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으로 시작하는 조선생활 | |
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고스름도치 |
출판사 | 파피루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05. 11. ~ 2023. 01.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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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대영제국에서 작가로 살아남기를 집필한 고스름도치.2022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다.
2. 줄거리
『패륜으로 시작하는 조선 생활』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한반도 역사상 제일 암울한 시대
“그래, 자네가 나 대신 이연을 죽이고 그 뒤처리를 좀 해 주게.”
“아니, 대체 이연이 누군데요?”
용신에 의해 광해의 몸에 빙의되었다
그것도 도망치는 선조의 앞으로!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조선의 왕이다!”
선조가 아닌 광해가 그려 나가는 임진왜란
더이상 휘둘리던 나약한 조선은 없다
강한 왕에 의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 네이버 시리즈 작품 소개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한반도 역사상 제일 암울한 시대
“그래, 자네가 나 대신 이연을 죽이고 그 뒤처리를 좀 해 주게.”
“아니, 대체 이연이 누군데요?”
용신에 의해 광해의 몸에 빙의되었다
그것도 도망치는 선조의 앞으로!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조선의 왕이다!”
선조가 아닌 광해가 그려 나가는 임진왜란
더이상 휘둘리던 나약한 조선은 없다
강한 왕에 의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 네이버 시리즈 작품 소개
3. 연재 현황
2022년 5월 11일부터 문피아에서 연재를 시작하였다.그럭저럭 볼만한 사이다물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나름의 독자층을 확보했다.
2023년 1월 17일에 195화로 본편 완결, 18일~20일에 4화의 외전과 위키 : 고조 광해제를 올림으로서 완결을 맺었다.
4. 등장인물
4.1. 조선
- 이혼
작품의 주인공. 본명은 이현. 전직 양궁 메달리스트로, 어깨부상으로 은퇴 후 공무원으로 취업해 살고 있었다. 나날이 쌓이는 업무와 꺾인 꿈의 스트레스를 임진강에서 낚시로 풀던 중, 한 노인과 만나 잡담을 나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임진강 용신[1]이었고, 그 용신이 가장 미워하는 인물인 선조를 혼내달라는 부탁을 받아 광해군 이혼에 빙의한다.
빙의 시점은 북상하는 왜군을 맞이하는 임진강 근처. 이혼이 된 주인공은 자신의 실력과 건강한 육체로 왜장들을 쏘아죽이면서 첫 승리를 거두면서 임진왜란을 역전시키기 시작한다. 능력은 조선에선 태조 이성계, 일본에선 나스노 요이치가 떠오르는 수준의 명궁. 그러나 당시 전술과 수적 한계로 수백 대 수백이 아닌 수천 단위로 병력이 불면 궁사로서 전장을 역전시키는 건 한계가 있다. 때문에 주로 왜군보다 우수한 기병과 포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끝내고 누르하치의 여진 기병까지 끌어들여 일본을 공격, 쵸소카베, 시마즈, 고바야카와 등의 전향한 왜병들과 같이 도요토미와 도쿠가와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일본의 절반 이상을 손에 넣는다. 귀국 후 명나라가 분열했다고 듣자 다시 한 번 누르하치와 짜서 북경과 연운16주를 가진 후금, 개봉을 중점으로 하는 북명, 남경의 남명 등으로 중원의 분열을 유도하고 해서여진에 누르하치와 협의해가면서 점차 영향력을 올린다.
- 신각
원 역사 해유령 전투의 주역. 그의 능력과 행보를 기억하던 이혼은 일부러 자신을 미끼로 내세워 고니시가 보낸 군대의 후면을 신각의 기병이 공격하게 만들어 성공적으로 격퇴한다. 이후 조선의 주요 군사를 이끌며 맹활약한다.
- 권율
전라도 도절제사. 삼남에서 모인 삼도 근왕군 8만여명의 소식을 들은 광해군이 최고직급자가 아닌 권율을 지휘관으로 앉히면서 경기도 수원 독산성에 일본 5,6 군 도합 4만의 침공을 밀어낸다. 아직 조선군의 경험치가 낮은 상황이라 아슬아슬했다고.
