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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대표적 범-좌파[1] 성향 언론사 한경오의 주요 논란과 비판점에 대해 다루는 문서.2. 가난한 조중동
Q: 최근 조중동에 이어 한경오라는 말이 유행, 아니 이미 자리를 잡았다. 당사자들은 억울한 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초한 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를 당사자들은 알고 있는가?
A: 당연히 알고 있다. 속칭 한경오 소속들이 가장 크게 분노하는 말이 "니들도 합격했으면 조중동 갈 거였잖아." 이다. 본인들이 그래도 기자 "잘" 해먹는 유일한 이유가 부정당하는 말이라서 그렇다고 본다.
- 한경오에서 근무하다 그만 둔 전직 기자의 증언에서.1편, 2편
A: 당연히 알고 있다. 속칭 한경오 소속들이 가장 크게 분노하는 말이 "니들도 합격했으면 조중동 갈 거였잖아." 이다. 본인들이 그래도 기자 "잘" 해먹는 유일한 이유가 부정당하는 말이라서 그렇다고 본다.
- 한경오에서 근무하다 그만 둔 전직 기자의 증언에서.1편, 2편
지금까지의 한경오의 행보를 보면 사실상 '또 하나의 조중동', '조중동 2군', '조중동 열화판'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원래 안티조선운동은 언론이 왜곡과 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나아가서 스스로 권력화되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는데, 현재의 한경오는 조중동과 이름 및 깃발만 다를 뿐이고 사실상 '그놈이 그놈' 같은 수준의 언론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언론이 가질 수 있는 당파성은 차치하더라도, 그 이전에 언론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사실을 왜곡하고, 아전인수격 기사로 여론을 호도하며 특정정파에 봉사하는 느낌을 주는 한경오는 또 다른 조중동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즉 '사건을 기사화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사를 사건화한다' 라는 식으로 사상만 다른 조중동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한경오는 "가난한 조중동" 이라고 까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이유는 광고가 빵빵하게 들어오고 고정 구독자가 많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한 각종 단체에도 거의 빠짐없이 들어가는 조중동과는 다르게 한경오는 실제로도 가난하기 때문에 열등감을 제대로 저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경오는 지금까지 그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것마냥 '개혁적이고 정론직필을 행하는 깨끗한 언론'임을 자처하며 조중동과의 차별성을 주장했는데 이 '가난한 조중동'이란 표현은 그 차별성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싫어한다. 이를 제대로 표현하자면, "너희들은 돈도 없는 주제에 너희들이 그렇게 욕하는 조중동과 다를 바 없는 놈들이다." 라고 돌려까는 해석도 되기 때문이다.
3. 권위주의
흔히 사람들은 권위주의적인 언론하면 조중동을 떠올린다지만 이미 한경오의 권위주의를 경험했거나 아는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게다가 한경오는 조중동의 권위주의를 매일같이 욕하면서도 자신들에 대해선 성역화를 하며 자신에 대해 그 어떠한 비난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메갈리아 옹호 사건에서 다른 의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비난하는 자들을 모조리 과거 권위주의의 잔재(포괄적으로는 현재의 범보수까지)로 몰아붙였다. [2]한경오의 권위주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에서 파생되는 계몽주의와 엘리트주의, 운동권 주류의식, 진영논리 등이 복합된 정파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86세대의 정체성이 이와 많은 부분 겹친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전부 보수세력의 종으로 인식하는데, 자신들의 독자들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며 자신들을 성역화한다고 비판을 받는 조중동조차도 정치인과 문제 있는 집단은 기꺼이 기사를 내며 비평하고 자신들의 독자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을 삼가는 등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반면, 한경오는 이러한 언론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조차도 없다.
오히려 진보내의 86 운동권 정치인들과 그 계파로 들어오는 신인 정치인들에게는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자신들과 접점이 없는 시민운동가 출신이나 친노 친문 친명 정치인에 대해서는 냉혹하다 못해 조중동 보다 더욱 잔인한 태도를 보이는 편이다.
