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22:40:35

카폰

파일:카폰.jpg
현대전자의 카폰 광고
1. 개요2. 역사3. 한국의 카폰
3.1. 시작3.2. 확대3.3. 오용3.4. 쇠퇴
4. 후속5. 매체에서의 등장6. 출처

1. 개요

자동차에 전화장치가 부착되어 차량 내부에서 직접 전화를 할 수 있었던 전자기기.

휴대전화가 보급되지 않아 공중전화를 쓰던 때에 상위급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사용하던 물품으로 당시에는 획기적이고 참신한 물건이었다. 현재는 순정 내비게이션및 카오디오의 블루투스 핸드폰 연결로 계승되었다.

2. 역사

최초의 카폰은 1946년 6월 17일미국미주리세인트루이스에서 최초로 도입되었다. 사우스 웨스턴 벨 (South Western Bell)사[1]에서 도입한 방식은 수동교환기를 쓰는 공중전화망과 자동차에 설치된 전화기를 무선연결하는 방식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하던 미국의 무전기 방식을 응용해서 만들어졌다.

최초의 방식답게 장비의 중량만 36kg에 도달했고 3개 채널만 있는데다가 수동으로 교환원이 통신을 연결해야 하는 불편한 방식이었다. 따라서 수요 폭증에 쉽게 대비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개량되었지만 주파수가 150MHz 대역에 60kHz 간격으로 6ch 할당 밖에 없었으므로 동시 통화 가능 숫자가 적었다. 여기에 더해서 트랜시버와 같이 동시 통화를 할 수 없는 단신식이며 1개의 기지국이 감당하는 범위도 반경 20 - 30km 전후의 매우 넓은 범위에서 커버하는 대존 방식으로 이동에 따라 통신을 중단시키지 않고 기지국을 변경하는 핸드오버 기능이 없었다.

1961년에 주파수로 400MHz대가 할당되어 동시 통화 가능 숫자가 늘었으며 1967년에 자동교환식 서비스가 개시되었다. 최초로 도입된 이동전화 서비스 (Mobile Telephone Service) 약자로 MTS라고 부르는 방식도 향상된 이동전화 서비스 (Improved Mobile Telephone Service), 약자로 IMTS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며 1984년에는 첨단 이동전화 시스템 (Advanced Mobile Phone System), 약자로 AMPS라고 부르는 방식이 도입되어 2008년까지 사용되었다.

서독에서도 1958년에 A-Netz 서비스로 카폰이 도입되었으나 1971년에 거의 11,000명의 가입자 용량에 도달해서 한계점에 이르렀고 1972년에는 B-Netz가 도입되어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할 필요 없이 직접 전화걸기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가입자에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핸드셋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지국의 로컬 지역 코드를 가정하기 때문에 여전히 가입자의 위치를 전화국이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1985년 C-Netz 이라는 이름으로 1G서비스가 도입되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일본에서도 1954년에 개발을 시작해서 1961년에 수동식 교환시스템을 쓰는 카폰이 개발되었으며 1967년에는 핸즈프리가 가능한 자동교환식 카폰을 개발완료했으나 당시 주파수대가 400MHz대라 대역폭이 좁고 가입자 용량도 충분하지가 않아서 1970년에 도시 재해 대책용 휴대용 전화 시스템으로 도쿄 23구에 도입되었다. 이후에 800MHz대의 대역폭을 확보해서 1979년 12월 3일에 본격적으로 민간용 카폰 서비스를 개통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는 일본의 주요 도시를 커버할 수준으로 범위가 확대된다.[2]

미국 기준으로 1980년대까지는 카폰이 휴대폰보다 더 대중적이었으나 1990년대부터 휴대폰의 크기와 중량이 줄어들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휴대폰이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카폰의 경우에는 차량 내부에 강력한 수신기와 송신기를 장착할 수 있어서 휴대폰 기지국이 없는 광활한 지역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므로 격오지나 재난용등의 특수목적용으로 2008년까지 유지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12년 3월 31일에 서비스가 종료된다.

2008년 이후에는 원래의 카폰은 사라졌으나 스마트폰블루투스 같은 연결 시스템을 통해 차량에 연결해서 핸즈프리기능으로 통화가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스마트 모빌리티로 발전이 이어지고 있다.

3. 한국의 카폰

휴대전화 서비스가 생기기 이전의 한국에서는 카폰을 거론하기에 앞서서 자가용 자동차가 큰 부자들이나 몰고 다녔을 시대인만큼 어마어마한 사치품이었다.
파일:무선허가스티커.jpg
무전주파수 운용 허가 스티커와 카폰용 안테나

또한 회선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재산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마음대로 설치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카폰을 설치한 자동차는 체신부에서 발행된 무선주파수 운용 허가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3] 1980년대 초반까지는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임원급 정도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설치를 할 엄두조차 못냈다. 카폰을 설치한 차량은 차량 뒤에 길쭉한 안테나가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3.1. 시작

1960년, 20여 명의 정부 각료용 관용차에 모토로라제 카폰이 설치되면서 한국에서의 카폰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민간에게 확대되어 1965년엔 전국 78대의 자동차에 카폰이 설치되어 있었다. 즉, 대통령, 총리, 장차관 정도 되는 고위급 인사나 삼성, 개풍, 삼호, 럭키를 비롯한 상위권 재벌그룹 임원들이나 이용할수 있는 귀한 물품이었다.

