 27일 결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결혼식은 2018년 5월 19일 윈저성의 성 조지 예배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에서 성대하게 했던 다른 왕실 결혼식들과 다르게 정치인들도 부르지 않고 상대적으로 검소하게 치뤄졌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영국 왕실 최초로 # 유튜브에서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보러가기

5. 독립

2020년 1월 8일,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왕실 고위직에서 물러나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영국과 북미를 오갈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두 사람은 왕실로부터 재정적인 독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왕과 영연방, 후원자들에 대한 공무는 계속 이어나간다고 한다. 여왕은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해리 왕자 부부에게 극도로 실망했다고 전해졌다.

가디언에 의하면 올해 1월 초에 아버지의 찰스 왕세자에게 해리 왕자 부부가 자신들의 뜻을 알렸지만 시간을 더 두고 생각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8일, 인스타그램과 동영상을 통해 발표를 강행하면서 찰스 왕세자 등 왕실 인사들 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다고 알려졌다. 특히 해리 왕자 부부는 인스타그램 발표 10분전에 아버지와 형 윌리엄 왕세손에게 관련 내용을 통보식으로 이메일로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선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이 사건에 '메그시트'`(Megxit)라는 메건과 탈퇴를 합성한 용어를 붙이며 격양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부부가 실질적으로 상징적인 공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대해 독립과 함께 중단 의사를 밝혔음에도 계속해서 왕실의 지원을 받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또한 해리 왕자는 재정적인 독립에 대해 왕실 교부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는 밝혔지만 그 이상의 방안에 대해서는 노력은 하겠다고 다짐했을 뿐 확실하게 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6월부터 본인의 왕족 직위인 서식스 공작을 뜻하는 '서식스 로열'을 브랜드로 등록해오면서 왕실에서는 독립하면서 정작 앞으로 준비하는 수익 사업에 대해서는 왕실 이미지를 덧붙이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퍼지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12]

또한 이들이 재정적 독립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왕실교부금[13]을 받지 않겠다는 부분 역시 논란거리인데, 해리 왕자 부부의 지출 중 95%는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콘월 공작 자산'[14]에서 나오는 수익이 차지하고 왕실 교부금은 5%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찰스 왕세자를 통해 지급되는 생활비 및 업무 비용은 2019년 기준으로 500만 파운드(약 75억 8200만 원)을 넘어가는 수준이다. 특히 해리 왕자는 아직 콘월 영지 수익을 포기하겠다고는 선언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가족 단위로 나오는 푼돈은 포기하겠다고 생색은 내지만 실질적인 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버지 찰스가 지급하는 돈에 대해서는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고 대부분의 책무에서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세금으로 전액 충당되는 경호 서비스 역시 계속 지원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해리 왕자 부부의 파격적인 독립 선언은 사태 초반에는 자유를 찾은 왕족이라는 식으로 옹호받았지만, 이러한 실상이 알려지면서 영국 내부에서는 점점 분위기가 격양되고 있다. 왕실에 대한 일방적인 독립 통보를 왕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드리는 왕당파들과 왕족으로서 세금으로 먹고 사는 입장에서 그나마 책무라고 할 수 있는 사회, 외교적 공무 역시 최소화하고 회피하겠다는 행태에 일반 시민들의 불만 여론이 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적 독립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부분과 이 사건을 계기로 해리 왕자의 아버지에 의존한 수익 구조와 문제의 '콘월 공작 자산'의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 가장 큰 실책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은 이들 부부가 이주하겠다고 밝힌 '캐나다'에서는 해리 왕자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 높아 해리 왕자가 이번 기회에 '캐나다 총독' 자리에 부임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이 현지 신문 내셔널포스트의 여론조사에서 61%까지 올랐다는 점이다.#[15] 그러나 해리 왕자 부부에 대한 경호비를 캐나다에서 지불할 것을 트뤼도 총리와 영국간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퍼지면서 캐나다 여론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군주제를 택하면서도 군주제의 구조를 깨뜨린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헌법적 금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리 왕자가 캐나다에서 아에 거주를 하고 캐나다인이 아닌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이 되면 독특한 군주제의 균형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16] 거기다 캐나다는 1919년 캐나다인이 영국으로부터 귀족서임을 받더라도 국내에서는 그 권리와 칭호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에 해리 왕자 부부가 캐나다로 이민을 갈 시 그 권리를 내세울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를 의식해서 해리 왕자측도 캐나다에 이민을 가면 평민계급으로 대우 받겠다고 약속했으나, 영국 왕족에게 캐나다 시민권을 아무런 절차 없이 줄 수 있다는 조항이 캐나다 이민법상 없기 때문에 만약 해리 왕자가 정말로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면 일반 이민자들과 똑같은 절차를 밟아 이민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해 영국 내 비판 여론은 '해리 왕자' 쪽보다는 더 선의 1면 헤드라인 `메건이 우릴 등쳤다`(Meg`s Mugged Us Orf)에서 잘 드러나듯 아내인 '메건 마클' 쪽으로 강하게 쏠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외에도 영국 내에서는 해리 왕자 부부의 독립이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의 따돌림 때문이라는 가십 기사가 쏟아졌고 결국 이에 대해서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공동으로 성명을 내서 이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윌리엄과 해리 사이에 불화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BBC와 더 타임스같은 영국 내 주류 언론들에서도 확정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1월 1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해리 왕자 부부의 독립 선언을 수용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봄부터 공식적으로 일체의 왕실 직책에서 물러나고,[17] 그동안 왕실 공무를 수행한 대가로 받았던 각종 재정지원 역시 중단된다.# 이에 슬프지만 후회없다는 심경을 남겼다.#