이들은 결점하나 없는 자신들이 잘못을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독자들에게 막말도 불사한다. # 독자들과의 소통 시스템도 허술해서 본심이 필터링도 없이 그대로 튀어나올 수 있는 구조기 때문에 한겨레 페북지기가 "지적 싸질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답글을 단 적도 있다. #
재벌권력, 부동산 카르텔, 법조 카르텔이라며 힘 있는 자는 무조건 나쁘단 식으로 몰고 간다는 견해가 있지만 막상 당내 시민운동가 출신의 비운동권 세력이 진보내 주류로 올라서면 예시로든 카르텔 세력에서 나온 소스로 진보내에서 주류로 올라선 개혁 세력을 무슨 개인적 원한이라도 가진 것 처럼 잔인하게 공격한다. 조중동은 소스를 잘못된 팩트나 별거 아닌 사안을 부풀리는 식이지만 한겨례나 경향신문은 진보진영내에서 구축했던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감정이 앞서는 걸로 비춰지기에 더욱 악질적으로 인식된다. 과장이 아니라 비주류 시민운동가 출신이 진보내 주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진보내 85 기득권 세대와 한겨례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내 권위지와 충돌해야 하고 그들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4. 부족한 전문성
전문성이나 다루는 폭의 넓이가 아쉽다고 평가된다. 오마이뉴스는 애초에 모토가 ‘시민기자’ 시스템이다보니 블로그나 유튜버 수준의 허위 기사도 많으며,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경우엔 역사, 과학 등 몇몇 분야에선 전문 기자가 부족한지 가끔 오류가 나온다.결국 독자들 중에서도 음식/요리, 역사, 자연과학, 의학 등 정치적 성향이 덜 드러나는 전문 분야의 내용이 깊은 칼럼 및 기사를 보고 싶으면 조중동을 더 참조할 정도이며, 이는 조선일보가 수많은 안티조선 운동가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전두환 정권 이후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비결이기도 하다. 최소한 조선일보는 사측에서 전문성 있는 컨텐츠를 육성했으면 육성했지, 어느 언론처럼 내쳐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경오가 조선일보를 보고 배워야 마땅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똑같이 범 좌파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던 우경화 시절의 MBC와 극명히 대비된다. 지상파 방송이라는 우위점을 MBC가 갖고 있지만, 사측의 잘못된 행태로 인해 작가의 전문성 자체가 낮아졌고, 메인뉴스 자체의 품질도 객관적으로 수준이 낮아져버린 MBC가 JTBC보다도 시청률이 낮아지면서 망해가는 와중에 조선일보가 무사히 버텨왔던 이유가 다름아닌 비정치 기사의 전문성 덕분이었다. 제아무리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해줘도 품질이 낮으면 시청자/독자가 알아서 걸러내고 외면을 할 것이지만, 그 점에서 MBC와 조선일보의 운명이 갈라진 것이다.
물론 MBC도 지상파 방송답게 기업이 광고를 많이 넣어주는 언론사로 자금력이 빵빵한 언론사라서 조선일보와 같은 포지션이긴 하지만, 사측의 자구책 내지는 대응이 조선일보와는 전혀 달랐다. 조선일보가 경제면을 한국경제신문이나 매일경제신문 수준으로 대폭 보강을 한 것도 안티조선 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였음을 보면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비정치성 분야에서 한경오의 칼럼은 빈말로도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도저히 봐줄만한 내용이 아니다. 진짜로 "조중동 입사에서 떨어진 핫바리 수준의 기자들이 괜히 한경오로 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오마이뉴스는 애초에 기자의 자질 검증이 없는 수준이므로 그냥 논외로 친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조중동은 전문가를 데리고 와서 자기 입맛에 맞는 말을 하게 하고, 한경오는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전문가라고 말한다." 같은 우스갯소리가 종종 나온다.
결국 입장을 바꿔서 말하자면, 조중동은 언론으로서 최소한 전문가를 섭외해서 인터뷰를 할만한 영향력과 권위가 있다는 것이고 한경오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쯤 되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격이 맞는 곳이 아니면 얼굴을 잘 비치려고 하지를 않는 경우가 많은데 조중동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미디어 매체라서 좌파나 진보적 신념이 아주 강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전문가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는 언론이다. 소위 말하는 "나같이 성공한 엘리트 출신과 걸맞은 급에 맞는 언론이 뭔가?" 를 본다는 이야기고, 그 급에 맞는 언론이 조중동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조중동은 명문대 출신 기자들도 많을테니, 같은 선후배 동문 인맥에 따라 상대적으로 명망있는 인사들의 인터뷰를 따내기도 쉬울 것이다.