민간에 카폰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1967년 12월 자동차다이얼전화 개통이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시세로 단말기 가격은 85만원, 기본사용료는 월 10,750원, 도수료 통화당 63원의 프리미엄에 준하는 엄청난 가격을 갖춘 서비스였다. 따라서 카폰을 쓰려면 1980년 당시 1천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참고로 1980년 물가와 2019년 물가는 4.4배 정도 차이나며, 2019년 9월 기준으로 약 4,400만 원이다.

당시의 카폰은 수동교환식으로 전화교환원에 의한 교환이 이루어져야 했으며 차량이 이동하면 송수신이 안되고 일반전화에 비해 단선방식이라 불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에 카폰이 보급된 이유는 재정확보 때문이었다.

원래 한국에서도 카폰이 필요했고 카폰의 목적은 공중통신서비스 향상과 긴급한 업무연락을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정부 기관을 비롯해 공공단체 승용차에 가설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이 없어 개인승용차까지 가설이 가능해 특권의식을 조장하기도 했거니와 이렇게 공공용으로 설치된 카폰은 비용을 회수하기가 참 곤란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공무수행이나 국가기밀, 높으신 분들 같은 말만 내세우면 아예 비용을 내지 않거나 한참 뒤에나 조금씩 지불하므로 공짜로 쓰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용을 제대로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정부 예산이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셈이라 실질적인 수익이 별로 없기도 했다.

1980년 11월 기준 전국 306대의 카폰(정부 40여 대, 나머지는 민간기업 및 개인)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회선이 포화 상태라 신규 가입이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주파수 공유가 개발되지 않아서 카폰의 통화방식은 무전기랑 동일했기 때문에 회선을 늘리기 매우 어려웠다.

덤으로 활용도도 높지 않았는데 1981년 4월 22일 기준 서울 남산중계탑으로부터 5회선으로 운용된 차량용다이얼전화는 대당 평균 통화량이 월 20여회, 일부 가입자의 경우 월간 10여통화도 하지 않는가 하면 아예 사용이 없는 고객도 발생했다. 상당수가 과시용으로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대학입시때 지원서를 넣을 경우 정원 미달이나 초과 여부를 살펴봐야 했는데 이런 상황시 정보 전달용으로 카폰이 사용되면서 일시적인 수요 폭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3.2. 확대

결국 1980년부터 통신을 국가산업정책의 핵심사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10월 체신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영체제개선위원회'가 구성됐다. 통신사업의 기본 골격을 재편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81년 3월 14일 한국전기통신공사법을 제정해 공포하고 같은해 5월 12일 전기통신법을 개정했다. 이 법안을 기반으로 한국전기통신공사(현재 KT)가 출범했다.

실제 서비스 도입을 위해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리하여 1982년 10월 '이동무선전화 현대화 계획'이 수립되면서 전세계 4번째로 첨단 이동전화 시스템 (Advanced Mobile Phone System), 약자로 AMPS 도입을 천명했다.

1983년 11월 체신부는 '자동차다이얼 전화보급 세부계획'을 마련해 발표했다. 발표 당시만 해도 1984년 1월부터 1차로 수도권 지역에 3천대의 자동차 다이얼전화를 가입 신청받아 보급하고 2차로 같은해말 다시 5천대를 보급해 총 8천대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도심지 고층빌딩전화국 등 10여개 건물 옥상에 38억원을 들여서 고성능 안테나를 배치했다. 그간의 적체 현상을 딛고 도심 지역의 빌딩 숲으로 인한 전파 방해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교환시설은 가입자 3천명 수준의 용량으로 설치됐다. 정부는 같은해 12월 전기통신법을 폐지하고 전기통신기본법과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을 각각 제정해 현실에 밑바탕을 둔 제도 정비에 만전을 기울였다.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재 SK텔레콤)가 세워져 카폰 업무를 전담했고, 1985년 경에는 카폰 가입자가 2,659명으로 증가했다. 당시 소형차인 현대 포니 가격이 400만 원대였는데 카폰의 설치 비용도 그 정도였다. 1980년보다는 다소 가격이 내려갔지만, 그래도 2020년대를 기준으로 약 1,300만 원이다. 1980년대 말 들어서 화선수와 자가용 보급 대수가 늘어나면서 카폰의 가입자 수도 이전보다 많이 증가하며 드디어 중산층들도 카폰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완전히 대중화 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3.3. 오용

