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13:51:44

헛리버 공국

헛리버에서 넘어옴
헛리버 공국
Principality of Hutt River
파일:헛리버 공국 국기.svg 파일:헛리버 공국 국장.svg
국기 국장
Dum spiro spero
숨쉬는 한 희망은 있다
상징
국가 이곳은 거친 땅이니 (It's a hard land)
위치
파일:1200px-LocationPHR.svg.png
1970년 ~ 2020년
성립 이전 해체 이후
호주
역사
1970년 4월 21일 건국 선포
1970년 영연방 가입 선언
1972년 6월 23일 호주 정부 치외법권 선포
2016년 엘리자베스 2세 친서 전달
2020년 8월 3일 영토 매각 및 해체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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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영내 23명(2013년)
영외 약 16,000명(2013년)
공용 언어 영어, 프랑스어[헌법상]
공용 문자 라틴 문자
군대 헛리버 왕립방위군[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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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국왕 엘리자베스 2세^(1970~2020)^
국공 레너드 1세^(1970~2017)^
그레이엄 1세^(20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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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건국 배경2.2. 건국2.3. 멸망
3. 지리와 운영
3.1. 경제3.2. 관광3.3. 스포츠
4. 정치
4.1. 내각
5. 공가
5.1. 역대 국공5.2. 기타 인물
6. 외교관 목록

[clearfix]

1. 개요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 존재했던 초소형국민체이다. 초소형국민체 중엔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호주의 관광지로서 유명했었다.

2020년 8월 3일부로 코로나19로 인해 50년 사직을 닫고 해체를 선언했다.[5]

다른 초소형국민체가 세계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것과는 달리, 헛리버 공국은 영연방의 수장이자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신하로서 공국으로의 승인까지 받았었으나 호주 정부는 국가로 반쯤만 인정한다(역사 후반부 참고). 그런데 호주 정부의 홍보 사이트 헛리버 공국 란[6]에는 주장과 달리 독립국가(Independent Sovereign State)'라 나와있으며 호주 관광청과 지역 정부에서도 헛리버가 전세계에 몇 없는 독립국이라 광고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냥 얼마 되지도 않는 땅과 세금을 포기하고 헛리버 공국으로 인해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대량의 관광수입을 택한 듯하다. 헛리버 공국은 애초에 국제공항이 없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여기를 보러 가려면 일단 호주에 들어오는 수밖에 없는데 설마 그것 하나만 보고 아무런 소비 없이 돌아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비정상회담 22회 등에 등장하면서 국내에 어느정도 알려졌다. 이는 시랜드 공국 이후 처음이며, 2017년 세계테마기행 서호주편에도 나왔다. 12분 40초부터 보면 된다.

2. 역사

2.1. 건국 배경

파일:Hutt1970.jpg
이곳은 1950년대부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족 농장을 꾸리던[7] 레너드 조지 캐슬리(Leonard George Casley, 1925 ~ 2019) 가족의 사유지였다. 조용히 대규모 밀농사를 지어오던 한 농가에 불과했었으나, 잉여 밀이 지나치게 남아도는 걸 고민하던 정부가 "1969년 11월 호주의 밀 경작에 대한 조세정책과 토지매매 규제법에 의한 밀 쿼터제"를 내놓는 바람에 경작중인 2만 3천톤 가운데 고작 0.2%에 불과한 46톤만 판매허가가 떨어지게 되어 몰락의 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당연히 앉아서 망하는 꼴을 지켜 볼 수가 없는 레너드의 입장으로서 정부에 거세게 항의했으나 이미 통과한 법이기 때문에 어찌할 바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부당이득을 주장하면서 정부에게 반항했으나, 오히려 정부에서는 농지를 몰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면서 레너드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것이 되려 호주 정부의 목을 옭아매었다. 사실 법안 통과 직전 레너드가 법이 부당하다고 따졌을 때 호주 의원 한 명이 "당신은 호주 사람이고 호주 사람은 호주 법에 따라야 한다." 라고 했는데 나중에 이렇게 몰아붙여지고 나서 그 때 일을 떠올리고는 "호주 사람임을 포기하면 호주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겠지" 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레너드는 자신의 본업인 변호사적 지식을 총동원해 헌법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경제권이 탈취된 상황에서 토지 상실의 위협이 생긴다면 자위권을 행사해 자체적인 정부를 성립할 수 있다'라는 법에 따라 호주 연방에서의 탈퇴를 선언하며 자신이 헛리버의 국왕임을 선언하고, 동시에 독립국 헛리버의 통치권 일부를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 바쳐 영연방의 일원이 될 것을 요청했다. 또한 '탈퇴를 한 시점에서 모든 행정법은 무효가 되고 다시 입법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헛리버에 매긴 조세정책과 규제법이 무효가 되었다. 이런 법 조항들이 생기게 된 데에는 호주의 역사적 배경이 컸다. 그저 아무도 사문화된 법을 다시 끄집어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

