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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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7210><colcolor=#fff> 정치개혁 2050 공동의장 조성주 趙誠柱 | Cho Seong-ju | |
출생 | 1978년 10월 28일 ([age(1978-10-28)]세) |
인천광역시 | |
학력 |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천문학 / 중퇴) |
현직 | 정치개혁 2050 공동의장 세 번째 권력 공동대표 |
소속 정당 | |
경력 | 민주노동당 연세대학교 학생위원장 (2003~2004)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 보좌관 (2006) 민주노동당 홍희덕 국회의원 보좌관 (2008~2010)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 팀장 (2010~2012)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 (2012~2013) 서울특별시 노동전문관 (2013~2015) 서울특별시 노동협력관 (2017~2021.7.31.) 심상찮은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 정의당 정책위원회 상근부의장 정치발전소 이사장 초대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
외부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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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세대 진보정치는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대변해야만 합니다.[1]
대한민국의 정치인.민주노동당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진보정당계 정치인으로, 정의당에서 활동하다 당의 이념과 노선을 제3지대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유니온 세 번째 권력'이라는 당내 그룹을 조직하였다. 이후 이 그룹과 함께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탈당한 뒤 금태섭 전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 '새로운선택'에 합류했고, 새로운선택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는 개혁신당에 합류하면서 개혁신당 소속이 되었다.
2. 생애
2.1. 정치 입문
2004년 민주노동당 연세대학교 학생위원장을 맡았다.[2]2006년 최순영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했다.[3]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홍희덕 의원실 보좌관으로 일했다.[4]
2010년 설립된 국내 최초 청년세대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 창립의 최초 제안자이며 정책기획팀장을 역임했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시절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체불된 6억원 규모의 주휴수당 문제를 해결 하는 등 청년노동의 새로운 의제를 꾸준히 발굴하고, 사회적 이슈로 크게 부각 시켜 냈다. 이후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서울특별시 노동협력관 등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합진보당 청년 비례대표 경선인 '위대한 진출'에 출마했으나 당선권 진입에 실패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특별시 노동전문관으로 일했다
노동전문관 사임 후에 2015년 정의당에 입당하였으며 노동시장똑바로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같은 기간 정의당 청년학생위원회와 함께 워킹홀리데이 노동 실태를 고발 하는 등 '노동 밖의 노동'을 위한 사업들을 기획하고 관련 정책을 설계했다.
2.2. 2015년 정의당 당대표 선거
2015년 7월, 정의당/제3기 전국동시당직선거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진보정당이 새롭게 대변해야 할 '민주주의 밖의 시민, 노동운동 밖의 노동'을 이야기 하며 2세대 진보정치를 주장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결과 출마 당시 당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노회찬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당대표 출마 당시 출마선언문이 지식인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당직선거 이후인 2015년 8월, 정의당 부설 싱크탱크 진보정의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2.3. 2016년 총선 비례대표 출마
20대 총선을 위한 정의당 당내 경선에 출마했고 비례후보 6번으로 공천을 받았다. 당선을 위해서는 11.5%의 정당 지지율이 필요했으나, 실제 정의당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7.23%에 그쳐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2.4. 2016년 총선 이후
- 2016년 8월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직을 사임했다.[5]
- 2017년 서울특별시 노동협력관으로 복귀한다. 관련 기사 - 공무원 정치활동 금지 규정에 따라 정의당에서 탈당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당내에서 논란이 일기도 한다.
- 2017년 XSFM의 시사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서 '시사 아카데미' 코너를 맡아 출연했다.
- 2021년 정의당에 복당하고,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심상정 후보자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직을 맡았다. 관련 기사
2.5.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마포를 다채롭게
말 통하는 구청장
말 통하는 구청장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에서 마포구청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 선거 결과 4.4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선거를 완주함으로써 민주당-국민의힘 후보 표차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하였다. 이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조성주의 완주를 비판했다.[6] 특히 정청래 의원 본인도 페북 댓글에서 정의당이 표를 가져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거기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당선된 박강수 구청장의 여러 논란과 실책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성주에 대한 원망이 크다.
2.6. 2022년 지방선거 이후
9월 열린 정의당/제7기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 당 대표에 도전하였으나 3위에 그쳤다.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으며, 6411버스로 상징되는 노회찬 추모 정당으로서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오히려 당내 지지를 모으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특히 직무급제 관련 부분은 노동조합의 반발을 샀다.류호정, 장혜영 의원과 함께 정의당 재창당 모임 세 번째 권력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23년 12월 8일, 같은 세 번째 권력 소속 의원인 류호정 의원과 함께 새로운선택 창당준비위원회에 입당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선택은 정의당 세 번째 권력 소속 정치인이 입당하는 날인 12월 11일에 창당되었다.
금태섭에 이어 새로운선택 대표자로 공고되었다. # 이후 직무대행 체제가 출범하였는데, 개혁신당 합류를 위한 선행 탈당 때문이다.[7]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2024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가 낙천 운동의 일환으로 발표한 '총선 공천 부적격자' 2차 공천 반대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보건·의료·복지·교통 등 공공정책을 후퇴시키고 민영화에 앞장 섰다”는 것이 그 이유. #
개혁신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받아 후보 명단 10번으로 제22대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2번인 천하람 후보까지만 당선되며 낙선하였다.
