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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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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티베트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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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대적 구분3. 상세4. 발음의 변화

1. 개요

중국어는 중국티베트어족(Sino-Tibetan language family)에 속하며, '한어파'를 형성하고 있다. 표준 중국어베이징 방언을 기초로 한다.

2. 시대적 구분

중국어 시기 구분은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시기로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자문화권한국이나 일본, 베트남에서 사용되는 한자의 읽는 소리(讀音)는 주로 중고한어 시기에 들어왔다.

3. 상세

옛날 중국어는 대부분의 형태소가 한 음절이었다. 또한 단어도 대부분 형태소 하나에 단음절이었다. 그러나 송 이후부터 두 개 이상의 한자를 모아 단어를 만드는 경향이 강해진다. 예를 들어, 和와 平을 합쳐 和平(평화의 중국어 단어)이라 한다. 따라서, 현대 중국어 단어는 대체로 음절이 두 개 이상 있다. 이에 영향이 한국어 한자어에도 있다.

중고한어가 쓰이던 시기(특히 당나라)는 중원의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컸기에 한자문화권 의 한자 발음이 대부분 이 시기에 유래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한족이 본격적으로 장강 이남을 넘어 우이산맥~난링산맥 이남까지 이주했기에 객가어, 광동어 등에 중고한어의 흔적이 비교적 더 남아 있다. 그래서 객가어 한자 발음이 한국어 한자 발음과 가장 비슷하다고 한다. 사실 이는 특별한 게 아니라, 중세 한국어의 흔적이 경기 방언(서울 방언)보다 제주 방언, 동북 방언, 경상 방언 등에 더 많이 남아있는 것과 비슷하다. 언어는 화자수가 아닌 화자 집단이 다양할수록 더 빠르게 변화하는데, 예로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다양한 집단이 혼거하던 관화를 바탕으로 하는 표준 중국어는 발음 변화가 더 크다.[1][2] 애초에 중세 언어가 첫 모습도 아닐 뿐더러, 언어는 빠르든 느리든 계속 변한다. 우이산맥~난링산맥 이남으로 이주한 한족은 토착민과 교류하고 통혼 혼혈하며 유전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고, 사회 문화적 주류는 한족이었기에 언어적 주도권은 유지했지만,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남중국은 북중국보다 화자 집단이 단조로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화가 느렸을 뿐이다.#

조기관화로 넘어오면서 입성(받침음)과 대부분의 전탁음(유성음)이 없어지고, 성조도 만기 중고한어 시기 8성(음평, 양평, 음상, 양상, 음거, 양거, 음립, 양립)에서 4성으로 줄었다. 원대 이후로 명청시대도 이 근고음을 주로 쓰다가 태평천국의 난, 백련교도의 난, 아편전쟁, 청불전쟁, 청일전쟁 등으로 혼란했던 청나라 말기에는(19세기~20세기초) /m/ 받침음이 /n/으로 통합되며, gi [ki] (끼), ki [kʰi] (키), hi [xi] (히)음이 각각 ji [t͡ɕi] (찌), qi [t͡ɕʰi] (치), xi [ɕi] (씨)로 구개음화되었다. 이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예가 北京, 南京의 발음이다. 명청시절 강회 관화는 구개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를 뻐낑(혹은 뻬낑), 난낑으로 발음했고 이후 구개음화되어 뻬이찡(Beijing, 베이징), 난찡(Nanjing, 난징)이 되었다.[3] 15세기에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에도 청나라 중기까지 강회 관화가 행정 표준어였는데, 오늘날에도 난징에서는 北가 '뻬이' 대신 '뻐'로 발음된다. 또 일부 관화 방언(주로 산둥성 동부 해안가)이나 남방 방언엔 이러한 구개음화가 없다.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이어 들어선 장제스 시기 중화민국에서 베이징 관화를 중화민국 국어라는 이름의 국가 표준어로 제정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대만(중화민국)에서도 국어라는 이름으로 표준어가 되어 있다. 한편 국공내전의 결과로 중국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는 중화민국 국어를 약간 수정한 후, 민족간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대한족주의 성격이 강하게 나는 "국어" 대신 "보통화"라는 명칭으로 공용어로 제정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60년대에 독립한 싱가포르에서도 중국계 주민의 의사소통을 위해 표준관화를 싱가포르 표준 화어(華語)라는 이름으로 국가 공용어로 지정했다. 이 중화민국 국어, 보통화, 또는 싱가포르 표준 화어가 오늘날 우리가 '중국어'라 알고 있는 표준 중국어이다.

