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3:01:08

전생 첫날 수도를 버리다

전생 첫날 수도를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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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대체역사
작가 간절히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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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2021. 03. 05. ~ 2021. 09. 17.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등장인물
4.1. 조선
4.1.1. 광해군 라인4.1.2. 왕실4.1.3. 조정4.1.4. 군부4.1.5. 기타
4.2. 일본4.3. 명4.4. 후금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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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간절히.

2. 줄거리

광해군의 비망록을 우연히 발견한 역사학자 한선국

비망록에 숨겨진 부적의 힘으로 조선시대 광해군에게 전생하게 되는데

눈을 뜨자마자 듣는 말은!

왜적이 한양 코 앞에 당도했습니다. 달아나야 합니다.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1년 3월 5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동년 9월 17일 총 156화로 완결되었다.

4. 등장인물

4.1. 조선

4.1.1. 광해군 라인

  • 광해군
    작품의 주인공. 직접 칼을 들지는 않지만, 사지에도 어느정도 방어선만 확보되면 망설임 없이 손익을 계산하고 들어가는 면모가 특징.[1] 울산성 전투에 친정해 조선 & 명군을 지휘한 끝에 10만 넘는 일본군 중에서 포로만 8~9만명에 달하는 대승을 거두고 절대적인 권력을 쥐게 된다. 자신이 조선을 원 역사보다 한층 강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국제 정세와 역사의 큰 줄기상 병자호란과 일제강점기 등의 위협이 여전하단 것을 알기에 해양을 진출해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손에 쥘 계획을 하게 된다. 그리고 류구와 대만 원정을 위해 태상왕으로 물러났으나 이순신의 미친 활약으로 대만 원정에서도 완벽한 성공을 거두고 동아시아 무역에서 있어 갑의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 후에는 북방에서 누르하치가 이끄는 여진족과 겨루기 시작한다. 온갖 정치질과 외교를 통해 여진족의 성장을 막았으나 명나라가 실태를 저지르면서 누르하치가 원 역사처럼 성장할 행보를 보이자 군사적으로 승부를 낼 것을 다짐한다. 자유로운 행보를 위해 태상왕으로 물러났으며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2만 5천의 기병대, 8만 5천의 보병대란 총 11만 대병력과 정문부·정기룡·김응하·남이흥·장만과 정충신 등의 노련한 장수들과 함께 여진족의 근거지인 허투알라와 심양을 향해 친정한다.

    포병대의 사정거리 밖에서 유격전을 벌이려는 누르하치를 허투알라를 사정권에 들 기세로 진군하는 것으로 꾀어냈으나, 폭풍을 타고 사력을 다해 돌격하는 누르하치에게 고전한다. 그러나 약 4만의 기병대를 끌고 왔음에도 결국 여력이 다한 누르하치는 산산조각 났음에도 재편된 조선군의 포위에 갇혀서 괴멸당하고 여진족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허투알라까지 점령. 만주를 판도에 넣는다.

    그리고 귀국하던 중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회귀 이후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났음을 깨닫고 미리 작성해둔 유언장을 전달하고 사망한다.
  • 이이첨
    주인공의 정치참모 역할을 수행한다. 을미정사 이후에 형식상 상왕으로 물러난 선조의 감시를 류희분과 같이 전담하나, 선조의 자살로 인해 책임을 지고 개성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 한명련
    주인공의 호위 겸 정적들을 향한 철퇴 역할.

