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14:52:46

춘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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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명이 춘양역이었던 경전선의 폐역에 대한 내용은 석정리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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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역
동대구·부전 방면
봉 화
← 23.2 ㎞
역명 표기
영동선 춘양
Chunyang
春陽 / 春阳 / チュニャン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운곡길 22-2
(의양리 152)
관리역 등급
관리역
(2급 / 한국철도공사 경북본부)
운영 기관
영동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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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선 1955년 7월 1일~
1963년 5월 20일
영동선 1963년 5월 20일
무궁화호 1986년 3월 21일
V-train 2013년 4월 12일 }}}}}}}}}
철도거리표
영동선
춘 양
파일:춘양역2021.png
현 역사(1997년 준공, 2013년 개축)

1. 개요2. 역 정보
2.1. 억지춘향? 억지춘양?2.2. 승강장
3. 연계 교통
3.1. 농어촌버스
4. 일평균 이용객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영동선의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운곡길 22-2 (의양리 152) 소재.
금처럼 귀한 나무가 반기는 역
춘양역은 1941년 영동선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1945년 8월 연합군에 의해 역사가 파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세워졌다. 1998년 영주-철암 간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역사로 신축 이전하였다. 춘양이란 역명은 만석봉(萬石峯) 아래 들판이 넓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춘양지역은 1923년부터 채굴되었던 금광, 금정광산이 있는 곳으로 각종 광물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춘양목으로 통용되는 목재의 명산지이다. 때문에 지역 명품인 춘양목을 역 구내에 비치, 춘양목의 우수한 품질과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2. 역 정보

파일:IE000865104_STD.jpg
파일:dthumb2-phinf.pstatic.jpg
구 역사(1955년 준공, 1998년 철거)
1955년 7월 1일 영암선의 봉성-춘양 구간이 개통하면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73년 3월 26일 민수용 무연탄 도착취급역으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1일 소화물취급이 중지되었다.

1997년 12월에 현 역사가 준공되었고 1998년 1월에 기존 구 역사의 기능이 현 역사로 이관되었다.

2000년 10월 21일부로 비둘기호 운행이 폐지되었고 2004년 3월 31일에는 영동선 통일호가, 같은 해 4월 1일에는 청량리-영주 새마을호 운행이 폐지되었다.

2004년 9월 1일에는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고 2013년 4월 12일 중부내륙순환열차 운행이 개시되었다.

2020년 2월 3일부로 중부내륙순환열차 운행이 폐지되었다.

원래 '춘양역'이란 역명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역이 가지고 있었지만 영동선의 춘양역이 개업하면서 기존 화순의 철도역은 석정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8년에 폐역으로 전환되었다.

2.1. 억지춘향? 억지춘양?

파일:attachment/춘양역/Chunyang.jpg

억지춘양 혹은 억지춘향의 발원지가 이 동네라는 설이 있다. 원래 영암선(영동선의 전신)이 부설될 때 춘양면을 통과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춘양면 서벽리 출신으로 당시 제3대 국회의원이자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정문흠(鄭文欽,1892 ~ 1976)이 반대하여 억지로 선로를 꺾어가면서 이 동네를 거치게 했다는 설인 것. 어찌보면 철도 핌피의 시초로도 볼 수 있다.

지도로 보면 실제로 직선으로 뚫고 갈 법도 한 곳을 S자도 아니고 아예 동탄인덕원선/111정거장를 경유하는 곡선 또는 Ω[2]으로 지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춘양에서 질 좋은 목재가 많이 생산되어[3][4]춘양상고'''--] 그나마 화물 수요는 꾸준히 있었기에 아주 억지로 지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억지춘향이란 말은 이 역이 개업한 1955년보다 훨씬 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으며 확실히 억지春香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格에맛지안는 地方部社會部, 經濟部椅子에 턱턱걸어안저서 억지春香의 붓대勞働을 머리골치가띙하게 終日하고잇다." - 1927년, 동아일보#
"이러케 억지春香을 꾸며노타싶이한 K君이 機械的으로움즉여야할 拘束된 店員生活에 調和되지안흘것은 定한 理致다." - 1938년, 동아일보#
"머리채를느러트리든옛시절로 거슬러올나가도못쓰겟지만 노란머리아닌털을 억지춘향으로구비치게한들 어쩔거시여" - 1949년, 동아일보#"

그 시절 발간된 국어사전에도 "억지춘향이" 라는 표현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무렵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억지춘향이란 표현을 쓰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해당 글에 의하면 영동선이 구배 문제로 인해 춘양역을 지나야 했다고 하고, 해당 칼럼에 의하면 영동선 춘양역과 과거 춘양역으로 불렸던 경전선석정리역 사이의 역명 분쟁이 노선 분쟁으로 와전되었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성급히 단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

2.2. 승강장

임기
1 2
봉화
1 영동선 [[무궁화호|
무궁화호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
분천·철암·동해 방면
2 [[무궁화호|
무궁화호
]]
영주·동대구·부전 방면

3. 연계 교통

3.1. 농어촌버스

의양리-춘양KBS(371000598·371000599)
농어촌

4.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55839><bgcolor=#f55839> 연도 ||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 || [[무궁화호|
무궁화호
]]
파일:누리로 BI.svg
||<bgcolor=#f55839> 총합 ||<bgcolor=#f55839> 비고 ||
2003년 66명
2004년 97명
2005년 112명
2006년 103명
2007년 94명
2008년 86명
2009년 93명
2010년 89명
2011년 94명
2012년 98명
2013년 4명 106명 110명
2014년 3명 98명 101명
2015년 2명 71명 73명
2016년 2명 82명 84명
2017년 3명 73명 76명
2018년 4명 70명 74명
2019년 3명 64명 67명
2020년 0명 32명 32명
2021년 0명 38명 38명
출처
철도통계연보


관리역이긴 하지만, 다른 시골의 간이역처럼 해가 갈수록 이용객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2019년도까지는 괜찮았지만,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그나마 운행하던 관광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현재는 30명 대의 이용객이 이용한 조그마한 역이 되었다.

5. 둘러보기

영동선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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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선:폐역, †:여객영업 안함
강릉역은 2018년 6월 28일 영동선 거리표에서 삭제되었으나 영동선 열차가 정차한다.
}}}}}}}}}



[1] 편도 1회만 영주발 열차만 정차[2] 선형의 불량함으로만 놓고 보면 흥덕역보다도 이곳이 훨씬 심하다.[3]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목재가 바로 그것이다. 해송과 육송의 자연교잡종으로 태백산 일대에 자라는 우량 소나무가 벌목되면 춘양에 보내져서 전국각지로 배송된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4] 지금도 춘양이 유명한 목재의 산지라는 걸 알려주는 듯, 춘양에 가면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라는 비범한 이름의 고등학교가 있다. --물론 본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