4. 발음의 변화

한자가 표어문자이기 때문에 각 시대의 정확한 발음을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현대의 각 지역 방언과 한국과 일본 및 베트남의 한자음을 비교해 보면 상당한 음운변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어 음운학에서는 시대에 따라 상고음 시기(기원전 15세기~기원후 2세기), 중고음 시기(3~13세기), 근고음 시기(14~19세기), 현대어(20세기 이후)로 나뉜다.

한국 한자음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당나라 시기 장안의 중고음이 들어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대 베이징어에서는 사라진 입성(-p, -t, -k)이 남아 있는 한국 한자음이 중국어의 옛 발음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국어 또한 개별적으로 상당한 음운변화를 겪었고 성조 또한 사라졌기 때문에 당나라 때의 발음 그대로는 아니다.

15세기 한국어의 이중모음 [aj](아이)가 현대에는 단모음 [ɛ](애)로 변화하였기 때문에[4] 의 한자음 또한 [taj](다이)에서 [tɛ](대)로 바뀐 것은 한국어 안에서의 음운 변화로 인해 한자음이 변화한 예이다. 또한 한자음을 받아들여 정착하는 과정에서 중고음의 복잡다단한 음절 구조는 한국어의 음운 체계에 맞춰 단순화되었다. 한편 중고음의 입성 운미 [-t]가 한국 한자음에서 [-l]로 일정하게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고 시대 북방 지역 방언의 영향이라고 보는 설과 한국어 내부의 음운 체계 안에서의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중고한어에서 한무제의 이름 '유철(劉徹)'은 '려우 톋'(ljəw ʈʰjet)이라고[5] 읽혔다. 현재 베이징어에서는 '류처'(Liú Chè). 한편 중고한어로 '중국(中國)'은 "듕 궉(ʈjuŋ kwək)"으로[6] 읽혔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을 생각해보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참고로 훈민정음에서 쓰인 동국정운식 한자음은 중고음을 가장 크게 반영했으며,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본토 중국어는 중고음에서 근고음으로 넘어가거나 이미 근고음으로 넘어간 시기였다. 현대 표준중국어에서는 중국(中國)이 '쭝궈'(Zhōngguó)라고 읽힌다. 한자어의 발음도 엄청나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1] 위키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관심이 많은 문서일수록 편집 횟수가 많아져서 문서 내용이 더 많이 변하는 것과 같다.[2] 한서를 바탕으로 만든 기원후 2년경 중국 대륙 인구 밀도 지도.png출처[3] 청말, 열강이 베이징, 난징을 Peking, Nanking(예전 표기 방식으로는 무기음 g {/k/}와 유기음 k {/kʰ/}를 구별하지 않고 둘 다 k로 적는다)이라 적은 것은 이 영향이다. 웨이드-자일스 표기법도 베이징 관화를 기준이기 때문에 Pei-ching, Nan-ching과 같이 적으며 Peking, Nanking은 그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쓰였던 강회 관화를 기준으로 한 표기이지 웨이드-자일스식 표기가 아니다.[4] 사실 'ㅐ'라는 한글 글자 자체가 본래 'ㅏ+ㅣ'의 구성인 만큼 [aj\]라는 발음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것이 주음 전설모음화+단모음화를 거친 것.[5] 백스터의 체계를 따름. 상고시대에는 백스터-사가르 기준 (mᵊ-ru tʰret)으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면 실제 발음은 'ㅁ뤁렏'에 가까웠을 것이다.[6] 역시 백스터의 체계를 따름. 상고한어 재구는 ㄷ룽 궉(truŋ C•qwˤə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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