4.1.2. 왕실

  • 선조
    원역사대로 악의적인 혐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광해는 선조의 정치력과 수완을 알기에 내시들을 매수해 정보 통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광해가 함경도와 삼남에서 왜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구국의 영웅이자 공신들의 중점으로 떠오르자, 왜군이 퇴각하는 와중에 협정을 어기고 진주성을 치는 것을 이용해 광해를 죽이려고 각지의 의병과 관군에게 왜군과 싸우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 발을 묶어버린다.
    그러나 광해는 열기구를 이용해 진주에서 탈출하고, 조선군을 동원해 왜군의 탈출로인 부산을 공격하면서 결국 진주성의 조선군도 광해도 살아난다. 그 후 서로 대놓고 적이 되어 대립하다, 결국 광해가 을미년 자신의 세력으로 정변을 일으키면서 권력을 잃고 별궁에 유폐된다. 이는 선조 본인의 실책이 컸는데, 광해의 정변을 막아줄 이원익, 이순신, 권율을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실각시켰기 때문.
    그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조보를 받아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광해는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15만에 달하는 대규모의 왜군이 침공, 그중 10만 가량의 주력군이 북상하자 맞서기 위해 친정에 나서는데, 그 때 광해군을 만나 굳이 조선이 사력을 다하지 않아도 잘만하면 명나라의 힘으로 몰아낼 수 있지 않았냐고 비웃고, 광해는 그런 그를 한심해한다.[2][3] 이후에 광해가 울산에서 대승을 거두고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 왜란을 종결시키자, 자신에게 권력이 돌아올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후의 발악으로 광해를 패륜아로 만들기 위해 약밥에 미리 준비해 둔 자살용 독약을 섞어서 먹고 자살한다.
  • 임해군
    주인공에게 매를 빌려주면서 첫 등장. 당연히 그의 패악질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주인공에 의해 충청도로 유배된다. 이는 지방 사림들의 반란 의지를 꺾어놓기 위한 미끼로서도 이용하는 측면도 있는데 대부분의 독자들 왈, 사림들이 왕자들의 패악질을 감당 못해서 반란도 못할 것이라고.[4]
  • 정원군
    선조의 아들로 역시나 패악질로 유명한 인물. 주인공에 의해 전라도로 유배된다.
  • 순화군
    위의 임해군이 하층민 갈취로 유명했다면 이쪽은 상습 폭행+그로 인한 살인 행위로 악명 높은 인물. 주인공에 의해 경상도로 유배된다.

4.1.3. 조정

  • 류성룡
    원역사에 못지 않은 명재상. 불리한 전세에도 악착같이 제역할을 해내지만, 원 역사에선 이후 사실상 토사구팽 당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광해의 지지로 노년도 불행하지는 않을 듯. 전쟁 이후에도 광해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5] 국무를 수행한다.

4.1.4. 군부

  • 이순신
    원 역사대로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왜군이 보인다 싶으면 조져놓는 바다의 군신. 여기서는 전혀 견제하지 않는 광해 덕에 칠천량 전투가 일어나지 않아 200척의 판옥선 함대를 유지했고, 울산 결전이 일어나면서 해안가의 왜성이 전부 비게 되자 일본군의 퇴로를 끊기 위해 부산 앞바다로 이동해 결전을 벌인다. 1000척에 달하는 왜선들을 그들이 유리한 부산 앞바다에서 장사진으로 받아치면서 괴멸시켜 버린다. 다만 왜장들을 마저 포로로 잡지 않고 그대로 울산으로 이동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일본 육군의 측면을 포격해 조선군의 대승에 공을 세운다. 전투 후에 도쿠가와를 협상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대마도로 원정을 가려는 광해의 명을 받아 기함에 광해를 태우고 대마도로 원정을 가며, 전후 류성룡·이원익·권율과 함께 정왜공신 1등과 덕풍군에 봉해지며 광해의 명을 받아 후임자에게 삼도수군통제사 직을 넘기고 한양으로 와서 주인공의 명을 받아 나대용과 함께 원양항해가 가능한 배의 개발에 착수한다. 원양 항로 시험 도중 나대용과 개발한 신전함과 판옥선, 거북선으로 영국의 대형 프리깃함을 나포하는 공적을 세웠다.
    이후 대만을 두고 도쿠가와의 계획으로 공격하는 동인도 주식회사의 네덜란드의 프리깃 11척 함대와 승부한다. 당시 이순신이 보유하고 있던 함선은 프리깃 2척[6] 광해조차도 못 이긴다고 생각하고 협상을 준비했지만 거북선과 열기구, 그리고 보급로 차단 등을 모두 활용한 전략으로 이긴다. 그 후에 이미 나이가 60대 중반이라 노령인데, 광해는 이순신의 이름값이 몇 년이라도 있어주어야 대만을 확고히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점을 이해한 이순신은 자청해서 대만에 남게 된다. 이후 70대가 될 때까지도 살아남아 생전에 광해의 부름을 받고 다시 고국 땅을 밟게 된다.
  • 권율
    임진왜란의 육군 주력을 이끌던 장수. 울산성 전투에서도 조선 육군을 끌고 양측 20만의 대규모 회전을 벌였으며, 부족한 경험치에도 치열한 혈투를 벌이다 이순신의 조공으로 승리했다. 그 후 나이를 먹어 원 역사대로 사망한다.
  • 신각
    주인공 덕에 승전보가 올라와 참수당할 뻔한 위기를 넘긴다.
  • 김시민
    광해의 지원으로 진주성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후 2차, 3차 진주성 전투까지 성을 지키며 왜군에게 난공불락의 상대로 여겨진다. 일본군에게는 모쿠소로 불린다.[7] 전후 정왜공신 2등으로 봉해지며 주인공의 명을 받아 류큐에 사신으로 가게 된다. 광해가 김시민을 보낸 이유는 일본(정확히는 사쓰마 번)이 류큐를 점령하러 오면 조선의 원군이 오기 전까지 막아낼 지휘관 역할을 겸하기 위함이었고, 김시민은 기대에 부합하여 이순신의 해군이 오기 전까지 사쓰마 번의 점령군을 류큐의 병력을 지휘하여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류큐를 점령하러 온 사쓰마 번의 장수 중 한 명은 1차 진주성 전투에 참여했는데, 류큐의 방어를 보고 왠지 모르게 진주성의 모쿠소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진짜로 김시민이 있는 걸 확인하자 왜 저자가 여기 있냐며 절규를 한다. 이 후 대만 원정 종료 후 류큐와의 외교 사신인 김시민 역시 대만에 남은 듯 보이고, 이순신과 함께 귀환한다. 설탕을 매우 좋아하는 듯 하며, 이순신과 함께 귀환했을 때 왠지 모르게 풍채가 좋아졌다고(...)
  • 황진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
  • 원균
    이순신이 탄핵된 직후 통제사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이 을미정변을 일으키자 통제사 자리를 버리고 도망치는 바람에 원 역사에서 벌였던 칠전량 해전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3등 공신에 책정되었다.[8] 이 후 남해상사에 가담하여 대만 원정에 참가하려하나, 원균의 본질을 알고 있던 이순신은 당연히 원균을 참가인원에서 제외했고 이에 자신이 가지 않았으니 대만 원정이 실패할거라고 떠벌리는 바람에 송상이 갖고 있던 주식을 팔아치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9]

