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3 23:40:57

조선카톨릭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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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조카협
창설일 1988년 11월 28일 ([age(1988-06-30)]주년)
주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지영
성격 북한의 어용 천주교 조직
이념 주체사상
1. 개요2. 연혁과 활동3. 실상과 한국 천주교 입장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조선카톨릭교협회는 북한천주교 단체로, 북한 유일의 공인 천주교 단체다.
조선로동당산하 통일전선부에서 관리하는 대외에 보여주기 단체다.
소속 신도들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문서에서도 나와있다싶이 소속 신도들의 신앙심에 대한 논쟁은 있어도,
해당 단체와 장충성당[1]이 어용단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2. 연혁과 활동


1984년 북미주 교포사목을 하던 고종옥 마태오 신부는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다.
그는 방북 직후 5월에 서울교구를 방문해 방북 결과 명목상으로는 아직 평양에 가톨릭 성당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예상과는 달리 북측 당국은 가톨릭 사제인 나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서울에서 86 아시안게임 개최와 제3세계와 외교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1987년 6월 9~13일 평양에서 개최될 '비동맹 특별각료회의'에 바티칸과 접촉했다.

이에 교황청은 제네바 유엔기구 교황청사절단 고문으로 있던 '주세페 베르텔로' 몬시뇰 주교를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장을 맡고 있던 장익 신부도 함께 파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당시 바티칸에서 평양 비동맹 국제회의 참석 타당성에 대한 의견을 내게 물어왔을 때 ‘무조건 가야 한다’고 해서 가게 된 것이다. 장익 신부가 비동맹국가 각료회의를 마치고 북측이 보낸 나의(김 추기경)의 방북 초청장을 갖고 돌아왔다. 남측 정부 당국도 그 초청 건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그후 장충성당 헌당 축성식을 겸해 나의 방문일정을 구체적으로 협의하기 위해 장익 신부와 정의철 신부가 평양에 갔는데 북측에서 막판에 문제를 제기하며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평양교구장을 맡고 있던 나의 평양방문이 흐지부지됐다”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2]

교황청은 천주교 신자가 있으면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남성신자 3명과 여성신자 2명을 장익 신부와 대면하게 되었다.

이후 장익 신부는 아래와 같이 회고하였다.
“모든 성당이 파괴되고 교우들은 흩어진 이래 각자 가정에서 또는 개인으로서 형편 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조·만과(아침·저녁기도)와 삼종경은 여전히 바치고 주일이면 주모경 서른 세 번으로 대송(미사를 대신해 기도문을 외움)한다고 했다”며 “박 말구, 홍 데레사 부부는 큰 첨례(교회 대축일)를 그냥 보내기가 너무 허전해 예부터 외워오던 라틴말 성가를 함께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평양에서 신자라고 밝힌 여러 명들 중에 그들 모두를 신자라고 믿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으나 박덕수와 홍도숙 두 내외는 틀림없는 가톨릭 신자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준비를 위해 1988년 6월 30일 조선천주교협회를 건립하였다.
목적
①천주교신자들의 신앙의 자유와 권익옹호,
②신자들을 애국애족정신으로 교양,
③교인들 사이의 연합 도모,
④나라의 부강발전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천,
⑤외국 천주교신자 및 단체와의 친선관계 발전,
⑥세계평화를 위한 노력
#

이에대한 한국천주교의 반응은 뒤에 서술하겠다.

그와 동시에 장충성당 시공계획을 준비하였다.
1988년 3월 착공식을 해 같은해 9월 말에 모든 공사를 마쳤다.

장충성당에는 ‘평화3000’이 지원하는 콩우유 지원사업장이 있다. 성당 뒤편에 위치한 콩가공 공장에서는 하루 5,000잔의 콩우유가 생산되는데 이는 지역의 소학교, 탁아소, 유치원 등의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지원된다고 한다.

이 단체의 주장으로는 3개의 지구협회가 있고, 각 지구협회에 5백여개의 예배처소들이 있다.
이중 장충성당에서 일요일 평균 200여명이 모여 예배(공소예절)를 본다.[다만,]

명색이 "종교의 자유가 있다."라 선전하고 있는데 천주교 미사가 없으면 조금 그랬는지 사제 양성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고있다 한다.

동독, 중국, 일본, 홍콩등의 천주교회에 2~3년간 짧은 기간 동안 신학을 공부시켜 사제를 양성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4] 물론, 중국천주교애국회에서는 평양은 서울대교구 관할이기 때문에 서울대교구 교구장에게 문의하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당연히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했다.[5]

최재영 목사는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 신학생을 보내서 공부했다고 주장을 하였으나, 우르바노 대학에서는 확인불가라고 답변을 했으며, 해당 주장에서의 '신학생'역시 신학이 아닌 다른 학문을 수학했다고 밝혔다. 그마저도 1달만에 여러 사정으로 귀국했다.

이들의 공소예절 이외의 종교적활동은 1991년 10월에 두 권의 교리서 『천주교를 알자』 와 『신앙생활의 걸음』, 그리고 이와 함께 『카톨릭기도서』를 출간에 있다.[해당글은]

『천주교를 알자』는 장충성당 신자들 중에 엄진섭(시몬), 차성근(율리오), 김은주(엘리사벳) 등 3명이 집필한 책으로 믿을 교리, 지킬 계명, 은총을 얻는 방법, 주요 기도문을 수록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톨릭을 쉽게 배우는 교리 해설서입니다.

두 번째 교리서 『신앙생활의 걸음』은 고영희(수산나)가 집필한 책으로써 가톨릭을 초보적으로 안내하는 교리서이다.