당장에 진보성향으로 유명한 도올 김용옥도 보수진영 소속인 문화일보와 중앙일보 계약직 기자 출신이었다. 그래서, 김용옥은 중앙일보에다 적극적으로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고, 한경오는 무시하면서 언론 취급하지 않고 인터뷰도 잘 안한다. 결국, 소위 말하는 '급이 낮고 질이 낮은 언론' 에다 자신의 칼럼을 싣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데, "어차피 자신의 글을 읽어줄만한 엘리트들은 한경오를 거르고 조중동을 읽는다." 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용옥이 능력주의의 병폐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한경오는 전문가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언론으로서 대접도 해줄 생각이 없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김용옥은, 「언론은 "민족자결" 눈떠라」 라는 칼럼과 관련하여, 자신의 글을 조중동같은 보수언론을 통해 알리고 싶었으며[3], 그 이유는 보수언론을 읽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글을 가장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아무리 『한겨레』나 『오마이뉴스』에 자신의 글을 올려봤자 정작 그 글을 읽어봐야 할 사람들은 맨날『조선일보』만 보고 있느라 자신의 글을 읽을 기회가 없으니, 자신이 먼저 『조선일보』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김용옥 스스로는 텔레비전을 안 보고 텔레비전을 싫어하지만, 책보다는 텔레비전을 통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강의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용옥은 스스로 "나는 인터넷을 안 하고 댓글도 안 읽는다" 라고 말을 하지만 자신의 강의를 개인 유튜브 채널에다 업로드하고 있다.
더군다나 요즘 같이 정보 취득이 쉬워진 미디어 환경과 모든 세대의 평균 학력이 높아진 시점에 정보를 어느 정도 편취할 만한 경험이 쌓인 기성 세대의 진보좌파 독자들은 "조중동은 성향이 안 맞아 못 보겠는데 한겨례와 경향신문은 수준 자체가 떨어져 못 보겠다." 라는 소리마저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는 한경오가 반성해야 한다.
5. 지나치게 편향적인 논조
보수의 조중동과 똑같이 다를게 없는 편향적인 논조로 악명이 높다. "극과 극은 통한다" 같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2016년엔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을 위시한 메갈리아 사태가 터지면서, 남성혐오 논란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 한경오 일부 기자들이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페미니즘(이라고 일단은 내세운) 기사를 작성하여 그동안 한경오를 지지하던 커뮤니티 사이에서도 실망감을 표현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후 2016년 8월 15일 워마드에서 독립투사들의 사진을 조작하고 조롱하는 사건이 터졌고, 이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내었으나, 한경오는 이에 대해 대놓고 무시를 하였다. 그 이후로도 변함없이 여성혐오,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키워드 관련 사건은 보도를 피하거나 대놓고 페미니즘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편향적이고 왜곡스러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이는 워마드 호주국자 아동 성범죄 사건에서도 보여줬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선 문재인 돌려까기와 불리한 편파보도를 조중동만큼이나 해대서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미 2012년 대선에서도 있어왔다고 조기숙 교수는 자신의 책인 '왕따의 정치학' 북 콘서트를 하며 언급하였다.
2018년 5월 14일 오마이뉴스에서 벽람항로의 로그인 일러스트 교체에 대해 보도했는데# 대놓고 나르닥[4]쪽 편만 들고, 마치 게임사가 사상검증이라도 하는 양 주작기사를 써댔다.
최근에 들어서는 JTBC 역시 비슷한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리고, 2018년 워마드 최악의 반사회 행위인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에 대해 경향신문을 제외한 나머지 둘이 결국 침묵하면서 이 둘은 래디컬 페미니즘과 완전히 한 편이 되었음을 증명했다. 경향신문조차도 가톨릭과 관련이 있어서 기사를 내놓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5.1. 메갈리아와 한겨레의 유착
급기야 한겨레는, 1면 특면에 메갈리아를 떡하니 올려놓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 한경오에서 극우라고 비난하는 조선일보는 운지벌레 낚시 사건 당시 일베를 열심히 까댄 거랑 대조된다.결국 한겨레에서 올려놓은 메갈리아라는 단어를 보고 사람들이 이를 찾아보았고 그로 인해 메갈리아의 악명높은 막장성을 보고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메갈리아에서는 급격히 떠오른 인지도와 일간지라는 든든한 아군이 생긴 것에 열광하기도 했다.