4.1.5. 기타

  • 양예수
    어의. 실존인물 허준의 스승으로 등장한다. 대중들이 흔히 허준의 스승으로 아는 유의태는 실존 인물이 아니며 그 모티브였던 유이태라는 인물이 실존하긴 하지만 그는 17~18세기에 산, 허준의 후대 인물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양예수를 스승으로 설정한 듯하다.
  • 허준
    어의. 왕명에 따라 중신들을 치료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출정하는 주인공에게 중전의 회임사실을 알린다.
  • 정평구
    진주성에서 글라이더를 만들다 광해군에 의해 열기구를 만들게 된다.
  • 석담
    명나라에서 조선 파병 찬성파였던 석성의 아들. 심유경 사건으로 석성이 옥사하자 조선으로 망명했다. 광해가 불러서 명나라 난민과 패잔병들로 조직한 대명의군의 사령관이 된다. 물론 석담은 군사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부사령관인 정기룡과 조선 장교진이 실질 지휘를 맡는다.
  • 송상
    개성 일대 거상들을 칭하는 호칭.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조선에서는 어지간한 명문가 이상의 부를 틀어쥔 집단. 임진왜란 이후 대만과 류구 원정을 기획하던 광해가 해양원정비용 마련을 위해서 이들에게 반강제로 투자를 받아내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득도 주지 않으면 뒤에서 뭔 짓을 할 지 모르므로, 주식을 도입해서 이득을 약속한다.
    반 협박으로 거금을 뜯기게 된 이들은 내심 분기탱천했지만, 성공적으로 유구와, 대만에서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점차 만족한다. 그러나 동인도 주식회사와 전쟁이 일어나자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이순신의 위명을 아는 이들도 도저히 이길 것 같은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그래서 원균을 초청해 알아본 결과, "나라면 모를까 이순신 능력으론 어림도 없다"는 평가에 겁먹고 주식을 전부 팔아치운다. 이 주식은 이순신의 부하 출신이던 전 수군 병사들이 죄다 사들였고, 이순신은 네덜란드의 프리깃 함대를 크게 격파하고 3척의 프리깃까지 전력으로 얻는다. 그 결과 온전히 대만을 손에 넣고, 동아시아 무역의 지배권을 얻으면서 주식은 폭등. 당연히 본전조차 못 친 이들은 떼돈을 손에 쥔 병사 출신 소액 주주들을 보면서 망연자실.
    그럼에도 조선의 국제무역 진출에 힘입어서 몇년간 이득을 보고, 후금과의 전쟁이 임박하자 이번에는 광해를 믿고 얼마든지 투자하겠다고 눈에 불을 켠다. 다만 만주까지 대만식으로 경영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광해에 의해 배당을 줄이는 조건으로 조건부 허락을 받게된다.