- 요여문
임진강 전투에서 광해군의 별동대에게 모시던 사무라이가 척살당하고 남은 왜병. 머나먼 조선에 전쟁하러 온 것도 싫은 마당인데, 주군에게 정이 별로 없었는지 항복 제안을 즉석에서 받아들여 칼을 거꾸로 잡았다. 병력이 급했던 광해 입장에서는 전투력도 높고, 의욕도 넘치는 요여문과 그 병사들을 친위대로 삼아주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활약하게 되며 규슈와 혼슈 인근 조선령 통치에도 높은 관직을 받게 된다.
또한 요여문 산하의 병력들도 광해군은 일본땅을 나누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전원이 오랜 전국시대에 지치고 통치의 어려움을 알아서 거절했다.
- 임해군
광해의 형. 워낙에 악질 사이코라 계승순위도 밀린 인물이다. 본래 선조의 명으로 함경도까지 가야 했으나, 중간에 선조가 죽었다고 듣자 임시 전시수도가 된 개성에 쳐들어와 광해에게서 왕위를 빼앗으려고 시도한다. 물론 임해의 왈패들 따위가 금군과 항왜들이 호위하는 광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고, 임해는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궁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했으나 광해가 선수를 쳐서 목을 날려버린다.
- 의인왕후(소성대비)
선조의 왕비. 광해 형제의 의모(적모).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를 나름 아꼈다. 다만 임해나 다른 형제들은 적모를 싫어해 광해 말고는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남편 선조를 잃고 광해군이 전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원 역사의 인목왕후가 받게 되는 존호를 대신 받고 수렴청정을 하면서 조정의 최고 실권자로서 정치판을 안정시킨다. 이몽학을 날려버린 것도 이분이 주도한 일.
4.2. 명
- 만력제
명나라 15대 황제. 장거정 사후 30년간 태업을 저지른 전설적인 암군. 작중에서는 그 속내가 상세히 묘사되었는데 자신의 유년기에 교육과 훈계란 명분으로 트라우마를 안긴 장거정과 친모 자성황태후에 대한 증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수치와 굴욕으로 점철시킨 스승과 어머니에 대한 원한으로 명의 몰락을 은근히 좋아하고 가속시키고 싶어한다.[3] 더욱이 장거정을 지지한 어머니가 지지하는 1황자 주상락 역시 싫어하여, 자신이 총애하는 정 귀비 소생의 3황자 주상순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한다.
물론 이는 신하들의 큰 반대에 부딪쳐 끝내 이루지 못했으나, 임진왜란에서 광해군이 명성을 날리면서 "서장자도 아닌 둘째가 왕이 된 조선왕도 저렇게 뛰어난데, 내가 3황자를 태자로 책봉하면 안 될 것이 뭐냐"는 논리로 무장했으며[4] 과도한 군비소모로 문제가 되었던 조선 지원이 겨우 2년여만에 끝나면서 역으로 내탕금을 풀어 적당한 경제부양과 왜구의 근거지 토벌이라는 위대한 치적으로 탈바꿈해버린다.
이 치적을 토대로 3황자 주상순의 태자 책봉을 밀어부치며 우세를 점했으나, 어머니 자성황태후가 항복하면서도 1황자는 명군의 그릇이니 태자로 만들어달라고 고집하자 과거 명군으로 만들겠다는 명분하에 자신에게 가했던 굴욕이 떠올라 분노가 폭발, 자성 황태후에게 분노를 터뜨리다가 그대로 분사하고 만다. 사망 수초 전에 간신히 정귀비에게 주상순을 태자로 책봉하겠다고 유언을 남기면서 명을 두 개로 쪼개버린다.