3. 소속 정당
<rowcolor=#373a3c> 소속 | 기간 | 비고 |
[[민주노동당|]] | 2003 - 2011 | 정계 입문 |
[[통합진보당|]] | 2011 - 2012 | 합당[8]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2015 | 탈당[A] |
[[정의당|]] | 2015 - 2017 | 입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7 - 2021 | 탈당[A] |
[[정의당|]] | 2021 - 2023 | 복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3 | 탈당 |
[[새로운선택|]] | 2023 - 2024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4 | 탈당[11] |
| 2024 - 현재 | 입당 |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정의당|]] | 1,719,891 (7.23%) | 낙선 (6번) | |
2022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서울 마포구청장 | 7,760 (4.48%) | 낙선 (3위) | ||
2024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 1,025,775 (3.61%) | 낙선 (10번) |
역대 선거 벽보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20대 총선 (비례대표 6번) | 제8회 지선 (서울 마포구청장) | |
22대 총선 (비례대표 10번) | }}}}}}}}} |
5. 저서
청춘일기 |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 너는 나다 (공저) | 세상을 바꾼 놀라운 정책들 (공저) |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클을 넘어 |
꽃핀자리 (2015.9.23) | 후마니타스 (2015.7.2) | 철수와영희 (2010.11.13) | 유니스토리 (2010.5.11) | 시대의창 (2009.4.27) |
6. 여담
- 비례 경선 때 모금을 위해 사탕을 팔았다. 당대표 선거때는 텀블러를 만들었다고 한다. 5개 사면 메모지도 준다는 듯. 땀이는 바나나맛, 이름은 레몬맛이다. 맛은 호평 일색이다.
- 조성주 본인과 지지자들 특유의 SNS 문체가 있다. 이른바 '엉엉 울었다'체. 스스로 느끼기에 감동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 걸어놓고, "단숨에 읽고 엉엉 울었다"고 소개하는 것. 지지자 입장에서는 감성적인 지지를 표할 수는 있으나 3자 입장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든다. 대표적으로 민달팽이유니온의 임경지 위원장이 비례대표 후보출마선언문을 읽고 "엉엉 울었다"를 시전(...)해버리는 바람에 회자가 됐다
- 사울 알린스키 팬이다.
- 정의당의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본인은 NL계열의 학생운동권이었다고 밝혔으나, 당시 운동권의 조국통일운동, 노동자 해방과 같은 것들보다는 등록금 인상 문제나 대학생의 생존권을 위해 싸워야한다고 주장해 내부에서는 수정주의자라며 무시를 당했다고.[12]
- 김어준은 그에 대해 "침발라 두고싶다(...)"라고 평가했다.
- 손아람 작가의 디 마이너스를 인상깊게 읽은 듯. 그러나 막상 본인의 대학시절 동지들은 "엥? 그거 완전 PD애들 얘기 아니냐? 난 NL이어서..."같은 평을 했다고.
- 동명이인인 프로게이머 조성주 선수 또한 매우 유명인인 탓에[13][14] 포털 검색을 하면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글에서는 프로게이머 조성주가 압도적인 검색결과를 보여주나, 국내 포털에서는 정의당 조성주가 먼저 뜨는 편.
7. 참고
조성주의 출마선언문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1조성주의 출마선언문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2
조성주의 출마선언문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3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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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 정의당 대표 선거 출마의 변[2] 조성주, "정의당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진보정당"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병묵 기자·박근홍 기자, 2016.04.29.)[3] 조성주 청년유니온 전략기획단장 ① "청년에 대한 투자는 미래 투자" (레디앙, 2012.08.24.)[4] 잘 나가던 국회 보좌관, 2년 만에 때려치운 이유 [2030에게 희망을 묻다⑮] 전 국회의원 보좌관 조성주 (오마이뉴스, 임승수, 10.07.12.)[5] 조성주입니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을 사임하며 인사드립니다[6] 그러나 마포구 정의당은 정청래-노웅래 의원, 유동균 구청장과 지역내 이슈를 놓고 민선 7기 임기 내내 대립관계였던 것이 사실이라 단일화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선거 기간 내내 정청래 왕국을 무너뜨리겠다라고 하며 계속 대립각을 세웠다.[7] 개혁신당/역사/통합 과정에서 정치적 통합 합의만 이루고 정당법에 따른 흡수합당을 바로 하지 않았다.[8] 국민참여당과 신설합당[A] 서울시 노동전문관 임명으로 인한 탈당[A] [11] 개혁신당과의 합당 선언 이후 선행 합류를 위한 탈당.[12]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당시 학생운동에서 등록금 문제나 대학생 생존권 문제를 다루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학생운동 침체기에 총학생회를 놓쳤을 때도 학원자주화투쟁위원회 등 등록금 문제 부문은 끝까지 장악하고 있을 정도로. 다만,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분단과 계급 모순에 있는 만큼 이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다른 문제가 근본 과제를 따르는 식으로 하자는 것이 당시 학생운동의 주장이었는데, 조성주를 비롯한 '개량주의자'들은(정파로 치면 주로 21세기)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내리고 개량적인 영역(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미시 영역)이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13] 스타2가 푸대접 받는 한국에서나 상대적 인지도가 낮지, 해외만 나가면 GSL 8회 우승+그랜드 슬램(GSL, SSL, OSL)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페이커와 동급으로 분류된다.[14] 여담으로 같은 개혁신당에 있는 사회진보연대 출신 한지원도 공교롭게 스타2 프로게이머 한지원과 동명이인인데, 인지도 또한 엇비슷하게(?)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다. 다만 한지원 선수는 홍진호, 어윤수 다음 가는 콩라인 정도의 인지도는 있다. 99일 밖에 걸리지 않은 (...) 양대리그 준우승 임팩트가 크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