4.2. 일본

  • 시마즈 요시히로
    부산 해전에서 이순신의 200척 판옥선 함대를 상대로 1000척에 달하는 대함대로 맞선다. 판옥선을 잡기 위한 안택선까지 수백척은 포진한 대함대였지만 장사진과 피해를 각오한 돌격이 되레 포망 유도에 걸려들어 대패한다. 그후 도주했으며 류큐를 쳤다가 조선 수군의 역습을 받아 겨우 도망치고, 시마즈 가를 못마땅해한 도쿠가와에게 핍박받게 된다.
  • 고니시 유키나가
    독실한 천주교도 왜장. 전쟁 자체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무장으로선 조선을 악착같이 괴롭힌 것은 원 역사와 같다. 그러나 울산성 전투와 부산 해전에서 연이은 패전으로 10만 왜군의 승기가 사라지자, 대부분의 왜장들이 자결하고 혼자 남아 대표로서 전면 항복 처리 후 처형당한다. 그나마 죽기 전에 신부를 만나도록 허락받았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원 역사처럼 양난 이후의 승자. 심지어 이번 왜란에는 대부분의 영주들이 귀국하지 못하고 10만 도요토미 세력이 패전 후 포로가 되면서 확고한 우위를 점했다. 그 후 10만에 달하는 군을 모아서 도요토미 가문을 압박하면서 본격적인 일본의 실세로 떠오른다. 다만 원 역사에서도 도요토미 가문을 정리하는 데 십수년이 든 만큼, 이번에도 도요토미 가의 본진 오사카 성 공략을 위해 준비에 진력한다. 광해는 일본 본토에 수작을 부리지는 않지만 미래 일제강점기 같은 역사가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에 해양 진출을 비롯해 일본의 파이를 빼앗아 먹을 계획을 짜고 있다. 조선에게 해양에서 가로막히지 않기 위해 류큐와 대만을 두고 동인도 주식회사가 11척의 프리깃으로 공격하는 걸 유도했지만 치트공 탓에 실패. 본인은 그 커다란 배를 11척이나 동원해 놓고 대체 왜 발린 거냐고 황당해한다. 그 후 유럽·조선·명 전부와의 무역봉쇄를 먹어 사치품과 군수품 수입이 막히자 다이묘들의 거센 항의를 듣고 이를 갈며 협상을 진행한다.

4.3.