호주 정부도 이걸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지는 않아서 탈퇴를 반역으로 간주해 제재하려 했으나[8], '실질적으로 국왕을 섬기는 자는 법적으로 국왕을 대적하였어도 반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9]는 법에 따라 국왕에게 통치권을 바친다는 제안을 한 시점에서 반역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레너드는 호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당연히 기가 찬 호주 정부 측에서는 호주라는 통합 대륙국가 안에 웬 농부가 나라를 세우겠다고 2년 동안 설치는 것을 방치해 둘 수만은 없어서[10], 독립 거부 문서도 보내보고, 공무원들도 파견해 레너드에게 독립을 철회해달라는 협상을 시도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2.2. 건국

이런 식으로 계속 호주 정부와 실랑이를 벌이며 독립을 인정하지 않자 레너드는 자신이 국왕이 되는 왕국을 선언했던 것을 포기하고, 영연방과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작위를 국왕에서 국공(Prince)으로 낮추며, 영연방의 수장이자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충성을 맹세하며 헛리버를 봉신 국가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서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국 1970년 4월 21일 왕국에서 공국으로 국가의 지위를 낮춤을 선포하였고, 동시에 엘리자베스 2세에게 충성 맹세를 하여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의 일원이 됨을 선포했다. 즉, 레너드 1세는 엘리자베스 2세의 신하가 됐으며, 헛리버 공국은 제후국으로써 엘리자베스 2세에 충성을 맹세한 국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신하 레너드 1세는 반역법이 인정하는 예외 경우가 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헛리버 공국과 레너드 1세는 호주 총독과 호주 연방 의회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국왕 엘리자베스 2세와 헌법의 직접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자국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위신과 권한을 호주 의회와 호주 정부가 침해할 수는 없다는 문제와, 국왕을 공유하고 있는 영국 등과의 관계 문제, 그리고 여타 법리적 문제들로 인해, 1972년 헛리버 공국이 호주 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됨을 선포했다. 하지만 호주 정부 및 법원은 이 선포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헛리버 공국은 이를 바탕으로 1972년 호주 정부와 의회가 헛리버 공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호주 정부는 이곳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승인국이 아닌 초소형국민체로 남아있는 것. 더불어 위의 1972년 선언에 따라 헛리버 공국의 주민들은 호주의 복지 혜택을 못 받는 것으로 보아 호주 연방 소속으로 보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호주 측에서 군사력을 행사하거나 경제적 봉쇄 등으로 고사시키지는 않았는데, 이는 헛리버가 특이한 관광명소로 유명해져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호주의 관광수입 증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광객이 헛리버 공국을 방문하여 거기서 쓰는 돈은 헛리버 공국의 주머니로 들어가지만, 헛리버 공국을 가려면 필히 호주 땅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는 제반비용은 호주머니가 된다. 거기다 해외 관광객들이 모처럼 먼 길을 왔는데 달랑 헛리버 공국만 보고 돌아갈 리는 없다. 고로 호주 정부 입장에서도 괜히 잘못해서 골치 아픈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 현상 유지를 하며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 홍보에 신경쓰기도 했다. 특히 위의 지도에서 보다시피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동쪽 (시드니가 위치함)이 아니라 서쪽 끝에 있으므로, 서쪽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좋은 방법이 되었던 것도 있었다.