6. 자녀

2018년 10월 15일, 켄싱턴 궁전에서 아내 메건 마클이 아이를 임신했으며 2019년 봄에 출산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2019년 초에 거처를 켄싱턴 궁전에서 프로그모어 하우스로 옮겼다.

예정일인 4월 말을 넘기고도 한참동안 아이 소식이 없다가, 2019년 5월 6일 오전 5시 26분 아내 메건 마클이 3.26kg의 건강한 남자아이를 순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 해리 왕자에 이어 영국 왕위 계승 서열 7위가 되지만, 현재 왕세손의 자녀까지만 Prince/Princess, His/Her Royal Highness 칭호를 주는 영국 왕실의 법 때문에 사촌 조지 왕자, 샬럿 공주, 루이 왕자와 달리 할아버지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기 이전까지는 prince 작위를 받지 못한다. 대신 예우 경칭(courtesy title)으로 해리의 두 번째 작위인 덤바턴 백작의 칭호를 쓸 수 있었으나 해리 왕자 부부는 아이에게 칭호를 주지 않을 것으로 결정하였다. 아치는 성인이 된 후, 그의 이름 앞에 남성 귀족 존칭인 'master'로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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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8일, 아이가 대중에 최초로 공개되었다.얼굴 나온 기사

아기의 이름은 아치 해리슨 마운트배튼윈저(Archie Harrison Mountbatten-Winsor)로 공개되었다. 아치는 왕실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이 아니며, 2018년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남자아이의 이름순위 18위였다. 훗날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적기에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는 것을 원하는 부모의 바람이 담겨있다는 추측이 돌았다. 아치라는 이름은 아치발드(Archibald)라는 이름[18]의 애칭이다. 미들네임인 해리슨의 경우 단순히 '해리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7. 기타

어머니 다이애나 비 사망 20주기(8월 31일)를 앞두고 2017년 7월 22일(현지시간) I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머니가 프랑스 파리에서 걸어왔던 마지막 전화 통화를 짧게 끝냈던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 말했다. #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1997년 장례식 때를 포함해 딱 두 번 운 적이 있다면서 "아직도 많은 슬픔이 밖으로 표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7년 4월에는 데일리 텔레그래프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거의 20년을 지내오다가 약 2년동안 완전히 정신이 붕괴될 지경에 처하게 되면서 정신과 카운셀링을 받았다"며 형 윌리엄 왕세손으로부터 전문가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에 따라 카운셀링을 받았고, 20대 말 쯤에야 겨우 슬픔을 받아들일 수있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여담으로 왕위와 관련된 농담을 상당히 많이 듣고 있는데, 때때론 진지하게 그를 왕위에 앉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내 자주 성향의 왕당파들 사이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사후,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린 해리 왕자를 캐나다로 데려와 캐나다의 국왕으로 취임시켜 영국에서 독립된 캐나다 왕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19][20]

해리 왕자의 억양은 전형적인 용인발음으로 보기 힘들다. 에스츄어리 억양[21]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의 젊은이와 다를 바 없을 정도이다. (사실 용인발음이 이렇게 에스츄리로 수렴하는 게 현대 영국 영어 추세이긴 하다).

WWE 선수인 새미 제인과 닮았다. 키도 1cm 정도 밖에 차이가 안 나고[22] 노란 머리와 짧게 기른 수염등 얼굴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평이다.

