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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청우당 天道敎靑友黨 | Chondoist Chongu Party | |
약칭 | <colbgcolor=#FFF,#292a2d> 천청 |
중앙위원장 | 리명철 |
창당 | 1946년 2월 8일 ([age(1946-02-08)]주년) |
당가 | 없음 |
슬로건 | 없음 |
중앙 당사 | 북한 평양시 |
청년조직 | 없음 |
국내조직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
국제조직 | 없음 |
당원 | 200여 명 |
최고인민회의 | 22 / 687석 (3.2%) |
이념&정치노선 | 천도교 사회주의 농본주의 단군민족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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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6년 설립된 북한의 민족주의 및 교권 정당으로, 북한의 유일한 종교 정당이다.실질적으로는 구색정당이다. 조선로동당의 위성정당이라 이해하면 쉽다. 때문에 다른 구색정당이 그러하듯, 당 위원회가 열릴 경우 위원회의 주요 의제는 노골적으로 '조선로동당의 주요대회 의제 및 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 등이다. 북한의 선전사이트 '우리민족강당'에서는 다음과 같이 자주적인 다당제 민주정당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민족강당 '천도교청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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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과 천도교인들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정당.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의 후과를 청산하고 새 사회를 건설하려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주체35(1946)년 2월 8일에 창립되였다.
동학의 인내천사상을 자기의 지도리념으로 하며 단군조선이래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단일민족국가의 영예를 세계에 떨쳐 온 민족의 자주정신과 갑오농민전쟁, 3.1운동, 조국해방을 위한 반일성전에서 이룩된 선렬들의 애국애족과 민족단합의 전통을 계승하고있다.
최종목적은 전민족의 대단결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고 《인상무인》, 《인하무인》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고 만민이 복락을 누리는 《지상천국》, 《리화세계》를 건설하는것이다.
기본임무는 《척양척왜》의 민족자주정신으로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배격하고 근로인민이 다 같이 복락을 누리는 범민족통일국가를 창립하는것이다.
천도교청우당은 창당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한 성원으로서 다른 민주정당들과 함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조국해방전쟁,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에 적극 참가하여 왔다.
또한 남조선 각계각층 인민들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과 해외동포들의 정의의 애국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고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적정당, 단체들과의 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투쟁하여 왔다.
2. 역사
2.1. 발족과 창당
일제강점기인 1919년 김기전이 창당했던 천도교청년당의 후신이다. 당시 일제의 탄압에 의해 해체된 이후 해방을 맞은 1945년 9월 14일 재조직되었고, 1946년 천도교 북조선종무원이 동년 2월부터 소련군정의 인가를 받아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정당을 발족하기도 전에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교세가 빠르게 확산되자, 소련은 오히려 이를 포섭해 이용한단 방침을 세우게 된다. 결국 천도교 고원군종무원장이던 김달현[1]이 농민층을 기반으로 2월 8일 천도교청우당을 창당했다.[2]2.2. 1, 2차 전당대회와 당세 확장
창당 1년 후인 1947년 4월 1차 전당대회에서 대체로 김일성이 제시했던 ‘20개 정강’에 기초한 강령을 채택한다. 이후 1948년의 2차 당대회 때는 민족자주의 이상적 민주국가 건설, 사인여천[3] 정신에 어울리는 새 윤리 수립, 회귀일체(回歸一體)의 신생활이념에 기반한 경제제도 실현 등 그나마 천도교적인 강령으로 수정된다. 그러나 동년 9월 북한정권이 수립된 뒤 일부 간부진의 교체와 함께 당 강령도 북한정권의 정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다시 수정되었다.즉, 1949년의 확대중앙위원회에서 수정된 행동강령 가운데 인내천의 신문화를 발양, 인간창조 및 민족문화 발전에 노력한다는 조항 이외에는 천도교적 성격에 상응하는 것은 전혀 없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과 중앙정부정강을 준수, 실천하며... 등 로동당의 방침에 철저히 순응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4]
실제로 6.25 전쟁 직전까지 북한 전역에 99개의 도• 군 종무원이 조직되는 등 비교적 전국적인 조직을 갖춰 나가며 세력을 가다듬었다. 당시 남한에서도 김병세를 중심으로 한 남조선천도교청우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존재했고, 청우당은 실제로 제헌 국회의원 총선거에 등록하여 참여하기도 했다. 링크 참조. 1948년에는 무려 서울의 천도교중앙본부에서 직접 3.1절 행사를 기해 거국적인 반공의거를 일으키라는 지령을 받았으나, 당수였던 김달현은 김일성과 협력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게 된다. 이후 1950년 월북한 남조선청우당을 흡수해 조선천도교청우당을 발족하고 김달현이 다시 위원장이 되었다.