2.3. 멸망

초대 공작인 레너드의 사후, 현재 헛리버 공국은 호주 국세청(ATO)과 소득세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10년대 후반 들어 헛리버의 농작물 수입 감소로 어려움에 빠졌다고... 게다가 관광객 감소까지 겹쳐 급기야 2020년 1월 30일 부로 국경을 폐쇄했다. (영어)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을 폐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당시 농작물의 수익성 악화로 헛리버 공국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가 않아 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결국 2020년 8월 3일부로 공국은 2대 50년의 사직을 뒤안길로 하고 해체를 선언, 호주 연방에 복귀함을 밝혔다.링크1 링크2 호주 국세청은 50년간 미납된 세금을 납부하라고 독촉중인데, 공국이 소유한 땅이 그 세금 납부를 위해 매각될 예정이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관광객 감소가 결정적 타격을 주었던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멸망한 '나라'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3. 지리와 운영

파일:688px-Hutt_River.png
헛리버 공국의 지도.[11] 구글 지도에서 보기.

파일:huttrivermap.jpg
▲ 헛리버 공국의 자세한 지도.
가까운 도시에선 차타고 1~2시간 정도 걸린다.

호주의 서쪽, 메마른 땅에 위치하며 그 이름처럼 헛 강을 중심에 끼고있다. 면적은 울릉도보다 조금 크고,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독립국가로 간주한다면 바티칸, 모나코, 나우루, 투발루, 산마리노보다 면적이 크고, 대한민국 수도권 남부의 몇몆 도시보다도 면적이 넓지만[12] 국민이 모두 가족들이라 그 수가 너무도 적다. 편의시설도 빈약해, 남은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밭이다.

농장을 제외한 구역이 별로 넓지 않는 데다가 건물도 몇 안 되고, 상주인구도 50명에 불과하나 우체국을 겸한 정부청사도 갖추고 있고[13] 해외 인구는 2만 명이 넘는다. 화폐 생산에 경찰 및 소방대는 물론,

파일:1496908870_af109f7a187cce7c21197ab9d89c9086.jpg
나름의 무기를 갖춘 군대까지 있었다[14].

3.1. 경제

농장에서 나오는 수많은 생산물들이 이들의 경제자본이다. 주요 수출품은 밀농장답게 밀이며 루핀, 보리도 재배한다. 또한 축산업으로 양고기와 양털을 수출하면서 들꽃 재배업으로 그레빌레아, 히비스커스, 붓꽃 등을 재배해, 호주를 통해 전세계에 판매한다. 특히 관광업이 국가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연간 만명이 넘도록 방문하며 하루에서 이틀정도 자고 가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전기와 식수는 한정적이지만 국가 차원에서 캠핑장, 이동식 주택을 마련해 관광객들에 싼 값에 제공한다.

레너드 캐슬리의 총명함 덕에 중국, 대만과 교류(!)를 했다. 수출품은 밀이라고. 이를 위해 기념물이 생겨났는데 입구부터 중국 느낌이 난다.

2020년 1월 이후 헛리버 공국의 최대 수입원인 농작물의 수익성이 악화되었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헛리버 공국의 국경을 폐쇄하고 비자나 각종 라이센스 발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국경을 폐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관광객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일즈와 관련된 업무나 온라인 문의는 계속 받았다.

3.2. 관광

입국 자체는 낮시간에 가능하며 캠핑장을 이용하는게 아니라면 처음갔을때 입-출 도장을 한꺼번에 찍어준다. 공작들은 관광객들에게 깃발같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하며, 직접 가이드로서 헛리버의 역사, 업적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짧은 역사와 작은 영토를 가졌지만 본인들은 "정부와 맞서 싸워 얻은 뜻 깊은 곳" 이라며 헛리버를 멸망 직전까지 발전시키려 노력해 왔다.
  • 헛리버 우체국: 대표적인 정부청사 겸 박물관. 안에는 입국시설, 세계 각국의 국기와 화폐(한국도 있다), 역사기록물 등 거의 모든것이 이곳에 집중되어있다.