  • 심유경
    협상하면서 고분고분하지 않은 광해에게 분통을 터뜨린다. 물론 정유재란의 역사를 아는 주인공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히데요시가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하루아침에 거짓보고만 올리게 된 그는 처형을 피해 도망쳤고 주인공의 밀지를 받은 이순신에 의해 압송될 위기를 피해 조선에서 은거하게 된다.
    10여년이 지나서 재등장. 야심이 컸고 능력이 있었던 만큼 재기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대명의군의 군자금 원조 협상을 받아 명나라에 돌아가 협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15만냥의 예산을 1차로 받아온다. 이후 주인공의 지시를 받고 전쟁의 패배로 처형당하게 된 웅정필의 가족들을 빼내오기도 한다.
  • 모문룡
    누르하치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조선으로 왔다가 주인공의 지시로 암살당한다.
  • 웅정필
    명나라의 대 후금 전선을 담당하는 장군. 그러나 야전에서는 배의 병력을 준비해도 전성기를 구가중인 누르하치의 후금 팔기군을 이기기 어렵단 사실을 알기 때문에 철저한 수세 전략을 취하고 있다. 후임 원숭환도 그렇고 그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은 후일 철저하게 밝혀지지만.... 문제는 거기에 소요되는 물자인데, 수십만 대군과 성벽을 조선의 몇 배에 달하는 지역에 설치해야 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이 해마다 500만냥으로, 7년간 벌어진 임진왜란에 필적하는 예산을 해마다 소요하기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한 명나라 재정이 그걸 견디기 어려워서 그에게 공격전을 강요하고 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광해를 방문해서 명성있는 그가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부탁한다.
    이항복과 중신들은 그의 인품과 능력을 알아보고 지지해주기를 청하지만, 위에 적혔듯이 광해가 지지해준다고 한들 엄청난 예산소모는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닌지라 그의 수명을 겨우 몇년정도 늘려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수년 후 왕화정의 고집으로 몽골의 40만 지원군이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내뱉는 스파이에게 속아서 6만이 넘는 대군을 끌고 요동에서 야전을 치렀다가 대패하게 되고, 결국 그 책임을 뒤집어쓰고 처형 된다. 그래도 가족들은 주인공 덕에 조선으로 빼돌려져 목숨은 건졌다.
  • 원숭환
    강화정의 패전과 웅정필의 억울한 처형 이후 명나라의 대 후금전선을 담당하는 장군. 조선의 출병에 발맞춰서 수만 대군을 끌고 심양 인근을 위협해 후금 기병 수만명의 발을 묶는다. 누르하치가 패사하고 후금이 몰락하자 조선을 견제한 듯 하나, 이를 예측한 광해가 죽기 전 원숭환을 내칠 이간계를 남겼고, 이에 휘말려 처형당한다.

4.4. 후금

  • 누르하치
    원 역사대로 여진족의 통일 직전인 세력가이자 작중 최종 보스로 추정되는 인물. 양호가 이끄는 명의 대군을 격파했으나 아들 다이샨이 조선군을 치다가 화력과 왜병들에 의해 패퇴하자 전속으로 기동해 물자를 버리고 퇴각하는 조선군을 추격하려 든다. 그러나 군영에 설치한 함정에 의해 수천명의 병사를 잃고 격노한다. 그러나 더는 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본거지에서 한동안 세력 정리에 들어가서 동해여진 등의 야인여진들을 전부 잡아가려고 들지만, 정문부를 필두로 한 조선 병력에게 한번에 수백명이 포로가 되는 등 세력확장이 여의치 못해서 병력 동원력이 약 5-6만명에 불과하다. 군사력 약체화를 막기 위해 조선과의 무역을 금지했지만 이미 명과의 무역이 막힌 마당에 경신대기근이 가까운데 광해가 고의적으로 말값을 올리기 시작하자 식량을 사들이기 위해 명령을 어기고 말을 팔아넘기는 여진 부족들이 나온다.

    조선의 북방은 후금 기병들을 잡아죽이기 위한 산성 지대로 개조되었고, 압록강 인근에서 대치해봤자 여진족의 승산도 크지 않고 예산 낭비를 버틸 수가 없었다.[10] 결국 선수를 쳐서 11만의 대군을 몰고 북진하는 광해의 조선군을 막기 위해 원숭환을 막기 위한 1만명의 병력만 남기고 4만을 넘는 기병부대만 끌고 허투알라 인근에서 대치한다. 허투알라는 심양 천도 후에도 후금 건주 여진족의 근거지이자 핵심인 자원의 산출지대인만큼 보급과 예산 낭비도 줄일 수 있고, 고향이 가까운만큼 각 부족들도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이기 때문.
    대 기병 훈련을 받은 조선 보병과 포병들 상대로 정면승부는 위험한 걸 알아서, 홍타이지에게 8천기를 맡겨서 우회해 후방에 있던 조선 기병을 습격했지만 기병들 사이에 포병과 보병을 숨겨놓은 조선의 받아치기에 홍타이지는 수적 열세로 포위당할 것을 걱정해 도로 밀려나고 만다. 정면과 후방에서의 양동이 실패하자 수십명 수준의 기병부대만 이용해 조선의 화약 낭비를 유도한다. 그러나 정충신이 결국 저들은 근거지이자 핵심인 허투알라를 지켜야 하는 것을 간파하고, 굳게 수비태세를 유지한 채로 허투알라를 향해 진군하자,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 강풍으로 조선의 포병대가 거의 무력화된 시점에 부대를 3개로 나누어 다이샨과 홍타이지에게 별동대를 맡기고 사력을 다해 조선군 본진을 강타한다. 강풍의 영향으로 조선의 포병대와 더불어 궁병들도 거의 무력화됐기에 철기를 타고 수만 병력을 몰아 돌격전을 시도한 것. 홍타이지와 다이샨은 기병과 보병을 모아 저항하는 한명련과 정문부에게 묶이고, 누르하치는 정면에서 김응하, 강홍립, 김충선을 연달아 돌파한다. 그러나 돌파 이후에도 남아있던 수만명의 조선군이 방어전을 준비하고, 누르하치의 부대는 체력이 고갈 직전이라 더 이상 싸우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 게다가 바람도 약해지면서 벼르던 포병대의 포격을 너무 깊게 들어온 나머지 조선군 사이에 갇혀서 두들겨 맞기 시작한다. 누르하치는 허투알라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포위를 돌파하려 했지만 결국 바로 옆에 떨어진 포격에 낙마해 사망한다.
  • 다이샨
  • 홍타이지
    누르하치의 아들들 중 최측근. 여진을 이끌고 조선과 겨루었으며 누르하치가 조선군 본군에 돌격할 수 있게 양 측면에서 공격했으나 누르하치가 조선군 중앙까지 돌파 직전에 여력이 다해 사망하자 군대가 괴멸하자 둘이 이끄는 별동대도 결국 패배한다. 이후 언급되지는 않지만 요동, 허투알라가 조선의 판도에 들어온 데다 에필로그에서 조선이 최소 십수년 이상 요동을 계속 점거하고 있었기에 재기하지 못하고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5. 기타