5.2. 친노 - 친문 그룹과의 대립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법정 스님은 돌아가시면서, 그토록 향기롭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조차도 업을 쌓는 것이라며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날카로운 흉기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 반성한 것을 보지 못했고, 글쓰기를 자제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 문재인의 저서 '운명' 中 -
- 문재인의 저서 '운명' 中 -
친노-친문 그룹과의 사이가 원만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의 대립에는 참여정부를 전후한 시기의 경험 문제가 크다. 참여정부/평가/논란이 있는 평가 문서의 '언론과의 갈등' 항목에서 설명한 것이나 대표적인 친노 인사인 유시민이 지적했듯이(김어준의 파파이스 144회) 한경오에서 진보 언론의 중립성을 강조하며 비판을 가한 결과, 오히려 조중동과 합세해서 노무현 정부를 좌우 양쪽에서 고립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친노-친문 그룹은 한경오가 조중동보다는 그나마 자신들과 협력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믿었기에 이런 행동은 한경오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문단 서두에 상술했듯이, 문재인 역시 자신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진보언론은 보수언론과 기사는 비슷했지만 사설이나 칼럼이 더 잔혹했다고 회고했다.
이에 친노-친문 그룹은 "차라리 조중동은 대놓고 반대를 외치기라도 하지, 한경오는 양껏 사탕발림해 놓고는 뒤통수를 치고 있다. 앞에서 떳떳하게 두들겨 패는 조중동보다 뒷꽁무니로 호박씨를 까는 한경오가 더 밉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더니 이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까 만만해 보이냐?"라는 비난을 가하면서 한경오에게 심각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언론이 자신에 대해 얼토당치도 않고 부당한 기사를 썼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이의제기를 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놓고 고소까지 하였다.
결국 오마이뉴스 기자 손병관[5]의 김정숙 여사 호칭 논란, 한겨레 21 안수찬 기자의 문재인 지지자들에 대한 선전포고 등 사건들이 터졌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야당 쪽에선 일방적으로 이재명을 비방하고 노골적 이낙연을 지지하던지, 기성 다선 정치인들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관대한 반면 시민활동가 출신의 정치인들에게는 비정할 정도로 냉혹하다. 독자나 시민을 대변하는 언론사라기 보다는 (사실은 진보가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진보층 내 기득권 및 고인물들을 대변하는 신문사라는 인식이 굳어진지 오래다.
5.3. 해외 선진국들의 국가운영체제에 대한 아전인수식 보도
사실, 한경오는 언론의 편향성 문제를 2010년대 중반 이전부터 보여왔었다. 특히 해외 선진국, 그중에서도 유럽권의 사회 체제에 대해 전체적인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 제도, 노동자들의 강력한 권리, 프랑스의 바칼로레아[6], 대학의 평준화[7]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 위주로 기사를 써왔다.유럽의 사회복지 체계는 계층 간 유동성의 경직과 대기업 오너들의 경영권 방어에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강화된 면[8]이 큰데다 2010년대에는 각국 내에서도 강성노조와 경직된 관료주의 등 시스템의 비효율성이나[9] 지나치게 높은 세부담[10] 등 대내외적 비판 때문에 사회복지를 축소하는 경향으로 가고 있는데,[11] 이러한 부정적인 면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오로지 노동조합의 강력한 힘이나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만 다루고 있다.
6. 진실 은폐
한경오는 전통적인 천안함 음모론의 대표 주자들이며, 한겨례만 하더라도 자신들의 기자들이 감정을 못이겨서 싸움을 벌이다가 한명이 다른 기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대놓고 은폐까지 시도하였다. 한겨레 동료기자 취중 폭행치사 사건 참조. 다른 언론사들의 사회부 기자들에게 해당 사건의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메세지를 보내서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차단하고자 한 만행이다.또한, 삼성의 눈치도 상당히 많이 본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장충기 문자 사건 참조.
7. 강요된 평화?