  • 헛리버 교회: 작지만 아늑한 교회. 앞에는 셜리 공작부인의 묘비가 세워져있다.
  • 레너드 캐슬리 두상: 헛리버 공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공작이신 레너드 캐슬리의 거대 두상이다. 헛리버의 랜드마크이자 포토존으로 주변 기계병사들의 호위가 포인트.
  • 교류 기념물: 중국과의 수교를 기념으로 만들어졌으며 "중국 디자인의 일자형 조각공원"이라 보면된다. 입구에 교류의 증거자료가 전시돼있다.

이 외에도 들꽃 판매업의 영향인지 다양한 꽃들의 화단에 여러 고철 예술작품들을 설치해놨다. 공원 느낌의 나라로 만들려는 듯. 확실히 헛리버는 "나라" 보다는 "관광지" 라는 색채가 강하므로 나라로서는 망했으니 호주여행때 산책 겸 다녀오자.

3.3.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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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HR%20Eagles%20polo%20shirt.jpg
자금을 벌어들이는 또다른 원동력으론 스포츠만 한 것이 없다. 특히 헛리버는 헛리버 사격팀을 형성, 우승을 통해 간접적인 홍보를 하며 공국의 발전에 힘쓴다. 상징은 독수리.

4. 정치

4.1. 내각[A]

파일:헛리버 국장.gif 헛리버 공국 내각
군주
그레이엄 1세
국무부 외무부 재정재무부 교육부
그레이엄 1세
체신부 예술부 문화부
리처드 공자 셰릴 공녀
군주자문위원회
캐이 공녀, 다이앤

5. 공가

5.1. 역대 국공

이름 재위 기간
레너드 1세
Leonard I
1970년 4월 21일 ~ 2017년 2월 11일
(46년 309일)
그레이엄 1세
Graeme I
2017년 2월 11일 ~ 2020년 8월 3일
(3년 174일)

레너드 1세, 레너드 조지 캐슬리는 호주 변호사였으며, 헛리버의 국왕이었다. 레너드 1세는 헛리버가 영국의 제후국이 되면서 헛리버 국공(Prince)이 됐다.[16] 2017년, 재위 약 47년만에 수도 내인의 셜리 국공비 교회에서 사남 그레이엄 캐슬리에게 양위했다.[17][18]

2019년 2월 13일 레너드 1세가 향년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레이엄 1세(그레이엄 어니스트 캐슬리)는 2대 국공으로 즉위하기 전까지 호주에서 교사로 일했다. 호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은퇴 후 호주에서 귀국해 헛리버 운영에 참여했다.[19] 그레이엄 1세의 칭호는 '헛리버 공국과 그 영토의 군주, 왕실 헛리버 방어군의 지휘관, 길보아 공작, 카난 백작, 지혜와 학습의 기사단장, 국무부 장관, 교육부 장관, 재정재무부 장관, (조폐국 장관), 궁중 수상, 왕립 문장학 대학교 총장, 왕립 선행연구 대학교 총장, 캐나다 개척자 부대 독립사령부 명예위원, 주식회사 호주 로열 엔필드 클럽의 후원자이신 그레이엄 공 전하'[20]이다.

5.2. 기타 인물

  • 셜리 공비: 본명은 셜리 조이 캐슬리. 레너드 1세의 부인이다. 2013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그녀의 이름을 딴 셜리 공비 교회 앞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 이안 공자
      1947년 출생으로 본명은 이안 조지 캐슬리. 캐슬리 부부의 장남. 헛 대공, 페어배일 백작, 왕실 훈장 집행관장, 가장 훌륭한 예루살렘 십자군 훈장의 중급 훈작사. 들꽃 생산에 힘써서 호주 서부 퍼스(Perth)등 해외 여러 지역에 들꽃을 수출한다. 공자가 키우는 양은 털과 고기를 호주에 수출하기도 한다. 아내 헛 대공비 아네트와의 사이에서 딸을 넷 뒀다.[B] 동생이 차기 공작이 되기 전까지는 공세자(Crown Prince) 칭호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 캐이 공녀: 1949년 출생. 캐슬리 부부의 장녀. 말라루스 공작.[A]
    • 웨인 공자
      1950년 출생으로 본명은 아서 웨인 캐슬리. 캐슬리 부부의 차남. 내인 공작, 타보르 백작, 고요한 레너드 훈장의 기사단장. 양을 키우는 데 주력하며, 들꽃의 수출에도 관심을 보인다. 자녀는 아들 셋, 딸 하나가 있다.[B]
    • 다이앤 공녀: 1951년 출생. 캐슬리 부부의 차녀. 마운트 조이 공작.[A]
    • 리처드 공자: 1953년 출생. 캐슬리 부부의 삼남. 카멜 백작, 네보 백작, 저명한 메리트 훈장의 기사단장.[A]
    • 그레이엄 공자: 1957년 출생. 캐슬리 부부의 사남. 부친의 뒤를 이어 헛리버 공작 그레이엄 1세가 된다. 성인인 아들을 셋 뒀다.[26]
    • 셰릴 공녀: 1958년 출생. 캐슬리 부부의 삼녀. 카스틸[27] 공작.[A]