- 송응창
명나라 장수. 병부시랑으로 조선에 원군을 몰고 왔으나, 주인공과 이순신 등의 명장들이 전장의 주도권을 가져온 다음이라 대단한 활약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 큰 도움이 되기는 했고, 본인도 전쟁 중에도 열정적으로 재건하고 기운을 되찾는 조선을 보면서 나름 만족스러워하며 임진왜란 이전까지 10년이나 태업한 자국의 만력제를 경멸했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모리 가쓰노부의 군세 8만여명을 조명연합군이 격멸한 이후 명으로 귀환해 정적이던 석성과 만나 황위 문제에 대해 논의하며 대치한다. 결국 만력제가 급사하고 태후가 석성과 같이 1황자 주상락을 지지하자, 정귀비가 송응창을 찾으면서 3황자 주상순을 지지하며 거병해서 명나라를 둘로 갈라버린다.
진린, 이여송 등의 숙장들 상당수가 북명에 속했기에 장강의 수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투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누르하치가 조선의 원군을 사칭해 산해관을 점령하고 북경까지 쳐들어오면서 개봉으로 후퇴해 다시 국체를 꾸려야 하면서 전선은 고착된다.
4.3. 후금
-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건주위를 통합 중에 있는 미래의 청나라 태조. 조선에 조력을 제안했고, 이혼은 누르하치를 불러들여서 일본 원정을 위한 사전준비로 해적질에 참가해줄 것을 요구한다. 누르하치는 이를 받아들여 에치고와 아이즈 등 동서를 가리지 않고 조선수군과 힘을 합쳐 일본 사방을 노략질했으며 후에 건너온 4만명의 조선군과 같이 힘을 합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저 무너뜨린다.
그 후 일본 원정에서 얻은 군자금으로, 명나라가 갈라진 틈을 노려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공격한다. 사실 명나라는 조선 다음가는 최대 수혜자라고 봐도 될만큼 건재한 상태라서[5] 강화된 건주위로도 정면승부는 좀 어렵다 싶은 상황이었다.
이에 누르하치는 이혼의 책략을 받아 산해관의 이성량 부자를 급습해 살해한 후 조선의 원군을 명분 삼아 북경까지 진군, 그곳에서 일부러 북명 황제와 주요 인물들을 놓쳐주는 것으로 개봉에 자리잡은 북명이 조선의 지원하에 세력을 유지하도록 놓는다. 왜냐하면 북명을 무너뜨리면 북명과 남명이 다시 단합해 북상해올 것이고, 그러면 조선 이상의 화력을 가진 남명 포병과 북명 기병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기 때문. 덕분에 추가적인 전쟁 없이 연운 16주와 북경을 차지한 중원의 강국으로 부상한다.
이혼을 '대형'이라며 존경한다. 누르하치를 비롯하여 이혼과 함께 일본을 휩쓸어본 세대들은 조선군의 압도적인 화력과 넓은 바다를 자유로이 이용하는 해군력, 무엇보다 미래지식을 갖춘 이혼의 능력과 선구안을 경험하여 누르하치만큼은 아니어도 조선을 상국으로 인정하는 반면, 일본 원정을 경험하지 않고 강국에서 성장한 다음 세대와 대립이 있다. 그 때문에 천명을 얻고자 반란을 일으킨 홍타이지에게 살해당한다.
- 아이신기오로 슈르하치
- 아이신기오로 추옝
- 아이신기오로 다이샨
4.4. 일본
- 우키타 히데이에
도요토미의 양자이자 일본의 조선 공략군 총사령관.
-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와 같이 선봉장으로 조선을 공격한다. 그러나 임진강 부근에서 광해군의 금군과 의병 연합에 벌어진 소규모 전투에서 족족 박살나는 등 피해가 커졌고, 고니시가 소수 접전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걸 알고 몸을 빼는 바람에 더욱 휘하의 피해를 불렸다. 고니시가 야간 도하 작전을 시행했다가 상당한 소모를 입고 재정비에 시간이 들게 되자, 1군 3만을 이끌고 개성을 쳤다. 소수의 조선군을 격파하고 개성에 입성했지만 홍인서가 자폭 특공을 해오는 바람에 중상을 입으면서 리타이어한다.
- 시마즈 요시히로
그 유명한 사츠마 번 시마즈 가문의 가주. 규슈 일통을 꿈꾸던 시마즈 가문이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굴복한 후에는 가독 자리조차 억지로 요시히로에게 넘어가고 조선 공략에도 끌려온 상태라 원한이 깊다. 아들과 조카까지 끌려온 요시히로 입장에서는 반강제로 앉은 가독이기에, 공을 세우고 가문을 건사해 아들 히사야스에게 상속시켜 주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다.