이에 현행 천주교 교리서에 비교하면
정 신부님은 북한의 “교리서가 현재화 되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네 가지 이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첫째, 북녘 교리서는 오늘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교리 문답을 과감히 생략하였다. 둘째, 중요한 교리 용어를 쉬운 말로 고쳤으며, 교리 설명도 장황하지 않고 평이하다. 셋째, 꼭 필요한 자리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였다. 넷째, 자신들의 처지에서 필요한 내용은 적절히 강조하였다.”

첫째, 남녘의 교리서는 매우 원론적인 차원에 머무는데 비해, 북녘 교리서는 매우 실천적인 차원에서 쓰여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북한 교리서는 가톨릭교회 신앙생활의 핵심인 성사에 관해서 남한 교리서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승현 신부는 그 이유를 “성사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북녘 신자들에 대한 배려일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즉 남한 천주교 신자들은 자유롭게 성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사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신자들은 성사 생활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신자들이 성사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 저자들은 북한 신자들의 성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성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에 사용하는 용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교우들은 천주께 어린양들을 위하여 하루 빨리 훌륭한 사제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빌어야 한다.”라 한다.

이후 1996년 조선카톨릭교협회로 개칭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3. 실상과 한국 천주교 입장

“그 협회는 정치집단이지 교회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치도구이긴 하나 천주교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현실 자체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그들을 도외시 할 수만은 없다.”
“나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북한대사관 대사에게도 ‘장충성당에는 신부가 상주해야 참다운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우리가 파견할 신부 2명과 수녀 3명의 구체적인 명단과 자료까지 넘겨주었다. 그러나 북측의 답변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끝내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김수환 추기경 당시, 서울대교구장
천주교신자들의 신앙의 자유와 권익옹호, 친목도모, 국제 가톨릭교회와의 친선관계 도모,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이 설립되었으나, 실제 활동은 대내외에 종교자유 국가로 선전, 남한 종교인들의 북한 내 영향력 차단, 인도적 물자 지원 유도, 해외 가톨릭교회와 신자들과의 친선관계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음.
북한 노동당의 철저한 관리 감독을 받고 있음.
- 일반 신자들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어 한국 가톨릭교회는 북한 신자들과 개별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음. 그러나 개별적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신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됨.
북한의 모든 종교단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린이나, 청소년, 청년층의 신자가 없음.
북한을 방문한 사제들이 비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음. 미사 이외의 성사집전이 북한 당국의 비협조로 집전되지 못하고 있음.
북한교회 실태 및 종교정책, 그리고 서울대교구의 평화 노력 김훈일 신부 2016.8.12
한편 방문자들의 방문코스가 그의 뜻대로 변경될 수 없으며, 정해진 코스만 안내원과 함께 따라가야 한다는 방문형식의 제약성으로 말미암아 방문자들은 이른바「관제종교인과 신자들」을 만났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즉, 전시용의「종교증거물」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보고 북한당국이 선전하는 1만여명의 기독교신자와 30여명의 목사들의 가존재를 사실로 인정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은 지난 74년 8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북한기독교연맹이 가입신청을 했다가 WCC측으로부터 종교 실태와 그 증거를 요구받고 즉각 신청을 철회한데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출처 : 가톨릭신문 [북한의 종교실태와 종교정책] <상> 「가정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 영위
북측 카타리나 조선천주교여성연맹위원장은 “장충성당은 성모마리아 성당이기 때문에 신도의 대부분이 여성이다”며 “여성신도가 70%에 이른다”고 밝혔다.
출처 : #

외부 지원을 받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불어 기사를 보면, 전부 남북간 거래가 있었던 시기에 집중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해방공간기에 교회 재산 몰수와 수도자/성직자 체포를 단행하였고, 실종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더군다나 6.25중 이남지역 천주교 수도자/성직자들을 체포해 평양과 중강진등으로 보내는 '죽음의 행진'을 했으며,
50년대 말 「김 신부 사건」[7]이나「원산 십자가사건」[8]을 빌미로 박해를 진행하였다.
결정적으로 60년대에 들어서 「중앙 집중 지도사업」등의 성분조사로 인해 그나마 은밀히 유지해오던 종교조직과 신자들이 색출돼 신앙의 등불은 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방북과 사제 파견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편이나 이렇다할 결과를 내지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구내 민족화해위원회 역시 북한이탈주민, 통일 교육 위주의 활동을 주로 한다.

4. 관련 문서

장충성당
침묵의 교회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1] 교회법적으로도 사제가 상주하지 않으니 성당이 아닐 뿐더러, 교황청과 한국 천주교역시 정식 성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2] 출처 : #[다만,] 개신교의 가정예배처소마저 존재가 불확실하기에 천주교 공소는 언감생심이다.[4] 성신교정항목에도 서방교회는 7년동안 교육 받고 서품을 받는다.[5] 출처 : [북한 천주교 기행 김연수 " 성직자 없는 북한, 사제 양성 계획 추진"|https://news.cpbc.co.kr/article/758258][해당글은] CPBC 북한 천주교 기행 김연수 신부 "종교 자유 없는 북한 교리서는 쉽게풀어"에서 발췌했습니다.[7] 김 신부 사건은 선천군 내 비밀 가톨릭단체들이 점조직으로 구성돼 활동하다 발각, 김 신부가 처형된 사건이다.[8] 1960년 철도공장의 한 젊은이가 목욕도중 십자가를 떨어뜨려 그것이 발각돼 관련된 가톨릭신자 70여명이 처형된 사건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