  • 본래는 《치트키 없이 임진왜란》이라는 제목으로 주인공의 실수로 이순신이 장살을 당하는 전개로 진행되었으나 독자들의 반발로 취소되고 이 작품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1] 진주성 등.[2] 작 중 묘사를 보면 그저 어이없을 뿐인 말이다. 선조 본인이 자신의 권력사수를 위해 성군 코스프레를 하면서 유성룡이 총대를 매고 속오군 등의 개혁을 진행했고, 광해 역시 선조가 전쟁 중에 발표한 친족의 징병 금지를 그대로 실행했다가는 당장 군사력 약화로 인해 전선을 유지할 수 없어서 어명을 거역한다는 걸 감수해야만 했다. 즉,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는 조선이 굳이 강국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광해는 이를 깨닫고 왜란과 호란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조선을 서구 열강의 발전상을 따라갈 강국으로 만들려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 반대임을 깨닫는다.[3] 참고로 광해는 선조와 만날 때마다 그가 하는 망언을 전부 실록에 기록하라고 당부했기에, 현대처럼 나날이 욕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4] 어찌되었거나 왕으로 즉위한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선조의 아들들 중 하나를 옹립하는 쪽이 정변의 정통성이 올라가는데, 임해군, 정원군, 순화군 모두 민심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정통성을 갖추려다가 민심 이반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5] 궁궐 재건. 광해는 원 흑역사를 아는지라 자기 입으로 말하기 뭣했는데, 류성룡이 포로를 써서 느리게라도 시행하자고 밀어준다.[6] 1척은 위에 언급했듯 나포한 프리깃함이고, 나머지 1척은 포르투갈에서 대여받은 노후한 프리깃함이었다.[7] 모쿠소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김시민 문서를 참조.[8] 광해군은 회귀의 기억을 가졌기 때문에 원균이 3등 공신 목록에 있는걸 보자 공신 목록을 작성했던 이항복을 2등 공신에서 삭제할까 고민할 정도(심지어 이항복이 2등 공신 목록에 없는 걸 본 광해 본인이 이항복을 2등 공신에 포함시킨 직후였다)로 부들부들했지만 원균이 대놓고 실책을 벌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삭제할 정당성이 없어서 못했다.[9] 나중에 송상이 이를 와서 따졌으나 자신은 실패할 수도 있다고 했지 대만에 대해서는 모르는데 왜 그걸 가지고 따지냐고 강짜를 부렸고, 송상 입장에서도 왜란의 공신인 원균에게 더 따질 수 없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10] 조선을 치려면 함경도 쪽은 원정비용이 더 들어갈 판이라 평안도 쪽을 넘어와야 하는데 부실했던 병자호란과는 달리 여기서는 처절한 산성지대와 북방군이 배치되었던 데다, 명나라와는 달리, 국경선도 넓지 않아서 우회할 수가 없다.