그리고 여전히 카폰은 실사용 목적보다는 과시용 목적이 많았다. 1985년 체신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말까지 개통된 카폰 수는 2,659대지만 1대 하루 평균 통화량은 2분 수준이었다. 1개월간 10통화 미만 카폰은 80여대, 지난해 11월 한 통화도 쓰지 않은 카폰도 발견됐다. 400만원이 넘는 초기 비용과 유지비를 감안한다면 저조한 사용량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카폰용 안테나를 장착한 차량은 경찰공무원의 단속을 피할 수도 있었다. 카폰을 장착한 차량은 그 모습 자체가 차주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고 이런 경우에는 사소한 교통법규 정도는 경찰의 현지재량에 의해 피할 수 있는 시대였다. [4]따라서 카폰용 안테나가 달린 차량은 가벼운 교통단속 정도는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차량을 구매하면서 카폰없이 카폰용 안테나만을 설치하는 차량이 늘어났다. 카폰은 차량 내부에 위치했기 때문에 육안으로 쉽게 장착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카폰용 외부 안테나가 카폰 장착 유무를 결정해줬다.[5] 즉, 카폰이 없더라도 안테나만 설치한다면 마치 카폰을 장착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속해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게 안테나 설치비 약 5천원에서 2만원이면 가능하게 된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당시 경찰에게는 또 하나의 골치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쌍안테나였다. 대부분 하나의 안테나가 설치됐으나 특정 제조업체가 내놓은 이 제품은 단숨에 제조사를 점유율 2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문제는 주요 인사들의 호위용 차량에 장착한 쌍안테나와 헷갈린다는 데 있었다. 결국 경찰은 쌍안테나 설치를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체신부는 형식승인이 난 상황이며 위법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이 제안을 거절했다.

또한, 카폰은 고객의 차량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소형차가 인기를 끌었으나 카폰이 대중화되고 나서는 중형차들이 인기를 끌었다. 가령 현대 포니대우 맵시의 판매량은 줄었으나 현대 스텔라대우 로얄 등의 중형차 판매율이 증가한 것. 차종의 보급률이 많은 차주가 대접받는 풍토도 있었거니와 카폰을 설치 또는 안테나만 설치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차량을 운전해야 과시효과가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3.4. 쇠퇴

1988년에 한국에서도 1G통신을 상용화하면서 7월 1일에 휴대 전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래서 1991년 휴대 전화 가입자가 카폰 가입자를 앞질렀고, 1997년 PCS 서비스 시작 이후 기기값과 통신료 인하 등으로 휴대폰이 급속도로 보급되어 휴대 전화가 대중화된 이후부터 기능적으로는 사실상 흡수된 셈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서도 카폰으로 신고가 이루어졌지만 카폰의 쇠퇴를 막을 수는 없었고 1996년 한국이 세계 최초 2세대통신(2G)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아날로그 통신시대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특히 아날로그 이동전화 서비스가 도청 위험이 있다는 것이 국회에서 거론되면서 카폰의 목줄을 당기고 말았다.

결국 1999년 아날로그 이동전화 서비스 종료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이젠 박물관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됐다.

4. 후속

현재는 편의성이 강화된 순정 네비게이션의 블루투스 연결 기능으로 이어졌다.

5. 매체에서의 등장

  • 제4공화국: 제23, 24화의 김형욱 실종사건 편에서 김재규가 쓰는 카폰이 버튼식으로 나오는데[6] 당시 한국에서 쓸 수 있었던 카폰은 다이얼식이었다. 사실 다이얼식 카폰 소품을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 1970년대 당시 카폰은 장관 급이나 재벌 정도밖에 쓸 수 없었으므로 1990년대 촬영 당시에 잔존한 것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 자이언트: 배경이 배경이다보니 카폰을 사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 그놈 목소리: 2007년작 영화로 주인공 한경배(설경구 분)가 유괴범(목소리 강동원)의 요구를 듣기 위해 각그랜저에 있는 카폰을 주로 사용한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1991년.[7]
  • 라이어 라이어: 1997년작 영화로 여주인공 오드리(모라 티어니 분)가 플래처(짐 캐리 분)와 통화하며 사용한다.

6. 출처



[1] 현재는 AT&T 모빌리티에 합병.[2] 이 때문에 1980년대에 나온 일본의 "세계의 역사"류 만화에서 현대를 다룰 때에는 일본 차에 달려 있는 카폰이 로터리 엔진과 함께 미래의 상징으로 꼭 등장한다.[3] 지금 핸드폰은 별도 허가를 요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4] 이 당시에는 일반인들도 과속운전과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교통경찰에게 몇만원 정도의 촌지를 찔러서 전과 딱지를 면하는 일이 흔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이 당시에는 교통경찰이 돈 잘버는 직종이었다.[5] 전문적인 사기꾼들은 무전주파수 운용 허가 스티커를 위조해서 붙이고 차량 내부에도 카폰 모형을 장착해서 검문을 해도 육안으로 구별이 참 어려웠다. 카폰 작동 시험을 하더라도 카폰 고장났다고 둘러대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삼엄한 검문을 하는 곳도 매우 드물었다.[6] 일본에서 1980년대 상용화되어 있던 모델.[7] 실제로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에서 유괴된 이형호의 아버지 이우실은 유괴범과의 접선을 위해 카폰으로 자주 연락했다.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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