자잘하게 전력을 갉아먹힌 고니시의 군과 합류. 함경도를 노렸으나, 이혼이 이끄는 7천명의 군대와 각지에서 모인 1만에 달하는 의병들에게 사방에서 포위섬멸 당하면서 아들 히사야스와 조카 토요히사까지 실종되자, 친아들과 양아들을 전부 잃었다고 생각해 눈이 뒤집어진다. 당연히 아들을 구하러 다시 돌격하려 했지만 고니시에게 제지되고, 이혼에게 보복하기 위해 한양 수비군에 합류한다.
마침내 벌어진 각자 10만의 일본군과 조선군의 전투가 벌어지고, 한양 내 조선인들의 봉기로 성문이 열리자 복수를 위해 대장군전 탄을 뽑아서 휘두르는 괴력을 발휘하며 덤비지만 오히려 화살에 맞고 쓰러진다. 부하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쳐서 조령에서 버티면서 보복할 기회를 노렸지만, 조카 토요히사가 생환해 아들 히사야스도 살았다고 하자 조선에 붙어서 후계자 아들을 살리고, 태합에게 복수하기로 천명, 총대장 우키타를 베어버린다.
전쟁이 조선의 승리로 끝난 후 규슈 공격에 앞장선다. 다만 고민 정도는 해주리라 여겼던 시마즈 본가가 다시 형 산하에서 자신에게 칼을 들이밀자 허탈함과 그들에 대한 분노로 조선군과 같이 성을 맹공해 떨어뜨리기 직전까지 몰았다가 배신한 차남 타타카츠가 다시 배신해서 자기에게 친척 일가를 내밀자 황당해한다. 조선식 이름 심안홍으로 개명해 남해도 관찰사 직함으로 조선의 신하로서 규슈를 통일한 다이묘가 된다.
- 쵸소카베 모토치카
시코쿠의 유력자 다이묘 출신. 한 때는 시코쿠를 일통하고 천하인의 자리를 노렸지만 결국 도요토미에게 굴복한 인물이다.
[1] 용신의 이름이 낙하인데,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수록된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서 박연 폭포의 용신에게 초청받은 손님으로 등장하는 임진강 수신의 이름이다. 다른 손님으로는 김포 조강신(祖江神), 예성강을 주관하는 벽란신이 등장한다.[2] 임진강 인근에서 싸워 이긴 건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세 중 절반 정도인 선봉대 뿐이다. 즉 이삼천명 잡았으니, 그대로 3개 군 이상, 최대 5만명이 넘게 모여있는 한양을 치자는 헛소리.[3] 자성황태후의 지지를 업고 권력을 얻은 장거정은 엄청난 부패의 화신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밝혀진 바로는 엇비슷한 시기의 간신들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오히려 매우 청렴한 편이다. 물론 생전에 아주 호사스런 생활을 했다고 하니까, 재산만 볼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눈여겨볼 것은 장거정의 만력제 교육인데, 이는 엄격하다는 말로 넘어갈 수준이 절대로 아니었다. 몸과 정신을 아주 골고루 학대하고 망신을 주는 수준. 심지어 자기를 섬기던 주군을 쫓아낸 신하들에 비유하며 아부해도 좋아라 했다고 하니, 그걸 보고도 아무 말도 못했던 만력제가 속이 편했을 리가 없다.[4] 원 역사에서는 오히려 광해군의 세자 책봉 인정을 늦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명나라 고위신하들이 만력제의 억지를 통과시킬 빌미를 안 주려고 반대한 것.[5] 만력제가 10년 만에 태업을 끝내고 조선을 지원했는데 전쟁이 조선에서 1년, 일본에서 1년 해서 총 2년 정도로 끝나버렸다. 원 역사에 비해 인력, 금력 낭비도 절반 이하, 오히려 왜구의 근거지 토벌과 경기 부양이라는 실적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