2019년 4월부로 케임브리지 일가와 계정이 분리된 해리 왕자, 메건 마클의 공식 인스타그램이 5시간 45분만에 팔로워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전 기록은 강다니엘의 11시간 36분이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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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큰일났다! 형의 저주를 피해가나 싶었으나, 결국 증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인 유튜버이자 한국문화를 주로 대상으로 활동하는 영국남자 채널에서 등장하는 출연자중 한명인 찰스 보델 리 포병 소령과 사관학교 동기라고 한다. 임관식때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 충성서약을 할때 자신 옆에 있던 해리 왕자에게 "너한테도 충성할께 친구." 라고 농담조로 이야기 했다고. 결국에 왕족이니 언젠가 충성해야할 대상이기도 하고... 실제로 소령 계급을 달았을때도 장군급의 대우를 받으며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


[1] 사이에 갭이어로 호주에 다녀왔었다.[2] 보통 유럽 왕실에서, 왕이나 귀족은 성이 없지만 굳이 성을 써야 할 경우에는 영지를 성으로 쓰게 된다. 거의 유일한 예외는 루이 16세인데, 단두대에서 사형될 시에 호명된 이름이 루이 "카페"로, 부르봉 가문의 본가였던 카페 가문의 이름을 성으로 사용했다. 카페라는 이름은 카페 왕조의 시조인 파리 백작 위그 카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3] 아버지, 형, 조카들 다음.[4] 작위를 수여받는 것과 함께 가터 기사단도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형인 윌리엄 왕자는 먼저 결혼해 이미 기사단에 들어와 있다.[5] 어머니 다이애나 스펜서는 이혼하면서 HRH 호칭이 박탈된데 반해, 해리 왕자 부부는 사용할 수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Princess of Wales 작위를 갖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6] 찰스 왕세자가 대노해서 사적으로 "아우슈비츠에 갔다 오라"고 했다고 한다.[7] 파키스탄인 혹은 파키스탄계에 대한 비하 명칭이다. 한국 내에서도 파키스탄인에 대해 쓰이는 멸칭인 파퀴벌레랑 비슷한 뉘앙스.[8] 군 복무 직전인 2005년에는 한 파티에서 나치 독일군 코스프레를 했다가 비난을 받았고, 2012년에도 미국에서 친구들과 나체 파티를 즐긴 일이 있다.[9] 일단 영국군은 왕실에게 장관급 장교 계급을 준다. 대부분 대위나 소령 때 군을 떠나고 왕실 인원으로 받는 명예 계급이다. 해리가 하고 싶다는 건 진급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얘기. 명예계급 말고 실질계급으로.[10] 그런데 호주를 포함한 영연방 왕국들에서 영연방 입헌군주제 폐지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 이러한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존재한다(...).[11] 반지에 있는 세 개의 보석 중 양쪽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유품, 가운데는 해리와 메건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보츠와나에서 공수한 보석이라고 밝혔다.[12] 다만 가디언은 해리 왕자 부부가 상표권에 관련해서 선제적 조치를 했을 뿐, '로열'을 앞세워 큰 사업을 벌이려는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13] 왕실 교부금은 영국 왕실이 공적인 의무를 이행하고, 왕궁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공하는 자금이다.[14] 찰스 왕세자 소유의 부동산과 금융 투자 자산을 뜻한다.[15] 심지어 평소 왕실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퀘벡 지역에서조차 47% 가량의 지지도가 나왔으며 18-34세의 젊은 캐나다인들 사이에서도 해리왕자 캐나다 총독 임명에 62%가 찬성을 했다.[16] 캐나다는 1952년 이후 캐나다인을 총독으로 삼았으며, 이렇게 된 계기는, 캐나다가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언권이 늘어난 와중에 몇몇 영국인 총독들의 갑질 및 월권행위로 빡친 캐나다가 영국왕실에게 캐나다인을 총독으로 임명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17] 따라서 전하(His Royal Highness) 호칭을 더이상 대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18] 상당히 고풍스러운 이름이다. 과거에도 잘 쓰이지 않았고 현대에는 더더욱 안 보인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삼남의 이름이기도 하다.[19]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왕실에 대한 지지와 호감이 크고, 공화정으로의 변화보다는 왕정 유지가 더 선호되기는 하지만, 현재 왕실이 영국에만 집중해 캐나다를 대변해주지 못한다는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나, 그냥 찰스 왕세자가 싫은 사람들도 꽤 있기 때문에 캐나다만을 위한 왕실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이다.[20] 더불어 이렇게 되면 캐나다 국왕이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계승 받아, 영국을 제치고 캐나다가 사실상의 영연방 수권국이 될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21] 쉽게 말해서 용인발음 + 코크니 혼합형[22] 의외로 해리 왕자는 186,새미 제인은 185로 해리 왕자가 1cm조금 더 크다.새미 지못미[23] 이 기록은 미국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이 개설한 인스타그램이 5시간 16분 만에 100만 팔로워를 돌파함으로써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