6. 외교관 목록


발칸 반도 및 중부 유럽 명예 대표
크로아티아 명예 특사
Chief Inspector, Sir Zeljko Riha KCIOM., KOWL., DSF(Intel).
Borongaj aero 12
10 000 Zagreb
CROATIA
전화번호:.. 00 385959040609
이메일: [email protected]

이외에도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1]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얄라바타라 6535.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갈릴래아 지방의 나인에서 딴 것이다.[2]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면적이 비슷하다. 마카오, 모나코보다는 크다.[헌법상] 헛리버 공국 헌법[4] 소집해제[5] 초미니국가 '허트강 공국' 50년 통치, 코로나19로 막 내려, 경향신문, 2020-08-11[6] 삭제된 상태다.[7] 레너드의 아버지는 철도회사 직원 출신이었고, 레너드는 변호사였다. 다만 농장은 가업으로 대대로 내려왔다고 한다.[8] 사실 여기까지의 상황은 한국 법률에서도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형법에서 내란죄의 요건 중 하나로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 있고, 여기까지 내용은 엄연히 호주 법에 보장되어 있던 사항이었다.[9] 이건 1495년 헨리 7세가 영국 반역법을 개정했을 당시 제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영연방 왕국들에서 유지되고 있다.[10] 당시 호주 법에는 정부에 보낸 공식 서문을 2년 내로 공식적 행정처리하지 않으면 그대로 인정해주는 법안이 있었다.[11] 본토와 동떨어진 지역은 월경지에 해당한다.[12] 경기도 내의 안양시, 의왕시, 부천시, 오산시, 광명시, 군포시, 과천시, 구리시가 헛리버 공국보다 좁다.[13] 차를 타고 오면 공작(Prince)이 정부 건물 주변의 주차 안내도 직접 해줬다.[14] 다만 군대는 모두 소집이 해제됐기 때문에 과거의 소집되었던 사진만이 남아있다.[A] # 해당 페이지 참조[16] 영미권, 불어권의 Prince는 공작(군공)을 의미하는 Duke보다는 높지만 룩셈부르크의 대공과 같은 Grand Duke보다는 낮은 위치이다.[17] http://www.principality-hutt-river.com/Crown/PHR_Abdication_&_Enthronement_Report.htm[18] 양위하는 장면[19] http://www.principality-hutt-river.com/gov/MOS/PHR_MOS.htm[20] H.R.H. Prince Graeme, Sovereign of the Principality of Hutt River and all its Territories, Commander in Chief RHRDF, Duke of Gilboa, Earl of Canan, Grand Master of the Order of Wisdom and Learning, Minister of State & Education, inister of Foreign Affairs, Minister of Finance & Treasury, (Minister responsible for the Royal Hutt River Mint), Chancellor of the Royal Court, Chancellor of the PHR Royal College of Heraldry & Chancellor of the PHR Royal College of Advanced Research, Hon Commissioner in Chief: Legion of Frontiersmen, Independent Command, Canada & Legion of Frontiersmen, Independent Command UK, Patron: Royal Enfield Club of Australia Inc.[B] http://www.principality-hutt-river.com/PHR_Profile_of_Prince_Ian_&_Prince_Wayne.htm[A] [B] [A] [A] [26] http://www.principality-hutt-river.com/gov/MOS/PHR_MOS.htm[27] 카스티야와는 이름만 같다.[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