2.3. 북한 내 탄압과 부활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당내 사상 갈등이 고조되었다. 고위 당직자들 다수는 김일성을 지지하였으나, 일반 신도들은 상당수가 반공대열에 참가하기까지 하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였다. 전쟁 이후에는 8월 종파사건과 얽히면서 김달현 중앙위원장마저 천도교청우당 1958년 10월 전원회의에서 6.25 전쟁 때 미국과 내통한 간첩으로 지목당해서 숙청,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간첩 사건으로 몰락하게 된다. 이후 박신덕[5]이 새 위원장으로 피선된 후 지방조직이 거의 마비되었다고 한다. 이후 박신덕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진짜 천도교인 출신인지도 알 수 없는 강장수로 교체되면서 해방 이전의 명맥은 다 끊어지게 된다.이후 주요 국가행사나 대남성명 발표나 통일문제와 관련한 정당 및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개최될 때에 그 존재를 나타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는 북한 언론에서 천도교청우당을 언급할 때 중앙위원장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 1970년대 남북대화 무드가 조성되자 청우당도 이에 참여해 1972년 8월 2일 부위원장인 강장수가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참석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회예비회담 자문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통일전선전술에 비교적 자주 동원되었는데, 이는 북한이 남한 사회단체들과의 접촉을 중시하는 노선으로 대남(對南)정책을 바꾸면서 북측 사회세력이 얼마나 다양한지 선전하기 위함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당시 남한의 육군 장성 출신으로 한때 외무부 장관까지 지냈던 최덕신 천도교 교령과 류미영 부부가 1986년 월북해서 차례로 천도교청우당 당수를 맡기도 했다.
1993년에 개정된 강령 및 규약은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갑오농민전쟁, 3.1운동, 조국 광복을 위한 반일 성전에서 이룩한 선열들의 애국애족과 민족 단합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다.
2.4. 현재
2001년 7월 말 유엔인권이사회의 보고에 따르면 천도교 교역자는 250명, 신도는 1만 5천 명, 당원은 1만 4천 명 정도 있다고 한다.2013년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는 총 687석 중 22석을 획득했다. 2016년 중앙위원장 류미영이 사망하면서 2020년까지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부위원장들이 중앙위원장의 자리를 권한대행하다가 2020년에야 부위원장 리명철이 신임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전까진 월북한 최인국이 새 중앙위원장이라는 섣부른 추측들이 횡행했고 심지어 이런 잘못된 정보가 나무위키에도 기재된 적이 있었다.
자체 소유 기업소까지 가진 조선사회민주당에 비해 당원 수, 의원 등 조직과 당세가 미약하다. 광복 당시 이북 지역에서 천도교도가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는 물론 불교도까지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더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판세가 역전되었다. 조선사회민주당이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관계를 끊고 대남사업에 집중하면서 비종교인을 많이 모집한 것도 있겠지만, 천도교 자체적으로 일제강점기부터 공산당과 연대가 잦았고 공산당에 호의적인 교도들도 많았기 때문에 해방 직후 교도들을 대거 로동당에 탈취당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물론 조선사회민주당은 자강도, 량강도, 라선시에 조직이 없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제1야당일 가능성이 있으나 북한 체제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3. 역대 중앙위원장
- 김달현(1946~1958)
- 박신덕(1959.1~1973.8)
- 강장수(1973.8~1977.6)
- 정신혁(1977.6~1979.3/1979.3~1982.8)[6]
- 정신혁(1982~1989)[7]
- 최덕신(1989.3~1989.11)[8]
- 정신혁(1989.11~1993.7)[삼선]
- 류미영(1993.7~2016.11)[10]
- 대행: 윤정호(2016.11~2019.1)
- 대행: 리명철(2019.1~2020?)
- 리명철(2020?~현재)
4. 조직
천도교청우당 조직은 당대회(당의 최고지도기관), 중앙위원회(전반적 당사업 조직지도), 중앙 검사위원회(재정ㆍ경리 감사), 상무위원회(중앙 위원회 권한대행), 검열위원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5. 통일관과 대남관
조선로동당의 구색정당이므로 당연하겠지만 조선로동당의 통일정책을 이견 없이 적극적으로 지지한다.1979년 10.26 사태 후 미국으로 망명했던 최덕신이 수차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통일방안 실현을 위해 앞장서자 북한은 천도교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비와 함께 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게 되었다.
한편, 박신덕의 뒤를 이어 1982년 8월 천도교청우당 제6차 당대회에서 재선된 정신혁 중앙위원장이 보고를 통하여 개편되고 개정된 중앙지도기관과 당의 강령 및 규약과 정책에 대해 공표했다. 정책의 경우 구색정당답게 그저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었다.
당시 보고에서는 이외에도 ‘북남, 해외의 각 당과 각 파 및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민족대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같은 대회에서 채택된 "남조선과 해외 천도교인 등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는 연방제통일의 실현을 기해 연공합작과 민족대통일전선 형성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6. 매체에서
게임 슈퍼파워 2에서 북한 정당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한국 비공식 번역자가 천도교청우당의 존재를 몰라서 '촌도이스트 촌구 파티'로 번역한 흑역사가 있다.(...)7. 참고 문헌 및 자료
8. 관련 문서
[1] 발족 당시에는 김달현 위원장을 위시하여 부위원장 박윤길, 김정주, 7명의 정치위원, 13명의 상무위원으로 중앙당의 진용을 갖추었다.[2] 이는 조선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다당제를 앞세운 소련의 북한 주민 포섭 정책의 결과였다.[3] 事人如天. 한울님을 공경하듯이 사람도 그와 똑같이 공경하고 존경하여야 한다는 천도교의 윤리 행위.[4] 따라서, 같은 우당인 현재의 조선사회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이념과는 관계없이 사회주의 사회를 신봉하는 종교정당에 불과했다.[5] 박신덕 본인은 진짜 천도교인이다. 일제강점기 때 천도교인 주도의 사회운동인 공생조합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6] 본명 정신영. 1920년 강원도 원산 출생. 청우당 위원장 역임 후 조평통 부위원장으로 재임하다가 2003년 사망.[7] 6차 당대회에서 재선[8] 6기 14차 전원회의에서 선출.[삼선] [10] 6기 24차 전원회의에서 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