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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092><colcolor=#000092,#fff> 출생 | 1954년 3월 4일 ([age(1954-03-04)]세) | |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르망 | ||
재임기간 | 제114대 총리 | |
2007년 5월 16일 ~ 2012년 5월 14일 | ||
학력 | 르망 대학교 파리 데카르트 대학교 | |
정당 | ||
직업 | 정치인 | |
배우자 | 페넬로프 피용 | |
서명 |
[clearfix]
1. 개요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후보[1]였던 프랑스의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으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총 5년간 총리를 지냈다.[2] 당적은 공화당.친러 성향 정치인으로 평가되며[3] 돈바스 전쟁으로 인한 對러시아 제재를 풀고, 시리아 내전에서도 시리아 정부군을 돕는 러시아와 함께 IS를 퇴치하자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대처리즘, 외교적으로는 친러, 사회적으로는 낙태 반대와 동성부부의 입양 금지 (가톨릭 보수주의), 이민 축소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다. #
2. 생애
2.1. 총리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여당이었던 UMP가[4] 니콜라 사르코지를 내세워 자크 시라크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집권하는데 성공하였고, 한달 뒤에 치러진 하원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의석수는 조금줄어들었지만 과반확보) 총리도 마음대로 선출할 수 있었는데 사르코지는 피용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내각을 꾸렸다.
특이하게도 프랑스 공화국 총리들 중에서 재임기간이 3년을 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반면에 사르코지랑 코드가 잘 맞아 떨어졌는지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치를 때 까지[5] 사르코지 정부 밑에서 무려 5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다만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단점정부, 즉 여대야소 정국일 경우 사실상 막강한 대통령제 국가인지라 딱히 피용이 할만한 건 없었다. 피용처럼 5년 동안 총리로 지냈던 리오넬 조스팽의 경우 시라크가 1997년 의회 해산으로 자폭하면서 실세 총리로 군림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프랑수아 미테랑이나 자크 시라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여대야소 정국일 경우 대통령이 총리 권한까지 전부 행사할 수 있으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총리는 내치 대통령은 외치로 구분지어지면서 사실상 대통령은 식물화 되기 때문에 실세 총리로 활동할 수 있었다.
2.2. 2017년 프랑스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
2017년 4월에 실시되는 대선을 앞두고, 2016년 11월 20일 실시된 공화당 1차 경선에서 피용은 득표율 44.1%로 1위를 차지했고, 알랭 쥐페 전 총리가 28.6%로 뒤를 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3위를 차지해 결선 진출에 실패,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2차 결선 투표에서 득표율 65.5%를 차지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정되었다.#
2.3. 2017년 프랑스 대선 후보
자신의 아내를 보좌관으로 고용해 혈세를 타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기소가 되면 후보를 사퇴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사회당의 모략이라며 강력히 부인도 하고 있다.공약으로 이민자 수를 제한하기 위해 쿼터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상기한 부인 고용 비리 의혹 이후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더니 급기야 마린 르펜, 에마뉘엘 마크롱에 이어 3위에 머물게 되었으며 다급해진 공화당 내부에서는 대선후보를 교체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피용이 사퇴할 경우 가장 유력한 후보인 알랭 쥐페가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 피용은 대선후보로서 계속 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피용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피용의 지지자들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6]
그 와중에 정치자금 스캔들이 또 터졌다!# 결국 밀가루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해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2.4. 대선 패배 이후
그로부터 3년 뒤인 2020년 6월에 하원의원 시절 부인을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해 급여를 지급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5년 중 3년이 유예되면서 최대 2년까지만 수감된다.항소 이후 2021년에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자루베쥐네프티' 이사로 근무 중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푸틴과 가까운 올리가르히와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통제 중인 시부르에도 이사로 취임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유럽 정치인 출신 이사들이 대거 사임하는 하는 와중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함께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러시아와 밀착을 이어가는가 했지만 프랑스 정계로부터도 강한 압박을 받게되자 결국 사임했다.
2022년 5월 9일, 항소법원에서 징역 기간을 4년으로 줄이고 이중 3년을 유예한다고 판결했다.
3. 평가
"인기 없는 정책을 말하는데도 안정적이고 일관적이어서 미움을 사지 않는다."
"온건하지만 현실과 목표를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스타일이다."
RTL 등 현지 매체들은 "근로시간 연장처럼 인기 없는 발언을 하는데도 특유의 침착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피용의 특징"이라고 했다. 인기에 연연해 현실과 목표를 돌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1] 한때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올랑드가 재선을 포기하면서 지지율이 올라 변수가 생겼다. 그리고 본문에 서술한대로 아내 고용 관련 비리 사건이 터진 후로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해 2017년 2월 들어 급기야 1위에서 3위까지 곤두박칠 친 상황.[2] 당시 대통령은 같은 당의 니콜라 사르코지였으며 프랑스는 같은 해에 대선과 총선을 같은 시기에 치르기 때문에 임기도 비슷하다.[3] 사실 유럽의 강경우파들은 친러 성향이 강한편이다. 다만 중도우파의 경우엔 아닌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4] 대중운동연합의 약칭으로써 현 공화당의 전신.[5] 이때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가 승리하면서 사르코지가 진 동시에 사회당+기타 좌파정당들이 하원에서 대거 승리하였다.[6] 피용 지지측에서는 좌편향된 프랑스 사법 시스템이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될 사항도 아닌 것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음해하기위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