2016년 대규모 촛불시위가 일어나자 촛불을 극찬하면서도 '평화 프레임', '강요된 평화' 따위의 단어를 지속적으로 쓰면서 평화라는 단어에 굉장히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평화시위는 시민 측의 도덕성을 과시하고 쓸데없는 분열을 막고 상대에 명분을 주지 않는 굉장히 강력한 시위방식이고 보수언론의 지령으로 인한 것이 아닌 자발적인 시민들의 발로였는데도[12] 평화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고 다수의 보도를 내는 것을 보면 '설사 대규모 폭력 시위가 되더라도 우리는 옳다'라는 선민의식의 발로인지 아니면 운동권이 그랬듯이 진짜 다 때려부수고 박근혜, 이재용의 머리끄덩이 잡고 단두대에 올리고 싶은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2016년 촛불시위 이전에는(특히 노동 관련 집회에서) 경찰이 시위대의 폭력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받거나, 폭력적인 진압방식을 사용해 (백남기 농민이라든가)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지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할 때 비판할 부분도 당연히 있지만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확인해야 편파적이지 않은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온전히 선동적인 논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실 촛불시위 이전에도 한경오를 비롯한 범 좌파 언론들은 객관적이어야 할 기사를 감성적으로 많이 쓰곤 했고 2017년을 넘어 2020년 현재까지도 그렇다. 이는 주간지인 시사인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8. 결론
진실만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논조가 극명하게 나눠져있어도 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사실 조중동이든 한경오든 간에 수많은 집단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키는 민주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언론 문서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현대사회에는 많은 사건 사고가 있고, 그러한 사례는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언론사 주류의 논지로 해석되어 전달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 기사라고 무턱대고 배척하지 말고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과 거짓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신문의 내용을 맹신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신문 독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행동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로 대척적인 논지를 가진 조중동과 한경오 중 각각 하나씩 신문을 선정해 두개의 신문을 보라고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두 신문의 관점을 비교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고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9. 관련 문서
[1] liberal 내지 progressive[2] 참고로 메갈리아에 치를 떠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도•진보진영 지지자들이다. 보수진영 지지자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주의의 특성상 경제이슈나 남북이슈에는 민감하지만 메갈리아같은 성차별, 젠더갈등 이슈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비율도 높고 관심이 있더라도 그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은편이다. 또 해당 이슈들이 사이버상에서 주도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좌우파의 연령대 차이가 이 차이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3] 실제로 김용옥의 친구들도 중앙일보 기자들이 많은데다, 직접 칼럼을 집필해달라고 추천했다고 한다.[4] 예전에 메갈리아 관련 트윗을 리트윗해 논란이 된 ROD의 트윗 대부분을 리트윗했다.[5] 시간이 지나 박원순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2차 가해에 비판을 받았으며, 그저 피해자에게 책임전가하기 급급한 논조를 고집하는 중이다.[6] 웃기는 건 프랑스에서도 과외를 받으면서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7] 그러나, 프랑스의 특수 대학군(群)인 그랑제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등, 일관되지 못하고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이는 한경오의 엘리트주의가 나름대로 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자유주의 엘리트, 강남좌파스러운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8] 다층형 지주회사, 금산복합 등 국내 언론들이 재벌들을 까는 소재들이 유럽에서는 합법이다.[9] 유럽 국가들은 2010년대에도 서류결제가 일반적이며, 공인인증서 기반 전자결제가 보편적이지 않다. 각 국가들이 정부 차원에서 오픈소스 기반인 리눅스와 파이어폭스를 표준으로 밀어준데다, 정부기관 및 기업체의 인원 감축 등 기술적 실업에 대한 우려 탓이 크다. 물론, 그 대가로 서유럽은 전자산업과 IT산업에서 영향력을 거의 잃었다.[10] 복지국가의 대표격인 스웨덴은 소득대비 세율이 32% 정도에 달한다.[11] 독일만 해도 1990년대 후반~2000년대에 걸친 연금제도 개혁(하르츠 개혁) 때문에 과거만큼 사회복지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미니잡' 등 시간제 일자리 제도의 부작용으로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12] 선후 관계를 따져봐도 먼저 평화시위가 일어났고 이걸 좋아하는 보수 언론이 입맛에 맞게 보도한거지, 반대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